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어린시절삶이 성인이된후 성공하면 자신의 자격지심에 반격하고자 큰일을벌려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높이고자하는 마음이 참 안타깝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주시고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과거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ㅋㅋ전형적인 좌파식 해석같은데 ㅋㅋㅋㅋ 농민출신이 관백 자리에 오름.. 감히 쇼군 자리에 오를수가 없음 명분도 없고 다른 다이쇼들이 인정을 못하니까 ㅋㅋ 근데 봉지는 한정적인데 논공행상을 해야하고 만족을 못하면 반란이 날테니 당연히 조선땅 먹는놈 가져라로 내부 분열을 외세로 돌린거인데 무슨 개똥철학 소리입니까 ㅋㅋ 그리고 출세하려고 신발을 품은거지 충성하려고 신발을 품었다는 저런 헛소리가 참ㅋㅋ
이순신을 영웅으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주관이므로 아무래도 좋지만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일본군이 무장하기 전 첫 2개월뿐이다. 일본군 배가 대포를 장비하고 곶에 포대를 설치하자 조선 수군은 무력화되어 연전 연패였다. 다음은 상황과 그것이 쓰여 있는 문헌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뒤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비만에 시력도 나쁜데다 촌마게가 아닌 진성 탈모였으며 일을 결정하는데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다보니 셈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노부나가가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걷어차며 뒷간 돼지가 어줍잖게 똑똑하니 이걸 어찌 써야 좋겠느냐며 모욕을 주었다는 민담이 있긴합니다.
멘탈 만큼은 최강이다. 바늘장수 변소지기 마부 신발꾼 거치고 거치고 거쳐서 결국 전국통일 태합. 근데 말년엔 무슨 노부나가 귀신이라도 씌였던건지 스타일과 맞지않은 불 같은 과격한 행동과 판단을 많이 했다. 히데요시의 마음 한 구석엔 자신의 롤모델, 패왕이자 이상형이였던 노부나가가 죽는 순간까지 자리잡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단한거지, 일본이 그 정도로 유연한 사회는 아니었음. 물론 가지고 있는 기술이 뛰어나다면 어느정도 잘먹고 잘 살수 있었지만 조선만큼이나 폐쇄적인 계급사회였음. 열심히 노력한만큼 얼마든지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건 판타지;; 그나마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기술자라면 도공 정도였을거임.
3명 다 그당시 일본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던거임 히데요시 같은경우 밑에 하인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무사계급 더 나아가 오다에 유력한 영주가 된것이고 이에야스 같은경우 가문이 거이 이마가와에 속국이었지만 벗어나 독립적(미카와가신단에 충성심)이고 강력한 영주로 거듭난것이고 노부나가 같은경우 그당시 보편적 생각과 다른 혁신적인 생각과 마인드로 성공한것이죠 오다가 절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저당시에는 영주 승려 잇키(민병대) 강력했슴니다 오사카가 그당시 승려들에 총본부여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승려들이 오다가문을 싫어했기때문에 엄청난 갈등이 일어난것이죠 절이 영지를 가지고있는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을 테지만 당시엔 승려들의 권력이 막강했다고 하더군요.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을 대부분 컨텐츠에서도 다루는 걸 보면. 대놓고 정치를 하지 못했을 뿐. 조총을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도 하고. 다른 영주와의 싸움보다 그들과의 싸움이 가장 치열해 보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따라했다면 조조의 하비성 공략을 따라했다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하비성 공략도 연의서술이라 실제로 수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살수대첩은 수공이 아니라 보급이 부족해서 후퇴하던 수나라군이 도하하는 상황에서 공격해서 궤멸시켰다고 하네요 수공으로 궤멸시켰다는건 오해였다고 하네요 수십만명 쓸어버릴 위력이면 진짜 큰 댐을 지어야하고 현대에나 겨우 가능할거라면서요 설령 그 시절에 그런 댐을 짓는게 가능하다쳐도 워터파크에서 파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 수장시켜주세요~"하면서 멍청하게 있어야 가능하다면서요
척추관협착증. ‘척추관협착증’이란 척추 가운데 관 모양의 속이 빈 곳이 좁아져 허리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3년 7월경 허리 통증이 극심하여 몹시 아플 때 소위 강남의 유명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더니 척추전방전위증과 척추관협착증이 심하다고 하여 수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으니 나사못으로 허리 뼈를 고정한다는 설명을 듣고 수술 받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후 불교에서는 혹시 허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신비한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던 중 고통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니 원인을 알아서 제거하면 된다는 것을 배우고, 허리 통증의 원인이 중력임을 깨닫고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등산과 역도 등 운동으로 허리를 튼튼하게 단련하여 큰 불편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병원에서는 제가 척추관협착증과 척추전방전위증세가 심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큰 어려움 없이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할 수 있는지 궁금하여 부산에 있는 K정형외과 원장에게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이 실제로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즉, “ 척추신경을 보호하는 척추관은 튼튼한 뼈로 된 구조물로,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구조물이 아니고, 설령 나이가 들면서 척추관이 조금 좁아지는 퇴행성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척추신경은 충분한 여유 공간을 두고 보호받게 되어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현재까지 많은 환자를 수술했지만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답을 해 왔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다면 단순히 허리가 아픈 정도가 아니고 신경이 마비되어 설악산 대청봉을 즐겁게 등산하거나 역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리 병은 맹장처럼 한번 수술해서 낫는 병이 아니라 ,배 고픈 상태를 삼시세끼 밥 먹어서 없애듯이 운동으로 허리 주변근육을 강화하며 관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허리 통증으로 수십 년간 고통을 당하고 극복하며 철저히 검증한 결과입니다.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 서초동 졸저에는 히포크라테스와 고대 그리스 의사들의 허리 치료 방법도 소개하였습니다. 이글은 로마교황청 WHO.,미국대통령. 하바드대학교 의과대학 주한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이태리.스웨덴 대사에게 보내드렸습니다. Lumbar spinal canal ‘Lumbar spinal canal” is a disease that causes back pain due to narrowing of the tube-shaped hollow part of the spine. I went to a famous hospital in Gangnam to take an MRI around July 2003 when my back pain was severe and I decided to operate because I heard that my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were severe. However, when I asked what and how to do the surgery, I heard that they would fix the waist bone with a screw nail, so I gave up on getting the surgery. After that, I thought that there might be a secret to strengthen my back in Buddihism. And while studying at Dongguk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Buddhism, I learned that pain must have its cause, so I can remove the cause on my own. Realizing that the cause of back pain is gravity, I train my back strongly with exercises such as hiking and weight lifting that can overcome gravity, and now I live a daily life without much inconvenience. Is there actually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hospital said I had serious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I was curious about how I could climb Daecheongbong Peak of Seorak Mountain without much difficulties, So I asked head of K Orthopedic in Busan if there was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doctor said that there was not such a disease. In other words, he said, “The spinal canal that protects the spinal nerve is a strong bone structure, not as loose as experts explain, and even if the spinal canal narrows down a little with age, the spinal nerve is protected with sufficient space. So far, I have operated on many patients, but I have never seen the spinal canal press against the nerves”. I’m not a doctor, so I don’t know if the spinal cord is actually pressing against the nerves. However, if the spinal canal presses down on the nerves, it will not just hurt your back, but your nerves will be paralyzed, so you will not be able to enjoy hiking at Daecheongbong Peak in Soeraksan Mountain or weight lifting. I learned that spine disease is not a disease that can be cured by surgery like an appendix surgery. Instead, you should strengthen and manage the muscles around your waist by exercising. It is like to get rid of your hunger by eating three times a day. This the result of my thorough verification after decades of suffering and overcoming back pain. Hie-Sook Lee Author of the book “Why do people have neck, back, and knee pain?” 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저자 이 희숙
히데요시 우리가 한국이어서 저평가 하는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최고의 참모중 하나인듯 저사람 계획이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고 명나라를 정복하는건 실제로 가능했을거라고 보임 만약에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영국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제국주의 의 시작을 400년가까이 앞당길수 있었을 테니 .... 이순신 아니었으면 조선도 멸망하는게 정상이었음
명과 조선의 사이의 정치역학에 대해 일본이 정보가 부족해서, 정명가도가 문자 그대로 지나가기만 하겠다고 일본이 순진한 발상을 했다는 해석도 있더군요 ㅋㅋ 실제로 일본 전국 시대에 각 번의 영주들끼리 그런일이 자주 있었으니, 그 논리가 조선에서도 통할 줄 알았던거구요. 당연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죠 ㅋ 형님으로 모시는 나라를 치러 가라고 길만 빌려주는게 말이 안되죠. 그건 길만 빌려주는게 아니라 동맹국 뒷통수 후려치는건데
하여튼 또 헛소리하는 애들이 있네... 이순신 장군의 역활이 상당히 큰건 맞지만 전쟁의 승패 결정적 요인은 명나라 참전. 이순신 장군은 보급로 물자 물동냥을 끊긴 했지만... 명나라가 대포같은 무기 들여와 참전한 군인이 10만이 넘는다. 조명연합군이라 하지만 실제 조명연합군에 조선군인 숫자는 별로 없었고 전국적으로 산개해서 산속 게릴라 소규모 의병 부대들이 많았던것이고.. 어쨌든 보급로가 막히고 명나라 10만군대이지만 여의치 않을시 더 참전 안한다는 보장도 없기에 불안해서 일본군이 후퇴를 한거임. 만약 명나라가 참전안했다면.... 참전 안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약 명나라가 미친척하고 참전을 안했다면 전라도도 거덜났음.
처세가 매우 강했지요. 주변국이 모두 형제국이었습니다. 화살 3개 이야기도 이집안 이야기지요. 이집안의 봉지 조슈번에서 사무라이들이 자신들만의 신념을 이념화하고 일어나것이 메이지유신이고, 조선을 삼키고 전쟁을 통해서만 부국을 추구하는 국국주의 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아베 외조부가 그지역 출신의 우익 정치인이죠. 물론 아베도 그 영향하에 있고... 그곳이 지금 우리가 가깝다고 많이 놀러가는 야마구치현입니다.
@박준용 일본 야마가타현의 사찰(三宝寺)에 보관된 오다 노부나가의 초상이라고 하는데, 사찰에서 설명하는대로 실제 오다 노부나가를 보고 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대 예수회 선교사였던 Giovanni NIcolao의 작품이라 설명하지만, 그는 오다가 죽은 다음인 1583년에 일본으로 보내진 화가라서, 설령 그가 초상화를 그린 장본인이 맞더라도 오다 노부나가를 직접 보고 그렸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한 이것이 16세기 유럽 회화나, Giovanni NIcolao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그림들과는 기술적인 면이나 화풍에서 이질적이기 때문에 그가 그렸다고 보기도 어렵고,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이 유럽식 회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근대나 그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13:50 첨언을 드리자면 이에야스의 본거지는 나고야 옆동네였던 오카자키쪽에 있었다가 히데요시가 득세하자 도쿄로 쫒겨납니다. 근데 여기서 병력자출을 명령하면 무조건 또다른 내전으로 갈텐데 이에야스는 내전으로 끌고가기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이미 오다 잔존세력과 결탁해서 한번 붙어봤는데 히데요시가 처참히 깨지고 강화요청 해올정도로 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