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있는 구름이 점점점 땅으로 내려 오고 있다. 핑크색 하늘을 보고 있다 - 예슈아커밍 / Yeshua Coming - 당신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1. 전세계 하늘의 구름들이 점점점 땅으로 내려 오고 있다. 2. 날마다 슈퍼문, 슈퍼해를 보고 있다. 3. 핑크색 하늘을 보고 있다. 4. 켐트레일(Chemtrail)을 아주 미친듯이 뿌리고 있다. 5. 달이 빙글 빙글 회전을 하고 있다. 니비루(Nibiru)가 오고 있습니다. 구름은 나무 높이 까지 올 것입니다. 핑크색 하늘은 부분적으로 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전세계의 하늘에 아주 짙은 핑크색으로 덮힌다고 합니다. 그 때, 지구의 북극과 남극의 축이 바뀔 것입니다. 이 지구는 완전히 뒤틀어지고 찌글어집니다. 예슈아께서 오시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날은 이제 카운트다운이 되었습니다. 그날과 그 시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주 점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세요. 예슈아께서 아주 곧 오십니다. 오직 예슈아!
@@고라니-c6p ▶9개 관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다 비슷했습니까. “그럼요.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인데.” ▶관마다 특징이 있지 않았나요. “굳이 말하자면, 청도관이 옆차기로 유명했고, 무덕관은 앞차기를 잘했다는 정도죠.” ▶가라테 기술과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까. “가라테를 가르친 거니까. 당수니 공수니 다 같은 거예요.” ▶발차기에서 차이가 없었나요.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이 가라테보다 더 발전했지. 일본은 전통을 따지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 것 거의 그대로 가르쳐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의식이 없어 뒤돌려차기니 뭐니 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냈어요. 그게 뒷날 다 복이 된 거요.” ▶당시엔 뒤돌려차기가 없었습니까. “그랬지. 나도 그때 뒤돌려차기는 못 배웠어요. 기본 동작만 배웠지. 지금은 뛰어앞차기 등 기술이 얼마나 화려해요. 가라테보다 훨씬 앞서 있지. 상대가 안 되죠. 쿵푸도 그렇고. 그러니 올림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대중이 좋아하니까.” ▶태권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시초는 가라테이지만, 이후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것’이라고. “다른 도장은 몰라도 청도관만큼은 분명해요. 품세도 가라테의 평안이니 철기니 하는 것을 그대로 배웠으니. 태극형도 마찬가지고요. 거짓말하면 안 되지.” 출처: 75세에 송판 깨는 美 태권도 황제 이준구.
@@고라니-c6p ―부원장께서 무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입니까. “해방 직후죠. 사춘기의 꿈이라고 할까. 17세 무렵 막연하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공동에 가면 18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죠. 그곳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유도 도장이었는데, 그때는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운 거죠. 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거든요. 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 ―당시 가라테는 당수(唐手)로 불렸죠. “당수(唐手)로 쓰는 사람도 있고 공수(空手)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죠. 당수나 공수를 일본말로 옮기면 가라테가 되거든. 모두 같은 내용인데 도장별로 특색 있게 보이기 위해 권법이다 당수도다 공수도다 그렇게 불렀어요.” ―태권도 이전에는 태수도(跆手道)로 불렸습니다. 태수도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까. ... “내가 한남동 외무부장관 공관 위에 살 때 최홍희 집은 그 건너 이슬람교회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죠. 5·16이 나고 얼마 안됐는데, 최홍희가 태권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태권이 뭐냐? 가라테의 변형인데’라고 대꾸했어요. 그러다가 가라테(당수·공수)하고 태권도를 합해서 태수도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끼리 펴면 수(手)고 쥐면 권(拳)이니까, 쥔 거나 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했어요. 그때 최홍희가 6군단장이었는데 권총을 차고 막 출근하려다 말고 나하고 얘기한 기억이 나요.” ... ―많은 태권도 교본들이 태권도의 뿌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좀 무리가 따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책을 쓴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내세울 게 없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태권도를 해외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명분도 서고 잘 먹혀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유사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겁니다. 역사적 원류로 본다면 중국 것이 일본으로 들어갔고 일본 것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죠. 일본 사람들이 중국 무술을 많이 개량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가지 문제가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유연성보다 근육성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이 굳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이걸 가지고 스포츠로 경기화하기 위해서 겨루기를 시킨 겁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겨루기를 안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놔두었고, 중국에서는 손 맞춰서 하는 유연한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태권도는 중간 입장에서 어느 쪽도 아니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지좌지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거죠. 그런데 우리는 겨루기를 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역으로 우리 걸 배우게 된 겁니다. 자기들 무술은 보급이 잘 안되는 데다 젊은 아이들이 자기와의 싸움보다 치고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광복이 되고 도장을 연 사람들은 모두 가라테를 했나요. “기본기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막는다 저렇게 때린다 하는 건 모두 가라테와 똑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전통무예와의 유사성은 없다는 얘기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사실상 유사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택견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됐어요. 태권도 하던 사람들이 택견을 배우니까 발차기가 태권도 스타일로 나오는 거죠.” ―광복 이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친 무술은 가라테 뿐입니까. 다른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나요. “그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나도 별의별 것을 다 끌어들여서 책을 쓴 사람이지만, 이제는 밝힐 때가 됐어요. 가라테를 가르치는 관장들이 모여서 태권도의 형틀을 만들었고, 그 실무작업을 제가 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세계 정상에 있으니까 밝혀도 큰 문제가 없어요.” 출처: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
@@고라니-c6p 태권도의 유래-유학생들 소개 日가라테가 모태 태권도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1954년 12월이라고 한다. .그 이 전에는 공수도(空手道·가라테), 당수도(唐手道)라고 불렸다. 물론 무술명칭과 무술이 동시에 생긴 것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태권도는 해방이후 일본 유학생들이 한국에 소개한 가라테 를 모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가라테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원래 어떠한 무술이 든 혼자 익히기를 한 후에는 서로 겨뤄가며 기술적인 보완을 하 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무술은 본질적으로 대인격투 기술이기 때 문이다. 그런데 가라테는 국내로 들어온 후 품세 동작 면에서는 비슷하게 재현되었지만 겨루기에서는 원래 가라테 식의 손기술 중심의 겨 루기보다는 오히려 발차기 중심의 겨루기로 변질되게 되었다. 이처럼 가라테가 국내에 들어와서 변하게 된 이유는 뭘까. 아마 추측컨대 겨루기 위주의 수련법이 크게 유행했고, 화려한 발기술 가격에 따른 포인트가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손기술은 살수가 아닌 유효타를 만들어내기란 매우 힘들다. 따라서 태권 도가 스포츠화되면 될수록 손기술은 퇴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자유로운 시도자의 손을 들어줬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에서 현란한 발기술이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만약 당시 유학 파들이 일본서 배워온 가라테에 만족해 그대로 답습하는 데만 열 중했다면 지금의 태권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복규 동양무예연구소 선임연구원·서울대 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