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함께 매장하는 장례풍습인 순장에 관한 의문을 풀어본다. 순장묘로 밝혀진 임당고분, 황남대총 등에서 발견된 유골과 부장품 분석을 통해 순장의 과정과 의미를 추리해보고 3세기에서 6세기 유행했던 순장이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인지 알아본다. 역사스페셜 61회-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2000.3.18.방송) history.kbs.co.kr/
생매장은 아니고요! 독을 먹이거나 처형을 해서 같이 묻었던 것이죠!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면 그런데요! 당시의 기준으로 당시를 살았던 아랫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시하고 받아들였을 겁니다. 주인이 죽어서 저 세상에서 살려면 이승과 마찬가지로 그 주인을 떠받들면서 시중을 들어줄 아랫사람들이 필요했다고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잘못되었던\ 잘 되었던 역사 등 우리가 반성하고 앞으로 고쳐 나가야 돼 마음이겠죠. 좋은 곳은 받아 들이고 나쁜 것은 받지 않으면 되죠. 한 사람을 위해서 30 몇 명의 순장자가 있었다는 것은 놀랄일이구요. 권력에 힘이겠죠. 그 사람들은 많이 억울했을 겁니다. 산 생명은 죽음이 가장 무섭다고들 하는데 남은 가족분들은 또 얼마나 참담 했을까요. 잠시나마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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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임, 그런데 모습만 바뀌었지 지금도 돈이 과거 골품제 또는 신분제도와 다를게 없어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그럼 사람들을 칭하여 존귀하다는 표현도 소수에나 해당되기에 아무나 갖다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적 단어에 불과할 것임, 요는 이렇기에 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고 온고지신할 인재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임,
@@user-qy6nw1cy7m 명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안다만 신라 나부랭이든 고구려 나부랭이든 떠나서 그 위 고조선 시대에는 8조법 정도이면 충분했었었고 그 위에는 법 따위도 필요없었든 사회가 존속했을 것이다,곧 때에 따라 사람들 탐진치도 바뀌었을 것이고 삼라만상 또한 만물유전함이 근본,
과거 아닙니다. 불과 130년 전만 해도 치마의 길이만 보면 양반인지 상민인지 천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천민은 천민끼리 모여 살게 했습니다. 향소부곡이라 하는데 인도식으로 말하면 불가촉천민이죠.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이자 인류 최악의 노예 국가였습니다. 우리는 노예 하면 서부 영화에서 상반신을 벌거벗은 청년노예를 경매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건 조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메리카 노예는 사온 것이고 일정 기간 지나면 자유시민으로 풀어주었으며 미국 흑인 노예가 미국 백인 여자보다 참정권을 먼저 얻었습니다. 미국 백인 여자 참정권 얻은지 몇 년 안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는 전쟁포로나 사와서 노예로 삼았는데 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멋도 모르고 노비라고 하는데 그 노비가 일종의 종이자 노몌입니다. 남자 노예 노, 여자 노예 비이죠. 조선시대 때 양반재산목록 제1순위는 집이나 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노비문서였습니다. 노비는 재산으로 상속 되었으며 사고 팔고 노비의 자식 또한 노비로 신분이 대물림 되었습니다. 이 노비들이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합세해서 관군과 싸웠습니다. 그래서 왜군이 그렇게 빨리 한양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거죠. 보다 못한 선조가 군자금을 대거나 나가 싸워 공을 세우면 면천해준다고 하니까 들고 일어난 것이 의병입니다. 선조에게 속은 것이죠. 그때 망했으면 노비해방될 수 있었는데 300년이나 더 가서 드디어 일본에 의해 노비가 해방이 됩니다. 저는 인족해방 운운하는데 조선반도에 있어서 진정한 인류적 민족해방은 1894년에 시행된 갑오경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에 드디어 노예가 해방되어 개인마다 성과 이름을 가지게 되었죠. 노예들이 해방되면서 대부분 유명한 권문세족의 성씨인 김이박을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김이박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족보 보면 조상들 전부 양반 아니면 왕족이죠. 족보는 다 가짜입니다. 조선은 1894년까지 성도 이름도 없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노예가 해방됭과 동시에 과부의 재가가 허용됩니다. 그 전에는 남편이 일찍 죽으면 수절하며 청상과부로 살아야 했습니다. 최악의 폭군이자 암군은 고종이었으며 나라를 팔아넘기며 자신은 일본왕족으로 편입되어 그 자식은 호의호식하고 모든 죄를 이완용에게 뒤집어 씌웠죠. 이완용은 왕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바친 충절지공입니다. 당시의 사관으로 보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고종은 수사권 기소권 사법권을 다가진 절대 권력자로서 당시 영의정을 모함해 백성들에게 돌맞아죽게 하고 장사도 못 지내게 했죠. 제 기억에 중추원 김홍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완용이!조약에 반대하자 고종뫙이 너희는 살지만 그러면 나는 죽는다고 대노했지요,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고 한국외대전신을 세우고 국민학교를 세우고 한글을 알리고 백성을 깨우쳐 독립을 하고자 했던 선각자이지 매국노가 아닙니다. 매국노는 고종입니다. 나라가 망하자 일부는 기득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본에 협조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친일파라 부릅니다. 또 일부는 기득권을 빼앗겨 더 이상 양반노릇 못하고 동족을 노예로 부리며 호의호식 못하게 되었죠. 일본만 아니면 동족을 노몌로 부리며 (일례로 안중근도 만석군이었답니다. 그 농사 누가 지었을까요?) 사냥하고 시 읊고 글읊고 기생질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했을까요? 그래서 만주로 가서 총을 들었지요. 우리는 이들을 독립군이라 부릅니다. 독립군이 원하는 기득권이 유지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요, 이게 역사의 진실입니다.
순장풍습은 유목민족의 것으로 보인다ㆍ고로 신라 가야등의 지배계급은 북방족이다ㆍ풍수적으로 유물적으로 계급용어와 행정직제등으로 많은 증거가 있다ㆍ중국역사 영화인 대청풍운을 보면 청태종이 임종시에 자기의 장비를 순장하려 할때 사랑하던 도르곤이 빼내는 장면이 감명깊게 그려져있다ㆍ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8mrVDitWuZM.html 낙랑국은 우리나라 현재 영토에 집어넣어 우리역사를 축소하려는 세력(일제식민지사관)에 의해 왜곡이 되어있습니다. 일단 위치부터 잘못 설정되어서 결국 우리를 주변국에 넘겨주려는 의도로 신화까지 만들어 퍼뜨렸죠.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요하에서 각종 유물이 발견되는데(KBS 요하문명) 그 중 용이나 누에도 출토됩니다. 상상의 동물 용도 비단도 우리시조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죠. 실크 sil-kkury란 영어도 실쿠리란 고구려 어원, 실을 잦는 기계 이름에서 왔구요. (영남대 섬유공학부 조환교수) 고구려 벽화만 봐도 비단옷을 입은 선조들이 즐비하죠. 실크로드도 신라에서 시작해 북방민족에 의해 페르시아까지 이어지는 장정입니다. 오늘날 주류가 된 중국한족은 그 역할이 아무 미미하죠. 낙랑은 고조선의 제후국이었고 현재의 우리영토가 아닌 고조선 우리영토인 대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y4ElH9bmd7M.html
가야는 다른 삼국과 달리, 농경이 주 산업이 아니어서, 노동력에 대한 중요도가 덜했나 ?? 농경이 주 산업이었으면, 저렇게 묘지마다 생사람을 갈아넣지 못했을텐데,,,, 당시로는 하이테크 산업인 철기산업이 주요 먹거리라서 대규모 순장이 가능했을듯.... 그외, 가야 분묘형태가 목곽에서 적석으로 바뀐걸로 봐서, 가야 역사 중간에 지배층이 한번 바뀌었다는 건데,,, 그런 걸로 보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인종적 괴리가 많았을 것으로 보임.... 다른 인종이니,, 저렇게 천시했을 수도 있음...
인권?을 중시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가 발전했습니다. 이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온갖 사악한 물질로 사람을 죽이고 영원히 사람들의 머리를 짓밟으며 지배하려는 시대가 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원한이 모이면 어느날 대륙을 뒤집어 엎는 쓰나미가 되어 그 사악한 자들의 종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