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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함창전투 #5, 국군 1사단 함창 부근 전투, 국군 1사단은 문경 공격을 중단하고 함창으로 철수하여 군단 서측방 방어임무를 수행하라! 

교양선택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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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에서 재편성을 마친 국군 1사단은 7월 26일 정오 무렵 함창에 도착해 국군 6사단을 위협하는 북한군의 후방차단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1사단장 백선엽 준장(7월 25일 상주에서 준장으로 진급)은 11연대를 금룡리, 12연대를 막곡리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갖추게 했습니다. 13연대는 검한리에 전개시켜 국군 2군단의 서측방을 방어하게 했습니다.
이 무렵 국군 6사단은 윤춘근 중령이 지휘하는 1연대를 증원받아 조봉-작약산 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으며, 점촌과 함창 사이에 진지를 구축한 미 25사단 예하 포병대와 유엔 공군도 포격과 폭격으로 6사단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2군단장 김무정 중장은 문경에서 점촌으로 이어지는 3번 도로 축선에서의 돌파가 여의치 않자 최광 소장이 지휘하는 북한군 1사단을 신현리 부근에서 방어로 전환하는 대신 최용진 소장의 북한군 13사단을 함창 서북쪽의 농암리 방면으로 우회시켜 국군을 양익에서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북한군의 움직임을 파악한 국군 2군단장 유재흥 준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군단 서측방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군단 우익에 있던 1사단을 좌익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7월 27일 23시에 1사단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1사단은 문경 공격을 중단하고 함창으로 철수하여 군단 서측방 방어임무를 수행하라!”
명령을 수령한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오정산 일대에서 북한군 후속부대를 견제하고 있는 12연대를 즉각적으로 철수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국군 6사단장 김종오 대령과 협의하여 박기병 대령이 지휘하는 12연대를 이 지역에 계속 남겨두고 6사단의 작전통제를 받도록 하는 대신 6사단 19연대의 1개 대대를 배속받기로 합의하고 2군단장 유재흥 준장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백선엽 준장은 11연대와 배속 받은 김용기 소령의 19연대 2대대를 함창으로 철수시키고 예하부대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1. 적은 6사단 전면을 압박하면서, 후방지대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일부부대를 투입해 992번 도로를 따라 동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 사단은 7월 28일 06시를 기하여 13연대가 점령하고 있는 국사봉과 366고지 사이의 방어진지를 보강하고, 992번 도로를 따라 공격하는 적을 저지 격퇴하고자 한다.
3. 13연대는 이안천 남쪽 진지를 28일 06시부로 11연대에 인계하고, 국사봉의 1개 대대는 06시부로 동 연대에 배속하라. 연대(-)는 212고지-366고지를 점령하여 동진하는 적을 저지 격퇴하라.
4. 11연대(13연대 3대대, 19연대 2대대 배속)는 동막리-지평리 간을 점령하여 동진하는 적을 저지 격퇴하라.
5. 12연대는 27일 22시부로 현지에서 6사단의 작전통제를 받아라.
6. 협조지시
가. 인접부대와 상호 협조하라.
나. 포병지원은 30일 이후부터 가능하다.
7. 보급 및 행정은 현행절차에 따른다.
8. 지휘 및 통신
가. 유선을 주 통신수단으로 한다.
나. 사단사령부는 2군단사령부와 같이 함창중학교에 위치한다.
국군 1사단은 7월 28일 06시부로 2군단 서측방인 동막리-366고지 간의 방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май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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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7   
@user-gd1ln8zn8r
@user-gd1ln8zn8r 21 день назад
쪽뱌리 백선엽 군사편찬까지 쪽바리 시각에서 쓰고 뒤진 새끼 그만빨자 작금 육사새끼들이 똥별 배출구로변질된거다
@user-bt7hc2jw1e
벤플리트 : 당신의 군단은 어디 있습닊?
@지투1
이제 조금만 더 재밌어지면 밥 먹으면서 시청 가능 편집자님
@user-cx2kg8im5n
본격적인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시작이군요.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께 늘 고맙고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6.25전쟁의 상세한 전투사를 알려주시는 교양선택 전쟁사 채널의 운영진의 노고에 늘 감사함을 느낌니다.
@user-jx3tw5vz2h
여차하면 대구 뚫려서
@user-tl9fz2gf1q
항상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user-fe7st6gv3z
나의 목숨을 받쳐 충성해야 할 상관이 계급만 장군이지
@user-vy9qh9kz1w
고맙습니다
@hybbikkim4580
보기전에 댓글부터 답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user-gl7eh4xf1u
감사히 잘 봤습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
@luxor617
경부축선 보다는 지형적 특성상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군요. 이런 노력과 희생으로 북한군 전력을 소모시켰기에 결국 낙동강방어선도 지킬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user-ep5ur2og3c
자유의 책임
@user-ox7nz3re2u
7월말쯤에는 국군도 전투력이 살아난 듯하다.
Далее
МЕСТЬ МАЛОГ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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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едакция. News: 128-я недел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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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제 1024호-철원부근에 남침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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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46회 함창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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