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ёмный

마이스토리 33화. "한국 가족은 나의 힘"…친가족 만나 상처 보듬은 벨기에 입양동포 / YTN korean 

YTN korean
Подписаться 114 тыс.
Просмотров 23 тыс.
50% 1

[선 리 / 벨기에 입양동포]
안녕하세요. 선 리입니다. 저는 한인 입양인이고 1984년 3살 무렵에 입양됐습니다. 그래픽과 예술을 전공했고 지금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입양 후의 삶은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은 만나지 않지만, 당시 양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난 널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저를 입양했을 때 아버지는 다른 여자분이랑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양어머니가 저를 갑자기 떠안게 된 거죠.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아버지는 다시 결혼하셨어요. 새어머니랑은 정말 잘 지냈어요. 새어머니를 저의 어머니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카메룬 분이세요. 가족 구성이 참 다양했죠. 정체성 문제는 늘 저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이 백인이셨잖아요. 학급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보니 용의 아들, 칭총이라는 별명이 있었죠. 지금은 괜찮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것들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1987년부터 올림픽과 함께 한국이 알려지게 됐어요. 올림픽을 시청했던 기억이 나요. 한국에 대한 반항심이 컸던 시기였어요. 벨기에나 프랑스를 응원했지, 한국은 전혀 응원하지 않았어요.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나를 버린 상대에 대해 존중할 마음이 없었던 거죠.
처음 남동생을 봤을 때 바로 알아챘어요.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쏟았죠. 처음 남동생을 만나 같이 놀고 소주도 마시고 호텔에서 같이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엄마를 만나러 갔어요. 음식을 어마어마하게 차려 놓으셨더라고요. 정말 좋았어요.
엄마를 만나자마자 울었던 것 같아요. 처음 만나서 10분 동안이나 계속 안고 울었어요. 친아버지는 1980년대 시위 도중에 돌아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엄마를 만나기로 했을 때부터 제 마음속에서 엄마를 진작에 용서했었어요. 사실 용서할 필요도 없어요. 엄마를 탓할 수 없잖아요. 당시 한국은 정말 가난한 나라였고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걸 아주 안 좋게 봤거든요. 엄마가 저를 버렸다기보다는 나라가 버린 거로 생각해요. 당시 문화와 인식들이 엄마를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셈이죠. 가족과 다시 만나고 그 만남이 잘 이어진다면 삶의 구멍들을 메꿔주더라고요. 삶의 공허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정확히 그게 뭔지를 몰랐어요. 지금은 알아요. 가족과 만난 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아요.
첫 번째로 입양기관에 연락해야 해요.
하지만 반드시 마음의 준비도 하길 바라요.
입양인이 친가족을 찾고 싶을 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친가족이 만남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 부분을 미리 인지하지 않으면 친부모가 거절했을 때 삶이 크게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이를 버렸다는 것은 친부모에게도 트라우마라고 생각해요. 원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사회의 시선과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들도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온 게 아니라 아이 없이 살아내느라 긴 싸움을 했을 거예요. 그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친가족이 나를 피한다고 미워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보는 거죠.
#한인 #입양 #벨기에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 기사 원문 : www.ytn.co.kr/replay/view.php...
▣ YTN korean 유튜브 채널구독: goo.gl/gcKeTs
▶ 모바일 다시보기 : m.ytn.co.kr/replay/replay_lis...
▶ Facebook : / ytnworld
▶ Naver TV : tv.naver.com/ytnkorean
[전세계 750만 코리안 네트워크 / YTN korean]

Опубликовано:

 

1 июл 2023

Поделиться:

Ссылка:

Скачать:

Готовим ссылку...

Добавить в:

Мой плейлист
Посмотреть позже
Комментарии : 36   
@user-uc7mx3mn5c
@user-uc7mx3mn5c Год назад
친가족을 찾고 마음의 상처가 많이 아무셨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더욱더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래요!!
@jhc_user
@jhc_user 2 месяца назад
가족분들 만나고 마음의 허전함을 위로받으셔서 정말 다행이예요. 용서하셨다는 얘기에 대단한 분이구나 싶어요. 매일이 더 평온하고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0wings896
@0wings896 Год назад
홀트아동복지재단은 악마가 천사의 탈을 쓴척하고 있는 아동인권 유린집단이다 하루 빨리 홀트를 전수조사해서 과오를 반드시 밝혀야한다
@utopiakorea9021
@utopiakorea902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이 가난했던 그 시절에 저렇게라도 선진국에 입양 안갔으면 굶어죽든지 빈민층으로 비참하게 살았을텐데요? 저 입양인도 `자신이 입양갈 때에 한국은 정말 가난한 나라였고,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 혼자서 많은 아이들을 다 키울수 없고, 당시에 한국에서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 안좋게 바라봤다고 하잖아요?
@user-dh5ji3if5s
@user-dh5ji3if5s 3 месяца назад
​@@utopiakorea9021 이 무슨 괴변인가요? 이건 엄연히 납치입니다. 가난은 이유가 될 수 없어요.
@utopiakorea9021
@utopiakorea9021 3 месяца назад
​@@user-dh5ji3if5s한국이 가난했던 50~80년대를 살아보지 않고 쉽게 얘기하지 마세요. 제가 중고등학생이었던 70년대 중후반에 한학년에 10반 넘었고, 한반에 70명이었는데, 70명중 집에 자가용 있는 학생은 1명뿐이었고, 매일 쌀밥 도시락 싸올수 있는 학생은 10%정도밖에 안되었고, 전체의 1/3은 하위층으로 지금의 방글라데시 빈민가처럼 비참했습니다. 먹고 살지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선진국에라도 입양가서 매일 먹고살수 있으면 행운 이었습니다.
@zayoutube
@zayoutube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dh5ji3if5s 가난은 모든 비극의 이유가 됩니다.
@ororo1002
@ororo1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utopiakorea9021당신은 입양 영상에 많은 댓글을 다셨군요 해외 입양에 굉장히 긍정적이던가 아님 홀트 관계자던가 아님 아이를 해외에 버리셨나와요?
@ReneeBachtel
@ReneeBachte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Dear Sun Lee - i applaud your courage & love for your Korean Family. May Joy, Happiness & Prosperity be with you in your new journey. Thankyou for shating your story, got me crying😢
@zayoutube
@zayoutube 2 месяца назад
영상의 후반부 보니까... 선 리라는 분은 정말 생각이 깊고 매우 성숙된 인격을 가진 분이네요. 존경합니다.
@Daemurry
@Daemurry Год назад
대단하시네요. 용서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user-cq8uv9rm2g
@user-cq8uv9rm2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릇이 크신 분이네요…
@GiHongKim-yh2sd
@GiHongKim-yh2sd 2 месяца назад
선리씨미남이시네요 아버님이엄청좋은유전자주셧네😊
@user-wj1ss8jd1w
@user-wj1ss8jd1w Год назад
선리씨 잘 생겼네요.
@user-pr8vk8yj2n
@user-pr8vk8yj2n Год назад
많은 입양되었던 분들이 가족을 만나는 일이 캠페인으로 되었으면 좋겠네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국식이 되겠는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직계 가족이 아니면 방계 가족이라도 만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어디서 사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 관계가 형성 되었나가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남이 있어,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Aromahoney-fp5ir
@Aromahoney-fp5ir Месяц назад
멋지게 잘 큰 것은 하느님이 지켜주신덕분입니다.
@happilyeverafter9988
@happilyeverafter9988 Год назад
다행입니다.
@GiHongKim-yh2sd
@GiHongKim-yh2sd 2 месяца назад
마음한구석엔다들자식이자리잡고잇겠죠 사죄와용서가최죠 😊
@bbours197
@bbours197 Месяц назад
Allô Sun Lee! Je ne peux pas imaginer ta vie très dur mais très content que t'as trouvé ta famille biologique en Corée et t'es en paix avec ta passé. Je te souhaite que tu sois heureux avec ta familles.
@user-ru6gw9vu1z
@user-ru6gw9vu1z Год назад
👍👍👍👍👍👍👍👍👍🙏🙏🙏🙏🙏🙏🙏🙏
@gt6606b
@gt6606b Год назад
@hskim3077
@hskim3077 Год назад
한국이 나라가 어렵다고 그 많은 우리의 아이들을 해외에 내팽개친 일은 용서 받기 힘들 것이다.
@thinkinglove1517
@thinkinglove1517 Год назад
말 쉽게 하지 마라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왈가왈부하지마라
@user.gjlk.vgfd34575
@user.gjlk.vgfd34575 Год назад
​@@thinkinglove1517 개인 하나하나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사회내에서 그 아이들을 보듬고 살아 갈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인권을 무시했던 야만의 시대를 용서하지 말자는 소리아닐 까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이닌까요
@user-mm2sf1id7h
@user-mm2sf1id7h Год назад
​@@thinkinglove1517뇌가없노??? 경찰 공무원들이 애들 납치해서 외국에 팔아 먹은거 역시적 사실인데 개소리 아닥해라 지금도 홀트 이것들이 애들 돈받고 팔아먹고 있다 뇌즘 달고 살길
@utopiakorea9021
@utopiakorea902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thinkinglove1517 한국이 입양아를 많이 보냈던 50~80년대에 한국은 정말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 시대를 안살고 쉽게 말하지 마십시요! 그 당시에 한국은 학교급식은 꿈도 못꾸고 도시락을 쌀밥으로 매일 싸올수 있는 아이는 80년대 초반 기준으로 한 학급에 반도 안 되었습니다.
@ororo1002
@ororo1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utopiakorea9021지금도 한국보다 가난하고 세 끼 밥을 못 먹는 나라들이 널렸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입양기관이 주도적으로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구요 그래서 한국이 아동 수출국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는데 입양 기관 분이신지 댓글 여러 개 쓰시며 옹호하느라 애쓰시네요
@user-gu6gz3bj4b
@user-gu6gz3bj4b Год назад
한국와셔살아가세요
@utopiakorea9021
@utopiakorea902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말을 못하고 서양적인 문화와 정서가 굳어져서 한국에서 살기는 힘듭니다.
@user-rn7ck9up1d
@user-rn7ck9up1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43 해외입양인들이 가족을 만나야 하는 이유 한국이 적어도 구멍은 메꿔줘야하지않나?
@user-ro3yz4yn2m
@user-ro3yz4yn2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의 80년대는 학교에서 난방없어서 갈탄때고 서울 곳곳 집안들이 연탄때고. 곤로라고 작은 화로로 음식을 해먹기도 했습니다. 서울에도 곳곳에 판자촌 있던시절이었습니다. 07년도에 호주제 폐지 전까지 미혼모는 호적에 자기 아이를 여성의 이름 밑으로 자기 자식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애비없는자식이라는 욕이 있을정도로 편모 차별이 심했고 결혼시 양가부모님이 잘 계시는것을 중요하게 따질 정도로 꽉꽉 막히고 차별적이 사회였습니다. 여성이 아침 상인의 첫손님이면 재수가 없다고 여성손님은 안받았고. 거리에 담배피는 여성이 있으면 욕설을 하거나 따귀를 때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저는 한국에서 여성혼자 아이를 키운다는것이 절대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자신있게 말할수 있습니다. 2000년대 소설 속에서도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야하는지 많이 나와있는 문학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속에서 한국의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모순을 견디며 사는가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user-mz6wj5pk6b
@user-mz6wj5pk6b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84년 당시에 한국은 이미 잘살고 있었다. 경제규모를 현재 2023년에 비교하지는말자. 아이를 버릴 당시 한국이 정말 가난했다고 누가 허위사실로 아이를 버린 죄에 대해 포장을 한것같은데 그냥 혼자 아이 키우기 힘들고 재혼하려니까 아이가 걸림돌이라서 남자 만나기가 힘들었다고 솔직해지자. 개인의 이기심에서 나온 잘못된 선택을 사회/나라 잘못으로 돌리는 부모자격없는 부모들 혐오스럽다. 지자식 지손으로 버리는 인간을 뭘보고 신뢰하나. 한국이 너무 가난해서.. 라는 핑계는 1960년대까지는 통한다. 1984년에 한국이 너무 가난해서? 웃긴다. 짐승도 지새끼는 안버린다. 여자혼자 아이키우는걸 남들이 안좋게 봐서 버렸다? 말이니 방구니.
@au-kf3on
@au-kf3on 3 месяца назад
자기삶에 걸림돌이 될거같으니까 자식을 버린 여자가 무슨 괴변인들 못하겠어요. 버림 받은 아이는 그나마 어미가 자의가 아닌 완전 타의로, 어쩔수없이, 선택의여지가 없어서,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이 차라리 위안이 되는거겠죠. 80년대부터 한국의 경제가 완전 꽃피기 시작했는데 어처구니 없는 거짓변명이죠. 625 전쟁통에도 모두들 자식 안버리고 잘만 견뎌냈어요.
@mind6936
@mind6936 2 месяца назад
맞아요~ 이게 맞는말이지...
@user-qy7bq8mw9n
@user-qy7bq8mw9n 3 месяца назад
나라가버렸다 왜곡적인 생각을 버리시길 대부분 가난했음
Далее
Старый Дим Димыч вернулся😱
00:16
엄마의 나라 1부  MBC 오늘저녁 해외 입양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