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나그네 설움'과 더불어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을 울린 '번지 없는 주막'.
백년설 선생의 노래로 선생님의 곡 중에는 유달리 '나그네'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습니다.
나라를 잃고 헤메이는 우리 민족의 한 맺힌 마음을 '나그네'에 비유한 것이지요.
유난히 더웠던 1940년의 여름, 이 노래의 작사가이신 박영호 선생과 태평레코드사의 직원들은 백두산 등정에 오릅니다.
하필 궂은 날씨에 가파르고 험준한 등산길이 이어지다가 지친 몸을 쉬어가기 위해 이름 모를 주막에 들렀다고 합니다.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로 엉성하게 지어진 집이었지만, 주막 주인은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도토리 술을 한잔 마시며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던 박영호 선생은 노래 가사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고 "번지 없는 주막"의 노랫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박영호 선생은 월북 작가였기에 해방 이후 이 "번지 없는 주막"이 금지곡으로 지정될 뻔 하였으나, 다행히도 "처녀림"이라는 필명으로 노래가 등록되어서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게 됩니다.
현재는 반야월 선생이 개사한 것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실 태평레코드에서 백년설 선생의 앨범을 출시할 때에는 애초에 '산팔자 물팔자'와 '눈물의 백년화'라는 곡이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눈물의 백년화'가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발매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번지 없는 주막'을 황급히 대체 수록해서 재발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작곡가인 이재호 선생은 '조선의 슈베르트'라는 별명으로 가요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귀국선', '나그네 설움', '대지의 항구', '불효자는 웁니다', '물레방아 도는 내력',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는데, 한국 민요가 가진 서정성에 서양음악의 이론을 접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무적인"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번지 없는 주막'은 여러 선배 가수들의 리메이크를 거치면서 3절이었던 노래를 2절과 3절을 섞어서 2절까지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6 окт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