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roono1 좀 이해가 안되네요.. 수천년이라는데 발해와 고구려는 번성기때 중국 땅떵어리 1/5이상은 잡아묵었는데요...그라고 한일합병으로 인구가 늘었다는건 당연히 일본에서 유입되니 인구가 존나게 늘었겠지요 중국도 비슷할겁니다만ㅋㅋ 그인구가 빠져나가고도 님이 말하는 인구가 유지가 됐나요? 아니지요 해방되고 이나라 제나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지꺼리시오
제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는 위령탑이라 하여 동학농민운동때 자작고개 전투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탑이 있습니다 어릴때는 위령탑이 유령탑이라는 생각에 그곳에 묘지도 몇기 있고 그래서 무서워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네요 지금은 외국에 있어서 나중에 한국에 가서 고향을 방문하면 진심으로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2001년에 방영되었던 KBS 특별기획 (명성황후), 그리고 뮤지컬 (명성황후) 같은 경우는 민비(명성황후)를 측근들은 무능했지만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했는데요. 그런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지난 2019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녹두꽃)에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악역으로 그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청일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만 결국 발발의 원인은 민비(명성황후)를 비롯한 척족정권의 개화에 대한 무능과 백성들에 대한 억압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번 강의도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일단 추천하고 댓글 먼저 달고 강의 듣고 댓글 수정하겠습니다. ^^ 우리 민족의 역사는 정말 백성, 민초, 국민이 만든 나라 같네요. 물론 훌륭한 왕도 있었고 신하, 인물들도 많았지만 큰흐름은 역시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100여 년만 봐도 식민지배(일제강점기), 내전(한국전쟁), 독재, IMF 등등을 다 극복하고 이렇게 성장한 나라는 보기 드물 겁니다. 동학농민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xxxilmz 임진왜란 때에도 아무개들이 모여서 의병을 이루었고, 3.1운동 때에도 이름 없는 민초들이 만세운동을 이끌었고, 독재에 대항하여 어린 학생들과 회사원, 한가정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으며, IMF 때에도 이름 없는 국민들이 모여 금모으기 운동을 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민들과 네티즌들이 일본불매 운동에 동참하여 아베정권에 맞서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국민의 나라가 맞습니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기'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기'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민비가 없엇으면 대원군 사후는 어찌되엇을지 모르겠으나 아마 강제 흡수합병은 없지 않앗을까 싶네요 고종도 개화를 주장하고 다만,일본 한테는 안먹혀도 러시아는 생각해볼 문제같네요 한일 합병은 일본이 우리경제를 야금 야금 갉아먹으면서 시작 되엇으니까 민비가 없엇다면 임오군란도 없엇을거고 동학도 없엇을것이고 그렇다면 일본이 우리땅에 들어올 명분이 없엇을테니 청일 전쟁은 안일어 낫을것이고 러일은 어찌되엇을지 잘모르겠고 러시아가 한반도를 삼키려 하면 그렇게 될수도 있었을것 같네요
@@user-gx6fm3es3o명성왕후는 민자영이 아니라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입니다. 숙종에게 어머니고, 본관은 청송입니다. 문정왕후가 환생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분탕질친 것은 아니지만요. 명성황후라고 추존되어 불리는 존재가 고종의 비 중전 민씨죠. 민자영이라고도 하고, 민비, 민18년이라고도 하는데 이 사람은 여흥 민씨입니다. 시호가 같고 왕후와 황후, 발음도 거의 같아서 헷갈리기 쉬운데 한명은 현종 숙종대 사람이고 또 한 명은 철종 고종대 사람입니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기'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기'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명성황후 드라마, 뮤지컬 제작한 그들은 무슨 의도였을까요? 어렸을적 민비 미화시킨 극들을 보고 자라면서 민비가 괜찮은 중전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실은 아니였네요. 진실은 무엇일까?란 호기심이 생기면서 동학운동에 대해 더 공부하고 강의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혹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에 대해 아시나요? 이사람 강의가 너무 사실과 왜곡되어 있네요. 을미사변은 일본의 미우라 공사가 낭인으로 가장한 군인들을 이끌고 경복궁을 침범해 남편인 고종과 아들인 순종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궁녀로 위장한 민비를 찾아내기 위해 출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인들의 국부를 조사해 민비를 찾아내어 칼로 난자해 죽이고 죽은 시신을 수십명의 군인들이 달려들어 시간을 한 사건이지요. 왕비가 형편없는 여자였다면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을까요? 혹시 아이에게 진실한 역사가 아닌 판타지 소설을 가르칠건가요? @@monoand_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혹시 시간나시면 코로나 정국이기도 하니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전염병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때당시 국왕은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영상을 제작해 주셔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역사는 반복되고 그로 인해 교훈을 얻을수 있으니까요~ 수고하시고 항상 응원합니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기'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역사를 몰랐을때는 민비라고 했는데 역사를 알고나니 명성황후다 흥선대원군죄를 명성황후가 덮어썼다 청군을 요청해서 동학군을 몰살당하게 한것도 흥선대원군이었고 경제파탄으로 조선을 망친것도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런 흥선대원군을 개혁라고 하는데 호포법과 사창제만 가지고 민생안정 어림도 없었고 혹독하게 착취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던게 흥선대원군이다 그에 비하면 명성황후는 양호했다는걸 알았다 역사책에 흥선대원군 미화가 극심하다는걸 알았다
@@user-nh1ks4cz4q 그리고 대원군이 원성을 많이 샀다고 했는데 그건 천주교 탄압과 경복궁중건때 당백전때문인데 그 원인도 안동김씨,풍양조씨의 폭정과 그를 이은 여흥민씨일족의 폭정과 삼정문란때문이다 그외에는 대원군이 민비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뭔 헛소리인지.. 민비 뒈졌을땐 환호했었던 백성들이 대원군 사망했을땐 슬퍼했다 민비가 한거라곤 권력을 뺏기기 싫어 시아버지와 정쟁을 하고 그걸 위해 외세를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인것도 민비고 민씨일족의 온갖 부정부패를 모르는척하고 그당시 돈으로 천문학적인 돈으로 무당데려와 굿이나 했던거 밖에는 없는데 뛰어나?어이가 없네
황선생님 강의 정말 속 시원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오래전 학생일때 역사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잊고 살았네요. 같은 세대라 더욱 더 공감이 가기도 하구요.. 우리 민족이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복이 없는것 같기도 하고 특히 선조 이런 바이러스 같은 새끼나 민비나 고종 이런 무능력한 쓰레기들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재조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구독자들이 화병 날것 같아요..오프 라인 강의는 안 하시는지요 010 3552 7153
@@kimhunv 그런데 말 이니다. 21세기 지금 와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해서 친미국가를 만들어 빨대로 쪼~옥 빨고 있잖아요 ,,,,민비가 청과일본의 힘을빌어 권력 차지해서 백성의 피를 빨아 일신 안위를 위해 청과 일본에 배상금등 국부를 유출했잔하요....지금도 미국의 힘을 빌어서 지들 패거리들 부를 가지려고 미국에 온갖 국부를 주어 버리는 그런 당넘들 있잖아요 ....만은 국민이 깨어 감시 해야 합니다.
장희빈을 장비 라 부르지 않듯 조선의 왕비 중전은 황후라 칭함. 못된짓을 하고 사치 했어도ㅡ 일제침략을 감지하고 다자외교로 20년을 늦추자 열받은 일제가 남의나라 왕비를 깡패 시켜 난도질로 분풀이 하고 친일사학자들이 민비라 불렀다 36년이 아닌 60년 지배 받았으면 지금처럼 독립을 했을까? 인정할건 인정하자 그리고 sbs는 오사카 출신 이명박 태영건설과 관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