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음악을 왜 듣냐고요? 어... 나는 너무 작은데, 음악은 커요. 이게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좋아요. 내 걱정, 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잖아. 왜, 광활한 자연을 보고 있으면 그렇잖아요. 경외감? 그런 거죠. 뭐 알프스 산맥, 그랜드 캐니언. 숨이 턱 막히는 그런 초월적인 장면들... 나는 너무 작은데. 너무 작은 나는 진짜 작고 자아아악은 감정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막 울렁거리고, 너무 답답하고.. 힘든데. 우울하면서도 훌륭한. 그런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탁 트이는 느낌. 광활하게. 뭐랄까 그래, 망망대해 위에 부유하는 것 같아요. 내 감정이 내 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3인칭 시점이 되는 느낌? 그런 느낌도 있고요. 그렇게 있으면 내가 이때까지 어쩔 줄 모르고 품고 있던 이 독이, 폐부에 뒤엉킨 진득-한 감정이, 바닷물에 희석돼서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냥 그 위를 떠 있는 거죠. 둥둥.. 어떻게 싫어하겠어요?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허허..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는 편안함을 주는 곡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사실 그렇게 편안한 곡이 아니거든요. 메르헨님은 어떻게 음악을 잘 알면서 듣고 계신지..대단하셔요! 짐노페디에 대해 설명 좀 해보자면 짐노페디 1번은 *Lent* *et* *doulereux* , "느리고 비통하게" 연주하고 짐노페디 2번은 *Lent* *et* *triste* , "느리고 슬프게" 연주하고 짐노페디 3번은 *Lent* *et* *grave* , "느리고 장중하게" 라는 뜻으로 연주하게끔 되어있어요! 후에 나오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장도 너무 좋아요! 진짜 메르헨님 플레이리스트 완전 제 취저...ㅠㅠ 오늘도 잘 듣고 가요ㅠㅠ 감사합니다!!
고요에 숨을 들이켜 포효했다. 무질서한 그 애의 숨이 나를 헤집어 구원한다. 나락이었을 지도 모를 구원이 죄악 가득 날 앙망하려 든다. 내 숨통을 틀어쥐고 살의를 부르는 그 애의 모순이 짙게 폐부를 둘러싸 나를 비참하게 든다. 그 애 거주지가 자가용 타구서 백 날 날아도 도착 못 할 만큼이나 먼 탓에 달음박질 치는 내 발길질은 끝도 못 낸 채로 되돌이표 달고 뜨기를 번복하는데, 난 입 벙긋 않고 암 것두 질러서는 안 될 처지임이 분명해 졸도할 깜냥으로 눈깔 뒤로 넘겨 미간 좁히고 감히 그 애 이름 석 자 달싹였다. 나를 평생 불구로 만들 그 애에게 고해하건대 네 안에 칩거하는 내 안위를 안아 목울대 넘겨 한 번만 얼러 숨을 넣어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얼마 전에 헤어진 전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헤어질 때는 분명 너보단 잘 살거라며 서로 호언장담한 우리였지만, 얼마전 그녀를 마주쳤을땐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에 간직하던 얼굴의 생기는 온데간데 없고 몸을 움직이는 자태에서 발하던 생명력조차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낸느냐는 한마디가 우리를 술자리로 이끌었고 술이 조금 들어가다보니 말문이 트였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도 결국 취중진담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로 헤어진 뒤 살아온 것도 비슷했습니다. 보다 튼튼한 생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개처럼 살아왔고 그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주변인들이 하나 둘 씩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결국 일구어낸 것은 대출 뿐, 우리는 지금 여전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던 시절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기대기라도 했지, 헤어진 후로는 떨어지면 죽는 줄타기를 해온 것처럼 살았다며 우리는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삶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예전에도 살기 힘든 것 마찬가지였지만 '최근에는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별 이유도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이 들었다면 젊은 놈이 겨우 그 정도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한심하다며 귀싸대기를 날렸겠지만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비염이 재발 했을 때 먹는 작을 알약들이 우리 몸을 바꾸어 나가듯 살면서 맞이하는 작은 실연들은 내 삶이 죽음을 바라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전여자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웃었습니다. "내가 죽으려고 했던 건 말이야..." 솔직히 표정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전여자친구는 말문이 막혀버렸고 울음이 터져 곧 숨이 막히기 직전인게 분명했습니다. 왜 진작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려던 찰라, 오늘 한번도 보여주지 않던 그녀의 손목이 희미하게 보이자 나 또한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리고 1년하고도 3개월 23일 전에 내가 했던 말이 총알이 되어서 이마를 뚫고 내 머리속에서 회전하며 뇌를 다 반죽을 만들어 버린 뒤 뒤통수를 헤집어 뚫고 나갔습니다. '적어도 걸림돌은 되지 말란 말이야 XXX아' 살면서 처음 겪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이 멈춘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이후로 없습니다. 그녀와의 연락? 재결합? 그런 건 없습니다. 그날 분명 서로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겠지만 지금 서로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에 가깝습니다. 지금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에 한 발 내딛을 수 있게 하는 돈이고 결국 사랑보다는 돈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우리였습니다. 면밀히 들어다보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예쁘게 물이든 단풍이 다 떨어져 뼈만 남은 가로수를 바라보며 내가 죽을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그녀가 살아있음을 깨닫습니다. 아무래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내가 죽을 분명한 이유를 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아아아 세상에 첫곡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처음듣는다는 반응이 너무 많이 나와서 좀 슬펐거든요 ㅠㅠ 이 곡을 플리에서 들을수 있게 될 줄이야.. 다른곡들도 다 하나하나 너무 주옥같은 곡들이에요.. 이번 플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음악들 감사해요!
甘呑苦吐 너는 쓰디 쓴 날 기꺼이 한아름 끌어안아 삼킨 채 뱉을 줄을 모른다. 너는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 한마디를 모른다. 예전, 내가 달디 달았던 우리 하루들 끝에 늘 하던 염려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척 외면하며. 진실된 사랑이란 이름의 거짓된 신앙 안에서 깨어나길 기도하는 내 한켠의 씁쓸함을 나도 함께 삼키고.
0:11 감과 같은 사람. 왜 나는 너를 고로 보내지 못할까. 여전히 감으로 남아있는 네가 입 밖으로 새어 나갈까 두려워 두 손으로 내 입을 막고 너를 막는다. 왜 나는 너를 고로 보내지 못할까. 왜 나는 너를 고로 보내지 못할까. 내 입은 너를 감으로 여기고 내 속은 너를 고로 여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원한다. 여전히 너를 삼키길 원한다. 내 몸은 언제 이렇게 망가졌는가 내 정신은 언제 이렇게 무너졌는가 너를 삼키려 한순간 내 몸은 망가지고 내 정신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내 두 손으로 입을 막는다. 감과 같은 사람. 내 마음은 너를 내보내지 못한다.
가끔 숨이 턱 막히는느낌이 들어요. 물속에 코만 내놓고있는 느낌이라해야되나 물에 너울이 생기면 숨이 물로 가들차 질식사 해버릴거같은 그런느낌이 들어요. 차라리 입을벌려 나 스스로 숨을 물로 가득채워 물속으로 사라져버릴수있다면 좋을텐데, 그저 물에 너울이생겨 질식사하기를 기다리는 죽는것마저 마음대로 할수없는기분이 드네요.
매일 매일 힘듦 이라는 친구랑 함께 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아침은 상쾌한다 그친구는 그것 을부정한다. 나는 그 친구 부정할까 그것을 긍정으로 여기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힘들다. 지금 힘듬 속에서 모든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지금 이 현실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운명이겠거늘 나는 받아들인다. 신이 존재한다면 나에게 이런 힘든 시련을 주겠을까..... 나는 오늘도 힘든 밤하늘속 힘든 하루를 지낸다.
아이가 약을 쓰다는 이유로 뱉는 것처럼 가끔 세상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흔히 사회에서 칭하는 '어른'도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이제 뉴스에서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는 놀랍지 않을 정도로 흔한 소재인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 .. 정말 중요하고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개인주의가 심해진 것. 현대사회에서 공존하는 수많은 모순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난 널 위해서 썼다. 혀끝에서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질 단 말들. 넌 나락을 함께하지도 않을 이들과 눈을 맞췄다. 실실 웃으며 등을 떠미는 이들과 마주웃으며 점점 빠르게 내달렸다. 허공에서 몇번 널 놓친 손가락에 찬 공기가 닿았다. 날 뱉어낸 너의 입술 속 독주는 당신을 죽이겠지. 그러니 부디 원망하지 말길. 당신의 것을 빼앗은 것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였으니. 머금은 독을 삼키기 전 나를 위해 쓴다. 날 미워하지 말길.
웃고싶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죄인은 행복할 수 없기에, 차디찬 눈물과 함께 침묵할 뿐이였다. 그런 나에게 너는 한줄기 빛이였다. 너와 함께 할때면 발목에 족쇄가 가벼워졌다. 너의 달콤한 미소가 나를 향할때면, 나또한 미소짓게 되었다. 너를 볼때마다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록 그게 죄인에겐 과분한 것임에도, 언젠가 책임을 져야할 지라도, 점점 커져만 가는 이 마음을, 나는 도저히 주체 할 수 없구나. 비록 이 끝이 쓰디 쓴 고통이더라도, 너를 놓치 못하는 나의 아둔함을 용서해주렴.
가슴을 삼키는 우울은 어떤 때에는 달콤했고, 어떤 때에는 시원했다. 쓰지는 않았던가 싶다. 세상의 밑 바닥으로 흘러넘치는 우울이 마치 아름다운 물안개같았다. 코에 스미는 향이 너무 달아서 손바닥 가득 훔쳐 한바탕 들이마셔봤다. 질식하리만치 마신 뒤에야 이 우울은 신물이 났다. 쓴 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시원했던 우울은 이제 폐부를 얼어 붙이는 하는 추위가 되었고, 나는 그저 누웠다. 나를 따뜻하게 했던 모든 것이 이제 쓰디쓴 약으로 바뀌었고, 내가 짓던 웃음은 이제 쓴웃음이 되어 뱉어졌다. 내뱉지 못하는 숨은 달기 때문인가.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하늘에 떠있엇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떠있엇다. 내가 스스로 올라온듯 했다. 왜 올라온건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달콤한 내가 쓴 무언가를 버리려 올라왔는지, 쓰디 쓴 내가 행복한 기쁨의 달콤함을 찻으러 올라왔는지. 나에게 물었고, 나에게 답했다. 답은 항상 하나였다, 그것이 너의 존재의 이유라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말할수 없었다. 하늘의 파랗고 슬픈 공기는 달달했다. 마치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처럼. 이곳은 달지도,쓰지도 않다. 단것도, 쓴것도 없다. 삼켜도, 뱉어도 상관없다. 좋다. 좋다... 좋다......
우리는 저마다의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세상의 모순을, 우리는 담담하게 마주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물리적으로 모순된 이론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우리 곁에는 감정의 모순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무언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옳고 그름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아마 그것은 신도, 재판관도 아닌 나 자신일 것일테다. 뭐든지 나의 기준에 적합하면 좋은 것, 내가 보기에 불쾌하고 껄끄러우면 나쁜 것. 사람은 사람만이 구원한다. 또한 사람은 사람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끝없이 상처입히고 고통받아가며 어렵사리 유지한 얄팍한 관계와 그것의 모임인 집단 속에서,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서로의 모순을 지적한다. 천계 일곱 나팔이 부는 그 순간까지. '나'는 '너'가 아닐 뿐더러, 그런 타인인 '너'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밤 수면제가 없으면 잠에 들 수가 없다고 한다. 어제는 그녀가 손목을 그었다. 피가 철철 났지만 아파하는 방법을 까먹은 듯 싶다. 칼자국과 피로 물들인 그녀의 손목은 내 숨통을 들이쥐고 살의를 부르는 그 애의 모순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이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것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만 거지같은 상황 때문에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없다. 그녀가 살아야하는 이유가 나였으면 좋겠다.
많은 알약을, 정신과약을 100알 넘게 수없이 삼키고 응급실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했습니다. 다시 약을 모으고 삼키려는 도중 친구에게 울며 전화가 옵니다. 그 많은 약들을 삼키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냐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삼켰냐고.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나는 다시 약을 삼킬테니까요. 그러나 친구는 아니였나봅니다. 약을 모으고 삼킬려는 약은 단 10알. 하나 하나 집어 먹다보니 제가 생각났답니다. 무슨 마음으로 약을 삼켰는지, 무섭진 않았는지, 그리 힘들었는지, 10알도 삼키는게 힘들었다며. 전 10알에 10배는 되는 약을 제가 항상 우울할때마다 먹고 있었으니까요. 우는 친구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괜히 폐를 끼친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