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현-u2e "아들아 어디 갔다 오느냐? 또 술 마셨냐? 정신 좀 차려라! 아들아 라떼는 말이다. 일찍이 노동도 하며 학비 벌어가며 글 배웠다. 근데 너는 내가 돈 벌어오라 시키드냐? 내가 학비 다 지원하는데도 도대체 왜 공부는 하지 않고 땡땡이나 치느냐! 엔릴(신)께 부끄럽지도 않느냐! 글을 배워야 네가 내 직업을 물려받지 않겠느냐!" 대충 이런 말이고 아들이랑 아버지가 주고 받은 말... 심지어 교과서 내용 같은 거임.
당시 대학생들이 망나니가 된건 상상을 초월하는 학습량도 한 몫 했을 듯. 당시 대학교 수업은 토론식이라 다음에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해야 했는데 문제는 책을 양피지로 만들다보니 개인이 자기 전공 서적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비쌌던 터라 사실상 책을 빌려서 통암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을 매일 해야했음. 그 스트레스를 깽판치는 것으로 풀었던 거지.
클럽가보셈 핫플 가보셈 유흥가 가보셈 술먹고 쌈박질하고 담배피고 꽁초 길바닥에 버리고 대부분 20대이고 특히 쌈박질은 20대초반이 많음. 세상물정 모르는 나이인데 몸은 호르몬이 폭발하니 혈기왕성하니 생물학적으로 어쩔수 없음. 간혹 30대 넘어서 노는애들도 잇는데 개네들은 젊어서 못논거 나이들어서 뒷바람 불어서 철이 뒤늦게 드는 유형 여튼 대학생때는 혈기왕성하죠 20대 초반 아닙니까 미성년자때에는 학교에 잡혀잇지만 대학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니까요
저당시 공부했다는거 자체가 대단한거 같음.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도 없고 규모가 큰 도서관도 거의 없었던데다 인쇄술도 발전되지 않았고 책도 양피지로 만들어 엄청 크고 무겁고 비싼데다 필기하며 공부할 것들도 마땅치가 않았을텐데....심지어 전기도 없으니 촛불이나 등잔불 켜놓고 공부하고 가난하면 그냥 햇빛에 의존해야 했을듯. 책상 의자 필기구 이런것들이 지금처럼 편하지도 않고 엄청 불편했을거 같고...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위대한 학자들이나 정치가, 사상가들이 나와서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다는게 너무 신기함.
@@ax1061 둘다 르네상스 시대를 격으며 나름대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여기서 갈리는건 바로 사상 차이임 유럽은 애당초 잦은 전쟁과 상업의 발달로 사람들이 매우 현실적이였고 교회를 중심으로 문물의 발달이 바로 민간으로 퍼져서 지속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조선은 그 망할 사대주의자들과 신분제를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폐단 말종 양반들때문에 발전이 더디거나 막혔는데 거기다가 모든 발전된 문물들은 왕이 가져갔지 민간에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이 안되어 2차대전 일본이 전투기 만들때 우리는 아직도 소달구지 끌고다니던거죠... 유학만을 강조하여 기술직을 천대하던 결과임
가난한 시골에서 막 라틴어 금방 익히는 똑똑이들이 일찍이 성직자나 목사(주로 대학 교수 출신들) 추천서 받고 지역 후견인들 후원까지 받아서 대학 가곤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뭐 죽기살기로 공부하고, 학기가 없거나 휴학기에는 라틴어 되니까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과외하고...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배워서 모든 코스를 섭렵하고 학위 딸 즈음엔 30살도 훌쩍넘는 학위소지자로 쓰고 노총각이라 읽는 "bachelor"가 됩니다.
@@ghb7089 어원 자체는 기사를 따르는 종자라 불리는 견습기사들에서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게 학위소지자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원래 문화라는게 복잡한데, 학위복 입을 때 후드(수도복) 뒤로 표식이 넘어가서 교차하는데 그게 마름모 모양의 방패 모양처럼 보였고 실제로 방패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즉 방패라는 건 뭔가를 수호한다는 의미라는데, 대학이 진리를 추구하고 학문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쓰기 시작했다고..... 아마 그 과정에서 bachelor가 된 거라고 그렇게 듣긴 했는데 이거 맞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실제로 bachelor학위를 따게 되면 master과정에 도전 할 수 있으니 아마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원래는 뭔가 직위에 가까운 것에 대한 명칭이었는데 아마도 일반인들이 저 사람(총각) 누구요 할 때 bachelor라 대답 했고, 30쯤 먹은 결혼도 안한 남자들이 그렇게 대답하니까 점점 그 의미로 굳어진 거 아닐까 추측합니다. 총각도 원래 소년들이 하던 총각머리에서 왔는데, 사람들이 총각머리 한 사람 뒤통수 보고 "총각!!"부르던 것 등의 여러 이유로 결국 시간지나며 지금 총각의 의미로 굳어진 거 아닐지...?
@@홀본 유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학생들의 다양한 생활상들이 있긴합니다. 당시 대학생활도 평범한 사람들, 또는 공부에 열심인 친구들은 늘 있었고, 방에서 공부하거나 라틴어 가정교사로 공부만 하니까 돈도 별로 쓰진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라틴어되면 사실 그냥 대학 토론 시간에 서기 일을 해도 되었고, 문헌 연구회 조수로 들어가도 되고, 필사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건 뭔가 중세 판타지에 넣기 재미없으니 중세 대학의 모습에서 잘 부각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길드나 난봉꾼 그런 것들이 뭔가 더 협객같기도 하고요 ㅋㅋ. 사실 그런 애들은 교수도 이미 포기했을 겁니다... 또는 그냥 글만 쓸 줄 알아도 꽤 괜찮은 알바가 많았습니다. 편지 쓰는 거 엄청난 일이었거든요. 그렇게 알바하다가 적게 남은 잉크(적은양이면 금방 굳음)나 양피지(쓰다가 망친 이면지, 흠있는 용지 등) 가져가도 될까요라는 유도리 있는 상황도 있었고, 강의 시간에 비싼 책에다 낙서 끄적이는 경우도 있었죠. 중근대 시대 대학생 전공서적 낙서는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ㅋㅋ
중세 교수님들은 검술 마스터였다고... 학점 낮게 줬다고 학생이 교수님과 결판을 신청하는 일이 많아, 살기위해 교수님들이 검술을 익혀서 이겨야만 했다는.... 지금 F 주면 항의 전화가 빗발치지만, 저때는 결투 신청이 빗발쳤다는... 무엇보다 결투신청을 거절이 불가능...
중세 대학과 근대 대학은 많이 달랐군요... ^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대부분이 동전이나 은화 금화의 가치에 대한 보고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중간중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대학(University)이라는 '길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 때의 대학은 카톨릭에서 설립했기 때문에 교회법이 적용되는 지역--치외법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들 때 방해를 피해서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길드와 도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검술을 다 배우고 익혔으니 하산해라'라는 식의 사부+제자 개념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 ^ 그보다는 '너희도 이제 길드에 속했으니, 다른 길드의 도제처럼 먼저 교수에게 몇 년 봉사하고, 그 시간을 봉사하면 비로소 너도 길드원 자격을 얻었다'라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학위라는 게 바로 도제에서 길드원이 된 자격증이었던 거죠. 이 자격증을 얻으면 비로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거나 일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당시 신학 전공은 성직자가 되는 필수과정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동네 신부는 신자 중 덕행이 좋고 제법 똑똑해보이는 사람을 뽑아 라틴어와 기초적인 성서 교육 등을 시켜 서품한 후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게 했습니다 대학에서의 신학 전공은 주교급 이상을 노리거나 학자 고위 성직자가 되려는 이들의 필수 코스였지 사제가 되려는 이의 필수 코스는 아니었죠 지금도 정교회와 오리엔트 교회는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종교 개혁 이후 성직자 입문 과정에서 신학을 필수로 넣엇고요
@@Min-fj1ix 시민은 없었지만, '양민'은 있었습니다. 노비가 아닌 자는 모두 양민에 속했어요. 양반도 세속 직위가 아니라 직업상의 구분으로서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은 양반 직위를 자녀에게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조선이 말기에 무능하고 부패한 나라였던 것은 맞지만, 행정과 사회시스템 측면에서는 17c~18c까지만 해도 많은 부분에서 동시대 유럽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습니다. 자국 역사를 미화하고 왜곡해서는 안되겠지만, 근거 없이 혐오해도 안되겠죠. 국뽕이나 국까나 팩트가 없다면 꼴사납긴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이 중앙집권체제로 시작할 무렵 당시 일본과 유럽은 봉건제 사회였습니다. 조선은 노예 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급에게 교육기회와 시험기회를 허용하고 선발된 관료를 중심으로 권력기관를 상호 견제했습니다. 조선이 딴 건 몰라도 사회 시스템만큼은 상당히 선진적이었습니다.
'블로냐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은 군역에서 면제되었다. 그들은 행정 문서, 계약서 등을 더 간단한 절차와 비용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행정관이나 경비대, 시민의 재판관에 의해 체포되거나 투옥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만약 죄가 중하다면 피의자는 학생회관에 유폐되며, 고문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학의 특권에 따라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이후에는 무기를 휴대할 권위가 부여될 수 있었다.' 세계사 학습지에 나온 볼로냐안드레아스의 대학생들, 교수님들의 모습 ㅎㄷㄷ
대학의 본질은 최고 교육기관인데 지식을 배우기 위해 가는것이 아닌 졸업장 때문에 대학에 가게되니 왜 공부를 해야되는지 모르고 개나소나 대학에 가고 나와서도 아무것도 배운게 없는 머저리가 되는것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대학다닐거면 그냥 다 때려치고 밖에나가 일하는게 훨씬 생산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