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라면 형이였던 양녕대군 작품일듯 싶군요 워낙 사고치는데 한가닥한 인물이라 양녕대군이 세자였던 시절 대군에 불가했던 세종대왕이 양녕대군에게 잔소리를 시전했었다는거 유명한 일화죠 그런데 폐세자 된 직후에도 양녕대군은 정신을 못차렸고 그래서 세종이 망나니 형때문에 골아팠을테니 성격이 좋아지기 힘들었겠죠
태종 라인에서 살아남앗다 하는 놈들은 태종 죽자마자 하이에나마냥 각잡고 나라먹으려고 햇는데 웬열 태종이 파국일으킨 이유는 오직 후대 왕때문이엇고 원래 원한 바는 아니엇어도 그 직계 후대로 왕이 된 세종은 몸을 안써서 그렇지 아버지닮아 넘사벽...아버지가 벌려놓은 판을 아주 완벽하게 닦았음 다만 문제는 적을 많이 둿으면서 본인 능력으로 찍어누르는 데는 성공햇지만 태종처럼 그 적을 치우거나 힘을 자식들한테 온전히 넘겨주진 못햇다는 거...문종 단종보면 아련함
부민고소금지법은 사실 저 시대상에는 맞는 법이었지. 그리고 애초에 세종이 만든 법임 ㅋㅋ 수령의 몸은 하나뿐인데 지방에 수령의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수령의 논리에 맞서는 입은 수천개인데 수령이 하는 정책적 실수 하나하나마다 다 고소, 탄핵의 대상이 된다? 그럼 수령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함. 중앙집권, 관료제가 완전히 정착한 뒤에야 수령제의 부작용을 논할 수 있는거지 중앙집권 자체가 안되는데 왕의 손발인 수령의 권력을 제한한다? 바보짓이지.
훈민정음 만들고자 할 때 집현전 학자들이 상소문을 엄청 올리고 다 그만둬서 세종께서 선비들이 나를 떠났으니 어쩌면 좋을 것이냐며 한탄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에 남은 소수의 학자들이 해례본과 용비어천가 등을 쓴 것도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애초에 세종대왕께서 예의본을 쓸 때 홀로 집필을 하셨고 집필 당시에는 반대가 극심했던 문관들이 완성된 예의본을 보고 감탄하여 정인지를 중심으로 한 학자들이 해례본을 지으라는 어명을 따르게 된 겁니다. 왕권이 강하다고 해서 세종대왕께서는 누군가에게 강제로 하고싶지 않은 일을 시키시던 분이 아니니까요.
세종이 마음만 먹으면 역모로 싹다 모가지 날릴수있었음. 이방원이 세종을 왕으로 등극 시킨 뒤. 첫째 둘째 보내고 셋째 세종 왕권을 강화 시켜줬는데. 여기서 세종이 신하들한테 첫째 형님과 내통했다. 둘째 형님과 내통했다고 몰아붙이면 그냥 그대로 3대 멸하는거 시간 문제도 아님. 명분이야 만들면 되고, 말이야 갖다 붙이면 되고 그리고 그렇게 강한 왕권이 있었으니까 세조가 찬탈도 가능한거임
왕이 백성을 책임지는 이유는 단 하나임. 자신의 왕위를 확고히 다지기위함.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도 이리떼같은 신하를 언제나 리더 늑대로 이끌기위해선, 백성이라는 견제 그룹을 힘이 쎄게해야한다고 함 그래야, 신하의 부패를 막고, 국가의 발전에 신하들이 왕 앞의 백성을 속으로 두려워하며, 또 한편으로 존경으로 충성을 다한다함. 왕이 백성을 버리는순간, 늘 신하들은 더러운 권력욕을 갖고 찬탈한다고. 동서고금 사람 마음을 꿰뚫은 자만이 성군의 지위에 오르는듯
결국 자기자신과 왕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는 것처럼 들리긴하네요,, 왕실의 안위가 보장되었기에 많은 개혁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는게 아니라 개혁정책을 펼쳤기에 왕권이 강화된 결과를 나았다가 되는데 그러기엔 민생을 위한 업적이 너무 많은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또 한편으론 그 업적들이 외세를 견제하기 위한거였다고 생각하면 님 말뜻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렇네요
@@gleyou1318 세상이 늘 인과관계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선순환 복잡계 카오스죠. 그중에 마키아벨리는 운에 좌우하지않는 오직 전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실리를 만들기위한 방법론을 고안한 사람이었구요. 개인의 능력과 의지도 중요했겠지만, 그러한 시대상의 흐름에 맞는 운좋은 왕이었기에 세종도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MRrwoo 제도, 정치 모두 시스템이죠. 사업에서도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지만 결국 사람이 시스템위에 해야할 일입니다 철인통치가 늘 좋은 건 아니지만, 인간 그 자체를 긍정하는 지도자라면 믿고 따라도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에 사는 것도 큰 행운이겠지요
딱히 자유주의자까지는 오바같은데... 세종의 행동양식은 성리학으로 모두 설명가능함... 한글만 해도 양반이 글쟁이노릇 안해도 할 게 많다는 점에서 딱히 신분구조를 바꾸는 것도 아니었고, 세제개혁같은것도 다들 머리속에 있는 걸 실행했다는 점이 다를 뿐 딱히 새롭지는 않은 관점임... 자주 착각을 하는데... 성리학이 신분제를 만든 건 아니고 오히려 각 신분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연구하는 학문...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세종은 적어도 상위 신분의 의무에 더 비중을 둔 건 맞는 듯...
뜬금없지만 배우 한석규는 사고로 허리를 다쳐 10년이 넘는 재활 끝에 배우로 복귀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한동안 성우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허리가 많이 좋아져서 액션씬이 아니면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복귀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보니 역시 연기 개잘함 ㄷㄷ 앞으로도 많은 작품 해주시길
사실 매일 날마다 매순간 쓰는 이 한글에서 세종대왕이 어떤 분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완벽히 파악하고 그 자음과 모음에 해당되는 글자를 발명하고 다시 글자를 한문이나 영어 알파벳처럼 그냥 나열하지 않고 모아쓰는 방식을 창안한 분도 세종대왕이십니다. 이 모든 작업을 신하들의 도움없이 세종대왕이 직접 하셨습니다.
Tmi를 좀더 추가하자면 일찍이 태종의 묫자리를 정하던 세종이 마땅한 장소를 선택을 하는데 당시 풍수지리가 최양선이 이곳은 절사손장자(장자가 일찍죽고 대가 끊긴다)할 땅이다 하고 말해 파문을 빚습니다(하지만 세종은 이를 무시하죠) 그런데 이후 단종과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 그의 장자 월산대군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이 죄다 죽어버리고 예종대에 태종의 묘를 이장하지만 그자신이 요절하는 등 일종의 저주아닌 저주가 퍼집니다 말이 길어졌는데,광평대군은 이 저주(?)에 의해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