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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영남동연가|잃어버린 마을|4·3전개과정|4·3초토화과정|4·3치유과정|정낭|토벌대|평화공원|4·3정명|무주선원|유네스코 4·3기록물등재|잠들지않는남도|제작 고종익 

간세다리(고종익)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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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동 연가|잃어버린 마을|43 전개과정|43 초토화과정|43 치유과정|정낭|토벌대|평화공원|43 정명|무주선원|유네스코 43기록물등재|잠들지 않는 남도|촬영 제작 고종익
Music 안치환 잠들지 않는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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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6,172 --- 00:00:09,9
4·3 74주년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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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9,9 --- 00:00:15,15
4·3 75주년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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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마을 영남동으로 향하면서 4·3에 대해 생각에 잠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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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발단 -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민간인 6명이 희생
3월 5일 민 · 관 합동 총파업이 단행
2) 3월 7일 계엄령 선포
3월 14일 응원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반공청년단체파견
파업 주도 세력 등 약 2,500명 무더기 검거 고문 및 250여 명 재판 회부
3) 총파업 3월 18일 종식
미 군정의 강경책 지속 미군 축출과 경찰 타도 등 요구
4) 미 군정 8월 15일부터 도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단행
수십 명의 도민 지도자들 한라산 입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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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33,900 --- 00:00:43,910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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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의 시작
무장전위대 '자위대’ 약 350여 명 11개 경찰지서 습격
6) 미 군정 9연대에 진압작전 출동 명령
부산 등 타 도 차출한 1,700여 명의 경찰 파견
7) 4월 28일 김익렬과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 대좌 72시간 내 전투 중지 합의
미 군정장관 딘(W. Dean) 평화협상 거부
오라리방화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 유격대 소행으로 조작
8) 유격대와 제주도민들 5·10 총선거 거부 투쟁 시작 3개 선거구 중 두 곳 무효화
정부와 미국은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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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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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군 작전지휘권은 미군에 귀속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발생
2)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전개
11월 군경토벌대 제주 조천면교래리주민 30명 총살
초토화 작전 3개월 지속 대부분 4·3 희생사건 이 무렵 발생
3) 제주도지구 전투 사령부 총공세 감행 (3월 ∼ 4월 한 달)
2,345명의 '유격대'사상
1,608명의 민간인 살해
4)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 선포
12월 31일 계엄령 해제될 때까지 많은 사상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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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04,30 --- 00:01:14,40
4·3을 어떻게 치유하고 이겨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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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2000)
국무총리 소속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설치
2) 진상규명위 제주 4·3 사건 55년 만에 정부 차원 '진상보고서'채택
인명 피해는 2만 5천~3만 여 명으로 추정
3) 2003년 10월 말 노무현 대통령 제주 4·3 사건 관련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 공식 사과
제주 4·3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2013년)
4)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 참석한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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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2,549 --- 00:01:25,518
산록도로에 세워진 영남동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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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5,652 --- 00:01:31,524
팽나무만이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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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31,524 --- 00:01:37,430
팽나무 아래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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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37,664 --- 00:01:46,539
주인 잃은 정낭만이 집터였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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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6,573 --- 00:01:51,778
계단식으로 잘 정리된 농경지가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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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1,911 --- 00:02:01,921
해발 5백m 고지에 위치한 영남동은 4·3 사건 당시 16가호의 주민들은
화전을 일궈 보리나 고구마를 재배했고, 숯을 굽거나 사냥하며 살았으며
한문을 가르치던 서당도 있었던 평화로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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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02,22 --- 00:02:11,97
1948년 11월 18일 토벌대가 초토화작전을 벌이며 영남리에 난입해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며 주민들을 학살하고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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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11,231 --- 00:02:20,106
토벌대의 만행에 주민들은 마을 위 어점이악 주변의 밀림과 자연동굴에
몸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토벌대는 눈 덮인 산야를 헤매는 주민들을
즉석에서 총살하고 체포했다
15
00:02:20,273 --- 00:02:29,115
영남리에서 4·3 사건으로 92명의 주민 중 5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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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32,152 --- 00:02:44,164
4·3 평화공원에 각인된 마을별 피해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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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44,164 --- 00:02:52,238
영남리 주민 중 박경생씨 명단을 확인하고 묘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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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52,372 --- 00:02:59,679
비석에는 4·3 당시 군경에 의하여 피살된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하여
후일 혼백을 불러 이곳에 합장하였다는 슬픈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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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2,349 --- 00:03:05,585
그날 대상 끝나서 몇 사람이 돌아가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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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5,585 --- 00:03:15,595
(강정동 고 김종원씨 처)
그날 대상 끝날 때 시아방네 형제간 모두 잡아가서 다 죽여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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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15,595 --- 00:03:23,703
우리 시아방네가 5형제였는데 큰 시아방 한 분만 일본에 살다
(돌아가셨고) 다 영남에 와서 살았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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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24,204 --- 00:03:36,916
사촌들과 시아방 아들네영 모두 제주시에 살다가 대상을
(예전엔) 하늘같이 모셔셔 파제하고 집에 가려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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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36,916 --- 00:03:44,290
파제 끝나자마자 (군경이) 왈칵 들어와서 잡아가 죽여버렸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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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44,290 --- 00:03:48,862
남편은 그런저련 생각과 (4·3 사건으로) 공부못한 생각으로
울기만 하다가 돌아가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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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52,932 --- 00:04:01,341
4·3에 대한 바른 이름(正名) 찾기가 곧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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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02,275 --- 00:04:17,57
밭에서 나물을 캐는 전덕희씨에 의하면 전씨 형제를 비롯하여
6명이 영남리에 거주하고 있고, 무주선원에 여승 한 분이 계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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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17,457 --- 00:04:27,467
전씨 형제는 1960년대에 여기 들어와 대를 이어 살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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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27,867 --- 00:04:39,279
인사하자 첫마디가 몇 번지 찾아요? 황당해 하는 우리에게
땅을 매매하려는 사람으로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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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40,547 --- 00:04:52,559
대나무가 우거진 것을 보면 이전 집터임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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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52,559 --- 00:04:58,598
식수로 사용했었던 물 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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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58,765 --- 00:05:04,571
무주선원 암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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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04,571 --- 00:05:16,583
4·3때 희생당하신 영혼들을 위해 왕생극락을 빌어주시길
김종원 님 생존시 증언
제주일보(2022.06.28.)
‘숨어 살았던 동굴에
토벌대가 총을 쏘아도 아무도 나오지 않자,
나무에 불을 붙여 연기로 실신시킨 뒤
한 사람씩 끌어내 모두 총살해 버렸습니다.
그 겨울 몇 달 동안 일가족 15명이
다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4·3 (관련)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4·3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합니다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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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401
@한라산401 Год назад
제주 43이 일어난지 75주년입니다. 잃어버린 마을(곤을동, 무등이왓, 영남동) 중에서 서귀포지역인 영남동을 찾아가 봅니다. 제주 43을 증언하시던 영남동 마지막 주민인 김종원씨의 슬픈 가족사를 들으면서 다시금 이 땅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제주 43이 치유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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