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방송 내용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오승관 선생님이 작성하신 논문 [19세기 말~20세기 초 '위핍자살'의 실태와 행위양식]을 일부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잡지사 방송 | 매주 월~금 오후 7시30분~8시 CBS 라디오 표준FM 98.1MHz ※2/6 화요일 방송분 #잡다한지식사전 #자살 #박광일
📌 영상 10:41부터 나오는 검안서 내 통계 등의 자료는, 서울대 국사학과 오승관님의 연구 을 기반으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울러, 17:12부터 소개되는 '자살 장소'와 관련한 내용 역시, 해당 연구를 출처로 두었음을 밝힙니다. 연구에 힘써주신 오승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죽은 이상 어쩔거야...라는 베이스가 아니네요. 억울함,의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인간존중의 근본이 탄탄했었군요... 모순이 많았던 봉건사회였지만, 인본주의의 법체계 안에서는 사람 귀한 건 알았네요. 어느시대건 다만, 그 법 집행하는 '사람'이 문제인거죠. 이래서 인간의 역사는 모순의 톱니바퀴의 절묘한 균형인겁니다
역시 잡지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타 방송사에서 하는 인기 드라마에서 연계해서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열녀 이야기를 다루는 그 드라마에서는 열녀의 자결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주군을 위해서건, 지아비를 위해서건, 아무리 아름다운 이유를 붙이더라도 자결은 사실상 자살이지 않겠습니까. 미덕이 가미된 자결에 대해서는 조선에서는 어떻게 처리를 했을까요?
자살에 대해서 만큼은 현대 대한민국 법제보다 조선시대가 훨씬 좋네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국회는 관련 입법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작가님도 언급하셨지만, 자살로도 억울함이 밝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는 복수나 사적제제가 판을 치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실제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00:12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다뤘던 자살 사건 02:01 조선시대 시신 부검 🔍 04:29 사또들의 필독서 06:23 가해자에 집중한 용어 ‘위핍인치사’ 08:22 위핍인치사 형량 10:28 그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 12:44 표씨 부인 자살 사건 14:20 간통남과 남편의 엇갈린 주장 💬 16:52 극단적 선택을 한 장소가 의미하는 것 18:30 간접적인 핍박도 인정되었을까? 20:36 의 함의 📖 24:38 정의를 위해선 ‘복수’도 인정되던 시대
원래 조선같은 전쟁이 많은 시대는 자살이라는 개념보단 외세의 적이나 전쟁으로 대부분 죽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개념의 거의없고 대부분 죽음은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들이 많았기에 조선시대의 포도대장같은 수사관들은 대부분의 살인사건들은 자살이 아닌 타살에 초점을 맞춰서 수사를 진행했음.
조선시대에 자살을 사회적 타살로 인정ㅎ ㅏ다니.... 요즘에는 오히려 공감은 빠진 채 누칼협이 판치는 시대인데, 더 옛날의 조선시대는 자살도 타살이라 생각할만큼 누군가의 심정을 들여다보았던 것 같네요 ㅠㅠ 뭐 저런 것까지 고소를 해? 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인간의 관계 안에서 공감으로 풀어야할 문제들을 제도권 안에서 비교적 간단히 풀려니 공감은 배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잡지사 듣고 더 맞다고 생각이 들어서 조큼은... 슬프네여...😢 고도로 발달된 대명률은 오히려 트렌디 하다(?)...
너무 국뽕에 왜곡을 하신 것 아닌가요? 마치 조선시대에서는 자살이나 살인 사건이 나면 검시하고 조사를 했던 것으로 말씀하시는데, 실제 자살/살해 사건 대비 조사한 건수가 몇개인가요? 500년을 통틀어서 200건이 안되지 않나요? 그리고, 조사 방법도 증거에 기반하지 않고 고문에 의한 자백에 기반했다는 것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나요? 그리고 조선시대의 판결 자체가 '원혼'을 풀어주는 것에 집착해서 조상의 억울함/죽은사람의 억울함에만 치우쳐 막상 분쟁은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왜곡을 하니 참 씁쓸합니다. 역사학자로서 좀 부족하지 않나요. 아 죄송합니다. 역사'작가'이셨지.
??? 이해력이 좀 모자르신 듯? 애초 게스트분은 당시 과학기술같은 시대상황을 감안하라고 첨부터 못을 박고 얘기를 시작했는데요? 본문 내용을 지금보다 더 선진적으로 형사조사가 이뤄줬다고 이해한 님이 잘못. 그리고 자백에 의한 판결은 과학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근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히려 같은 봉건시대로 치면 중국과 우리가 유럽에 비하면 훨 씬 과학적인 방법으로 형사사건이 다뤄졌어요. 그리고 살인사건이나 자살건이 조선시대에 현대처럼 쉽게 이뤄졌을 리가 없고 그 수가 엄청 적은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조선은 일본처럼 군사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나라도 아니고 지역공동체 사회라 거기서 벗어나면 죽음을 의미했기에 절대 살인이나 자살이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