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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깨달은 사람은 많은데, 석가모니만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고, 다른 붓다들은 들어서 깨달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스스로 깨달은 사람의 말을 가장 먼저 들어봐야 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오직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이 아닌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힌두교다. 윤회도 마음이 이랬다 저랬대 하는 것을 윤회라고 표현한 것이고, 당시 윤회라는 힌두어는 육체의 윤회를 의미했다. 석가모니는 깨달은 후 깨달음을 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수행하던 사람들은 그 깨달음을 들으면 바로 깨닫게 될 듯 해, 그 사람들을 찾아간다. 가는 길에서 계속 명상에 들었고, 100여 일을 아무것도 식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길에서 명상에 든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절을 하고 음식 등을 두고 갔다. 같이 수행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처음 설법을 했으며, 그 내용이 사성제와 팔정도다. 그 말을 듣고 모두 깨닫게 된다. 강교수는 인도문화 연구가라,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오직 마음에 대한 것임을 모른다. 왜냐면 힌두교적 관점으로 보기 때문인 듯. 강교수는 초기불교 경전들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괴로움이 있다면, 그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가, 그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사성제다. 괴로움의 원인은 사로잡혀 있는 것, 집착이다. 그 사로잡힘을 벗어나면 괴로움도 없어진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사유하고,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직업을 갖고,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집중을 하면, 사로잡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괴로움의 구조, 사성제와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 팔정도를 아는 게 깨달음이고, 이 들어서 깨달는 것을 통해 삶에서 내 마음에 업을 녹여 없애나가는 게 수행이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깨달음에 대한 지식, 사성제와 팔정도를 내 마음에 적용해, 내 사로잡힘을 없애 나가야 한다. [모든 사로잡힘에서 자유로워 지면, 죽음, 삶 등에 대한 사로잡힘 에서도 자류로워 질 것이다.](이 부분은 내 생각임, 경전에서 못 봄) 팔정도 수행은 계율, 선정, 지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는 지혜, 즉 들어서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고, 그걸 스스로 사유해 내 것으로 만들고, 바른 말과 행동과 직업은 계율, 즉 남을 해치지 않고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가야 하고, 바른 노력과 바른 알아차림과 바른 집중은 선정, 즉 위빠사나 명상을 말한다. 위빠사나 명상은 가만히 앉아 자기 호흡만을 관찰하고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 고요와 선정과 지혜를 얻는 선순환 구조로 가게 된다. 불교 수행 방법은 염불, 절, 위빠사나 명상, 선문답 수행 등 많이 있는 데, 그 방식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선택한다. 자기 성향을 처음에는 모르기에 이것저것을 다 해보기도 한다. 위빠사나 명상 외 수행법들은 석가모니 이후에 생긴 듯 하다.
사실 이 내용은 초기 경전에 다 나와있죠. 다만 전달자인 스님들이 강교수님처럼 현실적이고 똑 떨어지는 느낌으로 설법하지 않으셔서 느낌이 덜 전달될 뿐. 실제 그 종교에 몸 담고있는 종교인과 학자의 화법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경전에서는 다섯 비구가 깨달은 후에 나타난 부처님을 보고 따 시키고 모른 체 하려했으나 깨달은 자만이 풍기는 엄청난 아우라에 절로 숙여지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묘사하죠. 이 강의의 핵심은 '깨닫기 위해 고행하는 행위를 하지말라'라는 자이나교와의 차이점 설명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저도 한 때 육체적 고행이 업보를 털어내는 데 의미가 있지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 건강만 나빠졌었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죄의식, 부채의식같은 부분이 덜어지기는 했었죠. 물론 고행 속에도 어느 정도 깨달음은 있으나 고차원적 깨달음은 아니니 해탈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건 맞는 듯 합니다. ㅎ
경전 속의 어려운 용어와 이론을 설명하는 것 보다 강성용 교수님 처럼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현재 우리가 쓰는 말로 풀어주는게 부처님 말씀이 훨씬 잘 전달되는 거 같아요. 삼프로님들 추임새가 강교수님 이야기와 특히 잘 맞아서 더 재밌습니다. 강성용 교수님 인도이야기도 좋지만 불교이야기도 많이 많이 해주시길...
교수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많은공부하신후 잘정리해 들려주시니 큰 도움됩니다.명상15년째인데 부처님의 깨달음전 고뇌가 느껴지고 사람처럼 느껴져서 저도 위로와 공감받았습니다. 아함경!들어봐야겠네요~^^. 그리고 개인파산~^^ 처음 명상할땐 업과연결되어 마음상태에 따라 상황과 인연이 주어졌는데~마음청산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스스로도 마음을 직시하게 되어 스스로의 청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로써 다른사람과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개인스스로 마음의 업청산이 되는데 이걸 개인파산이라고 표현해주시니 무릎에 손이 탁!! 하지만 개인파산에는 스스로 하는 청산절차가 있습니다. 이작업이 바로 명상이죠~^^ 다음 영상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경전에 부처님께서 깨닫고 같이 고행하던 다섯 수행자 찾아갔을때 다섯 고행 수행자가 멀리서 부처님 오시는거보고 고행을 포기한 인간이라고 우리 저 인간 무시하자고 이야기했는데 부처님이 점점 가까워지자 안보이는 위압감에 일어나서 부처님 앉을자리 펴드리고 그랬다고 해요 ㅎㅎ 그리고 그날 다섯명 중 한명이 부처님 말씀듣고 티없이 맑은 깨끗한 마음으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대승버전이 아니라 초기경전에도 그리나와 저 양반이 재미있게 표현할려고 종교적 신성함을 빼고 지나치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해석할려고 보니 모냥 빠저서 그렇치 막말로 연예인만 봐도 아우라에 빠저 사람들이 환호하는데 인류 대스승 정도의 부처가 그리 싼마이 였겠냐 그 아우라와 형용하기 힘든 포스에 스스로 조복됐겠지
@@박성호-b9u근본불교나 대승이나 꼭같이 다섯비구가 스스로 조복했다고 설명한다 저 학자가 철저히 종교적 신비성을 빼고 심할정도로 축소하고 세속적 안목으로 싼마이 처럼 기름기를 너무 쫙 빼서 그렇치 다섯명의 최초 제자가 처음에는 한부러 굴려다 부처의 종교적 아우라와 포스에 압도당해 겸손해지고 숙연해진 내용이 나온다 막말로 현실사회에서 건달보수만 봐도 그 포스에 사람이 앞도 되는데 최상의 종교적 정점을 경험한 부처의 아우라가 그렇게 싼마이로 평범했겠냐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의 몸과 마음이 연기의 법칙대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 윤회속에 있는 육도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핵심,정곡을 찌르는, 나에 대한 가르침이니 팔안대장경을 문사수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속으로 여행을, 최우선 버킷리스트.. 나무아미타불 불타미아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미타불 ❤❤❤❤❤❤
과거 에 어떤 위대한 인물을 표현할때 과다하게 포장하는것이 하나의 정형화된 시류였던것 같음 그게 그 인물에 대한 최대한의 극찬이라고 생각했나봄 부처가 그만큼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이였다는거겠지 그렇다고 불교의 교주 부처가 자기 권능을 과시하고 않믿으면 지옥간다고 협박한적은 없으니 그냥 후대들이 부처를 찬탄하기 위한 문학적 신화적 표현이라고 이해 해주자고 적어도 기독교 처럼 천당으로 사탕발림 하고 지옥으로 협박은 안하잖아! 지맘에 안든다고 인간을 개미죽이듯 저주해서 죽인다는 공갈협박질은 않하니까 난 불교의 설화적 표현이 굳이 개구라라고 성토하고 싶지는 않구만 다만 그당시 시대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상당히 풍성한 감성의 시대가 아니였나 싶허 적어도 기독교처럼 황당한 설화를 사실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신에 권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강요 협박질은 않하니 비교해 보건데 인도나 북동아시아의 상상력과 설화적 표현이 여유롭고 넉넉하다는 느낌이 들어 막말로 그다지 거부감이 안든다는 이야기야
교수님 영상을 인사이드 시즌1부터 쭉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이분이 하고 싶은 주제를 꺼내기 전에 꼭 그 밑에 깔려있는 서사, 맥락, 개념을 하나씩 공들여서 설명을 하시더라구요. 집을 짓는데 벽돌부터 만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처음엔 그래서 이게 유튜브 제목이랑 뭔 상관이 있지? 하다가도 마지막 부분에서 적재적소에 쓰이는걸 보면서 감탄합니다. 보통 유튜브에서 패널이 나와서 이야기 하는 걸 보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 주고 받으며 화두를 던지고 그 화두에 맞춰 구글 검색 나오듯이 말씀하시는데, 이분은 마치 설계도를 가져와서 이게 도구고 이게 재료다 이게 벽돌이고 이걸 쌓아서 집을 지을거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영상 마지막 3분쯤에는 집이 완성되어 있구요. 그 과정에서 독주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인터뷰이를 유도해서 질문을 받아내는 솜씨도 좋고 이 모든 걸 엮어내는 발성, 톤, 속도, 표정이 아주 능숙합니다. 남이 보기에 쉬워 보이면 고수라고 하는데, 저도 이런 여유를 부릴 만큼 현명해졌으면 좋겠네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