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았을 때는 10살 때 우연히 듣게 된 "챔피언" 이라는 노래였어요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고 남자가수는 눈에 안 보이고 여자 걸그릅 만 눈에 보였었는데 13살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남스타일이 한참 유행하기 그때부터 싸이라는 가수의 영원한 팬의 시작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젠틀맨 , 대디, 드림 유명한 히트작들 나오면서 노래 듣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하고 재미있구나 라는걸 처음 알게되었고 그후로 더 나아가서 I LUV IT , 뉴페이스 , 기댈 곳 도 듣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 유명한 노래 말고 내가 듣지 못했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찾아보고 또 더 나아가서 싸이 대표 콘서트를 세 차례 식이나 다녀오면서 느낀 점이 내가 이렇게까지 가수라는 어떤 인물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고 물론 저보다 더한 싸이 팬분들이 있을 거지만 정말 후회 없을 만큼 노래를 정말 많이 듣고 웃고 울기도 많이 울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군대 입소를 두 번 해주신 거 정말 감사드리고요 ㅎ 언제나 저희 곁에 딴따라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을 떠난지 벌써 30년?! 89년 별밤지기 이문세 63빌딩 쨈 컨서트 1회. 신촌블루스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김종진오빠도 생각나고 우순실 언니도 생각나고 문세오빠 건강하세요. 아직도 멋지고 명곡이 너무 많아요. 방배동 유레일패스도 기억나고 문세오빠 컨서트 마3트리오고. 신성균 피디도 생각나고. 대학시험보고 별밤에 알바생이 갑자기 그만두게됐다고 해서 그당시 파우처 8만원받고 노영심언니랑 근형오빠랑 엽서 가지러 여의도 우체국가서 엽서 싫어와서 그 사연들을 읽으면서 전 19살에 많은 세상을 알게된거같아요. 문세오빠가 1989년 2월13일 인가 ? 영화인 손창호씨가 감독으로 데뷔한다고 파티한 그날 그자리에 오셔서 너 왜 여기있어 ? 국장님 돌아가셨다는데. 하셔서 작가님이 태워다 주셔서 도착하니까. 대통령부터 화환이 이미 줄서서 들어서고. 이진희사장님 이모부 둘도없는 절친인데. 문세오빠 뒤풀이로 뉴월드호텔 당코 나이트클럽갔다가. 저 아버지가 알게되서 뉴욕으로 쫓겨나고 한국에 못갔어요. 뉴욕 도쿄. 홍콩 독일 유학마치고 도쿄에서 마지막 졸업하고. 미국 증권회사다니고 패션명품 한정판 회사하면서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아요. 도쿄 ㅡ 김문희 ㅡ 이모부성함. 경향신문사 당시, 정동.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경제부장, MBC 칼럼 동시에 이 많은 직책을 맡으셨는데, 그 당시만해도 이모부 명예직에 흠이 될까봐. 아버지 반대로 미국유학가서 핸드폰도 없이 혼자 고생하면서 버텨온건 별밤 청취자들 사연들을 보면서 그때 전 인생공부를 다한거 같았어요. 세상에 그렇게 힘든 학생들이 많은지 몰랐는데 그 경험이 지금 법인 주식회사 대표자리에 있게된 베이스라 잊을수없는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