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선수가 고등학교 원탑 이였던걸로 기억하네요 투수 뿐만아니라 타자로서도 대단했던 기억이 나는데 롯데가선 혹사 때문인지 고등학교 명성만큼 활략이 미비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진짜 어렸지만 문희수 선수도 기억이 나고 박철우 선수가 박세혁 선수 아버지이신 두산 2군 감독님 ? 타격폼도 비슷하고 수비도 잘하시고 김선진 엘지 선수고 계시고 ㅎㅎ 그때 라디오에서 답답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중계 듣던 시절 그립네요 ㅎㅎ 그리고 그때 프로야구 9회말 끝나면 아이들 어른들 우루루 마운드로 뛰어가는 장면 기억에 많이 남네요
당시에 무척 재밌게 봤던 게임입니다. 문희수의 강속구만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던 부산고 타자들이 박준태 선수의 커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습니다. 충장중 시절에 투수와 타자로 청룡기 우승을 이끌며 이미 주목받는 선수였던 박준태 선수는 이게임이 고교입학 후 찻 등판이었고, 다음게임인 군산상과의 준결승에서도 구원으로 등판해 역시 좋은 투구를 하지만 팀은 9회 백인호 선수의.재치있는 베이스러닝과 실책이 겹치며 1-0으로 아깝게 패합니다. 박준태 선수의 투구폼은 전문 투수가 아니어서인지 몸을 다 활용못하고 손목힘으로만 던지는 모습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같은해 해태에서 '10승 투수'이던 김성한 선수도 비슷한 투구폼과 패턴이었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히 잘 봤고, 다음을 또 기대하겠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김성한 선수는 군산상고 시절. 투수로 많이 뛰어서인 지, 해태 초창기 때 투수로 등판하여 투구시, 어느정도 투구 폼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에, 박준태 선수 투구폼은 비전문가가 봐도 좀 엉성하고 온 몸을 이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 투구 메커니즘 이네요. 당시 고교 야구에는 야수가 본업임에도 투수로 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중일, 이상훈, 홍순호(경북), 김건우(선린), 윤두관(부산), 박준태(광주일고), 최동창(세광)
동국대로 간 1년선배 박철우에 이어서 문희수는 동국대 가는 조건으로 친구들도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해태로 갔고, 동국대 김인식 감독이 그후 해태 수석코치로 왔죠. 박준태는 프로에서는 외야수로 기억하는데, 포수였고, 투수였다니 체격이 조건이 아쉽긴 하네요. 김종석 선수는 아파에서의 활약에 비하면 프로에서는 기억이 없는데 혹사 때문이겠죠.
박준태는 동국대 진학해서 졸업후 태평양에 거쳐 1992년에 윤덕규와 트레이드로 엘지로 넘어왔습니다 거기서 김선진과 함께 1994년 우승을 맛보았죠 태평양때보단 엘지에서 만개를 폈었고 1994년 우승당시 전천후 멀티수비와 빠른발이 특기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은퇴한 서동욱같은 스탈이었습니다 전천후 멀티수비가 가능했던 선수
광주일고 박준태 선수는 타격이 정말 좋고 포수도 보고, 투수로도 뛰고, 정말 다재다능 팔방미인 입니다. 다만, 투구폼이 온몸을 실어 앞으로 내던지지 못하고, 상체와 팔 만 이용해서 던지는 엉성하고 비효율적인 투구 폼으로 롱런하기는 힘들겠네요. 반면에, 부산고 김종석은 하체를 이용한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투구 폼. (이선희 투수와 흡사) 광주일고 문희수 투수는 잠깐 상체를 뒤로 숙여 온 몸 힘을 모은 다음. 앞으로 낮고 빠르게 강속구를 던지는 시원시원한 투구 폼으로 보기 좋네요.
양상문 이전 부산고는 경남고 부산상고에 선수수급에 밀려 프로 창단시에 좋은 선수가 적었음 부산고 황금기 멤버인 김민호 조성옥이 입단한 84년경부터 부산고 출신 롯데에 많아졌고 92년 우승때 염종석 김민호 박동희 박계원 한영준 조성옥 등 부산고 주축 멤버로 두번째 우승 차지함
광주일고 김선진 LG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끝내기 홈런 주인공 박준태 엘지시절 4월 한달간 8홈런으로 센세이션 불러왔으나 그후 시즌종료까지 무홈런 박철우 두산베어스 포수 박세혁 아버지 해태왕조 시절 타선의 한축 부산고교 김종석 2021년 LG 신데렐라 김대유 아버지 고교무대 평정 프로에선 혹사여파로 조기은퇴
영상 마지막부분에 경기 끝나기 전에 경기장에 난입하고 펜스 위에 올라서 있는 절라도 인간들 보면서 그때도 말 졸라 안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듦. 지금도 기숙사에 다른 지방 애들에 보다 말 더럽게 안들어 쳐먹음. 이일하면서 없었던 지역 감정까지 생김. 종특이란 말 이해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