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모자르긴 해요. 당시 중국은 삼재도회, 일본은 그걸 확장시킨 화한삼재도회나 각종 백과사전이 만들어졌는데 조선은 그걸 참고해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수준이었음. 그리고 해양생물학 자체보다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와 그 지방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등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도 함께 기재되고 서유구의 전어보 등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가 없어 국가차원에서 최고 엘리트들의 지식의 교류로 만든 어보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리고 일본의 화한삼재도회를 많이 참고해서 그들의 학명이나 이야기등을 넣은 부분도 있지만 중국이나 조선과는 다른 물고기들을 발견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지요.
@@skim5788 자산어보 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기 많은 어보가 있지만 조선의 실학자들은 같은 책을 내도 함께 교류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단지 외국의 책을 참고했을 뿐이죠. 그리고 일본도 국가차원이 아니라 학자들끼리 모임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보다 약 100년 가까이 앞서서 만들었지요. 중요한 건 같은 취미를 가진 동인들이라도 주자학이나 서화에 비해 실용백과사전의 경우 서로 공유하지 않고 출판이나 후세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개인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조선의 어보는 1803년 김려의 우해이어보이며 고상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했고 풍석 서유구의 전어지 역시 거의 화한삼재도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1596년, 일본은 1719년 조선은 1802년이 최초이지요. 일본이 서적출판과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집단지성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조선은 소중화사상에 의해 스스로 박식하다고 하면서도 자잘한 학문에 마음에 두지 않는다며 일본보다도 못하다고 서유구가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실학자들의 백과사전에 관한 내용도 최근에서야 거의 해석되었고 그 당시에는 더더욱 몰랐다는 게 현실이지요.
이런게 사실에 기반한 상상이지. 완벽한 사실은 아닐테고 사실에 살을 붙인걸테니. 요즘 왜곡된 역사를 말하는 미디어 관계자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조금 반성을 하길. 유명하지 않은 역사속 인물이야기를 이렇게 또 알려주는 계기가 되고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려 노력하는것 . 그리고 모든 기본은 역사기록에 의거하는것.
@@omosb1 맞아요 정약용의 다산시선에 수 백 편의 시들을 보면 원님으로서 그리고 양반으로서 본인이 목격하고 다스리는 민초들의 힘든 삶에 대한 측은지심과 고심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사회 시스템에 대한 혁파보다는 시스템 내에서의 공정함과 배려심을 위주로 하고 있죠. 제가 짧게 쓰다보니 형제 남매를 뭉뚱그려 말한 게 되었네요. 확실한 건 다산시선의 평에서도 나오지만 정약용은 반상의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부분에 대한 극복은 개념적으로도 못했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양반이 다스리는 사회내에서 문제해결을 고심하던 게 그의 시들에서 절절히 보입니다.
이 영화는 흑백컬러로 내놓은것이 신의한수다. 보는이가 조선시대로가서 시대를 직접 관찰하는듯하다.. 역사고증도 완벽한수준이고 이런 고귀한 영화를 만들어준 배우들과 이준익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싶다. 단순히 자산어보를 편찬하는 정약전의 일대기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 당시 도탄에 나뒹굴던 백성들의 비통한삶 그리고 그것에 반하는 성리학의 모순과 부폐.. 순박한 청년 창대가 추구하고자 했던 성리학의 정수과 꿈은 더욱 큰 불행을 깨닫게하는것이었음을 약전은 이미 알고있었음에도 막을수없다는것도 이미 알았으리라.. 진심을 다해 제자를 사랑했던 스승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목민의 진정한의미를 되물어보는 명작이다.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을것같다.
성리학이 잘못된것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배우고 🤔 깨우치느냐 그 사람에 달렸다는 그 포인트가 너무 좋더라구요. 창대는 그래도 무시 멸시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리학으로 성공한 길을 걷는것인데 그 노력 조차 무시하는것 같으니 답답하고 미웠겠죠. 그래서 저는 이런 사극이 좋아요. 우리가 배운 국사는 국왕과 나라의 큰 사건과 사고에 중심이 되지만 그것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건 백성, 국민들이었는데 국민들의 시각과 심정을 알수도 있고 그랬을수도 있겠구나 하는게 너무 좋습니다
본무대가 흑산도가 아닌 비금도에서 로케가 진행되서 좀 아쉽지만 우리나라 어류연구의 금자탑을 이룬 이 자산어보로 새롭게 조명해 줘서 기쁘네요 앞으로 1876년 이 섬에 유배온 면암 최익현과 정조때 격쟁상소를 통해 부당한 세금탈취를 고했던 김이수 1959년 이 섬의 이름을 통해 소설을 써서 문단에 데뷔했던 백사 전광용도 좋은 소재가 될것같네요
육해공에서 나는 많은 먹을거리 ! 조물주께 늘 감사합니다 ! 학교때 제목만 배운 자산어보, 제목도 적절하고 나이들수록 읽어보고픈 책이였는데 정약전 선생의 영화를 보니 너무 반갑네요 !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런 배울것이 있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 한국 영화 Fighting !
일반적인 우리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귀양을 가게 되면 따로 집을 얻어서 머무른 게 아니라 해당 지방의 민가에서 머물면서 생필품, 식량 등은 온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 형태로 조달했다는 게 팩트죠. 이걸 잘 표현한 거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요. 그리고 정약전의 경우처럼 흑산도같이 원지에 유배되었을 경우 그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이나 백성들은 대개 이 양반은 다시 한양에 갈 가망이 없다고 여기면서 보통 유배자를 매섭게 대하거나 업신여기게 되죠. 하지만 실제로 흑산도 주민들이 정약전을 서로 모시고 싶어할 정도였다면 정약전의 인품이나 학식이 보통이 아니였다는 걸 증명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단 정약전은 실사구시를 중요하게 여겼음에도 성리학과 주자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학자인 홍대용처럼 노골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정약전도 성리학자에 포함된다는 거죠. 그건 영화의 재미를 위한 장치라서 딱히 지적할 바는 안된다고 보고요. 암튼 이런류의 역작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노골적인 국뽕이나 국까 영화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