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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gic queen of Joseon Dynasty we know well of [History of Korea] 

역사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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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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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10   
@sj-wq5mc
@sj-wq5mc 4 года назад
왕비가 되었으나 당시 친정을잃고 남편을잃고 자신의 왕비신분마저 잃었던...죽어서야 복위를 하게된 비운의 왕비들중 한명.
@이원지-r4f
@이원지-r4f 3 года назад
부인 생활은 7년, 왕비생활은 7일 ㅠㅠㅠㅠ
@MKHan-qe8pd
@MKHan-qe8pd 3 года назад
불쌍해요.ㅠㅠ
@박셈2
@박셈2 4 года назад
너무 안타까워요 아까전에 단경왕후역할을 한 박민영배우 생각했는데 대박이네요
@김잔나-j5g
@김잔나-j5g 4 года назад
아이고... 진짜 너무 안됐고...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을텐데 복위마저 남편이 거부했다니 안타까워요. 아무리 정치적인 입지라도 인간적인 마음으론 서러웠을것 같네요. 잘봤어요!
@강춘-e3s
@강춘-e3s 4 года назад
연산군의 왕비 신 씨에 대해서 알려 줘
@flowerbright3908
@flowerbright3908 3 года назад
@@강춘-e3s 개망나니인 연산군을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대요.연산군이 죽으면서 중전이 보고싶다 그랬다네요!본문 주인공 단경왕후는 연산군부인의 조카예요!
@이-w7u1e
@이-w7u1e 3 года назад
@@flowerbright3908 단경왕후신씨가 연산군의 중전이에요??
@이-w7u1e
@이-w7u1e 3 года назад
@@flowerbright3908 그럼 단경왕후신씨는 연산군이랑 중종 두 사람이랑 결혼한거에요??
@곱창-b3t
@곱창-b3t 3 года назад
@@이-w7u1e 아니요 폐비신씨는 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의 여동생이고 단경왕후는 폐비신씨의 조카에요
@Wannabe2023
@Wannabe2023 4 года назад
조선 최대 비운의 왕후였던 정순, 단경왕후는 순전한 정치적 희생양이었습니다. 절대 정치에 얼씬 거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국민들도 정치인과 지도자를 반드시 구분해야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망하지 않고 번영하는 것입니다.
@뿌르느는
@뿌르느는 4 года назад
복위될수 있었는데도 중종이 무시하고 반대한거보면 빼빡 사랑이 변한거.
@viviz8594
@viviz8594 4 года назад
전 단경왕후, 단종의 왕비가 젤 불쌍한...연산군이나 광해군 부인들은 뭔 잘못이야...
@박선진-r7e
@박선진-r7e 4 года назад
제가볼땐 단종의아내 정순왕후가 아닐까싶네요 평생을 남편을 그리워하며 통곡하면서 염색일만 했다하니 그분이 오래살았다 한들 무슨소용이 있었겠어요
@달콤솜사탕-x3b
@달콤솜사탕-x3b 4 года назад
단종의 왕비나 후궁 두분까지 80~85세까지 살다가셨답니다 얼마나 한많은삶이었을지
@RedRang0708
@RedRang0708 2 года назад
중종반정이후 시대를 모티브로한 붉은단심에서 독을마시고 자살한 이태의 어머니가 짧지만 기억에 남아서 단경왕후가 주인공인 7일의왕비를 최근봤음. 연산군과 진성대군(중종)은 라이벌이고 단경왕후와 삼각관계라는 설정 역사와 너무나 다르지만 붉은단심에 이어 봤기에 여운은 길게남음 물론 드라마에서만요.. . 내기준 조선시대 왕의여인중 가장 불운한여인은 단경왕후같음 남편과 7년을 함께살고 남편은왕이되고 본인은 7일만에 폐비가되어 유배되다니..ㅠ . 드라마에선 중종과 단경왕후는 서로 너무 사랑했고 결말또한 슬프고 아름다웠지만(새피엔딩)... . 실제론 3명의 왕비교체를 제외하더라도 후궁도 많았고 경빈박씨가 찐첫사랑인게 너무 충격적임.. 신하들때문에 처음엔 못데려왔도 짬이찼을때는 두번째 계비의 아들때문에 세자책봉에 문제있을거라며 자기가막음 야사에서는 비구니가된 단경왕후 몰래 데려왔다고하는데 말이안됨 세번째 계비가 있고 수많은후궁과 아들만 15명ㅠ . 대군시절 연산군으로부터 지켜줄 가문이라 정략결혼했다해도 7년을 함께한 조강지처를 신하들의 반대때문에 헤어질순있지만 후에는 거부했음 정치를 잘했냐 그것도 아님 조광조 뽑아놓구 지보다 너무 우월하니 다시 왕자리 뺏길까봐 버린 임금 어차피 바지사장왕이니까 이렇게 무능력치에 팔랑귀 의리없는왕이 또있을지 인왕산 치마바위전설로 순정파이미지 단경왕후는 생이별후 50년을 그리워하며 혼자산게 너무슬픔 드라마는 너무 예쁘고 슬펐지만 그래서 배신감이 큰게 중종임 연산군에 가려 쩌리여서 몰랐던게 나았을꺼같음😭
@Wannabe2023
@Wannabe2023 3 года назад
원래 정치인에게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 유지만 필요한 거지요. 그래서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지요. 남편 중종이 자신을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보낸 단경왕후가 정말 안스럽네요. 휼륭하신 왕비입니다. 그 진실이 찬란하네요.
@ruk9257
@ruk9257 3 года назад
근데 조선사 비운의 왕비 따지면 오히려 안억울할 왕비찾는게 더 힘들 듯. 이성계 마누라: 전처 사망 후 재혼한 후처가 조선건국도 돕고 지원도 빵빵하게 해줬는데 자기가 낳은 막내형제 왕 시키려다 자긴 후궁으로 강등되고 두 막내 왕자는 킬방원한테 살해당함. 킬방원 마누라: 왕자의 난 때 남편 걱정해서 칼들고 나서려고까지 했다는 여장부이심. 근데 정작 왕된 남편이 친정 노비 임신시키고 멋대로 임신시키고 방치하다가 용종잉태한 여자 부려먹었다고 친정 남자들 줄초상보냄. 헌신했더니 헌신짝으로 갚는 남의 편새끼. 아빠도 남동생도 다 죽었는데 심지어 허구언날 딴년끼고 다니면서 마누라가 바가지 긁어 못살겠네 폐위하자 징징댐. 어이는 지랄옆차기 헥토파스칼킥으로 날려버림. 세종마누라: 시애비라는 놈이 친정집 박살내서 조져버림. 남편은 여자 겁나 좋아함. 유순해서 후궁들과 잘 지냈다곤 하지만...... 문종 마누라: 아들 단종이 죄인으로 몰려 죽고 본인도 죽어서 수모를 겪음. 그래서 세조 꿈에 저주퍼부어서 병걸리게 했다고. 단종 마누라: 남편이 죄인됐으니 더 할 말이...? 성종 마누라: 남자가 여자 탐하는 건 당연한 것, 여자가 남자 탐하면 대역죄인 ㅅㅂ 더 할 말이 필요한가? 연산 마누라: 남편이 허구언날 여자끼고 다니면서 에베베벱하는 지거리를 봄. 그러다 쿠데타로 단체로 배드엔딩. 그나마 성격이 좋아 나쁜 평도 없고 연산이 그리워했다지만... 숙종 마누라: 야, 너 찐사랑 아니지? 마누라 둘 싸움붙여서 신하들 모가지 뎅겅하고 다니면서 막판에 후처(장희빈)는 악녀몰이함. 그리고 자기 마누라한테 사약 먹이기까지하면서 손수 죽음에 일조함.(심지어 그 마누라가 낳은 아들은 갈굼받고 자람. 킬방원은 적어도 자식한텐 좋은 아버지였다는데. 퉷) 영조 마누라: 중전이 죽을 때까지 처녀면 말 다했다. 개샹럼같으니! 마누라 생일잔치 때 쌍욕 퍼붓고 세자 앞에서 중전 패드립치는 불꽃유교 클라스 개오지고 지리고 조까시고~ 장례식 치루는 날에 사위 장례상 가고 지 엄마 신분 떨어지는거 갖고 남 괴롭히는데 평생을 다 바쳐서 사람이 산 거 같지도 않게 만드는 미친놈과 사느라 ㄹㅇ 죽을 때까지 고생하다 감. 심지어 마누라 죽고 지 아들보다 어린 애기를 후처라고 데려옴. 마누라한테도 자식한테도 손주한테도 해악만 끼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노답클라스~~~ 순정효황후: 조선의 마지막 중전. 그래도 나라 지키겠다고 남녀성차별 지엄하던 시절에 치마 폭 속에 옥새를 숨겨둠. 설마 큰아버지라는 새끼가 국모인 조카치마를 아이스께끼해버릴 줄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모두가 상상조차 못했을거다. 선대 중전 모가지 땄던 왜구놈들을 얼마나 빨아재꼈으면 선비의 나라에서 그딴 짓을 할 수 있었는지 그저 머단할 뿐. 아무튼 나라 망함. 태어나자마자 동학농민운동부터 겪었다하니 왜놈들 떼짓에 한국전쟁에 민주항쟁까지 진짜 별의별 망조 다 보고 살았을 듯.
@MKHan-qe8pd
@MKHan-qe8pd 3 года назад
불쌍한 여인. 아버지 신수근의 잘못된 판단으로 운명이 바뀐 여인~ 중종 반정이 실패해도 당연히 딸은 죽음이었고 아마 자신도 역적의 아버지로서 몰락했을 텐데, 차라리 반정에 가담했으면 자신과 딸의 안위는 지켰을 텐데...
@voyager197030
@voyager197030 Год назад
이도저도 아닌 신수근의 패착
@지구인-e5w
@지구인-e5w Год назад
부인덕으로ᆢ왕이 된거나 마찬가지인데 기회가 있었는데도 조강지처를 버리고 그 댓가는 참담한 비극으로ᆢ!!
@달콤솜사탕-x3b
@달콤솜사탕-x3b 4 года назад
중종은 참 못난왕이네요
@nana_jam0813
@nana_jam0813 4 года назад
인왕산 치마바위는 경복궁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고 하네여
@웰루큉
@웰루큉 3 года назад
신수근이 반정 전에 딸의 편에 섰으면 희대의 악녀 문정왕후가 나라를 말아먹을 일도 없었을텐데... 인종 또한 단명하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렸을테고... 인타깝다.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중종의 부인을 보면 중전이 3명입니다. 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 이들은 본인이 원해서 들였다기보다는 당시 사회상상 혼인하지 않을 수 없던 이들이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후궁이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 귀인 한씨, 숙의 나씨, 숙의 이씨, 숙의 홍씨, 숙의 김씨, 숙원 이씨, 숙원 권씨, 이렇게 10명이네요. 이들에게서 13남 11녀를 보았고요. 아무리 반정으로 왕이 되어 일부 반정공신의 딸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였다고는 하나 그건 정말 일부고 중종도 참 여자 좋아했네요;;; 저게 후궁에 간택된 사람들인 거고 여자 좋아했던 성향을 놓고볼 때 승은상궁들도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24명이나 보다니 정말 정력가고요. 이런데도 단경왕후와 1499년, 단경왕후 만 12세의 나이에 혼인해서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될 때까지 혼인 기간이 7년이었는데 임신한 적도 없는 걸 보면 단경왕후가 난임 체질이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합궁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부 관계를 가진 기간이 2~3년은 될 것 같거든요. 기록을 보면 치마바위 야사가 전할 정도로 혼인 기간 중 사이가 좋았고 아직 젊은 중종이 당시에는 첩도 들이지 않고 부인이 단경왕후뿐이었어요.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중종은 엄청난 정력가에 호색한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옆에 사이 좋은 부인을 두고 그 부인을 안고 곱게 잠만 잤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밤마다 밤마다 부부 관계를 가졌겠죠.
@USER-han3namkill
@USER-han3namkill 3 года назад
역사에 만약이 없긴 하지만...만약에 중종반정 당시 단경왕후가 임신 중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폐위됐을까요?ㅠㅠ 문정왕후가 두번째 계비가 되고 명종을 낳은 이후 조정상황을 생각하면 단경왕후의 일은 여러모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꽃말-y6l
@꽃말-y6l 3 года назад
@@USER-han3namkill 아들이었다면 100% 폐위되지 않았을 테고요. 임신 중인데 단경왕후를 폐위했다 아들을 낳으면 온 나라가 왕손이 있다는 걸 아는데 이런저런 일에 이용될 가능성이 커요. 딸이었거나 당시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니 사산/일찍 죽음이었으면 끊임없이 역적 집안의 딸이라며 탄핵당했을 겁니다. 이걸 당시로서는 사이가 좋기는 했으나 경빈 박씨, 희빈 홍씨에게 점점 마음이 가기 시작한 중종이 얼마나 감싸주었을지도 미지수고요. 뭐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죠^^
@nana_jam0813
@nana_jam0813 4 года назад
익찬부원군 신수근이 중종반정에 참여했으면 단경왕후가 7일의 왕비는 아니였을텐데 그 상황에서 중종은 반정공신의 의해 왕이 됬으니 어쩔수 없는 거였네여.. 조선의 4번째 폐비! 다행히 233년만에 폐비 딱지를 떼고 국모가 다시 되서 다행히네염.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4번째 페비이면 페비윤씨(성종 2번째 부인),페비신씨(연산군 아내)를 제외하면 나머지 한명은 정순왕후 송씨 인가요?
@ysk4442
@ysk4442 4 года назад
@@zhugelianglove 단종비 아닐까요?
@신별-o8n
@신별-o8n 3 года назад
숙종은 장희빈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중종은 경빈박씨한테 빠져서 신씨 생각 1도 안한거 뻔히 보임..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года назад
중종이 신씨가 그리워도 반정공신들이 눈치를 보느라 복위를 못시킨 왕권의 한계입니다. 중종이 죽을때 비구니가 들어왔는데 이 분이 신씨가 아닌가 추정하는 분도 있습니다. 중종이 세자를 위해 경빈도 죽였는데 정치를 위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터끼왔쪄요
@터끼왔쪄요 2 года назад
@@inyeobseo9369 다시 부르자고 했는데 중종이 안 불렀대요
@나핑클
@나핑클 4 года наза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단경왕후의 묘는 어디에 있나요?
@HistoryKoreastory
@HistoryKoreastory 4 года назад
단경왕후의 능은 온릉으로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호국로 255-41 위치해 있습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있어 그동안 공개가 되지 않았는데 2019년 11월부터 시험 개방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 155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친정인 거창 신씨 선산에 모시게 되고 1739년 왕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온릉이라고 정했으며 격식에 맞게 새롭게 조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진-k5n
@세진-k5n 4 года назад
@@HistoryKoreastory 양주시입니다 시로승격된지가언제인데ㅠ 양주시민으로 안타깝네요..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중종은 죽어서 부인곁에 묻히지 못했네요. 제일 가까운게 태릉(문정왕후 묘)
@Jin-bg9eb
@Jin-bg9eb 4 года назад
여자로써는 참 불행한 삶을 살다 갔네요~ 열심히 시청하고 있답니다~
@악플러시비글연쇄살인
@악플러시비글연쇄살인 3 года назад
폐비 윤씨부터 다 불쌍하네 ㅜㅜ 연산군도 불쌍하고 단경 왕후도 불쌍하고 ㅠㅠ
@xiulove999
@xiulove999 3 года назад
중종을 만든건 신씨부인이였지만, 결국 부인을 버린 못난 남편 중종 그리고 영조가 단경왕후라는 시호른내렸고.. 중종은 죽을때까지 부인이 쫓겨난이후로 부인을 찾지도 대우도 하지않았다고하고.. 후손들이 제사도 지내지않았다고하죠?
@차선미-p2u
@차선미-p2u 4 года назад
계속 전해주길 바래요~
@mykong_rachel
@mykong_rachel Год назад
7일의 왕비에서 박민영이 연기를 너무 잘함 보는 내가 다 짠함 ㅠㅠ
@엄수콩
@엄수콩 4 года назад
설마 썸넬 7일의 왕비에 나왔던건가용? 예전에 꽃혔었는뎅 영 시청률이 안나왔어요 ㅠㅠ
@이진후-y9r
@이진후-y9r 2 года назад
결국 왕에게서 잊혀지는군요
@유키-e2x
@유키-e2x 2 года назад
단경왕후 불쌍하네..
@싱글봉글-f5i
@싱글봉글-f5i 3 года назад
무식한게 죄라고, 세종 왕비아버지 역모죄로 죽었는데 세종과 태종이 지켜줌.... 그 선례만 알고 있었다면....
@박선영-r4g4k
@박선영-r4g4k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세종과 태종때는 왕권이 강했으니까요.. 중종은 그렇지 못했죠 더군다나 소헌왕후의 친정을 몰락시킨 사람이 바로 태종 본인이었잖아요
@happy_mlif
@happy_mlif 4 года назад
너무 안타깝다ㅠㅠ
@플리즈돈텔미웨잇
@플리즈돈텔미웨잇 3 года назад
치마바위가 레전드
@흑발쟈니
@흑발쟈니 2 года назад
와우.. 어릴때 여인천하볼때는 몰랐지ㅠㅠ
@이호이호-f5p
@이호이호-f5p 2 года назад
장경욍후를 치려햇던 의녀가 대장금 주인공인 장금이엇단 사실… 이게 기록된 역사적 사실인가..처음 알앗네요! 그럼 대장금 드라마는 시간상 각색을 더한건가요?
@높이의별마니
@높이의별마니 4 года назад
21대 영조 왕이 복위? 신수근 아버지도 정몽주 선생 급?요 지성합니다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그리고 단경왕후가 복위되지 못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 만약 복위되었다가 아들을 낳게 되면 종법상 그 아이가 현재 원자를 제치고 장남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러면 또다시 피바람이 불 것은 뻔하고 .... 게다가 그 원자가 신동이었으니 대신들 입장에서도 난감하기 그지 없었을 것입니다. 중종도 그걸 모를리 없고요. 그래서 아예 문제가 없는 처녀 간택을 한 것입니다. 경빈 박씨가 왕비가 되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장경왕후가 딸만 둘인 채로 죽었다면, 단경왕후가 복위되었거나, 왕의 총애를 입은 경빈 박씨가 중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경빈 박씨보다는 희빈 홍씨가 중전이 되었을 거에요. 경빈 박씨는 박원종의 수양딸로 들어가 신분 세탁한 거고 실제로는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습니다. 반면에 희빈 홍씨는 반정 공신 홍경주의 친딸이죠. 중종이 가장 총애한 두 여성 중 고르라면 명문가 출신 수양딸보다는 명문가 출신 친딸을 선택했겠죠. 인종보다 형인 중종의 자식을 보면 1. 복성군: 1509년생- 경빈 박씨 소생 2. 해안군: 1511년생-숙의 홍씨 소생 3. 금원군: 1513년생-희빈 홍씨 소생 4. 인종: 1513년생-장경왕후 소생 이렇습니다. 희빈 홍씨를 중전으로 올리면 금원군이 금원대군이 되어 후계구도가 꼬여요. 그래서 많이 총애한 여성에 명문가 출신임에도 희빈 홍씨를 중전으로 올리지 않고 새 장가를 간 것 같네요. 단경왕후를 복위시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무엇보다 이미 헤어진지 10년입니다. 역적 집안으로 몰린 집안 딸이고요. 이미 남자로서 마음 가는 경빈 박씨, 희빈 홍씨 등 후궁들도 여럿 생겼어요. 중종이 단경왕후를 복위시키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갑니다. 정치적인 상황도 그렇고 남자로서의 마음도 그렇고... 단경왕후 입장에서는 매정하게 느껴졌겠지만 제가 중종이었어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이게 훨씬 현실적이죠.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꽃말-y6l 박원종 수양딸 설은 큰 근거가 없다 하더라고요. 본관이 달라서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꽃말-y6l 그런 의미에서 처녀간택이 원자를 위해서도 좋았죠. 문제는 그리 들어온 여자가 어마무시한 야심가였단게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이도형-x9x 그러게요. 지금 위키백과 찾아보니 박종화가 집필한 소설에 박원종의 친척으로 묘사된 것이 와전되었다는군요. 전 몰랐어요^^; 다만 경빈 박씨가 흥청(연산군이 만든 여자들 집합소) 출신이었다는 걸 볼 때 명문가 출신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이도형-x9x 문정왕후~ ㅋㅋ 차라리 인종이 태종 같은 성격이었다면 서모랑 치열하게 싸웠을 테고 명종을 죽였을 텐데 말이죠~ 아니면 자기가 아이를 못 낳는 몸이라는 걸 알고 경종처럼 후계구도를 걱정해서 살려줬으려나요? 인종이 아이를 "못" 낳은 건 문정왕후를 생각해서라는 건 완전 멍멍이소리라고 생각하고요. 이 시대에 아이를 못 낳는다는 건 엄청난 치부였어요. 더군다나 후계를 꼭 봐야 하는 왕인 인종은 그랬다가는 종묘사직 전체에 불충을 저지르는 일이었어요. 중전 외 후궁들도 몇몇 있었던 걸 볼 때 아무리 봐도 인종이 성생활까지 힘든 건 아니어도 아이를 못 낳는 체질이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jammar-el8zd
@jammar-el8zd 4 года назад
인수대비의 작품 불쌍한 신비...무능한 중종....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신수근이 만약 중종반정에 참여했다면 장경왕후 윤씨(인종 母)가 죽은뒤 복귀해서 인종을 보살폈을듯 합니다. 아버지가 참여했다면 치마바위 이야기는 없을듯 합니다.
@정재웅-b8u
@정재웅-b8u 4 года назад
@@zhugelianglove 아들을 낳았으면 문정왕후처럼 인종을 괴롭혔갰죠
@뉸뉴하뜌
@뉸뉴하뜌 4 года назад
신수근이 중종반정에 참여했다면 애초에 폐비도 안됐고 장경왕후도 역사에 없었고 인종도 없었고 인종이랑 단경왕후 소생이랑 싸울일도 없었겠죠ㅡㅡ 아빠가 반정공신인데 폐비가 왜 됩니까.. 신수근은 자기 죽을거 알고 함구하고 그 자리 지켰던듯.. 어찌보면 연산군의 충신이네요 누이도 딸도 누구하나 버릴수도없고 자신이 모시는 왕도 배신할수없어서 역모를 꾸미는줄 알면서도 함구한.. 참 안타깝네요
@USER-han3namkill
@USER-han3namkill 3 года назад
@@뉸뉴하뜌 맞네요ㅠㅠ 왜 신수근의 선택은 딸이 아니라 누이였을까요? 기록에서는 세자 때문이라고 하던데.....권력욕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하더니.....그게 자식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sotheby.s
@sotheby.s 2 года назад
오늘 단경왕후 신씨가 있는 온릉에 다녀왔습니다. 조선시대 왕릉을 기억하며 다니진 않았지만 무언가 쓸쓸함이 느껴져 유투브스토리를 찾게 됐네요. 그런 의미에선지 영조때 복위된 신씨의 능호를 온릉이라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왕산 치마 바위스토리도 흥미로웠는데, 중전이 죽고나서 복위를 택할 수 있었던 종중이 다른 치맛바람에 후궁도 10명도 두었단 사실에 놀랍네요. 역시 남자는...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가 조선시대 왕이었다면 후궁30명은 두었을 겁니다. 에브리데이 뉴데이. 잘 보았습니다.
@nsjsnsjdjdd7757
@nsjsnsjdjdd7757 2 года назад
마지막줄이 우욱
@빚사이로막가
@빚사이로막가 Год назад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 였구나 ㅠ
@roach5287
@roach5287 Год назад
단경왕후가 맘 아프지 중증은 최악의 왕이지.
@indahprayascita
@indahprayascita 2 года назад
I enjoyed watching Queen for Seven Days, it’s a good drama! (such underrated drama)
@samshah7628
@samshah7628 2 года назад
Sad drama
@CWG-op9td
@CWG-op9td 3 года назад
Please English subtitles
@---xg1ni
@---xg1ni 4 года назад
요즘 대장금 재방중인데~ 임호가 나쁜 남편이네요 ㅎㅎ;;
@nanaj9635
@nanaj9635 4 года назад
ㅠㅠ소름..
@amlsg
@amlsg 4 года назад
Eng sub please
@heesookkim4759
@heesookkim4759 3 года назад
무능한 중종 뭘 믿고기다리노 예나 지금이나 ~~ㅉ
@pele2434
@pele2434 4 года назад
비운의 왕비 중 최고봉은 단연 인현왕후가 원탑이라 봄. 숙종한테 평생을 시달리다 34에 죽었으니 15살에 왕비가 되어 19년 내내 불행했고 와병중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취선당의 궁녀들에게 수시로 감시당하며 살다 고통스럽게 죽었으니 가장 불행한 왕비라고 봅니다. 숙종이 인현왕후보고 죽으라고 식량을 몇년동안 지급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단경왕후나 정순왕후 송씨는 남편이 괴롭히거나 죽이려고 들지도 않았고 정치에 배제되서 오히려 천수를 누리고 살았으니 인현왕후보단 훨씬 나았죠
@하민-j8j
@하민-j8j 2 года назад
제말이요. 제자식하나 없이 왕의 총애를 믿고 장희빈의 갖은모욕에다 숙종의 개무시에다. 말이 왕비이지 그 마음알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거 같아요.
@aprl4616
@aprl4616 Год назад
? 뭐래 인현왕후도 성격 셌음
@pele2434
@pele2434 Год назад
@@aprl4616 그 성격 셌다는것도 장희빈이 수차례 오만방자하게 자기 업신여겨서 매질한번 하고 명성왕후의 유지를 받들어서 숙종에게 장희빈을 멀리하라고 권한게 전부인데 왕비가 이것마저도 안하면 호구인거죠
@wjsdmswls39
@wjsdmswls39 4 года назад
장경왕후도 경빈 박씨랑 같은 간택 후궁이였다 나중에 중전이 된걸로 알고 있었는데.... 바로 중전으로 간택 된건가요 ?
@HistoryKoreastory
@HistoryKoreastory 4 года назад
중간에 생략이 되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었네요. 9월 10일에 간택령을 내리며 중전을 맞을 준비를 했고 9월 17일 날 중종의 모후인 왕대비 정현왕후가 먼저 두세 명의 후궁을 들이고 천천히 봐서 결정하자는 판단을 내렸기에 후궁들을 먼저들이고 다음 해에 그 후궁들 중 장경왕후가 선택되어 왕비에 오르게 됩니다.
@wjsdmswls39
@wjsdmswls39 4 года назад
@@HistoryKoreastory 감사합니다 ^^예전부터 잘 보고있었어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부탁 드려요 ^^
@던녹
@던녹 4 года назад
남자란 . . 임금도 남자군
@nhkim8348
@nhkim8348 Месяц назад
어차피 조혼인 거 애들만 좀 빨리 태어났어도 폐비 안당했을걸
@허대성-s4j
@허대성-s4j 3 года назад
중종도 목숨이 까닥까닥 하는데...영 ...ㅠ.ㅜ
@pele2434
@pele2434 4 года назад
비운의 왕비라면 인현왕후 아닐까. 죽을때까지 숙종 때문에 짧은 생애를 고통스럽게 보냈으니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라고 합니다.
@내끄내끄
@내끄내끄 3 года назад
페비윤씨
@이슬비오는밤
@이슬비오는밤 2 года назад
중종이 단경왕후를 진정 사랑했었구나
@전윤득-q1j
@전윤득-q1j 3 года назад
조선시대 명문가라면 노비가 무지많았겠군. 조선시대는 정말 잊고싶은 최악의역사! 한국인이란게 부끄러울뿐. 백성의 60%이상이 노비! 자국민을,. 이해가 안되는 조선의 역사!
@나무-o3s
@나무-o3s 2 года назад
지금은 재벌들의 노예입니다 은행의 노예입니다 기득권의 노예입니다 빚지면 노예가 되나니 빚지지 마세요~
@voyager197030
@voyager197030 Год наза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아니면 그냥 똥쓰레기 왕조~~고려가 지속되었어야
@김호찬-f1d
@김호찬-f1d 2 года назад
역사 폐지 님 감사합니다
Дале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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