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찍으려면 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으로만 한정해도 하루종일 영화만 봐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가 제작됩니다. 그런데 이 재능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만든 영화 대부분이 그 존재조차 어필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렇게 리뷰로나마 볼 수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 시스템을 만든 자는 여자 자신이 아닐까요?(혹은 여자에게 초능력을 부여한 존재) 여자는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아이는 아직 살아있으며 자신은 아이를 구하려고 애쓰려는 중이라는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는, 스스로를 속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기억을 조정하는 공간 이라는 설정을 만들어냈고 남편이나 특수부대원도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개연성이나 현실감이 없는 것 또한 어짜피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고 극한의 상황 속에 자신을 내몰면서 나는 아이를 살리려는 거다 라고 믿고싶은 거죠..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죽어버린 딸과 남편은 되돌릴 수 없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기억 속에서 아이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이가 존재조차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은 더 슬픈 일이기에 그 선택을 거부하고 고통을 반복하는 결말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네요. 좀 허술한 부분들도 있지만 자식을 제 손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자신을 영영 고통 속에 가둘만큼 크다는 걸 신박하게(?)표현한 작품인 듯 하네요 ㅎㅎ한편으로는 그냥 아이가 존재하는 설정 속에서 영원히 거짓된 기억과 살면 안되는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구요. 깔끔한 요약과 답답하지 않게 결말까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쉽게 생각해서 여주인공은 무한 루프를 반복하고 있는 거네요. 항상 마지막 3단계까지 클리어하고 기억의 소거 직전까지 가지만 딸과의 추억과 딸에 대한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기억 소거를 거부하고 다시 실험실로 되돌아가 딸이 죽었단 진실을 잊고 딸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자신이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놓지 못한 채로 영원히 목숨이 다할 때까지 반복하겠죠.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딸을 죽였단 죄책감으로 인한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 같은 것 이겠지요. 한편으론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ㅋ 저런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저렇게 스스로를 가둬서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자멸하는 것이. 근데 한편으론 저 영화 속 세상에선 저런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지닌 존재가 제어가 안되고 제어할 방도가 없다면 차라리 저게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드네요.
트라우마와 반복강박에 대한 얘기인 것 같네요. 사람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사건을 겪으면 방어기제로서 해리를 겪게 됩니다. 트라우마 경험 자체를 잊는거죠. 이건 자의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본능적 행위라서 내가 그런 경험을 했는지, 해리를 겪고 있는건지도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트라우마 사건에 관한 감각 및 감정이 무의식에 남아 있어서 트라우마 사건과 비슷한 상황 속으로 본인을 끊임없이 밀어넣게 되는데, 그것을 반복강박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재조정'이 아닌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반복강박이 다시 이뤄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결말부를 보니 저 리부팅 시설을 처음 쓰기로 결정한 것은 여주 스스로인 것 같습니다. 능력으로 딸을 잃은 죄책감 때문에, 능력 각성을 통해 딸을 살린다는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이를 성공하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던거겠죠. 그러나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고 저렇게 스스로를 반복되는 트랩에 가두는 결과를 만들었네요.
아주 흥미롭고 미미하고 감동적인것 같은 영화네요. 이 공간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만들어낸 공간으로 마지막에 보면 딸을 죽인 기억과 그에 대한 죄책감을 없엔다고 나왔는데 1공간(즉 한 공간의 기억)으로 만족을 못하고 즉, 다음 기억의 나(영화의 처음)는 죄책감이 플릴 거라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즉, 나의 공간에서 반복(정확히 갇혔다라는 뜻)하기로 한거죠. 참 좋은 영화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