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피는듯 하더니 어언간 져버리고 꽃 진 자리에 파란 잎이 슬픔처럼 비에 젖네 하르르 하르르 빗물에 흐르던 꽃잎들은 내게 주어진 낱낱의 시간 그 꽃잎들. 몇 주째 떠나 와 청춘의 시절을 지낸 그곳에 와 보니 삱천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네 어흐흐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를 듣던 도시에 누워 아 옛날이여를 찾으니 김유하 아기의 목소리가 너무도 맑고 순해서 그때 당면했던 오만가지가 걷어내지고 남은 그리움만의 순수가 아이의 노래처럼 맑게 흐르네 먼 나라는 생사가 걸린 결전을 앞두고 보금자리는 으스러지고 불에 타고 비명에 죽고 생명들은 봄을 가지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네 그들이 마지막으로 소원한 것들이 꽃 피어 이제 영원한 봄이 찾아 오려나 꽃의 신에게 기도한다 객사 침대에 몸을 길게 붙이고 희미한 눈으로 잔글씨를 치는 것도 봄밤의 호사라는 생각 버들잎이 밤바람에 흔들린다 수만 가지를 바람에 내어놓고 흔틀린다 내 생각의 수만가지를 바람에 내어놓고 흔들린다
와우~~~~~~~ 완전 축하드려요 ~~~~~~! ㅎ 저도 엄청 기쁘네요~~^^ 부활절의 기쁨이. 박사님 수상소식으로 더 해집니다~~^^ 더 강건하셔서.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시고. 많은 인재들 양성하시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
베니스 가 본지 10년 됐는데 ㅎㅎ 파이프 올겐 크기의 위엄 봐라 와! 버지널 이름 맘에 든다 ㅎㅎ 역시 소비자의 입장에서 연구해야 돈을 버는 것! 정주영 회장 "해 봤어?" 생각나네요! 대한민국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유일한 인물! 영상 속 도토리 누나 왜 저 모습이 무지하게 섹시해 보이지 나에겐! like unknown number~
박사님 동영상 몇개를 봤는데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 없네요 기를 받아서 나도 심기일전 하면서 더욱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박사님 같은 분을 뭐도 버릴게 없다고 하죠? 이쁜 여성들이 똑똑하기 까지 하니까 내같은 여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요 ㅎㅎㅎ 건강하게 멋진 모습 좋은 동영상 올려 주세요~~~~
항공 사업 / 항공사는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ㅡ여기, 30인승 헬리가 아조 매력적입니다! 헬리는 자체회전익으로 날기때문에 그냥 날개로 나는 항공기와 달리 양력이 엄청납니다..그리하야 태풍속에서도 좌초된 선원들을 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미국 해안경비대가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데ㅡ좌우간 힘이 대단합니다~ 항공기중 제트전투기보다 더 만들기가 어려운것이 헬리입니다.. 소형 여객기는 프랑스가, 헬리콥타는 이탈리아가 강점이 있습니다ㅡ헬리는 일정시간을 날면 제조국으로 보내지고 여기에서 전부 해체되어 다시 조립되는데, 이 기간이 일년 가까이 걸립니다. 헬기 국산화! 정말 요원한 일입니다ㅡ그래서 늘 헬기를 두 대씩 운영하죠ㅡ항공모함과 같습니다. 항공모함도 똑같이 세 척을 만들어야 그 중 한척이 365일 바다에 떠 있게 됩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는게 다가 아니거등요~알아야 면장도 하는 겁니다.. 듣자하니ㅡ이스타나 항공을 양도받은 사업주에게 가막소에서 풀려난 전 소유자 이상직이가 자기에게 지금도 충성하는 옛부하들에게 접근하여 슬슬 조직을 흔들고 있슴다ㅡ여기에 바짝 약이오른 현 사업주가 이상직에게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ㅋㅋ 이상직이, 그냥 징한 놈입니다 ㅋㅋ 해상관광은 위그선이 최적인데ㅡ우리나라 사천에 있는 업체가 세계최초로 상업용 위그선을 개발했습니다..위그선은 바다위 150m 를 나는데 이륙은 호수나 바다에서 합니다. 대당 가격은 이십여억원..위그선은 비행기가 아니라 선박으로 분류되고 있어요~원조 위그선은 러시아에서 개발했는데, 그 실체가 미국 스파이 위성에서 잡혔죠ㅡ흑해에서 바다위로 초대형 괴비행체가 고속으로 날아다닌다는 팩트로 나토가 엄청 쫄았지요..로스께놈들, 역시 불곰이야요 ㅋㅋ 개인적으로, 선갑도를 중심으로 위그선과 헬리콥터로 구성된 해양관광사업을 하고 싶습니다ㅡ사나이는 스케일이 커야 합니다! 노가다로 늙은 나의 마지막 승부처, 선갑도ㅡ 봉황의 큰 뜻으로 살다 가느냐? 땅바닥에 떨어진 낱알에만 관심있는 참새로 살다 가느냐? 이게 화두입니다!
우와! 우리 도토리 박사님 권위 있는 상 수상 하신것 축하드립니다. 저도 덕분에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항상 음악의 모든 것 을 쉽고도 재미있게 강의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많은 분들이 저랑 대화를 하면 예전보다 많이 교양, 음악적 상식 또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그래서 도토리 박사님 의 강의 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알려주었어요. 선생님 강의를 추천 하면 모두들 좋다고 하더군요. 항상 알차고 멋진 강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우와~~~🤩🤩🤩 박사님 축하축하드려요👏🏼👏🏼👏🏼 박사님 너무도 훌륭하신 분이시니 당연히 상 받으셔야해요🥰 저도 스타윈웨이로 연주한 적이 있는데 역시 터치와 소리가 틀리긴하더라구요👍 피아노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다시한번 공부했어요.. 박사님의 강의는 너무도 쉽게 이해되고 너무 재밌어요. 감사드려요. 건강조심하시고 재밌고 유익한 영상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축하드려요. 정말 꼭 받아야하는 선생님을 스타인 웨이에서 알아보았구요. 짝 짝 짝!! 지난주 토요일 막내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위에 딸 둘은 십사년전 다 출가 시켰는데, 막내 늦게 난 아들 결혼 시켜 책임 다 했네요. 10살때 아빠를 여윈 아들, 원하는대로 적극 써보트했네요. 계속 박사님의 강의를 기대합니다.~~
여름이면 분수쑈 / 내가 문경 국군체육부대 분수대를 측량시공해서 아는데ㅡ분수파이프는 일정각도 이상 굽히거나 파이프를 이어써서는 안되죠ㅡ수리수문학상 수두속도가 떨어지니까, 아주 시공에 조심해야하고 한편 첨단시설물이어서 들어가는 값비싼 고압모터의 종류도 아주 많습니다. 보기에는 화려해도 그만큼 유지관리에 엄청나게 신경을 쏟아야죠ㅡ 세계 3대 분수쑈ㅡ막상 가서보면 살떨리는 감동이 찾아옵니다ㅡ 다만 문경에서는 전문으로 분수시공하는 작업반장이 주먹구구로 제멋대로 시공해서ㅡ그 앞에서 화이바를 벗어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온갖 욕을 한 일이 있어요ㅡ나중에 사과를 햇심다~ㅋㅋ 내가 평소에는 온순하다가도 인간 못될때는 영~아니올시다..그나저나ㅡ분수, 정말 설계부터 시공까지..까다로운 시설물입니다ㅡ우리나라에는 전문업체가 몇군데 없어요. 그나마 복잡한 분수대는 해내지도 못합니다ㅡ그만큼 유체공학 시설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년마다 돌아오는 생일을 각별히 챙겨야할 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6.25 세대로 세계에서도 최하위로 가난했던 나라에서 태어나 거칠게 살아왔다. 먹는것도 입는것도 일상적인 대화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은 검정고무신에 책과 공책 몇권을 보자기에 싸서 둘둘말아 허리춤에 차고 잰걸음으로 학교에 등교했다. 정말로 고역인건 학교에서 일년에 한번씩 꼭 기생충 구제를 했는데ㅡ 말이 기생충 구제지 이건 고문에 가까웠다. 우선 학교 소사아저씨가 큰 도라무통을 운동장 한 켠에 놓고 양동이에 우물을 길어와 물을 붓고 장작불을 지펴 물을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시커먼 다시마를 넣는데ㅡ그 냄새가 아주 역했다. 기생충을 구제하기 바로 전 날이면 저녁을 굶어야 했다. 빈속이어야 약발이 잘 들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아이들은 얼골이 누랬고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영양실조로 황달이 든 것인데 이것을 부황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먹을것도 없는데 뱃속에는 촌충 회충 요충이 층층이 자리를 잡고 인간과 더불어 꼬박 꼬박 식사를 챙겨먹었다. 이런 형편이어서 사람들이 길가다 픽픽 쓰러지면서 한 많은 청춘과 이별해야 했다. 그나마 개명한 일본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이렇게 다시마라도 끓여서 기생충 구제를 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장날에 어른들이 미국 스탠다드 셕유를 서너되씩 사와 일부는 등잔불을 켜고 나머지는 잘때 코를 막고 한홉씩 들이켰다. 이렇게 열흘쯤 마시다보면 드디어 기생충들이 뱃속에서 구라파전쟁을 하기시작한다. 우선 다음날이면 거시가 뭉탱이째로 빠지나 항문에 기생하는 요충과 촌충은 굳건히 버티는고로 서너일은 더 셕유를 먹어야 했다. 드디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촌충이란 놈이 빨간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똥통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자그마치 그 기럭지가 농구선수 서장훈이보다 컸다. 그 당시에는 농약이 있을리가 없었다ㅡ벼에 뜨물이 붙어 벼가 자라지못하면 큰 통에 석유와 물을 섞어 논에다 뿌렸다ㅡ이렇게 하면 뜨물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약사들이 농약을 석유에서 추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골 농부들이 엉터리가 아니었다. 궁즉통(窮則通)이라ㅡ궁하면 오히려 극복할 요량이 생기는 법이다. 그 시대는 추수를 한닷치문 동네사람이 총 출동하야 일을 거들었다. 발로 밟는 탈곡기가 왕꿍~왕꿍~요란하게 돌아가고 이어서 볏나락 떨어지는 소리가 인민군 총 따발이마냥 요란했다ㅡ나는 머슴들이 솜씨있게 볏단을 돌려가며 알뜰하게 낱알을 터는 광경을 넋을 놓고 구경하였다. 틈틈이 안에서는 새참을 내어왔는데 구워놓은 갈치토막이 무척이나 굵었다. 요즘은 그런 굵은 갈치가 있을리 만무다. 지금은 보령 재벌이된 보령제약 승호대부님도 종로 5가 보령약국 경호대부님도 소시적에는 이렇게 살았다. 웅천시내 대창약방 영제대부님 아주머니가 웅천에서는 꽤 미인이셨다ㅡ한쪽 다리를 절으셨던 영제대부님은 승호 경호 대부님의 큰 형님이셨다. 소문으로는 전쟁터로 끌려가기 싫어 일부러 다리를 절기시작한 것이 진짜로 습관이되면서 완전히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어른들이 그랬다. 그런데 하루는 꿈에 무당이 나타나 아주머니에게 이르기를, 어려웠던 너희 형제들이 크게 성공한것이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의 염원으로 발복한 것이니, 너희는 속히 무덤을 찾아 치성을 드려야할 것이다! 그리하야 부랴부랴 지관 서너명을 대동하고 성동리 앞에 있는 중재라는 곳을 샅샅이 뒤졌다. 중재는 가난한 웅천면 사람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도시 어디쯤인지도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달여ㅡ 형제분들은 찾다찾다 결국 찾지를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애석한 일이다ㅡ그 당시에는 보령제약 대부님이 없이 살았다. 흉년이 들면 보령제약 증조할머니가 가끔씩 우리집에 들러 큰 바가지에 쌀을 받아갔다. 우리 증조할머니는 키도 크셨고 미인이셨다. 전주이씨로 오라버니가 식산은행장인 두취(頭取)였다. 듣기로는 보령군 측량사이셨던 증조부님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기로 부부간 정은 깊지 못했다. 증조부님도 미국 보스턴대학을 나오고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을 쓴 유길준과 더불어 서양의 측량학과 측량술을 배운 인텔리셨고 건너마을 평리에는 구한말에 정3품 벼슬에 훗날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시고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김광제 증조부와는 사촌간이셨다. 지금도 증조부께서 쓰셨던 백여년전 프랑스제 알리다드가 보관되어 오다가 다른 유물과 함께 대구에 있는 국채보상운동 박물관에 보내져 그곳에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측량사가 호마를 타고 측량을 다녔는데 말타고 칼찬 일본인 순사가 곁을 지켰다. 측량방식이 전통적인 평판측량으로 알리다드를 보아 면적을 도화지에 그렸다. 이것을 도해지적(圖解地籍)이라 한다. 그런즉 오차가 심하다보니 종종 농민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었다. 실제로 이런 도해지적으로 보면 서울 원효로에 있는 집이 한강 한 복판에 있게된다ㅡ자꾸 연필로 긋는 지젹선이 겹치다보면 오차가 누적이 되어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게 된다. 이런 증조할머니였지만 손자사랑, 특히 나를 끔직히 애지중지하셨다. 지금도 생각이 나지만 더운 여름철에 칭얼대며 잠을 자지못하는 나를 위해 옆자리에서 쉬지않고 부채질을 하셨는데 바람이 너모나 미약했다ㅡ아니ㅡ쫌 더 부치라니까! 투쟁을 해보지만 바람은 여전히 미약했다ㅡ그땐 오래 부칠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려서는 이쁘다고 동네 누나들이 나를 업으려고 경쟁하였으므로 동네 푸들로 성가를 높이고 있었다. 누나들이 업다가 내가 잠들면 방에 뉘이고 같이 잠들었다. 덕분에 동네 누나들의 몽실몽실 탱탱한 짖가슴을 마음껏 보듬을 수 있었다. 그런 증조할머니이셨으나 어릴때 기억으로는 늘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옷은 다림질로 각을 세워 단정하셨다. 대청마루에서 일가친척을 맞으며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물으셨는데 동네사람 중 못사는 사람이 찾아오면 외면하고 돌아앉으셨으니 사람차별한다고 구설에 오르기도 하셨다. 아마도 보령제약 대부님 증조할머니도 이런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동구밖 초가집에서 애오라지 할머니를 기다리는 배고픈 손자들을 위해서 체면불구하고 우리집으로 발걸음을 하셨을 것이다. 생전의 어머니로 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측량사인 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휘문고에 보내시고 이어서 평양의전에 보내시어 의사로 만드셨다. 이러한 세상에서 그나마 셕유를 들이키는것 보다야 고약하지만 그려도 다시마 끓인물을 마시는것이 백번 나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역한 냄새와 맛이란 다시는 마시고 싶지가 않았다. 비위가 약한 아이는 헛구역질을 하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선생님 앞에서 괴로와했다. 또 효과도 미미했다. 고생했건만 성과는 보잘것이 없었다. 악몽이된 생일날을 떠올리며~으흐흐ㅡ실없이 웃어보았다ㅡ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ㅡ그러나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지금은 냉장고에 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어쨌던 그 시절은 그랬다ㅡ능히 수박 한 쪼가리라도 먹을일이 생기면 목숨을 걸었으니까~ 나의 조상님은 영민하고 아름다운 정순왕후 할머니 덕분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외척이었다. 조선시대 후기로 들어와 외척들의 발호가 극심했는데, 안동김씨 풍양조씨 여흥민씨가 그랬다. 신라왕족을 떠나서도, 조선시대 세도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추사어른을 위시하야 문벌이 남과 다른 신분이니 먹을것을 앞에 두고도 의연해야 했거늘 이렇게 수박통을 놓고 자발머리가 없어서야 어찌 당대의 신사 명동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박 한통 / 한 여름이 되면 한반은 꼭 생각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수박 한통이다. 왜냐하면 내 생일이 7월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7월과 수박 한통이 무슨 연관이 있나? 아니다ㅡ고것도 아픈 기억이었다. 아츰이 되니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셨다ㅡ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생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는것이 나로서는 지금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환갑이나 칠순잔치라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나이까지 자식낳고 살면서 건강하게 살아왔으니 가족끼리 오손도순 모여 남편이나 아비의 건강을 축수하며 기뻐한다는 것은 인생길에서 큰 축복이요 행복이 아니겠나! 얘야ㅡ네 수박을 부엌물통에 띄워놓았으니 가서 먹으려무나ㅡ와ㅡ그래요? 헐, 헐, 대박이다!ㅡ요즘식으로 표현하면 그렇다..모든게 귀했던 시절, 이 정도면 요즘으로 치문 오만원짜리 고급피자나 케익은 된다. 햐ㅡ이게 웬일인가? 보릿고개에서 수박이라니ㅡ뛰어가면서도 흐뭇하였다. 냅다 부엌으로 달려가본즉 과연 수박이 물통속에 둥둥 떠 있었다ㅡ순간 고무풍선같이 높이 떠있는게 이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수박을 번쩍 안았다.. 앗! 뭐야ㅡ이게? 너모나 가벼워 놀라면서 왜? 그런가ㅡ칼집을 열어보니ㅡ아뿔싸! 빈 수박이었다. 형제 중 병원집 족제비로 이름난 막내짓이거나 아니면 의뭉한 형일수도 있겠다! 으ㅡ아ㅡ앙! 이게 뭐야ㅡ엉엉엉 ㅡ즐거운 생일날 아츰에 부엌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니, 영 꼴이 말이 아니었다~ 좌우간 그날 하루종일 징징거리고 울면서 다녔다ㅡ너모나 형제들이 야속했고 생일날 우아하게 축복을 받으며 당사자가 먹을 생일수박에 미리 손을 대어 숟가락으로 알뜰하게 파먹다니ㅡ분통이 터지고 열불이 나서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ㅡ엉엉 ㅡ훌쩍 ㅡ훌쩍ㅡ눈물이 코로 넘어오면 칵칵 ㅡ퉤퉤 ㅡ콧물을 풀어가며 징징징~저녁까지 울고 다녔다. 이러한 나를 누구도 위로해주기는 커녕 말 한마디 없었다. 국민의 힘 당대표 이준석으로 치면 윤핵관같은 놈들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설움이었다ㅡ 이러한 집념일진대ㅡ나가 눈썹까지 밀고서도 서울대의대를 가지 못한게 오로지 이상할 따름이겠다.
+++ Feel like to be a Peter-pan with Tinker-Bell of you, for flying-over to the Wonder-Land of Musique. Happy to be there in the scent of Angels' Feast for God's Glory for good!!!
우리세대가 이미 황혼녁에 다다른 여행객이지만, 그럼에도 꼭 이것만은 해야지~하는게 잇습니다. 영어는 원어민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중국어 일본어 독어 프랑스어는 몰라도 됩니다. 그리고 한문독해는 가능해야 하는데ㅡ대만신문 정도는 읽어야 합니다. 영어는 CNN을 보거나 영어소설을 읽으면 장히 좋습니다. 발음은 신경쓰지 마시고 오로지 또박또박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면 최상입니다.. 전문지식인이나 학자, 국제적인 기업인이 되려면 반드시 영미권, 캐나다 유학을 추천합니다ㅡ21세기ㅡ영어모르면 끝장나는 겁니다! 가면 갈수록 영어로된 기술과 경제용어도 전문화되어 이제는 알아듣지 못하면 그대로 나락입니다ㅡ 영어와 한문을 모르면 이 시대의 교양인이 될 수 없고 나아가 전문분야를 섭렵할 수도 없습니다. 이걸 잘해낼랴문 무엇보다 기초인 국어실력이 좋아야 합니다ㅡ윤대통령이, 지금껏 해온 국어교육은 쓸모가 없고 시간낭비인 만큼 국어교육을 아예 없애야한다고 강조했는데ㅡ이건 무지한 자의 망발이어요~아주 실망햇습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국어사용을 습관화하면 자국의 역사를 알게되고, 한문을 알게되고, 영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온 웅천중학교 선생들은 고저 월급받으러 학교로 출근한 인생들입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다만 장관도 나오고 충남도지사도 나오고..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김태흠이는 김용환 형님이 충남 도지사로 키워준 인물입니다ㅡ 경주김씨에 공주고 후배이니까 데려다 키우면서 정치적인 눈을 틔웟죠..자기실력? 그건 아닙니다. 어디 그런 실력과 그릇으로 도지사 자리를 넘봅니까? 충남에 그리도 인물이 없겠어요? 나는 어려서 대전에서 커서 어느정도로 인물 메카니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혹시 선생님 강의 중에서 피아노 건반의 형태(흰건반, 검은건반의 배열형태)가 지금처럼 완전히 세팅된 시기나??? 동영상을 방금전에 보고도 이름이 어려워서 까먹었네요. 피아노의 조상격이 되는 악기들에도 사진을 보니, 건반형태가 지금의 피아노와 동일하던데, 더 조상으로 가보면 더 다양한 시도가 있지 않았는지? 지금의 피아노 배열형태로 고정된 이유가 뭔지, 찾아볼 수 있는 자료나 유물이 있을런지요?
안녕하세요. 궁금하신 것은 피아노는 chromatic으로 배열되었습니다. 즉 반음으로 하되, 테트라 즉 한 옥타브는 2개의 테트라로 구성, (테트라코드: 도레: 2개반음 레미: 2개의 반음 , 미파: 1개의 반음) 발전 된 것이죠. 시간내어 그것에 관해 따로 강의 해 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