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40원이라면 815해방 전후쯤 이야기 같은데, 지금 대한민국 실상을 그대로 묘사한 듯 싶어 좀 소오름이 돋네요^^ '사람은 안 변한다'더니, '세상도 안 변한 듯' 싶구요. 그저 나무 껍질이 두꺼워 지는 걸 '변했다'고 착각하는 가봐요^^ 아마 일만년 뒤에도 그러것죠?^😂^
톨스토이가 70세가 지나, '금욕주의'를 주창하고 금욕주의 사회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절친이 찾아와, '자네 주장대로 한다면 조만간 지구종말이 올텐데 금욕주의 운동을 너무 세게 하지 말게나!' 라고 말렸다더라구요. 그러자 톨스토이 왈, "그런 걱정일랑 말게. 누가 내 말대로 할 젊은 놈이 요새 있겠나? 내가 이렇게라도 해야 귀기울여 들어볼려는 사람이라도 있을 게 아니겠는가? 자네 걱정은 기우야!" 톨스토이의 대표적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쓰던 때의 시대적 배경 속엔 당시 제정러시아에도 서구의 계몽주의와 자유화 바람이 밀려들어와 러시아정교회의 권위가 추락해 가고 푸카초프의 농민반란(조선시대의 동학 운동 마냥)으로 1861년에 농노제를 폐지할 수 밖에 없어 사회혼란도 심해져 간데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도 급속히 확산되어 가면서 백작 작위를 가진 귀족층인 톨스토이가 개인적으로 나름 빈민층 구제에 힘썼다곤 하더라도 국가적 실태 차원에선 '언발에 오줌누기'였을 터, 흔히 기득권층들은 '종교를 통한 교화'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종교적 교화'라는 복고풍 작품을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한편 톨스토이는 '종교적 교화'의 주체가 되어야할 당시 러시아정교회(동방정교회) 성직자들도 일반 백성들 못지않게 타락한 사실을 지적하고 이들의 교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필요성에서 이런 '운명' 같은 작품을 구상하기에 이른 듯 추정됩니다 ^^ 당시 러시아정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된 모습들을 애둘러 알레고리 기법으로 표현하여 인내하면서 통렬히 비판하는 자제력도 보여지나 '모사재인 성사재천'임을 깨닫고 달관하는 자세로 루터 같은 투쟁정신은 후배들에게 넘기는 조심성도 엿보이네요^^ 작가들이 당대 사회문제에 깊숙히 개입하여 진영논리에 빠지는 사례도 숱하고 한 켠 물러서서 자신의 역량에 버거운 짓은 개입하지 않기가 여러가지 이유로 쉽지 않은데, 톨스토이는 그 진퇴 시기를 잘 정한 작가로 보이네요. 물론 고리끼 같은 공산주의에 경도된 후배들은 이런 톨스토이를 비판하기도 했었으나, 러시아 차르도 어쩌지 못한 상황들을 어쩜 소설가일 뿐인 톨스토이가 고리끼 같은 '선동성 작품'들을 몇편 쓴다고 뭔 도움이 되었으랴 싶네요^^ 프라하의 봄, 서울의 봄,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로 다시 좌파에서 우파로 숱하게 바뀌곤 했지만서도 "살림이 좀 나아진" 사람이 있었는지 여론조사도 한번 없었던 거 보면, 톨스토이의 처신이 '탁월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브아라, 안나 님 :-) 안녕하시지요..? 어제는 블로그에 [ 이효석 ] 님의 " 수난 "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 7/ 9 15:00 ) [ 이효석 ] 님 작품 중에 " 장미 병들다 " 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각 영상에 동의를 구하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보시고 동의해 주시면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브아라 와 메사친 )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