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존재자는 ‘무엇이 존재하냐’는 질문의 답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존재는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냐’는 질문의 답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존재자가 ‘있’도록 할 수 있는 근본 방식, 혹은 존재자의 ‘드러남’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인, 존재자의 '도래'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바로 '존재'입니다. 2)존재자를 측정과 계산이 가능한 조건들로만 이해하려는 현대인의 태도는 『어린왕자』 속 다음의 대목을 통해서도 부연됩니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 애 목소리는 어때?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니? 그 애는 나비 수집을 좋아하니?”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 없다. “그 애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래?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벌어?” 질문들이 고작 이런 것들이다. 숫자를 통해서만 그 친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어린왕자』 에서 비행사가 추측하건대 어린왕자가 살던 별은 아마도 ‘소혹성 B612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서술됩니다(물론 허구의 별이며, 상상의 소산이다). 비행사가 구태여 어림짐작하면서까지 그 이름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어른-하이데거 식으론 '세상사람'-에 대한 풍자로 해석 가능하죠. 다음은 ‘비행사'의 독백입니다. “내가 소혹성 B612호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말하고 별의 번호까지 가르쳐주는 이유는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4) 어린왕자는 성실한 가로등지기를 긍정적으로 언급합니다. 비록 가로등지기가 수동적이긴 할지라도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해 성실하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어린왕자는 그와 친구가 되길 소망했지만 다만 별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난히 네 번째 별이 작았다는 것입니다. 늘 '남'을 위해 '나'의 공간을 내어주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가 발 디딜 세계가 없기 마련입니다. 5) 영상에서 ‘지시-연관 체계’라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이 다소 길어 지루하셨을 겁니다. 키워드를 나열하면 피투성, 실존, 비본래적 실존, 도구, 지시-연관 체계 순으로 정리됩니다. 논리의 흐름을 잘 파악하시면 각각의 개념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꿰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6) 사실 『어린왕자』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의 계보 속에서 B612호에 사는 아름다운 ‘장미’는 생텍쥐페리의 아내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콘수엘로를 사랑했으나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남편 생텍쥐페리의 회한 내지는 늦은 사랑이 장미에 대한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투사되었던 거죠(B612호에 있는 화산은 콘수엘로의 출신 엘살바도르에 화산이 많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비튼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콘수엘로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책임이 장미에 대한 어린왕자의 책임으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영상에서는 하이데거 철학을 『어린왕자』 해석에 일관적으로 적용하고자 ‘장미’를 존재자로, ‘어린왕자’를 ‘현존재’로 소개했습니다. 이는 장미-어린왕자의 관계를 사물-인간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다분하며, 이러한 해석은 전통적 해석과 상충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죠. 이러한 잠재적인 오해를 미리 해명하자면, 존재자는 사물과 인간,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며, 따라서 인간은 존재자인 동시에 현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디폴트는 존재자이고 지향점은 현존재라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장미-어린왕자의 관계를 정리한다면, 어린왕자가 성장하기 전 둘의 관계는 존재자-존재자의 관계였으며, 성장 후의 관계는 존재(자)-현존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어린왕자가 지구에서 만난 상인과 나누는 다음의 대화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상인이 팔고 있는 약은 갈증을 없애 주는 효능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간을 많이 절약해 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을 해보았는데 일주일에 53분이나 절약된다는 구나.” “그럼 그 53분으로 뭘 하죠?” ‘만약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53분이 있다면 신선한 물이 있는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위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사람들은 물조차도 도구로 대합니다. 예컨대 물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거죠. 이때 물은 다른 도구, 즉 갈증을 해결해주는 약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자입니다. 존재를 상실한 존재자는 이처럼 고유하고 성스러운 성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8) 어린왕자의 죽음은 다층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해석의 견지에서는 현대적 자아-과학적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비행기 조종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에게 ‘불안’을 선사하기 위한 인간의 실재적 죽음, 즉 무력과 고독을 선사하는 의미로서의 죽음이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자는 어린왕자가 장미의 ‘말’에 집중했던 걸 후회한다는 고백을 통해 설득력을 얻으며, 후자는 비행기 조종사의 ‘회심’, 즉 어린왕자를 그리워하며 ‘별’을 ‘존재’로 보게 되는 모습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현’은 ‘나타날 현(現)’으로서, 즉 인간(현존재)은 ‘존재가 드러나고 나타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가 인간을 통해 나타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현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책임은 존재자들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존재자를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만 삼아 도리어 존재를 상실하게 한다면 이는 현존재로서의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삼 주 동안 이 영상을 다섯 번은 넘게 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혜윰님. 온전하게 위로받은 기분이에요. 말을 잃게 되는 세상의 풍파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려고 부단 애썼는데... 그 마음을 알아주시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말을 한참 고르다가 댓글을 작성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안 좋네요..학창시절 문학 선생님이 소시민의 삶의 애환을 설명해주시다가 애환은 곧 '기쁨 조금, 슬픔 많이'와 다름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릅니다. 온통 고통 뿐인 삶에서 기쁨은 고통에게 양적으로 압도되지만 때로는 그 조금의 기쁨에 기대어 삶 전체를 뉘이고 위로 받는 게 삶인 것도 같습니다..모쪼록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이나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셔요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지적이신 것 같아요.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에리히 프롬을 정말 좋아합니다...TMI) 저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질 높은 영상 감사해요! (그리고 목소리가 너무 좋으셔서 더 집중해서 듣게 됩니다...ㅎㅎㅎㅎ!!!)
@@user-mh3ii9iu6 마지막 대목에 남겨주신 감상이 너무 좋네요,, '나와 스치는 모든 것들을 더 다정한 시선으로'... 저 또한 일상의 많은 것들을 눈길에 흘겨보곤 했는데 모쪼록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오래 볼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소리 칭찬 좋아하시는 걸 어떻게 알고,,ㅎㅎ 사실은 제가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어서 유튜브를 시작한 이래 여태껏 발성 교정을 받는 중이거든요 :D 노력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와 ...요즘 세상의 시점이 바뀌는 경험을 해서 어린왕자를 읽어볼까 하고 정보찾으러 들어왔는게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를 알고가네요 저는 과학자로서의 시선을 가지고 살다가 예전에 시집을 왜 읽은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시를 왜 읽는지 이해하는 시기가 왔는데 도무지 명확한 이유를 몰랐서 감성이 메말랐나 ..이러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하이데거관점으로 명확하게 설명해주신거보고 정말세계관이 넓으시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