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레드북을 읽다보면 심연에 들어가려면 함부로 손대지말고 바로잡힌 사람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이 생각나는 강의입니다 고독과 심연속에 처음 온전히 마주하면 아무것도없는 것 속의 실존... 그냉혹한 냉기가 사람의 희망을 앗아가지만 나아가려면 꼭만나야만 하는 그장소... 예도선생님의 강의덕분에 심연과 그곳을 빨리 긍정하고 바라볼수 있는 힘을 얻었던 지혜 이미 잔을 비우고 지혜를 나눠주시는 예도 선생님의 덕이 생각나게 하는강의 였습니다
단순히 삶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상승과 하강이 다르지 않기에 삶에서 심연과 고독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기쁨으로 여길 줄 아는 자제 능동적 허무주의로 가는 길을 니체가 알려진 것보다 더 자세히 서술해놓았었군요 하강한 차라투스투라와 같이요 잘 들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이런 무시무시하고 충격적인 책을 같이 읽고 심지어 한줄 한줄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다고 하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서문 1장에서의 차라투스트라 겹쳐 보이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또 의심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이 책의 무게감이 제 실존에 삶에 비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창밖의 세계로 즉, 약 170년 전 한 특이한 독일인의 이야기로 들리는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한 존재에게 너무나 강력한 울림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다음과 같지는 않겠지만, 현사실적인 일상성과 평균성으로 다시 살아감에 있어서 이 강력한 원석을 평평하게 만들어 자신의 악세사리로 취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읽으려는 이유는 믿음의 영역이 아닐까요? 알 수 없는 믿음, 알 수 없는 이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