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7일에 방문한 곳입니다. 신혼집에 이 근처였는데 근처에 있는 산성이라 호기심에 갔던 기억이납니다. 입구간판에 김영희 강남 동태찜 간판이 함께 있어 이전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지요^^ 다산 정약용도 이곳은 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와서 호기심이 가득했었습니다. 2020년에 하남문화재단 축제운영팀이 저의 블로그 글에 포스팅도 해줬구요~
백제의 초기수도는 송파가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하남은 백제주민들이 살던 거주지가 되고요. 지금은 재개발들이 한창되고 있는 듯 합니다. 송파와 하남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바랄뿐이네요. 재개발과 유물 유적발견은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일텐데 말이예요. 영상 감사합니다.
와우 오늘은 백제의 기원전 역사까지 거슬러 다녀 왔습니다. 찬란하고 강성했던 백제의 역사가 하남시 주변에 잠들어 있음이 어떤 아쉬움과 허전함을 줍니다. 그래도 여러 곳에 존재하는 유적들을 통해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그려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제 생각엔 끝없이 계속되는 한강범람을 감당못해서 풍납,몽촌에 모여살던 주민들이 춘궁동쪽으로 거주지를 옮긴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제는 수도권이니까 끝없이 치수를 했을텐데 신라나 고구려 입장에서는 단지 최전방에 어느정도 사람만 많은곳이기에 반복되는 범람에 포기하고 뒤로 좀 물려서 이주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가지는 재건되지 못하고 소규모 마을이나 군사유적만 나오는거보면 위에이유던 다른이유던 주민들이 흩어진것은 맞는듯합니다 그리고 춘궁동이 광주고읍이라는 이야기를 들은거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춘궁동쪽 객산과 쥐봉의 토루도 그렇고 이쪽에 먼저 백제세력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선택해서 자릴 잡은 후에 세력이 성장하고 나서 송파구에 도성을 만든것 같습니다. 백제 초기 말갈의 침입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이성산성과 객산과 남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사면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북쪽으로도 한강으로 막혀있어서 세력이 미약한 시절에도 지켜냈던것 같습니다.
저는 고향이 백제 부흥군 마지막 지역(전북)이 고향이고 하남에서 살다가 지금은 근처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제의 처음과 마지막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연구를 위해서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백제를 깊이 알려면 일본도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기록에 의하면 근초고왕이 371년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대승을 거둔 후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다라고 하는데 풍납토성에서 바로 옆에 있는 몽촌토성으로 옮겼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신라 정방형구획을 가끔 언급하시는 것 같은 데 백제인이 일본에 세운 초기 나라현 아스까시를 보면 정방형 구획으로 신라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성산성 안에 각진 돌기단을 보면 8각은 사방팔방 즉 지신 9각은 구천 즉 천신을 나타내는데 이와 똑같은 것이 백제인이 세운 일본 구마모토현 기꾸지성에도 있습니다 이성산과 같은 명칭이 나라현 지역에도 있습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숭산도 고대국어는 받침이 없었기에 스라고 불리다 어느 순간 발음이 손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객산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라고 백제 전문역사가이신 김영덕교수님이 설명하시더군요 제가 직접 가봤는데 해자위치나 삼국사기에 언급 된 백제 수도 위치 즉 동쪽에 높은 산이 있다(검단산)를 볼 때 객산앞이 수도 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산성에 방문해서 성의 방어력을 따져보는게 취미인데, 한달전에 다녀온 산성이 나오니 좋네요. 이왕 산성에 가시는거 '캐슬어택' 처럼 산성의 군사적인 용도로서의 장단점에 대한 해설을 별도로 하시는건 어떠하신가요? 유투브에 그런 컨텐츠는 거의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었습니다. 사적돌님이 올리신 산성들 최대한 답사해보려고 합니다. 정양산성하고 명활성은 다녀왔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정확하지 않은데 보통은 서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기록에 의하면 비류와 온조가 소서노와 도착해서 지역을 둘러보는데 바다가 가까운 지역인 미추홀 지역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기록에 의하면 소서노가 죽었을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때 소서노가 자객들을 이끌고 온조를 죽이려고 위례성에 잠입했다고 했는데 이때 사망한걸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류하고 같이 살았던걸로 보여지는데 기록을 다 합쳐보면 미추홀과 멀지 않았고 산에 올라가면 미추홀이 보였던 지역 이라고 했으니 서울이라고 다들 확신하게 된거지요
@@사적돌 예전에 인천에 살때~ 계양산이 라는곳을 자주 올랐내요. 근처에서는 가장 높다는 군부대가 있던곳이라 그런지 졸졸 시내에 가재도 살았던 그곳에 성벽같은 잔해가 무수 하더군요~ 골프장 짓는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마침 반대 당이 시민운동 해서 무마 했지요... 지 생각으로는 골프장 사업자가 반대당에는 던을 찔러주지 않았나봅니다요...^^ 건강 합시다요. 그래야 ~ 전국을 다보는 호사를 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