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중간에 감사인사도 드릴 여유도 없이 빠져들다 보니 완독? 완청? 하게 되었습니다. 창가님 덕분에 두꺼운 데다가 혀가 안돌아가는 러시아이름들로 어렵게만 느껴졌던 러시아 장편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어갑니다. 물론 책을 빌려 같이 따라가기도 하다가 주로 차로 이동시 많이 들었습니다. 어떨때는 주차장에서 내릴 생각도 하지않고 몰입하기도 하고. 창가님이 읽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너무나 유용한 창가님의 유투브가 있어 길고 어려워 미루어 두었던 러이아문학에 쏙 빠져있습니다. 이제 `악령` 상 중 하 대출해서 만날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을 빕니다.
혀가 안 돌아가는 러시아 이름들을 녹음할 때면 몇 번을 반복해야하는지 모른답니다^^ 인명은 말할 것도 없이 지명들도 어쩌면 그리 어려운지요~ 그러나 워낙 많은 러시아 대장편들을 읽어내리니 나중엔 혀가 잘 돌아가더군요. 낭독자에게 라는 말보다 보람되고 큰 힘이 되는 말은 없답니다. 차에서 내릴 생각도 않으시고 작품 속에 빠지셨다니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만약 저 혼자 읽었다면 또 포기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읽으면서 나 자신도 돌아보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도 돌아보면서 한 번쯤 멈출 수있는 시간의 경험을 선물로 받아서 참 좋았습니다 ~~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건강하세요 ♡♡
수많은 조회수와 댓글이 흥미롭습니다. 정작 전반부는 심리 묘사를 따라가기가 지루하고 난해했습니다. 료자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치열한 직면, 소냐의 사랑에 힘입은 죄의 고백, 이윽고 밝아오는 새벽 부활의 아침. 전당포 노파는 내 죄를 직시하게 만드는 고마운 안내자. 협박자 스비드리는 오히려 유형생활의 구체적 준비자. 어머니와 친구 라주미힌의 조건없는 사랑은 죄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 에필로그 2 꿈속의 보편적 전염병은 비로소 드러나는 죄의 정체. 십자가와 부활의 해설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눈을 가졌으면서 소녀여! 무엇을 더 바라는가' 젊은날 어디에서 읽은 시구절이 죄와벌 책속에서 인용되었던 글이네요 ㅎ 라스꼬니코프가 싫어했던 추악하기만 노파의 나이가 60전후라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60을 훌쩍 넘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거든요 마음으로 막연히 흠모 했던 도스토예브스키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게 길을 안내해 주시는 창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왠지 마음이 설레임과 기다림으로 가득차서 나날이 행복한 느낌마저 든답니다 늘 건행 하소서~
설레임과 기다림... 너무 좋군요. 실은 저도 낭독하면서 제 삶이 풍부해지고 알토란처럼 꽉 찬 느낌이에요. 이처럼 구독자님들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있고요. 시대적 환경이 변한 지금 60대는 노인의 축에도 못 들지만 저도 그와 같은 사실에 놀랄 때가 많아요. 많은 책 속의 꽤 늙은 사람들이 대체로 59대에서 60대 사이여서요^^
마지막 최종회에 댓글이 이렇게 많다는게 놀라워요.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 책이 끝나는 날 옛날에는 떡을먹으며 책걸이했다고 이야기해주셨던 선생님 추억도 떠오르고~ 창가님이 많은분들의 선생님 같아요~^^ 이런 뿌듯함과 보람을 함께할수있어 영광입니다. 리스펙하며 악령으로 또다시 출발~♡
마지막 9,10편은 결말을 알고자 정신없이 들었습니다. 결국은"변증대신에 생활이 온것이었다"로 지극한 소피아와 가족의 사랑과 인내가 그를 제자리로 찾을 수있게 된거 같아요. 창가님의 수고에 많은 고전이 생활로 들어온거 같아요. 다음작품은 무엇으로 시작할까...행복한 고민을 해봅니다!
네, 감사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완독을 하셨으니 대단하십니다. 절판 도서로 일부 수정해가며 읽은 이상 영상을 내릴 일은 없답니다. 예전에 내렸던 많은 영상들은... 무엇보다 제가 마음 아팠지요. 올해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주5회 업로드 예정입니다. 일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많은 고민이 있었답니다. 되도록이면 선구적으로 낭독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다른 채널과 중복될 경우 어떡하나? 어떤 선택과 판단이 좋을까? 내 채널의 방향성은...? 그래서 이후 낭독하고 싶은 책을 검색해보곤 합니다. 다른 채널에서 많이 낭독한 책은 일단 미루었습니다. 읽고 싶었던 키다리 아저씨, 빨간머리 앤, 백범일지 등도 목록에서 뺐죠.
저는 창작의 견지에서 작품을 들여다 볼 때가 많은데요. 결말로 가는 그 여정이 정말 치밀하고 촘촘했습니다. 감탄... 스비드로가일로프의 자살 과정도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서술되었더군요. 마치 명상 속 한 장면 같은 마지막 장면도요... 구독자님들과 함께 책의 지평을, 정신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희열이 있습니다. 저도 혼자라면 중간에 책을 끌어 안고 쿨쿨 잠들었을 거예요^^ ㅎ
긴~긴~ 장편소설 덕분에 잘 감상하였습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글자를 읽는다는 것이 점점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 어느샌가 오디오북을 자주 이용하고 있답니다. 문제는 소설 컨텐츠인데... 도스토예프스키 대문호의 명작을 오디오 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의 여러 등장인물중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오십중반의 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소설속에 전해지는 이미지는 방탕하고 호색가이며 때론 살인 까지 일삼는 무서운 캐릭터로... 그런데, 소설 후반부에서 가 실제로 행한 여러 선행(?)들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선행들이란... 첫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장례를 무사히 치뤄지게 지원한 것. 둘째, 남겨진 3명의 자녀를 거금을 지원해서 고아원에서 살 수 있도록 한 것. 셋째, 라스콜니코프가 시베리아 수용소에 생활할 것을 예상하고는 소냐에게 3천루불을 지원해서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겠금 한 것등.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서 그런식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늘 과의 양면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하에 쳐해 있는가에 따라 밖으로 표출되는 이미지가 다를뿐이리라. 이 소설이 제대로 바람직하게 마무리짓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현실적으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을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리라. 만약 소냐가 갑자기 고아가 된 3명의 이복동생들을 어쩔 수 없이 돌봐야 할 처지였다면, 과연 착한 소냐가 동생들을 내몰라라 하고는 라스콜니코프의 뒷바라지를 위해 시베리아로 따라갈 수 있었을까? ... 이 소설의 진면목을 제대로 감상하기란 쉽지가 않은 듯 하다. 10대땐 그냥 범죄 탐정소설 정도로 감상한 것 같다. 20대땐 주인공의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세월 흘러... 요즘들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서구 세계의 유일신 종교관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부족인 것 같다. 이 소설속엔 본인이 느끼기엔 좀 쌩뚱맞게 라스콜리코프가 소냐에게 을 읽어 달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의 클라이막스는...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아날 것이고 살아서 믿는이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너는 이것을 아느냐?"... 인 것 같다. 이런 복음서가 소설 배경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듯 하다. 우째꺼나... 이 소설은 앞으로도 그 진면목의 심하이해를 위해서라도 또 다시 읽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바이다.
긴 감상 댓글 감사합니다. 제 경우 을 10년 주기로 반복해 읽곤 했는데 그때마다 느껴졌던 감수성의 격차가 컸습니다. 에서 스비드로가일로프의 역할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서사 전개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미묘하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고 마지막 결론으로 가는 여정의 모든 정리를 감당했던 인물이었죠. 말씀하신 대로 그가 없인 그런 결말로 흐를 수가 없죠. 사실, 죽음을 선택할 인물은 라스콜리니코프일 것 같은데 작가는 그를 살리고 스비드로가일로프를 죽였습니다. 스비드로가일로프가 자살하기까지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머리에 총을 겨누는 게 이상하지 않았죠. 허무랄까? 회환이랄까? 그런 마음이 배경이나 꿈을 통해 스며들듯이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죠. 그는 어쩌면 가장 순정적인 인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긴 장편임에도 군더더기 없는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극의 재미도 더했구요. 얼핏 어두워 보이지만 이 소설은 결론으로 보여주는 지향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밝은 작품인 듯합니다. 종교적인 부분도 충분히 이해되어야할 듯한데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도 충분한 것 같기도 하구요.
덕분에 평생을 벼르던”부활”을 완독(?) 하였습니다. 비록 종이 책의 냄새와 촉감을 즐기며 활자로 읽지 못했지만 낭독자님의 또렷하고 어느 한곳 거슬림 없는 차분한 낭독이 나중에는 그 어려운 러시아인들의 이름 마저도 기억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몇번이나 시도 하였으나 곧 포기 했던 이 명작을 이담에 아이들이 시간 많을때 읽어야지 했던 것은 나이 듦이 어떤 것 인지 모를때의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이 노인의 눈 상태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들을 준비로 만이 설렙니다. 귀에 익숙해진 낭독자님의 목소리로 즐겁게 듣겠습니다. 감독이 커서 안하던 긴 뎃글을 써보았습니다.
안 쓰시는 댓글을 길게 쓰시고 대작을 완독한 기쁨을 전해주시니 낭독자로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벼르고 갈망하지만 좀처럼 완독하기 쉽지 않은 작품을 오디오북으로 독파해나가고 계시니 참으로 좋습니다. 눈으로 읽기보다 귀로 읽는 책이 때로 더욱 집중되기도 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활자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들으시겠군요. 죄와 벌에 못지 않은 벅찬 감동을 안겨주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도프에 흠뻑 빠졌나봐요. 죄와벌 (다시 들어도 예전에 읽었던 줄거리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창가님의 음성을 통해 듣는 또다른 작가의 울림이 있네요. 나폴레옹으로 대변되는 초인적인 사상, 소냐로 대변되는 기독교적인 사상...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러시아 문학에 빠져들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입니다. 까지 3대 소설을 4회씩 완독했습니다. 어제 10회 마지막을 듣는데,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어요. 문장 하나하나마다.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토머스 하디, 헤밍웨이,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묘한 전율. 눈으로 휙휙 읽을 때보다 또박또박 읽어주는 낭독 덕이 아닌가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큰일 났습니다. 다른 작가 글에는 손이 안 가네요. 엉엉...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