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으로 연주 많이 하는곡이죠? 최대한 섬세하게 연주하려고 노력했어요. 원곡인 조수미씨 노래를 들어보니 목소리가 너무 맑고 예쁘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해금으로 그 느낌을 내보려 했습니다 감상 잘해주세요~ 피아노: • [K-Pop] 나가거든 If I Leav... (피치:-6) 악보:cafe.naver.com/hagmitv 이메일:hagmi@hanmail.net 후원: 352-810677- 76407 하나은행 최진
선생님❤오랜만에 댓글 달아요. 몸이 안 좋아 치료를 계속 받고 있었어요. 그래도 가끔씩 여기 들어와 선생님 연주 들으며 힐링하고 있습니다. 이 곡 악보는 카페에 안 올라와 있던데요. 악보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굳이 일부러 만들진 마시구요. 혹시 작업이 되신거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강의. 좋은 연주 잘보고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최혜진의 그대보세요라는 곡도 연주 한번 해주실수 있으실까요...? 옛날에 황진이 ost인데 해금으로 연주하는 분이 거의 없고 악보도 플랫이 많아서 어렵더라구요 ㅠ 좋은 소리 항상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해금 연주 멋집니다. 해금 하며는 이 맺혔다 라고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 말이 안되게 한이 맻힌 명곡이 있는데 일본영화 의 주제곡 입니다. 해금연주로 들으면 무슨 느낌일지 많이 궁금 합니다. 가능 할까요. 얼후버전 인데요. 해금버전은 어떨지... ... 秋意濃//二胡演奏(清晰版) - RU-vid
민비라는 호칭은 잘못된 호칭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민비는 일제(일본 국내성)가 만든 멸칭임을 밝혔습니다. ‘민비(閔妃)’라고 불린 이유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여주(驪州) 근동면(近東面) 섬낙리(蟾樂里) 사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민치록(閔致祿)이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생부인 민유중(閔維重)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 이름은 자영(玆暎)이었다. 1866년 16세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어 운현궁에서 고종과 가례를 올렸다.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그녀가 죽은 뒤 대한제국 시기에 붙여진 것이다. 황후란 황제의 부인이란 뜻이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 황후가 아니었으니 명성황후란 호칭도 있을 수 없었다. 과거 명성황후 대신 널리 쓰인 호칭으로 민비(閔妃)를 들 수 있다. 민씨(閔氏)의 성을 가진 왕비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비라는 호칭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인현왕후를 비롯하여 민씨 성을 가진 왕비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민비(閔妃)라는 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공식적으로 쓰인 용어가 아닌 셈이다.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명성황후가 생존했을 때의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민비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자료에서는 대부분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궁민씨(中宮閔氏)’처럼 민씨를 뒤에 붙이는 경우는 있지만 민비(閔妃)처럼 성을 앞세우는 경우는 없었다. 민비의 용례가 처음 확인되는 것은 1910년 9월 24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의 기사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돌아가신 민비전하(閔妃殿下)의 육순을 맞아 이왕전하(李王殿下)께서 경효전(景孝殿)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순종 황제가 1910년 병합 이후 이왕(李王)이 되었으므로 민비(閔妃)라는 말은 이 무렵 붙여진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0년 뒤에 민비는 다시 명성황후가 되었다. 1920년 7월 10일자 『매일신보』는 돌아가신 이태왕 전하의 존호를 고종태황제로 올리면서 민비전하의 호칭도 명성황후로 승격시키기로 일본 궁내성이 내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제는 명칭을 민비로 격하하였다가 명성황후로 원위치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로도 격하시킨 명칭만이 그대로 통용되었다. 따라서 민비는 별로 기분 좋은 호칭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