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큰 이유는 ‘공감력’ 때문일 겁니다. 트럭에 싣고 가던 술을 모두 깨뜨린 사람, 열심히 팔려고 준비해 달려가던 트럭위의 귤 상자, 그게 사고로 길바닥에 구르고 있는 것을 보면 일단 마음이 아프지요. 애써 고생하며 달려가던 그 걸음의 바빴을 시간을 공감하니까요. 또 그렇게 다 잃고 망연자실해 있을 사람의 그 허망한 마음을 아니까요. 그러니 도와줘야지요. 단순히 길거리를 빨리 같이 청소해서 내 걸음을 편케 하자 그 차원을 넘어 일단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안타깝고 아파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인이고 그렇게 남을 도우면 어느날 내가 어려울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물론 그런 어려움없이 평안하면 더 감사한거구요. 그래서 저희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가끔 “우리나라 사람 참 좋아. 성질은 불같아도 그래도 대체로 착해” 가끔 그런 말을 하며 웃는 답니다. 한국의 오랜 문화에 ’계, 두레, 품앗이‘라는게 있답니다. 큰일 치르는 사람들, 누군가의 어려운 일을 아예 함께 돕는 ’준비제도‘ 같은 겁니다. 아예 그렇게 함께 큰일 치르는 것에 대한 문화가 dna 깊이 박혀 있답니다. 그리고 이웃이 곤란을 겪어 우는데 어찌 내 걸음이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ㅎㅎ
여태까지의 댓글중 한국인을 가장 잘 표현하신것 같네요 모르는 사람들은 오지랖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지랖과는 결이다른 차원의 공감능력입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남의 아픔도 들여다볼줄 알아야한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이 항상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남을 도울줄아는 삶이 가장 가치있는 삶이라 배웠죠 그것과 반대로 남에게 피해주는 삶이 얼마나 비열하고 하찮은 삶이란것도 같이 배웠습니다 '나'가있기전에 부모가있고,가족이 있고,이웃이 있는 .. 서로 함께 울고 웃는것이 진정한 인류애고,국가애고 넓게는 세계애라고 생각됩니다😊
태안때 기억나요. 회사원이었는데 버스 대절해서 매주 가능한 직원들이 번갈아 내려갔어요. 그냥 당연히 가야된다고 다들 인식하는 분위기였고 머리카락이 기름을 잘 흡착한대서 긴머리 잘라서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랬네요.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당연한 분위기였는지 신기할 정도에요.
한국은 전쟁중이거나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았거나 약자인 선수들을 응원하는 문화도 있습니다. 이번에 양궁에서도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챠드의 양궁 선수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독학으로 나라를 대표해 올릭픽에 출전한 것에 대해 실점을 한 순간에도 따뜻한 응원과 존경의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런 경우들이 물론 있겠지만,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보여준 선수라던가 꼴찌에도 끝까지 완주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성숙한 문화가 이제는 한국도 일반화 된 것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일본이나 동남아로 갈 수 있고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하자 마자 백성들 버리고 피난했죠. 지배층이 그렇게 도망치면 백성들이 보통은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를 모르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중국 대륙을 차치 했던 민족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남하하고 흩어졌고 왕조가 바뀌었지만 우리는 삼별초는 몽골 상대로 끝까지 싸우다 죽었죠 ㅠㅜ 그냥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인 것 같애요.. 갈 곳이 없어서가 전부는 아녜요. 양난 끝나고서 일본, 청으로 끌려간 수십만의 사람들이 조국을 그리워하고 돌아오려고 무진장 애썼죠. 이 땅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 같애요.
미국과 캐나다에 살면서 느낀 사소한 차이중 하나는 한국사람들은 여러사람이 같이먹는 음식먹을때 (피자같은거) 음식 받은사람이 다른 사람들 하나씩 다 주고 마지막에 자기꺼 가져감. 외국인들은 자기꺼를 먼저 뜬다음 그 그릇을 옆사람으로 넘김.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경우가 대부분 이였음. 뭐가 낫다라는 의미는 아님.
글쎄요. 피터씨! 요즈음이 아니고 예전부터 그랬어요. 자원도 가진것도 없는 아시아의 작은나라는 그것만도 좋은거였어요. 다른데서 자부심을 얻을수가 없었죠. 작고 힘없는..., 아직 멀었어요! 15년정도후를 우리는 보고 있어요. 기다려 보세요! 안보이는곳에서 우리는 지금도 뜀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라는 이름으로 조상대대로 살아온 민족이죠. 이름도 모르는 많은 조상님들 얼굴도 모르고 그 누구인지도 모르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우리를 지켜주셨죠 우리는 우리를 위해 살아가는 민족이죠~~ 나를 모르는 분들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시는 대한민국 국민들 사랑합니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밖에서 우습게 안보고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지키기위해 노력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의 마음도 잊지말고 잘 지켜야함. 그리고 서로 물고뜯어도 결국 그 안엔 관심이 있어서 다 그런게 가능한거임...불같은 성질이래도 그래도 사람은 착해..... 에휴 우리나라 참 다같이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 우리 다같이 잘 인간답게 따뜻하게 같이 잘 살아요 국민여러분 ㅠㅠ
한국인들은 수천년 좁은 땅 좁은 농경지에서 서로 협조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품앗이라하여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을 해온 전통이 깊다. 주로 모내기, 김매기, 추수등에서 이웃끼리 서로 모여서 도우며 살아왔다. 이런 이유로 이웃은 남이라기 보다 가족이고 형제처럼 지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 길가다가도 아무나 힘들어 하면 서로 돕고 살아 온 것이다
제 생각에 우리 라는 의식은 예로부터 너무나 많은 침략과 위기상황을 겪다보니 니꺼내꺼없이 힘을 합쳐 극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단결력과 공동체의식이 생긴거 같아요 그 속에서 공감대와 배려심이 커진거 같고요 더불어 언제나 긴장속에 살다보니 행동도 빠르고 정확해지게 되고 암튼, 오랜 세월동안 자연과 상황에 적응해오면서 생긴 국민성인듯 합니다 IMF가 터졌을 때는 결혼했을 땐데 두번 생각할거 없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니 결혼반지 하나 빼고 모두 냈죠 지금 그런일이 생긴다면 음,,, 두번은 생각해보고 그래도 같은 일을 할 거 같아요 나라가 없으면 개인도 없고 내 자식이 살아갈 나라니까요
내가 잊을수 없는 것을 했던것은 IMF때 결혼 반지,목걸이를 기부 한거였고, 태안 앞바다에 오염으로 뒤 덮었을때 주말에 몇번 봉사로 간적 있었지.(남녀노소어린아이등..정말 대단했었죠) 또한 촛불 집회때 시청앞, 광화문 앞으로 주말마다 간적이 있지요. 내 생에 잊을수 없을것 같은 기억이, 추억이 있네요.
대한민국은 일찍이 농경국가였고 '품앗이'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돕는게 좋은거라는게 DNA에 새겨져있다고봅니다. 많이들 우리나라가 유목생활 했던 민족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지구상에 그 어떤 나라 보다도 일찍이 농사를 짓던 나라예요. 유목민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고조선'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정신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온것도 있구요.
우리나라는 사람이 자원이자 경쟁력이고, 작지만 강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 일념은 있는 것 같아요. 외세에 취약한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 세계제일을 꿈꾸는 중국과 일본... 그 틈바구니에 끼어서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살았겠죠. 이젠 세계는 넓어지나 분단국가라는 전자발찌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고비일 겁니다.
좁은 땅덩이에서, 자원력은 부족하고, 오랜 세월동안 외세침략은 많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 단결력으로 나타난거죠😊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에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 옆집에 불 나면 결국, 내 집까지 옮겨붙어버릴 수 있는 물리적 상황에서 서로서로 도와주며 급한 불 꺼주면서 살아온거죠😊
약간은 그런 맥락도 있다고 봅니다. 우린 다른 나라와 다르게 다른 민족이라는 자체가 없습니다. 우린 오로지 한민족, 한핏줄로만 이루어진 단일민족이니깐요! 당장 아시아쪽만 봐도 중국, 일본, 인도등등 그들은 지금도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모여서 국가라는 그 틀속에서 살지만 우린 소수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에 단하나 그냥 조선, 대한민국이라는 민족밖에 없다보니 그래서 자연스레 우린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게 된게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평소엔 서로 그리 으르릉되고 싸우면서도 국가재난이 닥쳤을땐 하나로 똘똘뭉쳐 단숨에 극복하는게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도 하지요! 이게 단일민족만이 가질수 있는 단합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 재밌어서 끝까지 집중하면 봤어요. 말씀을 재밌게 잘하시네요ㅎㅎ 혼자 있는거 좋아해서 우리라는 문화가 저랑 안맞고 힘들었거든요. 근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니 가족처럼 다 도와주는데 감동이였어요. 그 이후로 회식도 단합회도 가족과 있는것처럼 편하게 바뀌더라구요. 이제는 적응했어요^^
천연자원이 적고, 산이많아서 살곳도 뭔가를 할수있는곳도 별로 없으니 여러사람 먹이기에 최고인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벼농사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남이 아니어야 서로 품앗이를 할수가 있는거니까요. 밉보이면 그 집 농사를 아무도 안도와주면 굶어죽으니까 남일도 내일처럼 해야지 살아남죠. 나의나라 라고? 니가뭔데 이 나라가 니꺼야? 나의 아들이라고?? 그럼 와이프나 남편 아들은 아니냐? 니 엄마이기도 하지만 내 엄마이기도 하다 동생아 등등 뭐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남다른것 같습니다. 물론 의식이나 문화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들이같은 경우엔 선물도 받고 하다보니 다 대접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노는거면 다같이 부담해용 ㅎㅎ 오히려 집주인은 손님맞이 하니까 고생한다고 친구들이 디저트나 술같은거 더 사오기도 하고용 뭐 집에 원래 있던거나 내가 대접하고싶으면 한끼정도는 대접하기도 하는데 그런거 아니면 서로서로 부담안되게 더치페이하는거 같아요!
한국인이 활을 잘 쏘는 이유가 옛날부터 사냥의 기본은 활이고. 드라마 였던 주몽 이란 이름 뜻이 활을 잘 쏴서 붙인 이름 이라고 하고 왕들은 어릴때 부터 활 쏘는 연습(사냥) 많이 시킨데요 지금의 군인이 총 연습하듯이 활 총 칼 유전적으로 재능이 있는 민족 인것 같습니다.
왜눈물흘리는지모르는군? 첫째 대리 만족과가깝지 둘째 남달리 일반다른나라선수들에비해 고생을엄청하다가 금메달 따는사람도많기 때문에 금메달 감동이라기보다,대단하지않은나라의 서민으로서 자신을혹사시킴으로서 자기자신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그마음이 동시에 가슴에서 터지면서 나오는눈물입니다.
일본게스트분이 오해하지 마셨으면 하는게... 일본불매운동은 일본국민이 아닌 한국을 침략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고 반성없는 기업을 상대로 했던 거죠... 또 반일에 대한 감정은 일본정부, 극우집단, 혐한세력에 한하죠... 침략에 대해 아무런 반성없이 역사를 지우려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이 독일처럼 진심어린 반성을 하고 과정에서도 반성을 실천한다면 앞으로 동반자적인 관계를 이루지 싶네요..
이런거 보면 우리나라 칭찬해주는 것 보다도 저 분들이 진짜 수준이 장난 아니라는거.. 두나라나 세나라사람이 모였는데, 그 사람들의 언어가 아니라 또 다른 제 3의 언어로 저렇게 얘기하는게.. 일반적인 학원이나 학교에서는 거의 표준어 위주일텐데.. 해봤자 사투리..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 이런거는 교재에 없잖아..ㅋ 저게 진짜 찐이라 생각함.
왜 단합력이 좋고 서로 돕고 뭉치는걸 좋아하냐면 옛날부터 침략받는 역사가 너무 길어서 힘도 없고 서로 뭉쳐서 뭔가 하나씩 해내고 하다보니 단합력이 좋아진거다 라는 교수님들의 말씀이 있었던거 같음 할머니 할아버지때 부터 그렇게 해오고 부모님 아들 할꺼 없이 그런것들이 몸에 베고 내려져 와서 지금 현재 이렇다는 썰..
12:48 갑자기 궁금한데 저때는 몰라도 지금은 한국이 많이 다민족? 다양한 인종이 같이 사는데 또 저런 일 생기면 한국에사는 외국인들도 동참할까 문득 궁금해지네요. 그 순간되면 난 외국인이야 나몰라라 발빼려나. 부동산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시작된거지만 외국인들도 들어와서 투자 엄청했는데 이제와서 나몰라라하진 않겠지. 제발 간당간당 불안한 시점인데 일터지면 같이 좀 해쳐나가줬음 좋겠어요. 순수 한국인만 부담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