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min5772 k리그 팬으로서 아시아 최고 리그에 근법한 리그라는 자부심이있습니다..하지만 k리그의 자본이나 예산은 일본 중국은 고사하고 호주리그의 절반정도밖에 안됩니다..그런 리그의 구단의 자생능력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어요..그리고 우리나라 리그의 리딩클럽이 대구fc 정도의 전력과 성적만 낸다고 만족할 팀들이아닙니다..리그를 지배하고 아챔에서도 좋은 성적을내서 아시아에서 이름만 들어도 명문팀이란 인식이 있을정도의 팀이되여야합니다..그럴려면 무조건 자본이 필요해요..
@@perugialee3320 그래서 저희 선수들이 매수팀 잡았습니다 ㅎㅎ 예전처럼 재밌는 슈퍼매치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서울과 수원이 흥해야 리그도 재밌는것 같아요.물론 울산 전북도 있지만 예전처럼 수원 서울 성남 울산 포항이 우승권 경쟁할때가 그립긴 합니다ㅠㅠ시즌 초반에는 둘 다 좋은 모습 보여줘서 기대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울이 내려갔는데 두 팀 다 상위 스플릿에서 좋은 모습 보고 싶습니다 ㅎㅎ
14:36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K리그 챔프와 FA우승팀간의 단판승부로 최강자를 가리는 슈퍼컵 대회네여🧐특히나 1999 슈퍼컵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승부였고 현장에서 직관해서 더욱더 기억에 남습니다🥰그때 맨앞에서 썹팅했는데 저의 옜 모습이 나오네여😍벌써 23년이 다되어가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안양 LG 시절부터 숸 삼성과 지지대 더비 or 1번국도 더비로 불리면서 최고의 흥행카드였고 양팀 선수 모두 다른 시합보다 몇배로 긴장하면서 승리수당도 양쪽 구단 모두 두둑하게 내걸고 경기 끝나고 나면 양팀 썹터들 간에 패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K리그를 대표하고 전세계 10대 클럽축구 엘클라시코&라이벌전으로 자리매김 하는 빅매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여🤔앞으로도 계속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K-League와 🇰🇷 ⚽️ 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서울이 패륜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6년 LG는 서울을 떠나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은 연고지 복귀를 염두해두고 가까운 안양으로 한시적 이전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당시 지역연고제를 시행하려는 연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연고개념이 잘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몇몇 기사를 인용하자면, "서울시민 어느누구에게 물어봐도 프로축구의 서울연고팀을 아는 사람은 적을겁니다." (94.05.30 경향신문, 정몽준 인터뷰 중)[1]나 "서울 3개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 (95.11.09 한겨례)[2]와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구단들의 연고지 개념은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연고지 복귀라고 주장하는 시점인 2003년부터는 리그 참가 구단 모두 자기의 연고지에서만 경기를 하는 홈 앤 어웨이 시스템이 자리잡은 때였으며 본격적으로 지역연고제가 자리잡은 시점입니다. 또한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시절과 달리 K리그 내의 서포터즈 문화가 크게 자리를 잡았으며 안양은 서포터즈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안양의 마지막 시즌인 2003년 시즌 안양구단의 총 관중 수는 222,778명이었으며 평균관중 만 명(10,126명)을 기록, 당시 12개 구단 중 관중수 4위의 인기구단이었습니다[3]. 따라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정당성 유무를 떠나서 안양 ->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단순히 복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간혹 2000년대 초부터 안양에서 서울로의 연고지 복귀를 사전에 밝혔고 따라서 야반도주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 부분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언론인터뷰를 통해 당시 단장이었던 최종준 단장이 연고지 이전을 검토 중이라는 발언을 하였으나 확실히 연고지 복귀를 할 계획이었다면 "이전을 검토 중"이라는 표현이 아닌 "앞으로 n년 내에 반드시 이전을 할 계획이다"와 같이 말했어야 합니다. 서울로의 연고이전이 결정된 순간 많은 팬들이 분노한 것은 이전에 관한 사전 고지, 설명, 공시 불충분에 대한 결과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본다면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확실하고 명확하게 "우리 회사는 3년 뒤에 문 닫을 건데 그래도 일 하실래요?" 라고 묻는다면 누가 그 회사에서 일을 하겠습니까? 똑같이 안양팬들도 연고지이전에 대한 충분한 예고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8년이라는 기간동안 팀을 응원한 것입니다. 안양 -> 서울 연고지 이전이 야반도주로 불리우는 이유는 일개 아마추어 축구단도 아닌, 관중의 관심으로 수익을 얻는 프로축구단이 확실한 사전고지 없이, 8년간 응원해준 수많은 팬을 버리고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1] 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3000329105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5-30&officeId=00032&pageNo=5&printNo=15099&publishType=00010 [2] 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0900289118017&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1-09&officeId=00028&pageNo=18&printNo=2392&publishType=00010 [3]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166383
서정원 오스트리아 선수 시절. 너무 잘해서 오스트리아 팀 선수들이 '너는 왜 국가대표 경기하는데 안가냐면서' 너가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거 아니냐. 도대체 한국은 축구를 얼마나 잘하냐 랴며 놀람. 오스트리아 클럽팀들에게 쎄오는 그냥 천재임. 아직 당시 소속팀 뮤지엄에 서정원 이름이 남아 잇음 ㄷ ㅈ ㄷ ㄷ
@@tricolor_tv 2002년 월드컵의 멤버를 선정할 때는 십자인대 부상 후유증이 있었고 소속팀인 수원 삼성의 김호 감독도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로 선발해서 출장시키지 않을거면 선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히딩크의 자서전인 마이웨이에는 최종 엔트리에 선발하지 않아서 아쉬웠던 멤버를 몆명 적었는데 그 중에서 서정원의 이름도 언급했다. 2006년때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노장 투혼을 하자 한때 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조슬기 야반도주와 안양시민 구단입니다 마케팅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반론해드리겠습니다. Q. FC서울은 야반도주로 안양팬을 버리고 도주했다? A. 이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면 복귀 과정에서 "야반도주"를 했기에 패륜이다. 라는 근거 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우선 야반도주의 보편적인 개념은 "한 밤중에 몰래 도망간다. 이며 이 상황에선 "LG가 갑자기 안양팬을 통수치며 하루아침만에 팀을 떠났기에 패륜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야반도주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한다면 패륜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이 됩니다. 반론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우선적으로 LG는 안양으로 쫒겨날 당시 안양이전은 미리 "한시적"인 이전임을 밝혔습니다. (1995년 스포츠 신문기사: LG는 여전히 가능한한 서울을 고수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중략- LG는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고 판단할 경우 구리숙소 및 훈련장소의 거리등을 감안하여 창원시보다는 안양시를 선택할 확률이 높으나 이는 "한.시.적"인 방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6년 4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LG는 서울공동화정책으로 인하여 서울연고권을 강제로 박탈당한 이후 "서울 복귀를 염.두.에.두.고" 서울인근의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증거자료: m.dcinside.com/board/fcseoul/364859 ) 즉 안양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미리 안양으로의 이전을 한.시.적인 이전이라는 것을 사전에 밝혔으며 나중에 "서울이라는 시장이 열리자마자 훌랑 팬을 버리고 갔다는" 주장을 완벽히 논파해버리는 자료입니다. 또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FC서울측이 즉흥적인 야반도주이전이 아니라는 증거는 더 있습니다. FC서울이 연고복귀를 한 것은 2004년이며 그것보다 훨씬 더 전인 1999년 당시에 서울연고지가 다시 오픈됨에 따라 당시에 안양LG 최종준 단장은 연고복귀 5년전 미리 "서울 연고 복귀 의사"를 명.확.히 밝혔으며 이것 또한 즉흥적인 야반도주가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증거자료: fcseoulite.me/index.php?mid=history&page=2&document_srl=274 ) 여기서 끝일까요? 더 있습니다. 그로부터 1년뒤인 2000년 4월 18일 4시에 축구회관에서 열린 "서울 연고지 가치평가 설명회"에서 이재하 안양국장은 당시 K리그 10개 구단중 "유일"하게 이 설명회에 참여하여 서울연고지 복귀에 관심을 표명했고 서울 연고지 프리미엄 가격에 대한 반박또한 조목조목 했으며 이것또한 당시 기사로 분명히 공식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증거자료: rigvedawiki.net/r1/pds/FC_20_ec_84_9c_ec_9a_b8/2000_may_besteleven.jpg ) 이런데도 야반도주라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까? 야반도주 라는 건 "안양팬의 반발을 잠 재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양팬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 무작정 서울로 복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애당초 야반도주 단어의 의미를 왜곡하여 사용한 것 부터 수블미측 또 패륜논리측의 주장의 신뢰성은 떨어지며, 또 수블미에서 서술했듯이 "야반도주를 해서 패륜이다"라는 주장에 야반도주 부분또한 완벽히 논파를 하였으니 패륜이 아니라는 논리가 또 성립이 됩니다.
@조슬기 @조슬기 Q. 안양은 안양시민의 것이다 라는 마케팅은 무엇인가? A. 우선 안양 치타스는 안양시민의 것 입니다. 라는 문구는 2003년 혹은 그 이전에 했던 문구이며 예전 서울 연고지 운영 기업의 서울 연고복귀 허락이 떨어진건 2004년 3월입니다. 즉 저 문구로 안양팬들 통수를 치고 갔다는 논리는 시차배열순으로 전혀 모순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서울은 몇년전부터 꾸준히 서울 복귀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왜 저런 문구를 사용했냐 라고 주장하실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서울 복귀 시사는 단순히 "복귀의사"에 불과했으며 그 증거로 아까 증거자료로 첨부한 안양 최종준 단장의 인터뷰에서 "연맹은 구 서울팀 기업의 입성을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니 정해진게 없다" 라고 보도된 부분을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볼땐 지금의 시선이 아닌 당시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시 안양의 입장에선 서울연고지로써의 이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귀의사 표시와 준비만 하고 있었을뿐 앞으로 안양에서 10년 혹은 100년은 더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마케팅 문구가 패륜이라는 논리에 근거가 된다? 전혀 정당성있는 근거가 아닙니다. 만약 그 논리가 성립되려면 연맹측에서 구 서울팀 기업의 입성을 허락한 뒤에 LG가 그런 마케팅 문구를 내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기에 시차배열적 모순이 존재하는 그 주장 또한 전혀 타당성없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쎄오는 오히려 상대방들이 짤리는걸 아쉬워 하지 않나?? 서울한데 2015년4월 이후 리그에서 이긴적없고 전북한데도 부임 초반 이후 이긴적의 거의 없음 준우승 2번 했지만 결국 서울 전북을 넘지 못해 벌어진 일임 타팬들은 레전드 착한 감독 내쳤다 하는데 라이벌 팀에게 4년가까이 못 이겼음 진작 관둬도 할말 없음 뱅거 마저 토트넘 보다 순위 낮아 짤렸다 봐야함 라이벌팀 만큼 이겨줘야함
당시도 이해안되고, 지금도 이해안되는게...03년 유학갔다 현지 생활하다 올해들어왔는데...안양은 서울로 연고 이전했는데 왜? 수원삼성이랑 엮임? 잠깐 귀국했을때 시간 맞아서 보러간 경기에서 서울에서 걸개 걸었던거 기억나는게 1983? only 2004였나? 라고 했던거 기억나는데... 서울인데.. 올초 귀국하니까 뭔가 혼란스러움 그럼 그전 안양에서 있었던거 지우고 창단이 맞는거 아닌가?
영상 잘 시청했습니다. 댓글 중간중간에 아직도 왜곡된 정보로 패륜 논리 펼치시는분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아쉽네요 연맹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으로 인한 피해자인 서울과 안양팬들 그리고 연고 복귀 그리고 서정원과 수원까지 많은 역사가 있었다는게 다시 느껴집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
@@SKSK-co6ky 정확히는 안양시절 이전인 서울동대문 시절부터 연고지개념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안양팬들에게 우승기록을 넘겨야한다는건 FC서울이 패륜이 아니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2004 주장은 서울과 안양의 역사적인 연관관계를 부정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애당초 서울이 패륜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한국프로축구 연맹에선 공식적으로 FC서울의 1983 기록 승계를 인정하고 있으며 한국프로축구 30주년 발간에선 연고복귀라는 단어또한 공식적으로 명시되있습니다. 따라서 안양팬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역사를 넘겨줘야 한다는 논리는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역사를 넘겨주면 당연히 패륜이 아니죠. 역사를 넘겨주지 않고 안양을 연고로 했을 때의 역사를 연고이전 이후까지 가져가니까 패륜이라고 욕 먹는게 아닐지요. 또한, 동대문 시절부터 연고의식이 있었다면, 안양 시절의 연고의식은 무시한 채 '연고 복귀'를 한건가요? 선택적인 연고의식이라....
@@SKSK-co6ky 연고이전의 비판 요소는 "구단의 이익을 위해 "자의"로 팬들을 버리고 도시를 이전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슬기님 말씀대로 서울 동대문에서 안양으로 간게 자기의지를 가지고 간 것이라면 슬기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LG가 안양으로 내려가게 된 이유는 당시 연맹에서 진행한 서울연고공동화 라는 정책으로 강제로 안양으로 이전 시켰으며 이는 2017년 FC서울 구단측에 1995년 이사회 회의록과 당시 기사 자료들이 복원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즉 애당초 "강제성"을 가지고 안양으로 내려 간 것이기 때문에 안양LG가 원래 연고지였다. 라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도시연고제가 시작되고 서울동대문축구단 (1990년)이 제대로 된 시작이며 강제적으로 연맹에 의하여 안양으로 한시적 이전임을 밝히며 이전되었고 이후 공동화정책이 풀리고 이전의사를 밝힌뒤 5년후 서울로 다시 복귀를 하였습니다. 만약 강제적인 것에 상관없이 연고이전 자체가 비판받아야 한다면 안양LG 또한 패륜이 되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강제성을 인정하니 안양LG는 패륜이 아니며 복귀 명분또한 존재하는 것이 성립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