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도 50년대,60년대,지역에 따라서 70년대 초반까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60%에서 70% 정도 되던 시절에는 남한시골도 결혼뿐만이 아니고 관혼상제 를 동네잔치,동네궂은일로 여기고 이웃과 어울려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까지 남한에도 그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현재는 한국의 60년대. 한국에서도 잔치한다 라고 했습니다.또 국수 먹는날 이라고도 했고요. 잔치국수 라는 말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구식으로 결혼식을 하면 동네사람. 아는사랑 모르는사람 모두와서 먹고가곤 했습니다. 차츰차츰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바뀌다 조니까 장소도 협소하고 특히 주차문제 때문에도 예식장을 이용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마 북한도 발전하면서 변할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가정 충실히. 서로 도와가며 행복하게 사세요♡♡♡
양가부모님이 민희씨 정국씨 정국씨 민희씨가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시는 모습에 정말 축복받았고 고맙다고 눈물지으실듯해요~~ 제가 두 분을 봐도 그렇거든요~ 양가 부모님 모시고 북한식으르 결혼식을 다시 올리시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 그 날 우리 구독자들이 모두 잔치기분이 될거 같지요~두 분 모두 한국에서 전문직업인으로 크게 성공하시고 자유대한민국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시길 바랍니다~~ 늘 정국씨와 민희씨를 응원합니다 ~변함없이 실력가득안고 멋지게 화이팅♡
나민희부부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평양음식점 하면 잘할듯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요리가 존경받는 직업중하나이고 소득이높고 유망직업입니다. 단, 평양맛과 남한의 입맛은 좀 다르다고합니다. 남한쪽이 더 자극적이기때문에 북한맛이 심심하다네요? 양자의 특성을 잘 가미해서 만들면 될듯합니다.
몇박 며칠 잔치벌이는건 도시화가 안된 지역 또는 예전 씨족마을 풍습이 남아있는 곳에서나 가능한 얘기. 예를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같은 곳에 아직 저런 풍습이 유지되는걸 보면 알수 있죠. 각 자 바쁜 삶이 있는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도 민폐, 소란스러움을 옆에서 감당해야하는 이웃에게도 민폐죠. 잔치 정리 뒷감당은 누구 몫이며 거기에 쏟아부을 돈으로 결혼식은 하루 엣지있고 깔끔하게 끝내고 신혼살림에 보태는게 차라리 났다라는걸 알기에 간소하게 변한겁니다. 요즘엔 그것도 모자라 아주 가까운 소수 지인만 초대하는 스몰웨딩이 유행이죠. 전세계 공통현상인걸 보면 인류학, 사회학적으로 고찰가능한 변화과정입니다
과거 영상에서 볼 때 나민희씨의 경우 '무척 똑똑하고 영민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어두운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정국씨와 결혼이후 밝아진 모습에 참 서로 결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난 70살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러 분의 부모와 비슷한 또래일 듯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최고 명문대학에 재학 중인 것도 최근 영상에서 확인했습니다. 학창시절엔 치열하게 공부하여 꼭 여러 분의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민족을 우선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두 젊은이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집에서 잔치했어요. 대신 며느리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행사 당일은 하루종일 일하고.. 맞벌이가 많아지고 여성인권이 올라가고 경제수입이 증가하면서 외부에 돈주고 행사하는걸로 바뀐거죠. 집에서 잔치하던 시대에서 외부에서 행사하고 15여년 전까진 가까운 친척들은 다시 집으로 불러 다과라도 하면서 얘기나누고 갔는데 요즘 개인주의 심해지면서 서로 민폐라고 그것도 안하는 분위기죠. 나도 귀찮은거 싫으니 남도 귀찮게 하지 않는게 예의가 된 시대. 정이 없어보이긴 해도 며느리나 여자들 입장에선 좋은거겠고. 남자들이나 시중받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좀 아쉬울거고..
한국에서도 60년대까지는 지금 평양부부가 말씀하신 대로 동네 잔치였고 친척들 모임이었습니다만, 경제활동이 많아지고 각자 생활이 바쁘고 여러 지방에서 살게 되다 보니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요즘은 4촌도 별로 없고 하다 보니 6촌은 얼굴도 잘 모르는 세상이 되었답니다. 60년대까지는 친척들이 한 마을에서 살다 보니 동네 잔치였었던 거지요.
두 분께서 고향을 떠나 남한에 정착하시더니 좋은 인연으로 부부가 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영상을 보면서, 남•북한의 결혼식 문화를 비교하시는데, 남한은 '행사' 북한은 '잔치'라고 하시는 것을 보고, 문뜩 남한의 옛날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 여기도 60, 70년대 결혼식은 지금의 북한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 동네가 2,3일 동안 치알을 쳐놓고 완전 축제 분위기였었죠. 그런데 80년대 들어서 '관혼상제 간소화' 법에 따라 과소비를 지양는 조치가 있었기에, 현재의 모습대로 서서히 변천되었답니다. 두 분 이야기를 듣고보니 60년대 어린시절 고향 모습이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두 분 영상 잘 보고 있으며, 앞날에 가내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
남한도 저 어려서는 동네 잔치였답니다. 심지어 환갑잔치. 돌잔치까지 하루종일 온동네 잔치고 결혼식은 말할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아파트로 주거형태가 변화하고 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면서 다니던 회사 직원이 결혼식을 한다고 회사를 빠지는 것 까진 봐주겠으나 회사 동료들까지 잔치집에 가서 몇날을 함께 흥청거리며 놀기엔 산업발전에 방해요소가 되었죠. 소수의 인원으로 엄청난 경제가 발전할때 였으니까요. 신혼여행도 뒤로 미루고 일하다가 휴가때 신혼여행을 간다는 직원들까지 있었을 정도 였으니까요. 사회가 점점 발전할 수록 전문화되고 편리함만 강조되는 쪽으로 발전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남한도 60년대까지는 그렇게 해왔었는데, 그렇게 하는것이 허례허식이라고 하여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80년대는 자취를 감추었죠. 왜냐면, 다른사람들이 이정도하면 나도 이정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기위해 많은 돈과 노동이 투여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빚져가면서 결혼하는 집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자식에게 그만한 잔치를 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상실감이 있었죠. 서양처럼 둘이 좋아서 축하해주면 될 결혼식이 집안자랑을 하는 형식적 허례허식으로 치르다보니 보다 합리적으로 결혼이라는것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사회적으로 퍼져나가서 점점 간소화되고 꼭 필요한 부분만 하는것으로 지금과같이 바껴왔습니다. 최근에는 결혼식을 안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서양에서는 자식까지 낳아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식이나 혼인식안하고 동거를 10년이상 하며 사는 남녀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이런분들은 혼인신고를 안했지만, 사실혼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헤어질때는 결혼한사람과 동일한 법적인 계약관계로 간주합니다. 과거에 힘들때는 그런 결혼식에 맛있는것도 먹고 쉬어간다는 문화가 있었지만, 현대에는 서로들 일때문에 바쁜대다 맛있는것은 얼마든지 먹고싶을때 먹을 수 있고 필요하면 만나서 뭐든 할수 있어서, 결혼을 잔치로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 부담스러워 할것입니다. 결혼식이라는거 자체가 남들 다하니깐 나도 따라한다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것이라, 점점 세대가 바뀌면서 자유로움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으로 바뀌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정이라는 책임감있는 울타리를 만드는과정에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의견도 많으니, 앞으로도 결혼이라는 제도는 꾸준히 이어질것으로 예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