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한글처럼 어느날 한꺼번에 창제된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져서 축적된 것이다. 한자는 은나라시대 이전부터 발생하기시작해서 작금에 이르러 4만자를 넘는다. 과연 은나라시대에 만들어진 한자는 얼마나 될까? 동이족이 한자의 일부분을 만든 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한자를 만들었던 동이족은 화하족에게 흡수되어어 사라졌다. 그러니 그 동이족은 지금의 중국인의 조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동이족은 한반도의 동이족과는 관계가 없다. 한반도의 동이족은 BC230년경이 되어서야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수입하였다. 남의 글자를 빌려와서 자기네 글자라 한다면 도둑놈과 다름없다.
초원의 길에서 편두풍습, 순장은 한반도의 풍습이며아버지를 (아뿌), 아빠를 (아빠)로 사용하는 종족은 한반도뿐이다. 사람을 (사마이). 한국어 몇분, 여러분에 분은 사람의 뜻이며 (분ㅡ훈)탈탁음화 현상이다 Atilla 는 영웅, 용감한사람 의 현 몽고어는 bator, bayatil에서 두음 b탈락 이음변이다 高句麗를 高麗로 한자어 음차어인데 중국어발음은 Ga:ry이며 부여 狗加族이 서진해 Hungary, Bugary를 건국했는데 나라의 뜻, 2~3c 고구려의 철제등자가 발견 파르티안샷 가능 예맥궁을 사용
남한역사를 북한정권에게 써 달라고 한 것보다 더 최악인 경우가 한국역사를 일본에게 쓰게 한 겁니다. 북한역사교과서는 남한을 미국에 점령되어 거지들이 우글거리는 지옥이라고 써 놓고 있는데, 이것보다 더 최악인게 일본이 쓴 한국사입니다.한국을 비하하고 폄하한게 북한보다 훨씬 심한. 광개토대왕시의 고구려수도는 베이징이고 장수왕당시의 남하한 수도는 태원(산서성성도)입니다. 베이징을 흐르던 조선하(현이름 조하)는 고조선의 수도가 베이징임을 증명하며 베이징을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고조선인들이며 그 후 고구려의 수도가 됩니다. 중국 살수(황하)와 위수가 만나는 곳에 영락궁(영락은 광개토왕의 황제명인 영락제를 가리키는 말)이 발견됐는데 이는 고구려의 수도가 중원에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고조선,고구려가 중국과 허구한 날 싸운 것은 고조선,고구려가 중원에 있었기 때문이지 만주와 한반도에 있었으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당시 중원에도 개발안된 땅이 널려있을 떈데 뭣하러 고구려가 있는 만주까지 300만대군을 끌고 갑니까? 그 병력이면 중국에서 개발사업해도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는데.
중국의 뻥티기 역사 (실제로 영화를 보면 막 붕붕 날라다니고 장풍도 쓰고 ... 함) 일본의 거짓투성인 여러 가면을 가진 속내를 숨기는 역사 (지들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넘어 갔는데 꺼꾸로 지들이 한반도에 문명을 알렸다는 생양아치 사기꾼들) 한국의 역사는 위대한 조상을 가졌는데 사실대로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 말도 못하는 옆나라 눈치보나 역사 학자라 하는 등신 머저리들이 설치는 역사 입니다 중국은 지들조상이 아닌 이들도 지들 조상으로 둔갑하여 재사를 지내주는 특히한 놈들이고 일본놈들은 지들 조상이고 아니고를 떠나 남의 역사를 또는 조작된 유물을 땅에 묻고는 추구 파내서 지들 역사다 하고 하는 사기꾼 넘들이죠 한국의 조상들이 남긴 문헌들을 눈치보지 말고 조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리세요 우린 우리 선조들이 분명 이유가 있어 남겨눟으신 역사를 외곡하지 말고 그대로 세상에 내 놓으세요 법정에서 싸울때 다른놈이 하는말에 꼬리를 물고 반박하고 목에 팻대를 새우는 자는 결코 법정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나는 내 할말만 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내가 추축되는 사실 그대로 몽골지역에 발견되는 한반도또는 고구려의 문화제를 왜 중국과 일본의 문헌과 같지 않다고 없던일로 합니까 저는 이곳 미국에서 몰골사람들을 만나면 깜작 놀랍니다 그냥 저들의 한국사람들 입니다 외모가요 그리고 강호동닮은 애들이 많아서 그러지 강호동도 한국인 이잖아요??? 멀리서 저들이 말하는 소리나 하는 제스처들을 보면 완전 한국말 처럼 들리고 한국 사람들 처럼 보입니다 몽골은 그냥 우리 민족 입니다 티벹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그냥 한국 사람들 입니다 그들의 언어가 우리와 많이 유사합니다 티뱉도 한국 사람들 입니다 만주의 만주족인 (고조선, 고구려, 말갈, 선비, 발해, 거란(契丹), 여진(女眞), 몽고(蒙古), 만주족(滿洲族)) 중국문헌에도 저들은 동이족이라 했고 한반도의 고려신라백제와 같은 민족이라 했습니다 그대로 쓰세요 뭘 주저합니까? 반박하면 그러세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조상들이 주장하는 말 이라고 하세요 일본왕조의 시조가 백제인 그리고 신라인 이란말 일본의 타개힌 이전왕이 살아 있을적 한말 입니다 역사에 그대로 기록 하세요 중국은 본시 배트남 이북에 있고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의형제의 나라 촉나라 쯤에 존재하던 이들이고 중원과는 거리가 있던 이들 이었습니다 저들의 강역까지 처들어 가려면 많은 희생이 따르듯 천연의 요세였죠 힘을 키운 저들이 중원을 야금냐금 먹어 들어가 지금의 거대한 중국이 됩니다 일단 중국 원래의 민족은 싸움을 싫어 하나 머리가 야비하여 몸이 강하지 못해 몸쓰는 것보단 머리를 쓰는 일에 집중하고 중원을 차지한후엔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농업에 힘쓰고 이어 상업을 일으켜 많은 돈을 벌게 되죠 목표를 세우고 그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갓 방법을 동원하여 갈취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력하고 차지 하는 것 보다는 모사를 부리고 책략을 써서 꿀꺽합니다 그러다 보닌 손자가 만든 손자병법서가 완성 되는데 그책에 나오는 싸움의 제일 1번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라 했고 그책에 나오는 도저히 싸워도 안되면 최후의 싸움 비법이 36번째 비법인데 도망가라 입니다 그애서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36계 토끼다 라는 말의 근원이 되었죠 저들은 한국에 300만 대군(200만군+100만부역자)를 보내고 패배하여 약 3000명만 살아 남아 도주 했다는 기록이 있도로 철저히 우리 조상에게 아작난 놈들 이죠 그런데 당시 고구려는 30만이 덜되는 군대를 가젔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들 역사엔 자신들이 전쟁에 승리 했다 합니다 우리 역사엔 고구려의 완승이라 기록 되 있고 왕은 거의 죽다 살아 나고 한쪽 눈에는 화살까지 박히고 ... 그들 문헌에 승리한 전쟁의 총사령관은 전쟁에서 돌아와 사형당합니다 그릭리고 자신은 얼마 못가 반역이 일어나 죽음을 맞이 합니다 당신들은 고구려의 역사가 잘못됬다 하여야 하지 않나요? 중국이 이겼다 조상님들이 노망나서 잘못 기록 했다 하고 해야죠 당신들 학자들이 평소 주장하는 대로라며 저들이 주장하는 저들의 조상은 상나라 그리고 송나라 발음비슷 하조 일단 중동에선 저들을 손나라 라고 불렀다 하죠 "ㅇ" 발음이 없어 대신 "ㄴ""ㄹ"ㅇ,ㄹ 쓰듯 "손" 이라 부르죠 아무튼 저들은 이웃나라를 싸움없이 대부분 이간질로 그 나라를 붕괴시키고 먹어 나가다 보니 거대한 나라가 됩니다 주저리 주저리 ... 당신들 학자들은 정말 쓸모없는 인간들 입니다 당신들 주장을 하지 말고 옛 조상들이 올린 문언대로 그대로 말하세요 중국이나 일본은 10배 100배 덧붙여 뻥튀기에 사기를 치는데 조상들인 남긴 유언마저 부정하는 호로자식 호로후손 할자라면 그냥 깨끝하게 활복자살 해서 조상님들에게 사죄 해야 하지 않는지 생각하고 그냥 다 자결 하세요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민족의 역적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왕조의 사대주의 일제 패망후 사형시켜야 할 친일매국식민사학자 와 민족반역자를 살려주고 그들에게 강단사학을 학교 연구소를 내준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격. 드골은 3만명을 처단했다. 반드시 이들을 처단해야 민족이 산다
고대는 태행산맥이 요의 기준이며 서쪽을 요서 동쪽을 요동이라 하였다 오르도스를 감싸고 아래로 흐르다 ㄴ 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주류 황하와 지류인 소요수 대요수 거대한 호수인 발해(거야택) 압록수 살수 패수 등이 수.당과 고구리의 주요 전투지역이며 평양성은 현재의 석가장과 북경 사이의 보정시 인근이다.
대동강 평양이 수도라면 왜 수군은 비사성을 치냐구요. 그냥 대동강 입구로 들어가지. 지금 평양은 고구려의 여려 개의 도성 중 하나였슴. 고대 평양은 만리장성 안에 있었고 그곳이 요동, 한사군 다 있었슴. 수/당이 침입해 오자 도읍을 지금 요하 넘어 심양 근처로 옮긴 것. 요동성도 지금 요하 지역이 아니고 만리장성 안쪽에 있었을 거임. 삼국사기 일식 위치를 봐도 북경근처까지 고구려 땅.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HBIsW1R_0IY.html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c3jbnKp_wM.html
현재 북중군사 동맹조약에 의거 중국은 북한에 자동으로 진입할수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에 들어가면 국제법상 침략행위가 된다 우리 한국은 발만 동동구르며 북한을 중국에 빼앗기게 되어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미완료 되었고 북한정권의 붕괴만 노리고 있을 것이다
<장수왕 평양>이 <현 요양>임에 대한 반박 논문이 십여년간 없었다면 이게 정설이 아닐까요? 오순제 교수님은 이는 모른 채 눈감으며 20:17 <대동강 평양>을 <장수왕 평양>으로 하고 강의를 하십니다. 오순제 교수도 식민사학세력임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 반박이라도 하고 강의하셨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죠. 반박 멘트 제로.)
신라가 한사군의 낙랑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발해가 신라의 (산동의) 등주를 공격했다는 기록, 발해가 강성할 때 신라는 안남(=베트남) 지경에 치우쳐 있다가 고려에 벙합되었다는 기록, 위나라가 또 다시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했다는 기록, 패망시 성 인근 백제 백성이 돌궐과 말갈로 투항했다는 기록, 망한 백제 땅은 신라와 말갈로 편입되었다는 기록, 만주의 길림이 신라 땅이라는 기록, 등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중국 사서가 신라와 백제가 중국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재야 사학자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이 잘못이죠. 강단 시학자들은 만주원류고도 보지 않은 것인지 보고도 못 본체 하는 건지? 추측이 아니라 중국 사서에 기록된 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학자들은 어느 나라 사학자인지 묻고 싶습니다.
[수서 우문설열전] 우문술은 9군을 거느리고 압록수에 도착했다 (우문술은) 여러장수들과 (압록)수를 건너 그(을지문득)을 추격했다. ♥문덕은 싸울 때마다 편하게 북쪽으로 갔다.♥ (우문술은) 동쪽으로 살수를 건너서, 평양성에서 삼십리 떨어진 곳에 산을 의지하여 군영을 설치했다.
압록수9군중 위문승의 군사만이 완전한 상태로 남았다는 기록을 보면,살수대첩 30만 전멸설과는 모순이지 싶습니다.9군30만은 수나라군사의 일반 편제로 볼수 있겠습니다.즉 군당3만3~4천명으로서,좌군12군40만,우군12군40만,내호아군30만,군사직함으로 보면,내호아와 우문술이 최고 직함으로서 각군의 최고 지휘자였지 싶습니다.압록수 9군중 좌군소속5군은, 회원진 출발시 우문술의 명령으로,순 전투부대로서 병력10만(우문술-우중문 대화)으로 개편된 군사로 보입니다.압록수를 건넜다가 살수대첩을 당한 군사 역시 우문술 좌군소속5군으로서 살수에서 8~9만 병력손실을 시점으로 좌군40만의 전면적인 붕괴로 이어졌을것입니다.압록수9군중 우군소속4군은 압록수 중하류 지역에서 고구려 군을 견제하는 역활이 담당된것으로 보이며,우문술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았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애초 수나라 군사의 진격 목적지가 평양이였던만큼,압록수까지 성공적으로 진격한 군사가 9군이라는 얘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