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에 나온 [봉숭아]는 정말 나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다. 강원도 산골마을 신림에 살던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심은 장독대 옆의 봉숭아 꽃을 때가 되면 볼 수 있었고, 그러한 때에 어머니는 가끔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 놓으시고는 아들, 딸의 평화를 기도하시기도 하셨다. 때가 되면 우리는 동네친구들과 모여 붉은빛과 분홍빛의 봉숭아꽃을 곱게 빻아 손톱❤에 올려 문종이나 비닐로 감싸고는 무명실이나 딱근으로 꼭꼭 묶어 봉숭아 물들이기를 하였고, 이후에 우리 모두는 다같이 모여 봉숭아 꽂물이 지기 전에 각자의 소원을 빌기도 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 모두는 조금씩 그리고 훌쩍 훌쩍 커갔던 듯 하다. 지나보니, 어머니께서 봉숭아를 [금사화]라고 하시면서 항상 부엌과 장독대 근처에 심으시고, 정한수를 떠 놓으시면서 아들, 딸의 무운장구를 비신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살모사 등 독사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함이시기도 하였고, 늘 주변을 깨끗하게 정제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자 함이셨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우리가족을 위하여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 놓으시고 기도를 하시던 어머니, 내 특공연대 근무시절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시어 정월 보름 삼봉산에 오르샤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나는구나...이제 주변에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이 하나 없지만 지난 날의 아름답고 시린 메모리는 은은하게 뇌리에서 회오리치는구나...
@@davidkim4599 어우 대 선배님이시네요. 제 고향 신림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소재이고 지리적으로는 원주에서 제천가는 중간 정도, 또는 영월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면 소재지입니다. 저 역시 학군장교로 89년도에 702특공연대 등 에서 복무하고 전역했습니다.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 누나들 따라서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 본 적이 있는데.. 백반(?)을 함께 싸서. 시골에는 아직도 이런 놀이가 남아있는지.. 집집마다 큰 꽃 피는 봉숭아 씨를 구해서 해마다 심고 꽃피기를 기다렸지. 그리운 지난 세월, 도시의 신세대들은 이런 추억 모르리라. 이 노래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세대임..
생애최초 봉숭아 손톱에 물들여 준것도 내 아버지 꽃반 잎파리반 소금조금 .초저녁 비닐종이에 광목실로 동여매주고 새벽녘 손톱에서 빠져나간것도 있었으나 며칠동안 손톱언저리까지 물들게 빠질때쯤 예쁘게 제 색깔을 내던 봉숭아 물 유치윈 다디던 딸아이에게 그녀는 기억이나 할까요 못해준게 너무 많아서 생각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