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처선 비록 내시 신분이지만 나라를 위한 충심은 500년이 지난 지금 그를 높이 본받을 가치가 있다. 충신들이 못하는 바른 말을 목숨을 걸고 이야기 했다. 이는 나라가 연산군의 농락에 기우는 것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김처선의 생가를 복원하여 그의 위령비를 세워 윈한을 풀어주자.^^
조선에 대해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 중 하나가... 팔다리가 잘리면서도 통렬한 직언을 하며 죽어간 충신 중 충신을 중종반정 직후 그 신원을 회복시켜주지 않고 무려 200년되서야 복권시켜준 것은 아주 비상식적인 작태라 생각한다 이 프로의 마지막 사운드는 이러한 인물들을 추모하는 음악같아서 참 좋다
일레네카슈미르 저때 김처선이 연산군과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김처선이 진정하라고 했는데 그때 연산군이 화가나서 왜 니가 내 어머니를 비방하나며 욕했는데 그때 김처선이 연산군에게 정신 차리라고 직언을 했고 이에 빡친 김처선의 팔다리를 잘랐는데 오히려 김처선은 끝까지 직언을 올림. 그러나 일부에선 김처선이 충심으로 직언을 올린게 아니라 술에 취해 그런거라고 여겨 200년 동안 방치함.
@@luminary3 그러고 보면 정조는 대단한거 같습니다. 솔직히 연산군은 자기 어미 죽은걸 보지도 못했지만 정조는 자기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걸 유년기에 보았는데 그런 트라우마 장난 아닐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극복하고 나름 나라를 이끈걸 보면 말이죠. 보통의 정신력으로 불가능할거 같은데 말이죠. 연산군은 그냥 자기 귀는 닫고 자기입만 열고 흥청망청이라는 불명예스런 언어를 남겼고.... 정조는 자기귀를 열고 배울려고하는 하는데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온걸까요. 폭군과 현군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하는데.. 연산군과 정조의 운명을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점이 참 궁금해지네요.
요즘에는 그냥 자리 날라가는거 정도 각오하면 되지만, 저 당시는 뻔히 보이는 잔인한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인데, 대의를 위해 아무도 할수 없는 그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역사에 남을 진정한 충신이라 할수 있네요 만약 연산군이 그 충언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연산군과 김처선 모두에게 정말 아름다운 역사로 남을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당시 김처선은 연산군과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김처선이 진정하라고 했는데 그때 연산군이 화가나서 왜 니가 내 어머니를 비방하나며 욕했는데 그때 김처선이 연산군에게 정신 차리라고 직언을 했고 이에 빡친 김처선의 팔다리를 잘랐는데 오히려 김처선은 끝까지 직언을 올림. 그리고 연산군은 활로 김처선의 숨통을 끊고 그의 이름을 못 사용하게 만듬. 그러나 중종반정 공신들과 사대부 측에선 김처선이 충심으로 직언을 올린게 아니라 술에 취해 그런거라고 여겨 200년 동안 방치함.
사람은 변하기 참으로 어렵다 충언으로 바뀔 왕이었으면 진작에 본인이 깨닫고 바뀌었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충고는 하지 말아야 할 듯... 아무리 진정된 충고도 상대방 가슴 한 켠에 두고두고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는것. 충고나 조언은 하지말자 사실 그 사람의 인생이므로 관여하지 않는 게 지혜로울 듯...
@@Jarod-f1t 먼 핑게야 당연히 어머니가 비참하게 죽엇는댕 님같으면 어머니가 비참하게 죽은걸알고도 그냥 허허허하고 웃고 말겟소?당연 미쳐버리는거지 사람 미치는건 한순간이야 김처선이 그 피묻은 저고리만 안보여줫어도 역사는 바뀌엇다 10년동안 잘햇는대 어머니 피묻은 저고리를 보는순간 모든 감정이 격해진거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왕들에 대해 안좋게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많죠.. 신하들의 권력다툼에 왕들이 독살 당하거나 희생당한 것이니......권력을 잡은 사람은 상대방을 안좋게 기록하는 것이죠..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평균 수명이 34세 정도 였고.. 중국에서도 니네 왕들은 왜 이렇게 빨리 죽느냐? 라고 할 정도 였음. 오늘날에도 권력 다툼에 왕, 또는 왕이 될만한 자들을 죽이거나 감옥을 보내고 있죠... 언제쯤 이런 일이 끝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