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영상은 시리즈 중 4번째 영상으로 이전 영상들을 먼저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본 영상부터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 1. 칼 시리즈 보기: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hfEzUsx3gbc.html 2. 창 시리즈 보기: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KELXTgQmVqI.html 3. 활/석궁 시리즈 보기: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UipVIHOjxr0.html
14:16 오늘날 탱크도 전면 장갑은 두꺼운데, 측면이나 후면 장갑은 상대적으로 얇지요. 사방을 모두 두껍게 하면 방어력은 올라가지만, 무거워져서 빨리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싸우는 거나, 탱크가 싸우는 거나 원리는 비슷합니다. 방어력과 속도를 둘 다 얻을 수는 없다는 것. 물론 적들도 이것을 아니까 전면은 그냥 보내주고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해서 탱크를 잡으려고 합니다.
2:27 그리고 사막의 건조한 기후 특성상 피부를 화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막을 거니는 유목민들은 헐렁하고 얇은 재질의 긴팔옷을 입고 얼굴은 얇은 천으로 가린 모습으로 묘사하는 거죠 11:42 뿐만 아니라 기병의 경우 보병 입장에서는 기수의 정강이나 발은 가장 노리기 쉬운 부분이기도 해서 의외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었죠 16:45 하지만 이 점은 전국시대 일본이나 중세 유럽에서는 오히려 장점이었는데 이는 병사들 입장에선 자신의 무예를 뽐내서 지휘관이나 영주들에게 "저 싸움 좀 합니다!"나 "전장에서 공을 세운(적장을 죽였다거나 성벽에 1등으로 도착했거나) 사람이 접니다!"를 어필하여 출세하기 위해 망토를 둘렀거나 형편이 되는 대로 갑옷에 튜닝을 했죠 또한 이를 통해 피아식별을 쉽게 할 수도 있었고요 17:29 혹은 사막처럼 덥고 건조한 곳은 갑옷이 태양에 의해 뜨거워져서 병사나 장수들이 피로해질 수도 있어서 태양열을 막기 위해 두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가죽도 오랑님 말씀대로 생각보다 방어력이 높았음 가잘 말린 생가죽은 피부 안쪽의 젤라틴과 지방질이 딱딱하게 말라 방어력이 일반 천옷보다 훨씬 튼튼하다고 영국의 한 수도자가 남긴 기록에서 바이킹 약탈자들이 곰 가죽을 걸친 채로 쳐들어왔는데 '칼로 쳐도 베이질 않더라.'라고 할 정도였다고 함 하지만 역시 가죽이라 관리나 가공이 잘 안되면 썩기쉽고 무루질하지 않은건 훨씬 무거웠다고
그런데 단점이 잇으니... 특유 냄새가 굉장히 심하고 습기차서 만약 곰팡이 피어버리면 진짜 답이 없어진다고. 사실 무두질을 안해도 만들수 잇다는 장점이 잇지만 관리과 힘들고 효율대비 무게가 너무 높아서 그냥 동물만 잡고 그냥 방치하다시피 만들면 되는 가성비는 좋아보여도 유지보수가 개판나서 포기한듯 ㅋㅋㅋ(아 이건 굳이 소나 양가죽으로 만들엇을때 기준이긴 한데 어쨋든 생산단가를 쉬웟어도 유지보수는 좋진 않잖아요 ㅎㅎㅎ) 생가죽갑옷은 이 문제 탓에 결국 무두질한 가죽갑옷으로 대체될 수 밖에 없을 듯.
@@마스터마구니-e7n근데 가죽갑옷도 중세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유가 잇으니... 금속갑옷이 소리문제가 잇어서 야습이나 매복공격엔 적합치않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서유럽 애들은 전투 부분에서 봉건제 특유의 지휘체제 문제나 기사도 문제로 유기적인 지휘체계가 무리라서 그런거 잘 안햇지만 동유럽쪽 즉 동로마의 불가리아를 위시한 산악전선에선 그런 상황이 많아서 거긴 그래도 꽤 많이 썻다고 하더라고요
겨드랑이 보호대는 조선시대 두정갑옷에도 있었습니다. 국조오례의에 나와있고요. 이 때문에 왼쪽 겨드랑이에 총탄을 맞아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을 때(이덕형의 장계에서) 갑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량해전이 다른 해전들에 비해 장수급들의 피해가 컸던점, 조선수군의 전술이 장거리포격형 아웃복서가 아닌 인파이터 싸움방식이었다는점(이건 조선후기 수군교범인 수조규식을 바탕으로 함.), 그리고 관음포로 몰아넣은 상태에서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일본군들을 상대로 말그대로 초근접전의 난전상황 이었다는점을 보면 이순신장군이 갑옷을 입었어도 총탄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동수-d7p아, .. 대충 읽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겨드랑이 방어(호액) 는 서양것 처럼체인메일과 어깨 방어구 복합으로 운동성 근접전으로 막는개념이 아니라 활쏠때 노출 되는 겨드랑이를 막는 개념이 큽니다. 서양것 보다 훨씬 방어측면은 통짜라 더 유리할걸요? 근대 지갑으로 쓰면될걸 굳이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었냐 하는거 보면 아마 활쏠때 성벽에서 싸울때 겨드랑이 노출로 죽은 사람 꽤 많을뜻해서 말한거임 애초 인파이트 개념으로 봤으면 근접 난전(도선)때 유리하게 운동성능 중시해서 서양처럼 하겠지만 굳이 운동성능을 포기하고 튼튼하게 했다면 꽤 정적인 운용이 두정갑 갑옷 운영의 정석이라는게 기본 기저임 뭐 그리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남자의 소세지는 심영되기 싫으면 꼭보호해야 하는데 착용이 어려운 부위이기에 상당히 늦은시기에 나왔습니다 또한 똘똘이 방어구는 방어도 중요하지만 남자는 크고 우람한게 자존심이기에 괜히 지들 싸이즈도 아니면서 쓸대없이 크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통기의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단 자존심이 더 큽니다) 등의 경우 쫄보나 겁쟁이나 차는거라고 무시했지만 정작 일본도 중국도 서양도 몸통수준이거나 그보다 더 높게 방어했습니다( 별도의 갑주나 방패로 막았는데 이유는 뒷치기 화살 방어용)
지역 토지 대부분을 소유했던 대지주가 갑옷 한벌 맞추고는 중하급 재력으로 떨어졌단 이야기는 많죠, 진짜 잘 만든 갑옷 한벌이 작은 성 한채값이라는 유럽사례는 많은데 말도 한필 가격이 비슷하고 그러니 자기가 탈 서너마리의 전마에 갑옷에 무기를 풀세트로 갖추고 종자들도 따라다니면서 보좌하려면 말 태워줘야하고 종자들의 무기도 필요하고 종자들의 시중을 들어줄 하인들도 필요하고...적다보니 유럽 귀족들이 전장에 자기물품 실은 마차를 서너대 끌고 다녔다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돌아다니는 돈덩어리..그러니 산적들이 귀족 단독 이동행렬을 털어먹으려 혈안이었구나 싶구요
전쟁이야말로 규모의 일체가 중요 했기에 병사들이 입고 먹고 쓸것들을 정말 온갖것들을 고려 해야죠 창이 적은 금속으로 만들수 있는 유리한 무기였기에 보편적으로 많이 보급되었던거죠 전차도 전면의 방어력이 가장 강력하고 측면 당연히 전면 장갑의 절반, 1/3 두께 밖에 안됬죠 전방향의 방어력을 두텁게 하면 그만큼 리소스가 많이 들게되고 이는 생산에 영향을 주죠 군수물품은 동서고금 요구하는게 다 똑같습니다. 싸고 튼튼하고 효율높고 생산,양산하기 좋게
유용한 시간이었지만, 에이~약간은 실망....ㅠ.ㅠ;; 각 부위별 갑옷의 종류야 대충 알고는 있기에 오늘 시간에는 그 명칭에 대한 전문용어를 배워갈수 있을까 기대했었거든요~~ㅠ.ㅠ (목부분을 보호하는 서양갑옷- 골겟, 장갑-건틀렛 이정도 밖에만 몰라서....;;) 근데, 오늘은 원래 일본 음양사에 관해 방송해줄 시간이 아니었던가요? 그거 기대하고 있었었는데....;;;
갑옷을 너무 방어력으로만 계산했네요 몸은 좋은 무기이고 무기술은 근본부터 레슬링의 일종이었죠 그게 칼이든 창이든 현대인이 휘두르면 중심잡기 굉장히 힘든 수준입니다 갑옷은 이런 부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극히 긴 장창으로 방진짜고 싸우던 고대 그리스 병사가 정강이 보호대가 방어용일리가 없죠 그 위치가 뚫리면 사실상 진 건데요 만에 하나 근접전시 무기가 될 부위를 보강한 게 차라리 더 맞아 보입니다 등갑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숙련병이 전면에 무게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싸운다면 아마 펭귄들의 싸움 같아질 겁니다 등갑옷은 하급병사냐 고급병사냐가 아니라 징집병이냐 직업병이냐로 더 심하게 나뉩니다
독특한 가죽 갑옷은 방어 외 . 방한 목적으로 쓰고 다니는 걸로 보였는데.. 더운 지역에서 입지 못하는 것이 갑옷이고 .. 갑옷 위에 껴 입는 것은 방한 복 이 만던데.. 무겁고 더럽고 . 냄세나고 .. 유목민족은 ..가벼운 옷을 굉장히 좋아 했다 하던데. 세탁하는 것도 편하고 .. 가죽옷이 아주 무겁다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