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21년 11월 mbc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조대왕님께 입덕한 사람입니다. 여기저기 정조만 들어가면 무조건 클릭하는 병에 걸렸습니다.ㅠㅠ 이미 돌아가신분 덕질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뒤늦게나마 이렇게 훌륭한 분을 왕으로 두었었다는 뿌듯한 마음에 또 다른 영상 찾아 떠납니다
정조가 갑자기 승하한것은 참으로 조선이 침몰의 시발점이었다. 아름답게 꽃피우려던 조선의 르네상스가 침몰 한것 지금이나 옛날이나 어찌 그리 왕을 침몰 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안하무인 신하들은 똑같은고 사색당파.!!! 정조의 뜻을 끝까지 펼칠 수 있었다면 대한의 국운은 달라졌으련만 참으로 아습고 위대한 비운의 정조대왕님 역사로 계속 살아나시네요^^
정조대왕은 한 인간으로나 군주로서 이보다 더 완벽하고 멋있는 사람은 없었을듯 합니다. 머리도 너무 좋아 모든일에 다재다능하지...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그 시대에 갖기힘든 열린마음에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까지 그중에서도 한 여인을 아끼는 그 진중하고 진실한 사랑은 이보다 더 완벽할수 없다고 봅니다. 문무를 겸비 했을뿐만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선한 심성까지 세상에서 존재했던 모든 왕중에 가장 멋지고 훌륭했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왕이 되기까지 아니 왕이 되고 나서도 평생 외롭고 힘든 인생이었던것 같고 죽음마저도 편치 못했던 불운했던 삶이 아니었나 싶어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맘이 드네요.
세종 정조 두분임금 무슨 언급이더필요할까요~ 정조대왕은 정말 노력하고 힘들고 치열하게 준비한 왕이였습니다 성덕임 이라는 여인 하나만 사랑한 임금 전세계사에도 없을 순애보를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지나온 한시대의 역사라고 치우치기예 너무대단한 정치가였습니다 지금정치 하시는 모든분들이 제발 정조 세종 두임금에대해 필독을 하고 국민들앞에 서주시기를 바랍니다~~
@@user-ch8dw9oe7s 아는척하시는 말씀. 글고 세종 인성이 안좋다고 말한적 없습니다. 남들 다 아는 말씀마시고요. 정조때처럼 왕을 죽이러 밤에 왕처소까지 몇번이고 들어가진 않았잖습니까? 세종업적이 한두개에 세종혼자서 그업적 다 이뤘다고 보시나봐요? 몰래몰래라도 죽이려든 사람없고 왕 뜻에따르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업적 이룬거죠. 그만큼 정조때 아니..조선 시대 전체에서 태종의 영향으로 왕권이 강한 시기인건 맞습니다.
저 정조왕께서 키웠던 군무계혁의 훌륭함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고종때의 조선이걲었던 일본의식민지가 되어 그런참혹했던 불행은 겪지 않았을것을.... 권력을 뺏기위해 분명히 정선왕후의 세력들에 의해 돌아가신 정조임금의 억울함에 가슴이아파 눈물이납니다...... 이런 역사를 다시금 소상히 보여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spear0709 힘이 안되니까 밀어주는 척 한 거겠죠. 이미 영조 때부터 무수리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깔보고, 견제하던 놈들인데... 그나마 멘탈 지키려고 하는데, 그들이 사도세자를 빌미로 삼다 보니 아들까지 죽여버리게 된 듯. 영조보다 정조가 대단해 보이는 건, 그런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도 제대로 국가 운영하려고 했고, 인제를 알아보고 성과를 올렸다는 거죠. 정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권력이 외척과 사대부들에게 넘어간 것이 왕조와 백성을 갈라 버리면서, 왕조는 왕조대로 자기 이익챙기는 넘들만 남고, 백성은 못견뎌 봉기하고, 그런 백성들 음해하고... 힘을 모아도 보자랄 판에 주적이 일본인 거라는 공통의 의식을 갖기 못하게 된 이유겠죠. 결국 왕 편도 아니고, 백성편도 아닌, 중간에서 자기들 이익 챙긴 친일파가 제일 나쁜 놈들. 그 와중에 자기 합리화는 또 너무 쩔어서... 지금 일본의 혐한의 근거가 되고 있죠.
@@user-xk7md2tq7x 일제시대때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경희궁은 학교로 왜놈들이 만들었고 해방후에 서울 중 고등학교로 바뀌게 됩니다. 70년대때 서울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아직도 많은 추억이 남아있지요. 운동장이 1,2,3, 이렇게 세개여서 헤메였던 ... 뒷산에서 도시락 먹고 잠 들어서 한시간 수업 땡땡이쳤던 기억 , 장희빈 만나러 뒷산 꼭대기 옹달샘 올라갔던 일 ... ㅎㅎ 이젠 오래전 옛날 얘기랍니다.
노론의 정치인들의 폐륜과 거만과 건방과 못됨이 하늘을 찔렀구나. 유교 예의국가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네 어떻게 왕의 아들 세자 앞에서 고개를 안 숙이고 신발을 건달패거리처럼 끌고 다닐 수 있냐. 기가 막히다 이런 쓰레기 하수도 시궁창 같은 것들이 바로 정치하는 것들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버러지들이다 정치인들이 국가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해서 정치하는거 0% 다.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자기사업일뿐이다
정조는 왕권 수호는 어려웠던것은 맞지만~ 고리타분한 주자학파 수구 친중 唐ㆍ宋 ㆍ明주의에 빠진 고리타분한 주자학파 그것도 출발 태생이 잘못된 주자의 절름발이 신유학에 빠져 허우적댄 서글픈 비극이었지요~ 明나라는 왕수인 장군이 진일보한 陽明철학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조선은 알량한 小中華 사상에 빠져 쇠퇴하기 시작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빌미를 제공한것이지요~ 조선 500년 최고의 姦物 송시어리를 송자(宋子)라고 성인급으로 우상화 시킨? 어찌보면 이해불가한 짓을 했네요~ 그러면서 자기도 聖人이라고 자이도취에 빠진 자뻑이 심했구요~ 무슨 봉창뚜드리는 (萬川明月主人翁) 이라고 자뻑이 심한 자호를요 죽기 2년전 1798년 12월 3 일 코웃음이 나는 단계인듯요 1800년 6 월 28 卒하였는듯요? 태생 1752년 9 월 22일 卒 1800년 6 월 28일 여하튼 조선의 유생놈들은 민생에는 뜻이 없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공허한 혓바닥 빠는 소리만 가득했네요~ 윤휴 같은 선비는 주자학이 뻥카라서 의혹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했었지요~ 송시어리가 사문 난적으로 모함을 하여 사약을 내리는 작업을요 ㅎ 숙종임금이 오죽하면 송시어리 늙은이를 죽였을까요 ㅎ 당시 관례가 老재상에게는 賜藥를 내리지 않는 禁忌를 깨고 80老人을 죽였을까요 ~ 정조 역시 막상 중요한 핵심 혈맥은 모르고? 자뻑이 심했구요~ 유생놈들이 오버슈팅 하는 심리적 관념에 빠진 (君子論)으로 노비와 아랫 사람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보인것과 같은것이지요~ 심리적으로 해탈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자기는 君子라고 착각하는 또라이들이 유생놈들이었지요~ 정조 임금 역시 그런 청맹과니 부류인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