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초반 분식점이 모여 있는 시장이 많았고 신림동 곱창집들 마냥..국딩때 애들이 집에는 비디오가 거의 없던 시절이엿는데 떡복기집은 있엇죠.떡복기 먹으면서 중국 무술영화 비디오 보는거죠.누가 누군지도 몰라요.그냥 보는거에요.누가 악당이고 누가 영웅인지도 모르고 무협신공 하면 와~~좋아 하고 학교 끝나면 애들하고 자주 중국 무협영화 비디오 틀어주는 분식집가서 떡볶이 먹고 했죠
과거는 빨리 잊어야 하는데.. 답답하군.. 그러기에..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지혜를 얻는데... 명나라 주원장도 양아치시절부터 독서를 깊이하여 문무를 겸비..결국 황제의 지위까지 올라왔었는데.. 무는 문이 뒷받침이 되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이순신장군도 난중일기를 보면 얼마나 주옥같은 문장을 남겼는가.. 답답하고...
고선생님,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저 연세에도 도전하시는 모습을 보며 응원은 못해줄 망정 너무 뭐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고견은 잘 알겠습니다. 문무겸전이 이상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양쪽을 겸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주원장 같은 인물들은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극소수이지요. 저는 무예인이나 문예인이나 의가 결여되어 자신의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소인배들을 과거에서 현재까지 아주 많이 보아왔습니다. 무예와 문예의 부정적인 사례들은 차치하고, 무예나 문예나 인의(仁義)를 닦는것이 최고의 경지라는 점을 감안할때, 그래도 왕호 선생님은 무예를 통해 그러한 경지에는 도달하신 분이신 것으로 보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왕호님이나 황정리님과 같은 과거 한국무술배우들이 우리나라도 홍콩처럼 무술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와 영화계의 지원이 있었다면 성룡, 이연걸 이상으로 세계적으로 대성했을 겁니다. 80년대 들어 우리나라 영화계는 무술영화가 수요가 없다고 판단해 멜로물 등을 집중적으로 제작했었지요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