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부리는게 예상대로 병원가는길 알아내려고 그런건 예상했다만은 본인이 너무 생각이 짧으신듯 싶음 더불어 듣는 내내 눈치가 너무 없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그런 성격은 같이 있으면 무조건 피해 입는 날이 올거임 엮이면 안되는 부류긴 하지만 저때랑 지금이랑은 또 시대도 한창 다를때고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길 바람
이거 그냥 흘려듣기에는 문경 동로라고 문경시 안에서도 2시간넘게 들어가야하는 촌이있음. 거기보면 진짜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음. 저희들 딴에는 사이비종교 사람들이 모여사는거다, 그런소리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쪽으로 우연찮게 문경새재-산북-동로쪽 지역사람들만 아는 드라이브 코스있는데 그 소문으로 들었던 그방향으로 가게되었고 그쪽을 지나가게됐는데 입구부터 진입금지 막혀있고 막그랬었음..거기는 온통이 산이다보니까 정말 말그대로 산에서 조난당해서 그런 펜스못보고 그런곳 들어가면 이런일 생기지않을까 이야기들으면서 생각이 들었음 애초에 그래도 조난당했다니까 처음부터 해코지할려고했던것도아니고 조용히 내려갔으면 별일 없었을테니... 그들입장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을 부숴뜨리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산북면 석봉리 ~우리동네인데요 그쪽산들이 진입금지가 많긴했는데 예전에 양민학살도 좀 있었고 간첩들도 많이 숨어다녔어요 지역특정상 강원도 산줄기를 타고 간첩이 숨어들기가 쉬웠어요 어릴때 모의간첩훈련도 많이했고요~ 산속에 화전민이 많긴했어요 그래도 그사람들은 마을에 왔다갔다 했어요~ 동로쪽 친구들은 중학교때 부터 같은학 교 다녔어요 아! 또하나 양민학살 당했던 곳에 돌비에나왔던 만신할머니께서 굿해주신곳도 있고요
화전민은 아니지만 저런동네가 아직도 꽤 있어요. 거의 기독교쪽 사이비에 가까운것 같은데 그런마을에 가본적 있음. 20~30여가구가 사는 마을인데 어떤 종교개념으로 뭉쳐살면서 굉장히 폐쇄적인 분위기였음. 공기자체가 달랐고 위화감이 굉장히 심했음. 일때문에 이장을 소개받아 전화번호만 받고 찾아간 산속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이 외부인인 나와 일행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경계하면서 말을 걸어도 피했고 유일하게 이장이란 사람과 일적인 얘기만 가능했는데 사람들이 다들 이장에게 목사님이라고 부르면서 굉장히 깍듯했음. 분위기가 진짜 묘했고 다시 가고싶지 않았음.
석국인가 돌나라인가 만들어 전국곳곳에 자기들끼리 모여살면서 겉으로 농촌체험마을도 하고 연수원같은 숙박업도 하는 사이비종교도 있어요..사람들이 이상한데 1도못느끼게 해서 그런덴줄 모르고 가는듯..기장은 신도시도 있고 바로코앞에 동부산관광단지인데 으슥한데 신앙촌이라고 집단생산마을 있어요 옛날밍크담요는 다 신앙촌꺼였을걸요 천부교
박정희 대통령시절 6.25로 폐허가된 산림재건 사업을 위해 화전민의 농업정착 직업교육 도모를 위해서 화전민 교화작업을 대대적으로 했음 7.80년 중반까지도 동네 숲속뒷산에 불도지르고 움막도짓고 사는 넝마주의 같은 사람들 많았어요 제가 국민학교때 어머님과 동네 형들 쫒아서 쑥나물캐러 산에 갔다가 흉기들고 내려오는 남자2명에 놀라서 미친듯이 도망쳐온 기억이 있습니다.
88학번 입니다. 제가 사는곳에 전기는 초36월달에 전기가 들어왔었는데 그 시대에 시골,섬 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그 시대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불가일겁니다.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것도 이해하는것도 안되겠죠. 지금의 시골 중국보다도 못한 시기였기에...
왜 사람들을 통제했을까? 라는 의문은 현재 북한을 보면 바로 해결됩니다. 탈북을 놔두면 민심이 동요하고 그럼 체제붕괴로 이어집니다. 화전민들도 마찬가지지요 사람한명이 중요한 인력인데 이탈자가 생기면 남은사람들이 그사람몫까지 일을 하고 그러면 지쳐버린 사람들이 점점 도망치기 시작하면 생활자체가 붕괴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통제한 것입니다.
저도 80년대 겪어봤지만 그때랑 지금이랑은 진짜 비교조차 안되죠. 경제 문화 기술 시민의식 등등 거의 모든 부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세상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2010년대 이후만 기억하는 분들은 1980년대에 떨어지면 충격크게 입으실듯 합니다. 낭만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날것 그대로의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거든요.
제가 경북 영양쪽 첩첩산골 국민학교 분교 다녔었는데, 화전민 애들이랑 같이 다녔어요. 한 학기는 우리학교, 다음 학기는다른 지역 학교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그 당시에 강원도도 그렇고, 경북일대에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어요. 박정희대통령때 야산에 불 질러서 개간해서 농사 지으면 그 땅을 공짜로 살게 해줬어요. 그때 강원도 탄광계시던분들 엄청 넘어들 왔었죠. 그때 저희 부모님도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이전 하셨는데, 제가 거기서 태어났거든요. 할말 엄청 많지만... 참, 경남 통영 욕지도섬 아주 무서운 얘기 있는데, 언제 한번 초대해 주시면 올려 드리겠습니다
구하지못한 죄책감에 사람들 모아 다시 가신분!!그분의 용기와 양심에 진심으로 격려와 위로를 보냅니다. 그 청년과 같이 내려온다,혼자 내려온가, 다 어려운 문제입니다.만약 말씀하신 분이 그러다가 죽었다면 이런 문제는 아예 아무도 모를 문제였겠지요.평생 마음의 빚을 짐어지고 살아갔을 그분!참 힘드셨뎄어요.
70년대후반 80년대 초 전방 0사단에서 직업군인 하사관으로 복무하셨던 큰당숙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군단 사령부지시로 민통선인근 화전민 소개지시명령. 서너군데 화전민 마을을 소개작전 하셨는데 그중 몇곳이 그들안의 왕국 군단 헌병대에 몇명 군법위반으로 인계하고 주민들은 군청 주민과 복지시설 등으로 인계 하셨다고.
화전민은 아니고 이름없는 야산에 사는?? 사람들이 있긴 했습니다. 인천이였고 초등학교 뒷산이였는데 길이 없긴 했는데 수풀을 헤치고 탐험을 했었는데.. 사람이 만든 토굴이 몇개 있었고 사람손이 탄 땅도 있었고 뭐 가끔씩 갔었는데 몇년지나고 다시 갔더니 집은 안보이는데 나무집?? 우리가 하나 있고 엄청큰 돼지 한마리가 있었네요. 들어가는 길도 없는 곳인데 산속에 돼지우리라니?? 그리고 그뒤로 가진 않았는데..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음.. 조직폭력배들이 훈련하던 장소였다고..
화전민 느낌은 아니지만, 종교의 모습을 하고서 저런 형태로 살아가는 곳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제가 그런 곳 출신이고요. 여기에 관련해서도 제법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다만 화전민과 그곳의 차이가 있다면 "터전을 지킬 룰을 제정하고 실행함"에 있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해당 영상에 등장한 화전민촌의 경우 목적 자체가 "외부로부터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함" 즉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론 살인멸구도 주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 행위를 위한 화전민촌처럼 구성하고 사는 곳은 "종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세상과 격리를 시키는 경우이기에 상대적으로 문명을 받아들이는 기준점이 여타 화전민들에 비해서 낮죠. 그러나... 종교적 특색을 띈 곳이나 생존에 목적이 있는 곳이나 특정 룰을 어겨 무리에서 도태되거나 어울리지 못한다고 판단이 선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 풍습, 문화, 대화 등등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인멸구를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등산 타잔의 배경이 떠오르는 썰이네요.. 88 올림픽전에 대대적으로 철거 했던... 산속 주민들.. 불과 40년전, 정말 후진국이였죠.. 한국은 10년마다 아에 다시 태어나는 거 같습니다.ㅎㄷㄷ 80년도 중후반에도, 시골마을 많이 낙후됨... 비포장길에... 빈집에 무허가로 들어와서 사는사람도 있고.. 드믈게 깊은 산중은 아니지만, 시골에 초가집도 있었음.. 개소리같지만 사실임..강원도도 아님..
80년대 초반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고 83년부터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 계기로 시골 곳곳 도로부터 해서 하천둑등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맞아요 80년대 초반까지는 과거하고 변화는 있었지만 그렇게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는데 중반부터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50대이후 부터는 알겁니다.ㅋㅋ
전쟁이 만든 피해자분들이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분들 많이 발견되고...한국에서도 전쟁이 끝난줄도 모르고 몇십년 동안 산에 살던 분들이 발견되곤 하지 않습니까...저희가 태어나기도 전 , 저희 할머니할아버지의 부모님 시대때부터 시작된거니까 밖에서 들어오는건 모두 적이고...그게 외곡이 돼서 악마로 말하게 되고...그리 된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무사하셔서 천만 다행입니다...청년이 스파이였으면 진짜 희망도 없었겠단 생각에 아찔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