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면 50세(만 49세) 이실텐데 군 생활 계속 하고 계신다면 대령 달았거나 못 달았을 경우 중령으로 몇 년 더 군 생활하다가 정년 퇴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번외로는 중령 진급을 5차까지 기회가 있는데 보통 3차까지 안되면 진급을 못한다는게 정설이고 19년 채우고 연금수령 대상자로서 소령으로 전역하셨을꺼라 생각됩니다.
와 부대는 달랐지만 저도 00년 11월 군번으로 3사단에서 군생활 했던 사람입니다. 왜 이걸보는데 눈물이 아른아른할까요? 정말 힘들고 빡샜던 군생활이었는데요 복잡미묘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네요. 신교대 중대장님이 정말 독사같은 분이셨는데 나중에는 정이들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납니다. 간부건 병사건 국방위의무를 다하신분들 모두 존경하고 고생많으셨습니다. 지금도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계신 현역분들 다들 화이팅입니다!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저 때 저 장소에 있었던 2중대 소속 조교입니다. 일병 짬찌라서 낮에는 훈련병 통솔에 밤에는 연구강의(교육연습)에 또 근무는 근무대로, 잠 못자고 만성피로에 개고생 하던 시기였는데... 신교대 아주 개빡신 곳이죠... 인원도 적어서 해야 할일이 많고, 교육은 교육대로 해야하고. 신교대 일병은 슈퍼맨이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음. 와 이걸 볼줄은 꿈에도 몰랐건만, 잠시나마 추억에 젖게 해줘서 감사하네요. 김현숙 소대장님 참 대단히 열심히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군 전역자들은 아시다시피 기간병들하고 장교(소위~중위)들은 알게 모르게 기싸움이 좀 있죠. 특히나 그 당시 신교대 조교들은 내가 실무를 훨씬 잘 안다! 그런 마인드가 유독 심한 편이라, 초급장교들을 보는 시각이 아무튼 좀 그랬습니다ㅋ 그런데 그건 저분이 부족한게 아니라, 어딜가나 당시의 군 분위기가 다들 그랬던거구요. 지금쯤은 이미 전역하시고 잘 살고 계시겠죠.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데 참 그립습니다. 일직으로 김현숙 소대장 따라다니는 최동O 병장, 행정병 밀가루 재O이, 아버지 군번 나동O병장, 행보관님까지 화면에 보이네요... 심지어 저 2번째 악수하는 훈련병 얼굴도 기억남... 소선이었던가 아무튼 말 잘듣고 빠릿빠릿한 친구였음. 여기가 1사단 신교대라, 육군 첫번째 사단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방송 촬영이 불가피하게 자주 옵니다. (사병들은 스트레스죠...) 2002년에는 그 유명한 스티붕유 군대 도피 사건으로 인해, 장애인 아시안게임 투포환 금메달리스트인 분이 본인은 장애인이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고 국방부에 투서를 하셨는데요. 그리하여 병영체험을 오시게 된게 또 1사단 신교대, 그것도 제가 있던 2중대였습니다........ 제가 그때 말년이었는데, 얼마전 새로 오신 육사 출신 FM 중대장님 덕분에 말년에 열외는 커녕... 선임이라고 전역 한 달도 안남은 시기에 완전 제대로 각잡고 그 분 전담 조교를 맡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도망친 유승준이랑 말년에 고생시키는 방송국 놈들과 중대장이 너무 야속했는데, 지나고나니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스티붕유는 열외...) 그래도 그 살발한 중대장님에게 실드 쳐주면서까지 마지막 숙영은 빼주신, 아버지같은 행보관님은 그 당시 참 감사했습니다. 최동O 병장은 훨씬 고참이었는데, 나이가 동갑이라 같이 맨날 볼차고 잘해줬었는데 행복하게 잘 사는지... 우연이라도 이걸 본다면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연락하고 꼭 한 번 만나고 싶네요ㅠ
이현숙 중위라는분 멋있으시네~ㅎㅎ 나는 공군이라 훈련소에서만 훈련받았는데 ㅋ 09군번 25개월 복무했는데 ㅋㅋ 휴가+내 공부하고 싶어서 육군보다 복무 3개월 더 하는 공군간거였지만ㅋㅋ 훈련병때가 제일 좋았지~ㅋ 공군은 병장때부터시작이라 ㅋㅋ 병장만 7개월...ㄷㄷ 암튼 군대 추억이지~^^
화생방 하던 날 ..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제 다 뛰어 나가는데 전우 한명이 넘어졌지요 .. 근데 아무도 일으키는 사람 없이 (저포함.. ) 그 전우를 밟고 나가는바람에 화생방에 몇번을 들어갔다 나왔다가 .. 얼차려를 화생방 안에서 받았었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년도 .. 그립네요~
훈련병시절에는 기에 짓눌려있어서 행동이 내 마음대로 안됨. 훈련병때뿐만 아니라 자대가서도 마찬가지였죠. 간부, 고참, 훈육분대장의 기에 눌려서 긴장되니까 몸이 따라주질 않았고 너무 힘들었었네요. 근데 그것도 전부 추억이 되었네요. 그 힘들었던 군생활이 사회에 나가서는 어떤 힘든일이 있어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게 되더군요. 그렇게 버티고 열심히 일하니까 직장상사들도 인정해주고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전진! 97군번인데 신교대모습 보니 그때 끔찍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전진교 안에 민통선 근무하다가 GOP근무하다가 전역했는데 전역 몇일 후 밀레니엄을 맞이했죠. 11연대 3대대 12중대 2소대 팔하나 박격포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지금 군 복무중인 청년들 모두 몸 건강하게 전역하시길 바래요.
와...전진! 10년4월 20일입대하여.. 11연대 2대대소속으로 군복무했습니다.. 전..부모님이 안계시지만 키워주신 큰부모님의 은혜를 갚기위해 신체검사 당시 친부를 큰부모님을 친 , 부 로했고.. 정신과 당시 우울증 조울증 등 안좋게 나왔지만 가겠다고해서 1급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306보충대대에서 1사단 신병교육대로 받고, 백호(3중대)를 나왔으며.. 그 유서 깊은 베티소대중 하나인 6중대2소대를 받았습니다.. 다른중대에는 동기들이 2명씩 갔지만... 전 6중대 혼자였습니다... 군대라는곳도 참 힘들었지요... 대구에서 새벽같이 출발하여 면회와주신 절 키워주신 큰부모님..(큰아버지는 돌아가셨구요..) 서울 첫째큰아버지도 와주시고.. 그러던중 11년 어느날 ㅇㅊㅅ중대장님께서 검정고시 해 볼생각없냐고하셔서,. 그날부터 퐁당퐁당 당직하며 근무,당직 반복한결과...11년4월에는 영어만 과목합격하엿지요.. 이듬해 8월2차에서는 중대계원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전문하사로 직군을 1년간 하였고.. 전 군대 정말 잘 간것이고 아직도 군선임이나 직군시절 대대장님 중대장님 소대장님 선배들 후배병사들과 sns통하여 아니면 만나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전진!!
1987년 4월 대구 50사단 신교대 입소 . 그해 6월 범국민 민주화 투쟁 . 86아시안 게임 . 88 올림픽 . 해방이후 최악의 전국단위의 노사분규까지 6 25 사변이후 가장 빡셌던 군번 . 88군번이후로는 어디가서 군생활 했다고 말하지마랏 . 우리땐 진짜 피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군생활 이었음 ㅡ,ㅡ 이노무쉑키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