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방법과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방법이 다르듯 인간 역시 개인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개인은 학습을 통해 상황에 맞는 방법을 채택해야한다." 혼자 잡생각하면서 생각하던 내용인데 너진똑님 덕분에 하나 건지고 가네요. 항상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7
통칭 꼰대라고 불리는 자들은 위에서 말한것과같이 방법의 다름을 하나로 획일화와 단정하고 그것을 진리로써 말하며 명령과 강요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것은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라며 주장하고 강요하고 명령하는것 또한 마찬가지로 보인다는것입니다 결국 말할수 없는것에대해 침묵하며 제 삶을 제 생각을 하며 관찰할 뿐이되겠지요
@@sageonn 그런사고방식이 보고싶은대로 본다의 예시로 적절할듯싶습니다 삶의 방식도 다르듯 행위를 해석하는 해석의 다름또한 인지한다면 저렇게도 말을하는구나 할듯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닌 그러고 있어보인다라고 말을 하는것입니다 특정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하는 자를 보고 의도를 모르는자들이 그것은 의도가아니라 그냥 선한것이다 그것을 의도가 있다라고 하면 그것이 문제인것이다 라고 하신다면 이얼마나 재밌는상황이 올수가있겟습니까 상황적 예시로 환심을 사기위해 그대를 도와주는 척 했을 때 그대는 저를 착한사람으로써 보시지 않겟습니까?여기서 그대의 질의 형태는 나보고 다른의도가 있지않을까 라며 말하는 자에게 그걸 그리 보는게 문제가 아닐까 라고 묻는것처럼 보입니다 끝으로 당신의 질의에 대한 제 답은 당당히 모른다 입니다
@@김치나베-f8r 저는 해결책을 주는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답또한 주는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한다고 말을 하는것이 세상을 그리 바라 보시는 그대들또한 그대들의 관점이라는것을 말하는것 뿐입니다 저는 어떤것을 해야한다 말아야한다가 아닙니다 예컨데 길을가다 힘들어보이는 사람을 보며 돕고싶다는것이 이치라면 그냥 제갈길 가는것 또한 이치일것이라는 이야길껍니다 즉 고마워한다고 정상이라면 고마워 하지 않는것도 정상일꺼란 겁니다 헌대 그것은 비정상이다 라고 하신다면 이말을 한 당사자는 돕는 그 행위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고마움을 받기위해 그런행위를 하시진 않는지 한번 생각해보셧으면 합니다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책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모든 행위의 이유가 저는 본인이 주가 되어야한다고 믿습니다 만일 제가 어떤사람을 돕는것처럼 보이거든 그것은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일이니 저는 그것에대해 고마워하거나 고맙지않은것에는 관심이 없을껍니다
@@김치나베-f8r 글을 시작하기 앞서 당신의 주관적 견해에 대해 존중합니다 또 당신의 모든 질의에 대한 제답을 하나로 일축하고 해볼까합니다 그것은 모릅니다 입니다 첫째 연쇄살인마를 예로 들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것에대해 저는 모른다고 답을 할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살인마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참으며 사는것이 비정상이라고 본다면 그것에대해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겟습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보편적인 정상적인 이런 어휘를 앞에두고 말을 하셧는데 이런 보편자에대한 대한 내용은 철학에서도 많은 논쟁과 하나의 답이 보이지 않는 그저 시대마다 그집단의 성향마다 상황마다 환경나다 등등등 다르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즉 당신이 만일 인육을 먹고 인신공양을 하는 아즈텍문명에서 태어낫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집단에서는 인육을 먹고 사람을 제물로바쳐 공양하는것이 정상이고 전통이자 그들의 룰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당신은 또 그럴겁니다 보편에 맞게 상식에맞게 그리행동하는것은 보편타당할것이라고 말이지요 지금당신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상식이라는 말로 보편이라는 말로 그 문장을 필두로 뒤에서 논리로써 이용하며 정당화를 주장하는것은 저는 자아가 거세된채 군중심리를 따르는 존재라고 아마도 볼것이지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어떤 행위를 하는데 있어 이유가 제가 논리의 근간이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것이 옳다 그르다는것을 의미하는바가 아닙니다 무엇이 보편적이고 무엇이 맞냐에 대한 문제는 누구에게 채점받아야 옳고그름이 나는것인지 그대에 대답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만일 제가 보았던 수많은 대답중 하나인 절대다수를 논하겠다면 하지 않아도 구태여 손가락아플일 없으셔도 될것같습니다 그 또한 존중하겠습니다 저 역시 그에대한 틀릴수없는 답을 찾아 보려고 햇고 그결과 지금과같은 즐거운 답을 정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답변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것이 철학입니다. 고민이 있으면 자기랑 비슷한 성향의 인문학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오랜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기에 시간이 흐른후 자신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확률이 높습니다. 읽기 어려운 책은 옆으로 치워두고 읽기 쉬운 책을 보면됩니다. 어려운 책이 좋은게 아니라 읽는 사람 도움이되는 책이 좋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미용실 가서 느낀 부분인데 중용으로 정리가 되니 넘 좋습니다ㅋㅋ 센스있게 스타일을 내려면 같은 머리라도 상대의 머리결, 두상, 뿌리방향 등을 고려해서 가위질을 다르게 해야하는데 이걸 알고 하느냐, 기계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장인과 일반 미용사가 갈리는 것 같다. 모든 일에도 이런 패턴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에 맞게 알잘딱깔센을 하는 게 바로 중용이군요ㅋㅋ
공부 인간본성의 통찰 세상에 관한 탐구와 내가 뭘 해야하는지, 뭘 원하는지, 잘못된건 없는지 샅샅이 뜯어보는 공부 이 과정을 통틀어 ‘철학’ 철학의 단점 ’입문의 힘듦‘ - 입문 후에도 얼마나 많이 알 수 있겠나 싶어요 하지만 사소하게 아는 부분이라도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오늘도 내가 아는 진리를 삶에 녹일 수 있는 하루를 보내요💪🏼
느낌점: 중용은 한마디로 융통성인것 같다. 더도말고 덜도말고의 정답은 없다! 상황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세상에서 중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하는것!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적절한 선을 알게되고 이는 곧 중용을 실천하는일이다. 이세상의 모든것을 직접 경험하기는 힘드니, 미리 경험한 선배님들이 남기신 기록물인 책과 영상을 통해 습득하자. 나이가 들면서 책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네요!
예전 키아누리브스의 리틀붓다 라는 영화가 있는데 한참 명상을 하는 키아누(싯달타)의 귀에 강에서 배위에 음악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애야 탄금의 현은 너무 느슨해도 너무 팽팽해도 제소리가 나지 않는단다." 이에 미소를 지으며 곧이어 깨달음을 얻게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이런내용이 아닐까라고 본다.
중용은 이런식으로 적용해야합니다. 당신은 성취를 위해 해야할 일들에 대한 실행력이 부족합니다. 당신은 건강을 위해 운동 하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당신은 부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다른 부분에서 해봅시다. 당신은 재미를 위해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과다합니다. 당신은 먹는 것의 즐거움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습니다. 우리의 고뇌와 불만들은 언제나 불균형에서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과도하게 정체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정말 현실에 필요한 무엇가를 해야할 에너지를 다른곳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하구요. 그 사실을 본인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 뜻 밖의 행운이 찾아오더라도 온전히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지인분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서 인생은 외발자전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쉬워보이지만 본인 입장에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중용도 외발자전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항상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너진똑님이라면 여러 서적들을 바탕으로 하여 명쾌한 답안을 주실까 기대하며 질문을 달아봅니다. 도덕심은 왜 필요한 걸까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변명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본 도덕이 지켜짐으로써 사회가 기능하고 우리가 이렇게 마주앉아 평화롭게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불신과 두려움으로부터 생겨난 도덕은 강자에 의해 유린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기에 찝찝한 부분이 있습니다. 강자도 설득을 시킬 수 있는 그런 이유가 있을까요? 도덕은 왜 지켜져야하는가?
중용에서, 중이란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적정한 것, 중간도 아니고, 너무 많이도 너무 적지도 않다기보다도, "그냥 딱 그 상황에 가장 적정하다"는 개념에 가까움. 용은 그 중을 계속 하는 것, 다만 중은 상황에 따라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변하는 중에 따라 용을 맞춰가는 것을 포함한다. 너무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한 모순적인 개념
미니멀리즘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생각합니다. 대부분 미니멀리즘을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최소한' 이라고 생각을 해 밥을 세끼 먹는걸 한끼로 줄이고, 잠도 3시간만 자고, 옷도 아이템별로 딱 한벌씩만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란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최소한을 찾는 것입니다. 내겐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정도가 충분한지, 내겐 무엇이 소중하고 나를 충만하게 하는지. 이렇게, 나만의 '최소'이자 '중용'을 발견하여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점점 과부화되고 과잉으로 치닫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고 집중을 해야 할 것들에 더욱 진심을 다할 수 있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이나 특성마다 모두 다 다르기에 그에맞는 '중용'. '미니멀'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알잘딱깔쎈) 나중에 미니멀리즘 관련 서적도 다뤄주시면 기분 좋아져서 저녁으로 치킨 시켜먹겠습니다.☺
맞는말이다 우린 물질계라 대칭과 모순을 생각하지만 근본은 완젼=영원=무 엿을테고 우린 절대 그걸 가질수 없는 물질들이다. 물질로써 막연히 느껴지는 영원한 무를 쫒는 무한의 점일뿐이다. 그래서 모? 즐겨 느껴 그게 영원인거처럼 그게 이 짧은 순환계를 조금이라도 더 길어지게 하니까
알잘딱깔센! 일, 공부, 인관관계 등 대부분의 경우에 알잘딱깔센이 필요하고 그 적절한 중간을 정하고 행하는 과정이 우리가 해야되는 노력인데 노력하기에 앞서서 인생의 목적지를 정해야한다. 목적지를 정할 때 철학을 알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거 그렇기 때문에 중용은 네비게이션, 철학은 인생의 공략집(끝에 뭐가 있는 지에 대한 고민) !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대로 사는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조차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지면 삐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유투브에 어떤 영상을 봤는데 행복한 사람은 자기주도권 즉 자율성과 유능성, 마지막 한가지가 뭔자 기억이 안나는데 정말 그런것으 유능하면 돈많이 벌수있는 기회가 많고 그럼 자율성 결정권이 생기고 그러고 보니 그게 행복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