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운명을 짊어진 고려 황자의 선택 -'고려는 하늘의 뜻이다'라고 했던 쿠빌라이 칸! -몽골과의 교류로 태어난 설렁탕과 소주? 잡지사 방송 | 매주 월~금 오후 7시30분~8시 CBS 라디오 표준FM 98.1MHz ※1/17 화요일 방송분 #잡다한지식사전 #몽골 #박광일
몽고는 중국식 표현이라서 그래요…내몽골도 중국에 빼앗기고 현재 몽골의 자원 개발도 중국 자본과 회사들이 진행하고 있어 몽골인들이 중국 무지 증오함… 실제로 시골 식당에서 밥먹고 있는데 어느 몽골 아저씨가 욕하고 나가길래 물어보니 중국 노동자가 식당에서 밥먹고 있어서 그랬다고 통역이 말햐주던데 중국인이 머리 쳐박고 밥만 먹고 가는거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음.
고려왕실이 몽골에 대우를 잘받았던거는 사실인데 고려백성들은 엄청나게 수탈당하고 힘들었음. 30년동안 저항했다고 하지만 왕실통째로 섬에 도망가 있었고 육지는 초토화가 됨. 왕실은 어쨋거나 쿠빌라이 딸하고 결혼하고 부마국되어서 그 아들은 태어나니 외할아버지 원황제, 증조할아버지 칭기즈칸 되는 바람에 고려왕가는 몽골에서 나름 방구 좀 끼고 다니는 가문이 되버림.
두분의 티키타카가 두둥~ 과연 프리미어급입니다 역사시간에 듣지 못 했던 역사의 이면을 들으니 한뼘 성장한 시간이 된 거 같네요 다음 시간이 몹시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ㅋㅋㅋ 근데 이런 수준 높은 강의를 듣고 나서도 구독을 안 한다면 어디 가서 유튜브를 훑고 다닌다고 얘기할 수 없겠지요?? 👍👍
@@user-gp4fs3qd8y 이양반이 무슨 꿈꾸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가 다 중국이 본토였어요. 한반도는 오늘날 제주도같은 작은 섬정도의 영토입니다 이성계 때문에 우리땅이 한반도로 축소된것일 뿐. 한가지 예를 들면 삼국통일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적도 없고 중국에서 일어났어요. 우리가 한강이라고 하는 한강은 아리수 라는 말로 티벳고원에서 시작해서 중국내륙을 거쳐 동중국해로 흐르는 양쯔강을 말합니다 신라가 양쯔강 유역유역에 있었어요 양쯔강은 장강 또는 대강이라고 부르는데 한강을 말하는거에여 한은 우두머리 짱 크다는 걸 말하고 대전의 옛이름이 한밭 입니다 당연히 아시아에서 제일 큰강이니 우두머리 강이라서 한강이라고 이름붙힌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민족 영웅으로 배우는 을지문덕은 올지모던이라고 몽골사람 이름입니다 몽골에는 아직도 올지모던이 있어요 한국에는 없어요 바보온달은 한국사람아니에여 온다르라고 몽골 바이칼쪽 부리야트성씨로 지금도 씁니다. 한국에는 없어요. 고구려 대무신왕은 이름이 테무진으로 몽골의 징키스칸 이름이 테무진이에요 고구려 초기 성터가 지금도 몽골에 있어요 나사 천문관측도 고구려는 몽골지역에서 나옵니다 근데 무슨 피가 안섞어요 우리가 배우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가 중국에 있었다구요 한가지더 첨언하면 자오지천황이 오딘 게세르칸 이(박혁거세) 토르 게세르칸 후손 아틸라가 로키입니다 아틸라는 유럽에서 준단군정도의 인물이고 바바리안 바이킹 바티칸 다 유럽으로 진출한 우리민족 지배층이야기입니다 아니 이렇게 스케일이 큰 사람들이 우리민족 지배층입니다 고려만해도 만주를지배하고 중국 동부해안지역을 지배했어요 조선시대만 굴종하고 한반도로 축소되고 약하게 살았어요 범어잡명에서는 고구려를 모쿠리라고 불렀어요 모쿠리 가 몽골입니다 몽골이 인도에서는 무굴제국으로 불리구요. 역사를 알아야 까막눈을 면합니다
소위 우리가 중국에서 넘어 왔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혼돈 하지 맙시다. 우린 중국 민족이 유입된게 아니라 우리의 터젼이 만주 일대와 지금의 중공 화북일대 이기 때문이다. 중공이 동북공정등을 치밀하게 추진 하는건 이런 사실 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통일을 대비하여 분쟁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중국 영토의 대부분이 우리 대조선의 영토였지요 한반도는 그저 그 안에 부속 국가 였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주요 민족인 화하족이 언제부터 중국의 영토의 주류였던가요 동이족에 짓눌려 살던 노예가 아니던가요 언제부터 중국의 수도가 북경이었던가요 저들이 북경땅을 차지한 것은 명나라 3대 영락제 때 입니다. 그 이전엔 북경근처로는 감히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이성계가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명태조에게 중원의 영토를 모두 들어 바치면서 오늘날 우리의 한반도 역사가 생겨난 것 입니다. 즉 본점은 중원에 두고 분점을 본점화 한 것 이지요 본점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분점이 본점화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겠습니까 정통성을 잃게 됩니다. 정통성을 잃게 되니 동북공정 같은 괴이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이지요 그들이 뻔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족속이라 하더라도 이런 문제에 아무런 대책이 없이 주장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왜 인지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에서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죠. 한국, 몽골 등은 이른바 몽골리안으로 북방민족 계열이고(빙하기 동남아시아 남방으로부터의 유입도 있었다는 순다랜드설도 있고요) 중국은 남방계 아시아 쪽입니다. 지역으로 치면 만리장성까지가 중국, 그 위는 북방, 엄밀히는 고조선, 부여 등 한민족의 영토였죠. 중국이 분열되고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영토입니다. 우리의 고대사가 묻혀있는 지역인데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황하문명보다 1,500년 이상 앞선 홍산문화를 자기네 것이라 우기며 한국학자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죠. 홍산문화는 중국 유물과는 유사함이 전혀 없으며 옥 등의 유물은 고조선등 한민족 문화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홍산문화를 인정하는 순간 아시아 문명의 발원지라 자랑하던 황하문명의 상징성이 부정되므로 아예 홍산문화도 자기네 것이라 주장하자.는게 동북공정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자기네 역사라 우기는 거죠. 한복, 김치가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중궈다운 발상입니다. 중국이 분열되야만 하는 이유죠.
@@hurst110 그럼 저기서 어떻게해야 되는지 말해볼래? 저 시대상황에 최선의 이익을 챙긴 선택아닌가? 그리고 나는 일제에 앞장서서 나라 팔아먹고 이득챙긴 사람을 싫어하지 살자고 굴복한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음. 일제에 강제점령 당하지 않는 방법도 그때 없었다고 본다.
@@user-th9my3nl4j 이양반이 무슨 꿈꾸세요? 굴종의 시대는 이성계가 헸어요 이성계와 주원장의 밀약으로 고려의 영토였던 만주와 중국동부해안지역을 활한번안쏘고 고스란히 명나라에게 양도했어요. 여기서 만들어진 게 가오리빵즈에요 총한번 안쏘고 활한번안쏘고 안쏘고 만주와 중국 동부해안지역 즉 고려의 광활한 영토를 포기했어요 그리고 조선은 국가로 승인받는 조건으로 400년간 중국의 속국 즉 식민지로 살았어요 중국으로 부터 독립한게 고종말년입니다 그리고나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구요 그래서 우리를 한의 민족 이라고 하는겁니다 울분 울화통 터지는 한을 가지고 수백년을 식민지속국으로 살았으니까요 반대로 고려는 몽골과 함께 같은 민족이라서 세계를 경영하는 글로벌국가로 살았어요. 금속활자도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발명한게 아니라 고려인이 문화전파했어요 바티칸은 고려국왕에게 편지까지 보냈고 이게 수백년이 지나고 최근에 세상에 공개되었어요. 가장 안타까운건 몽골이 세력이 약화되자 최영장군의 엄청난능력과 고려의 힘으로 중국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었는데 이성계와 주원장의 손잡은 밀약과 반란으로 고려는 멸망하고 영토도 다 뺏기고 한반도영토가 조선의 영토가된겁니다 그리고 몽골과 고려의 전쟁은 중국에서 있었어요 황룡사9층목탑이 불타고 백성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했다구요. 한반도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려고요 고려왕을 인질로 잡고 내려온곳이구요
@@j3459 궁금해서 그럽니다. 징기스칸이 고려에서 살았다는 사료가 있습니까 ? 물론 몽골에서 고구려 후신인 고려를 한족이나 타민족에 비하여 높이 평가한 것은 그렇다쳐도 징기스칸과 몽골황제가 고려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귀가 밝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 못들어봤네요....정말로...
@@user-yx7vd1un5j 고려는 만주지역과 중국동부해안지역을 장악한 강대국입니다. 고려가 망한것도 약해서 망한게 아니에요 몽골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중에 중국점령할 자신이 있어서 중국점령들어갔다가 주원장 이성계가 손을 잡는 밀약으로 맺었고 통수쳐서 망했어요. 이성계가 고려왕을 인질로 잡고 한반도로 들어왔고.. 왕을 협박해서.. 결국 고려가 망한수순. 최영장군 역시 본인능력으로 중국점령이 가능했고 자신이 왕이 되는것도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왕을 인질로 협박하고 어명을 내리니 어쩔수가 없었죠 이순신장군도 그렇게 탄압받았지만 백의종군하면서 나라에 충성하고 살았어요 옛날 우리민족의 영웅들은 경천충효 즉 하늘을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내대장부의 삶을 살려고 했으니까. 따라서 고려가 만주와 중국동부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몽골이 금나라를 멸말시키는 과정에 몽골군과 고려군이 만나서 대치한적도 있구요. 공자가 몽골계라서 공자의 후손들이 원나라 시절 노국공주와 같이 고려에 들어온 기록이 있어요 더불어 몽골은 인구수가 적어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고려의 귀족 왕족과 몽골의 귀족 왕족과 결혼을 장려했어요 그래서 우리쪽에서는 원나라에 살기도하고 원나라 도 우리쪽으로 오기도했죠 노국공주가 고려왕과 결혼한것처럼 귀족 왕족들의 결혼이 있었으니 몽골 황족들도 고려에서 살았을겁니다 하지만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한뒤 고려의 엘리트가 지배층이 전부 노비나 천인으로 신분격하당하고 제거당했으니 몽골황족이나 귀족등도 자연스럽게 숙청당했을겁니다 한가지 첨언하면 징키스칸의 부하중에 제베와 무칼리는 고려나 고구려계통으로 보기도 합니다
황제 자리를 두고 아릭부케와 경쟁하던 쿠빌라이에게 항복한 것이 왕조의 생존을 허락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쿠빌라이가 고구려와 고려는 다른데도 당태종도 이기지 못한 고구려가 자기에게 항복했다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고려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고 이후 원의 후대왕이 고려를 위협하면 오히려 고려에서 쿠빌라이와의 약속을 들먹이며 원조정을 압박하기도 했다.
고구려도 스스로 고려라 칭한 적이 있죠 그리고 중국어 발음으로도 고구려와 고려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소삼한을 통일했지만 유목민족들과 팽팽하게 싸웠던 고려와 여진과 거란을 복속하고 몽고초원에다 고구려성을 남긴 당대 유목민족 최강기병 고구려와는 조금 다르죠 고려는 잘 싸웠지만 수성이 중심이었고 고구려는 중국과의 일전도 선제공격으로 시작할만큼 자신감이 대단했고 말과 활을 결합한 금나라 몽고제국과 청나라로 이어진 망구다이 전략의 선구자 입니다. 벽화로도 남아있죠 빠른기병으로 원거리에서 화살을 쏘며 계속 상대병력을 갏아먹습니다. 보병중심의 군대로는 사실 대책이 없죠.
@@kihwangsong237 뭔가 소설을 쓰시는데 망구다이는 몽골 고유의 전술전략입니다. 퇴각과 역습을 통한 전략인데, 각 부대간의 긴밀한 연락과 연계가 없이는 불가능한 전략이었고 이 전략을 통해서 몽골 하나의 부대가 상대 국가의 부대에 실제 전력상으로는 열세였어도 얼마든지 전황의 변화를 통해서 절대적인 수적 우세를 상대적인 수적 우세로 바꿔 만들어나가면서 승리하는 전략입니다. 이전에 이런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던 국가는 고대에서 몽골외에 전무합니다. 몽골 자체가 농업국가가 아니었고 항시 전시체제로 긴급동원이 가능하여서 거의 대부분 군사훈련을 했던 국가고 말을 기르고 다루는데 있어서 지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국가였기 때문에 말을 이용한 빠른 통신이 가능하도록 훈련 되었습니다. 고구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수.당 전쟁사를 보면 대부분 수성을 했습니다. 소설쓰지마시고 역사를 공부하세요
원간섭기는 참 우리에게는 애매한 시대입니다. 전 세계를 굴복시켰던 몽골제국의 지척에 있으면서도 40년이나 항쟁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항쟁이 왕과 지배층은 강화도로 피해서 조운만 받아먹고 있고(좋게 말하면 지휘라고 하겠으나... 글쎄요), 백성들은 몽골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기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삼별초의 끝없는 저항 정신이 눈물겹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항복은 무신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그들에게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반동적인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백성들의 피폐해진 삶을 생각한다면 항복이 맞겠으나, 이를 위해서 우리 나라가 지도상에 없어져 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몽골 대신 실제로 우리가 지배를 당했던 일본을 대입해 본다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볼 수도 있을겁니다) 항복한 이후로는 원종이 줄 한 번 잘 서서 원의 부마국이 되어 자주권을 보장받지만, 결코 당당하게 속국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겁니다. 그렇다고 "지배당한건 지배 당한거지 간섭기는 무슨 간섭기냐. 뭘 그렇게 국뽕주입 하느냐!" 라고 단순하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강연에서 말씀하셨듯 우리 백성은 우리 양식을 지킬 수가 있었고, 명목상으로나마 고려라는 조정은 존립을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랑스러워 하기엔 너무 부끄러운 시기이지만, 그렇다고 국뽕이라며 마냥 자학하기엔 굳이 그럴 필요 까지는 없지 않은가 싶은.. 원간섭기는 우리에게 그런 시대인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임용한 박사님 말씀으론 항복한게 아니랍니다. 실제 항복하러 간거 맞고. 그것도 함경도 일대 땅을 원에게 양도하면서 항복하러 갔죠. 그런데 가보니 원은 왕위 계승문제가 있었고. 항복 하러 갔다가 원과 동맹을 맺습니다. 항복 이후에 부마국이 된게 아니라 동맹으로 부마국이 된거죠. 당시엔 동맹이라고 같은 서열이 되는건 아니기에 형님국가 아우국가 이런식이죠.
@@jeichina76 전작권 있던 없던 상관 없음. 전작권이란. 한미 연합사령부가 있고 거기 사령관이 미군이란 말임. 그리고 연합사령부 소속 부대도 우리나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음 다 빼버려도 상관없음. 이러면 연합사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거지만. 그리고 미국이 참전하는 전쟁에서 미국이 작전권을 가지지 않는 경우는 2차대전 이후로 한번도 없음. 미국이 작전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음. 우리나라가 잔작권을 가지고 오고. 만약 전쟁이 났을때 미국의 참전을 원하면 다시 미국에게 작전권을 줘야함.
식문화.. 예전에 소고기에 대한 다큐가 있었는데. 소고기를 제일 많이 먹는다는 아르헨티나가 소고기를 구분하는 부위보다 우리나라에서 소고기를 구분하는 부위가 2배이상 많다고 했었죠. 우리가 소고기를 구분하는 것이 40여 부분이었는지.. 80여 부분이었는지 혼동스러운데, 조상님들은 아주 자잘하게 나눠서 드셨다는 것..
@@user-uc1zz8sg5x 단지 그 이유 만 일까요? ㅋㅋ 몽골이 먼저 항복한 한인들에게는 차별정책을 펼쳤어도. 고려인하고는 혼인을 할 수 있게 하고, 그의 후손이 황제도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단지 예뻐 보여서? 솔직히 예쁜 한인(중국인)들이 없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몽골과 고려는 먼 친척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고려가 살아 날 수 있었던 점이고요.
고려 역사 진짜 재밌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 국방티비 토전사..인데 아쉽게 종영됐죠. ㅠㅜ 특히, 고려사에 등장하는 3적, 거란 여진 몽골 순서대로 전쟁사 전후 상황이 자세히 나옵니다. 아쉽게도 잡지사에선 여진과 전쟁은 안나오는군요. 소드마스터 척준경장군도 안나오고... 잡지사도 이 정도로 분석할 수 있는 시간만 있으시면 얼마든지 재밌게 풀어주실 수 있을 거 같은데 갠적으로 좀 아쉽네요. ㅠㅜ
놀라운 사실은 강제로 부마국으로 만들었다고 학교에선 가르쳤지만 (요즘은 모르겠음. 아무튼 이원복 교수 등도 그런식으로 책을 쓰셨고...) 고려에서 먼저 부마국이 되겠다고 요청을 여러차례 한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지요. (일제 시대 관련 역사는 더 왜곡돼 있지요. 일본인들이 맨날 조선인 두들겨 패고 죽이고 강제징용하고 그런 것처럼 써놨음) 암튼 그리고 그것은 무신 정권에 휘둘리던 고려 왕이, 원나라 사위가 되어 무신들을 누르고 왕권을 확립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읍니다. 물론 30년간의 대몽 항쟁 자체도 자주의식이 투철해서라기 보다는, 무신들이 정권을 잃을까 두려워서 대응한 차원이 '좀더' 컸다고 할 수 있읍니다. 고려 본토는 도륙이 되어도 강화도 만큼은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강화도에 지금은 다리를 놓을 정도로 가깝지만 몽고군은 그 가까운 바다를 건너갈 수가 없었지요. 육지에서는 세계 최강이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