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건축술이나 건축비용으로는 복원이나 재건축이 가능이나 할까요? 경복궁이나 경회루 짓는다고 백성들이 너무 힘들었고 국가재정이 부족했다는 기록 보고, 막상 가보면, 의아스럽고 우리나라 궁궐은 왜 이렇게 소박했나 싶었는데, 일제가 다 파괴한 것 이였군요. 이런 기록이 잘 남아있고 연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환갑나이인 제가 처음 보는 사진과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일제의 만행과 역사왜곡 침략자들의 조선 찬탈의 치밀한 음모가 저렇듯 사진 자료와 증거가 너무도 뚜렷이 남아있는데 공론화 시키지 않고 감추고 있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진실을 발굴해 진짜를 국민들에 알리고 후손들에게 교육 시켜야 할 것입니다.
ㅋㅋㅋ 일본 놈들이 왜요? ㅡㅡ 대한민국 사람이 문제지 세뇌교육에서 못 벗어나는것 그것이 문제지 일본놈들이 왜 마지막 일제 총독이 너희 조선인은 100년이 지나도 찬란했던 조선의 역사를 모를것이다. 했읍니다. 이 작은 땅에서 찬란 해보아야 얼마나 찬란 했을까요? ㅡㅡ 대한민국 역사 하는분들이 문제지 자기들 밥 그릇 빼길까봐 ㅡㅡ 고려국기도 숨겨놓고 이땅이 조선땅이라고 세뇌교육시키고 ㅡㅡ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는 조선인 이라고 가르쳐을것인데 어떻게 시베리아 벌판에 쪼겨 이주해간 조선인이 나는 고려인 이라고 자식에게 가르칠 까요? ㅡㅡ 이땅이 고려땅 이기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는 고려인 이라고 가르친거지 ㅡㅡ 꼬레야 코레아 아무리 외국인들이 말을 해도 자기 자식에게 내가 조선에서 왔는데 고려인 이라고 가르칠까요? ㅡㅡ 역사하는 분들이 ㅡㅡ 일제시대 이전에 이땅이 조선땅으로 알고 있으니 역사가 개판이지 일본 놈 들이 왜요ㅡㅡ 꼭 남 탁 ㅡㅡ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조선왕조 대한제국의 상징, 경복궁의 규모는 대단히 아름답고 광대했다고 들었는 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조선의 왕궁들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거기에다 동물원까지 만들어 '창경원' 으로 이름지어 놀이터, 유원지로 전락시켰고요. 한국에 왔던 독일인 유학생들이 그런 사실에 충격을 받던 모습들을 TV에서 본 기억도 납니다. 귀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조선의 경복궁은 일본에게 있어서 건축 실험 장소엿었음. 둥근 형의 건물은 원 즉 몽골식 건물이요. 서구식으로 생긴 건물은 인도에 들어선 인도식 영국 제국주의 건축물을 그대로 옮 겨놓은 것들과 러시아의 상페테르크 부르그의 성당 건축물을 .. 경복궁에 재건축한 성벽들은 중국과 티벳식. 유대식 건물을 혼합한 것이고, 전체적으로는 일본식 건축물을 기반으로 한 이도 저도 아닌 완전 짬뽕 스타일 건축물들임.
신라 왕궁은 대부분 중국에 있지 않나요? 신라의 영토와 수도 이 논문은 신라(BC 57~AD 935)의 수도와 영토에 관한 연구를 한 논문이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신라의 수도와 영토를 연구한 결과 기원전 57년 거서간(居西干)이 도읍한 곳은 중화인민공화국 감숙성 난주(中國甘肅省蘭州)이며 궁(宮)은 금성(金城)이었다. 거서간 혁거세(赫居世)의 무덤은 현재 운남사(雲南寺) 남쪽으로 4리에 있고 이곳은 강소성 오현((江蘇省吳縣)에 있는 호구산(虎口山)임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 수도는 신라 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AD 455~475)이 수도를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겼고, 이곳은 감숙성 난주 부근이다. 세 번째 수도는 신라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6~496)이 월성(月城)으로 옮겼고, 지금의 중국 안휘성 소현(安徽省巢縣)의 동북 5리이다. 네 번째 수도는 31대 신문왕(AD 678~688)이 서원경성(西原京城)을 쌓았고, 이곳은 달구벌(達句伐)이 있는 중국 사천성(四川省)이고 달현동천도(달현동천도)이다. 이곳은 신주(信州)이며 파주(巴州)이고 지금은 중국 사천성 봉절현(奉節縣)이며 구 서주부경(敍州府境)이다. 다섯번째는 신라 52대 효공왕(AD 896~910)이 송악군(松岳郡)으로 수도를 옮겼다. 송악은 동경(東京)이고 낙양(洛陽)이다. 여섯번째는 신라 56대 경순왕이 운주계(運州界)에서 신라를 태조 왕건에게 물려주고 항복하였다. 이곳은 중국 낙양 북쪽 산서성(山西省) 최남단에 있는 하현(夏縣) 밑 안읍(安邑)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신라의 수도와 영토는 현재의 중국대륙과 서기 503년부터 한반도에도 존재하였다. 대륙신라의 역사를 정립하여 중국의 동북아공정을 극복해야한다. 또한 반국가적인 일본식민사학을 폐기 시켜야 할 것이다.
I really want to see all the palaces restored to their 1909 state again. All these black buildings on a mass scale would give off a glittering ✨ effect to the user the palaces would look like black wave patches in a bustling city if all restored.
경복궁이란 이름은 이 나라에 영원토록 큰 복이 있으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은 이름입니다. 경복궁은 궁궐이 크고 화려하면 백성이 고달프고 그렇다고 초라하면 나라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 하여 이를 절충해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건물 하나하나는 작지만 매우 품위있게 우아하게 지어졌습니다. 근정전은 임금은 항상 부지런히 백성을 보살펴야 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고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이란 이름은 임금은 항상 생각을 많이 해야 하며 임금이 생각을 안 하면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는 의미로 지어졌습니다. 경복궁 각 전각들의 이름을 보면 조선은 왕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왕이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로 건국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가 경복궁을 유달리 싫어해 이렇게 심하게 훼철하고 심지어 후대에 누가 경복궁을 복원할까봐 경복궁 복원에 필요한 경복궁 의궤를 태워버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경복궁을 복원하는데 의궤가 없어서 영건일기나 현장발굴, 당시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힘들게 복원하고 있습니다.
놀랍네요. 조선 총독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조선의 심장인 경복궁에 관심이 정말 많았나 봅니다. 대체 몇 번을 뜯어 고쳤길래? 앞전에 어떤 분이 실제 경복궁 들어가보면 아궁이에 불 땐 흔적도 없다고 하던데? 왠지 사실이면 이해가 되네요. 처음엔 즈그 일본의 기술력을 과시하려다가 우리 조선을 폄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나 봅니다. 아무리 최신 건물을 지어도 그 자체가 웅장하고 질서 정연하니까
1.이순신장군이 늘 앓았던 '장독' 이라는 배앓이는 한반도 어느 지방에서 생기는지? 지금의 전라도에는 없는 병으로 알고 있음 2.윤봉길 할아버지의 목에 걸린 대한 애국단의 입단 결의문에 나오는 '중국'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는지? 3.경기도의 경기는 기내라는 말로 왕궁으로 부터 사방 500리(200km)인데,그럼 경복궁으로 부터 대전이나 강원도까지 가는 거리인데 우리조상은 거리감이 바보였나요? 뉴트를 사용하던 조상인데? 4.호남지방이 전주등 전라도 일대인데, 호남의 호는 어느 호인지? 호서/호동/호북은 어디있는지? 이런것을 설명할수 있어야 지금의 서울이 조선의 서울이라고 설명할수 있을듯 하네요.
12:51초 조선총독부가 자리한 모습 그림에서 북쪽 방향에 광화문이 있습니다. 총독부 앞에 있던 광화문을 경북궁 동쪽으로 이전을 하였습니다. 총독부는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고 전람회 입구를 이전한 광화문으로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경북궁의 정문이 동쪽으로 만든 것입니다. 광화문 입구 도로 모습이 14:32 초에 보입니다. 그림과 같습니다. 후에 광화문을 다시 중앙청 앞으로 이전합니다
지금의 경복궁과 자금성크기를 비교하면......경복궁이 자금성의 크기의 70%임.. 그런데 창경궁이라던가 창덕궁, 덕수궁 같은 궁들이 우리는 주변에 몇개 더 있어서.....그런것까지 합친다면...더 크다고 볼수있음.. 자금성은 한개의 궁으로 이뤄졌고...우리나라 궁은 여러개로 이뤄졌다는게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