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vi9ip2nj1b일본은 사과부터해라 말씀하신 구독자님 전두환전대통령께서 일본에 가셔서 일본총리 심지어 일본천황까지 사과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필요에의해 베트남에 전투하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베트남국가에서 우리보고 전쟁에대해 사과해라 하는지요 전혀 그런말씀하지않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뛰어넘어 베트남신부들께서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선한영향력을 행사를 하고 있는지요 과거사를 반면교사로 삼고 뛰어넘어 우리나라가 앞서가는 나라가 되어야지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서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겁니까!?어서어서 툴툴털고 일어나 새시대를 열고 좋은나라 만들어야지 않겠는지요
증조부 : 독립운동가 조 부 : 6.25참전용사 육군상사 저 는 : 백골 3사단 38선 돌파 최선봉연대 특급전사 영하 20도 이하로 빈번하게 기온이 내려가는 철원에서 복무했어요 부모님과 여동생이 편하게 있으려면 내가 조금 더 땀흘리면 된다는 마음으로 매일 훈련받고 운동하며 부른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군가를 잊고 있었네요 잊고 있었어요 ㅎㅎ 75년 곡 멸공의 횃불 작곡 : 가수 조규만 父 조광한 1절 육군 / 2절 해군 / 3절 공군 / 4절 자유대한민국을 원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pujamsoren 아 답글을 늦게봤습니다. 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냥 시골집에가면 훈장들이랑 향토자료!?!?에 상사라고만 되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선생님께서 지도편달해주신 내용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25년생이셨습니다 남아 있는 자료와 현재 생존하신 어르신들 구전으로는 정말 ㄱ도 모르는 동네에서 배고프다 하여 그냥 집에 있는 먹을것을 내주었는데 빨갱이로 몰아서 제 조부의 처가? 동네는 절반 이상이 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합니다. -) 그 눈물이 가시기전에 밀고당기는 전선에서 당시 먹을것을 얻어먹은 북괴군이 다시 내려왔을때 밀고하여 당했다며 또 남은 주민들을 학살하였고 전쟁 이후 질려버린 주민들은 좌-우 다 믿지 못하여서 민심이 사나울때 많은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사람들이 모여든곳이었습니다. 현 동국대의 전신을 세운 박한영 스님이 (종교) 내장산 구암사 문필봉아래서 수학하셨고 박정희가 쿠데타 직후 헬기로 쌀을 가지고 내려와 줄정도였다고 기록에 남아있습니다(사진,문헌) (정치, 법조계) 있던 분들은 복흥면 주평리일대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마을) 를 위주로 기거하던 동네였습니다.
@@xzxzxzxz9892 그건 한문으로 지어진 5언절구 7언절구의 정통 한시조 음을 따른 것입니다. 한국어/일본어로 지어진 것과 한문으로 지어진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구태여 더 쓰지는 않겠습니다만, 국문학과 일문학 모두 전공했습니다. 민족감정 때문에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우시다는 건 알지만, 당시 한국 군가가 일본의 5/7조를 많이 차용했다는 의견은 상당한 근거와 설득력이 있어 주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user-pb1kv8pk7f 비리로 많았고 열악했고 훈련은 고됬지 그걸 참아내고 이겨내서 지금의 현대식 군대가된거야 넌 어려서 경험을 못해봤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도 처음부터 잘살았던게 아니라 할머니,할아버지,어머니,아버지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으셨기때문에 니가 오늘날 편하게 유튜브에다 젓같은 글도 쓸수있는거란다
@11010엄희원 하지만 역사는 그런 결단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지요. 시진핑이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 중국을 패권국의 자리에 올려놓는다면, 당연히 중국에서 시진핑의 업적은 칭송될 것입니다. 덩샤오핑 역시 천안문에서 급진 개혁주의자들을 밀어버리고 민주화 요구를 분쇄했기 때문에 중국이 소련처럼 붕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을 지속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구요. 발전은 언제나 희생 속에 이루어지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개혁과 혁명, 변혁에는 반드시 피가 흘렀으며, 아무것도 없던 국가에서 어떠한 희생도 없이 급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지도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이기에 자청하여 자신의 이권을 내려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러한 이권을 모아서라도 개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지도자는 반대파를 철권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말을 들어주면서 토의니 조율이니 하는 "민주적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건, 역설적이지만 그런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과정을 기다려줘도 국민들이 굶어죽지 않을 만큼 국가가 충분히 성장한 이후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나가 싸우라 하면 아무도 싸우지 않겠지만,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국가가 망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억지로라도 전쟁터에 내보내야 한단 말입니다. 대영제국도 식민지인들의 피 위에, 프랑스 혁명도 귀족과 왕족 그리고 나중에는 그들 자신의 피 위에, 근현대 국제사회를 선도한 독일의 영광도 프로이센의 군국주의 체제 위에, 소련의 20세기 전반기 경이로운 경제성장도 스탈린의 강철권력 아래에서,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와 발전도 제국주의 시절 아시아태평양에 뿌려진 피 위에, 대만의 경제성장도 장제스의 철권 아래에서, 싱가폴의 성공도 리콴유의 독재정 아래에서 이루어졌죠.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는 일종의 거대한 환상입니다. 그 환상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는 오직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돌아갈 만한 기초체력을 가진 국가들에서만 성공했으며, 그런 기초체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보편 인권이 제대로 동작한 사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포함된 모든 국가들을 뒤져보십쇼, 그들이 처음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소위 "자유민주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절차를 거쳤던 사례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11010엄희원 그리고 한국민으로서의 관점을 제껴두면,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씨 세습왕조가 비판받는 건 독재니 뭐니 하는 것들보다도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없던 살림에도 외국으로 인재들을 유학시켜 인적자원을 확보하려 했고, 박정희는 서민과 노동자를 갈아넣어서라도 기초자본을 만들어 안정적인 무역의 고리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지요. 김일성 역시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공산주의의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고, 그 아들인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그래도 북한을 잘 살게 만들겠다는 최소한의 야망조차 버린 채 선군정치로 자신의 권력유지에만 목매달았으며, 그 결과 북한은 파탄국가가 되었습니다. 만약 김일성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북한이 지금 중국처럼 GDP 만 불 정도 국가까지라도 성장했다면? 귀하는 경제성장은 중요한 게 아니고 독재국가니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평가로 선을 긋겠지만, 저는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김씨왕조를 조금 다르게 평가할 것 같네요. (물론 북한이 현실적인 위협인 이상 한국인으로서 적대감을 없앨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경제 성장만큼은 유능한 지도자라고 평가했으리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