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 장미씨 남매는 김일성대(북한 서울대), 김책공대(북한 서울대공대)와 더불어 북한 3대명문대인 리과대학(북한 카이스트)을 나온 수재입니다..장혁 장미 어머니를 탈북시킨 지금은 장혁씨 배우자가 되신 김주경씨도 북한 명문고인 청진일고 나와서 먼저 탈북하여 특례입학이 아닌 정시수능봐서 교대졸업했음..다들 똑똑한 인재들임..
몰상식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겠어요. 그래도 잘 버텨주며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나누어 주니 고맙고 기특합니다. 모든 탈북하신 분들을 응원합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장점화 하고 좋은 것으로 바꾸며 날마다 새로운 자기로 만들어 가는 좋은 내일을 기대합니다. 응원합니다!!!
똑똑하고 유쾌한 장미씨! 반가워요😊 저는 미국에 이민 온지 40 년이 됐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제가 처음 이민 와서 느낀 거와 진배가 없네요. 하지만 첫째로 나와 장미씨의 시작에서 다른 점은 그래도 장미씨는 한국어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저에겐 영어가 참으로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했든지 미국에선 말은 못 해도 잘 해낼 수있는 몸으로 때울 수있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현지 미국인들도 때로는 이해할 수없는 한국식행동이 참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도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이라면 참으로 두렵고 경계의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해 주시가 바랍니다😊
똑똑한 장미씨를 응원합니다.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보란듯이 이겨내고 멋진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장미씨의 능력을 믿습니다. 부디 북에서 꿈꾸던 자유를 이곳 대한민국에서 맘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훗날 탈북하길 잘했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삶의 환경이 바뀌면, 소소한 이슈라고만 할수없지만, 현명하게 극복하신거 같아요. 스스로 깊이 바라보며 끊임없이 환경과 관계맺기를 하는 과정이 모두에게 해당되는거 같아요. 이주민이 아니어도... 왜? 표면적인 적응은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하는거니까. 장미씨는 충분히 존재가치를 추구할 준비를 마친 사람으로 보입니다. 천천히 세상을 돌아보시고, 주어진 조건하에서 다음 도전을 기대합니다. "괜챦아" 라고 스스로 되뇌었던것 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것 겪고 장하게 극복했군요 👏 👏 👏 차별과 소외는 어디나 있답니다. 꽤 오래 전 50세에 회사를 그만두는 큰 결단을 내리고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는데, 젊은 학생들의 말을 빨리 알아듣지 못 했고 배려도 받지 못 했어요. 태블릿이 처음 나왔을 때였는데, 한 학생이 가져온 것을 빙 둘러 구경하길래 나도 그 사이에 꼈죠. 그런데 내 손이 태블릿에 닿는 순간 주인인 학생이 홱 잡아뺐지요. 나도 장미씨처럼 낭다른 스펙(^^)에 자긍심 있게 살아온 터라 50평생에 그런 일을 처음 당한 터라 7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그 무안함이 선명하게 생각나네요.
한국에도 찐따들 많습니다. 외국에서도 자기 나라에서 변변치 못한 인간들이 인종차별을 더 하듯이, 한국에도 별볼일 없는 애들이 꼴같이 않게 "너네 나라에는 이런거 없지!?" 그러는겁니다. 말씀하신것처럼 한국에 좋은 사람들이 휠씬 더 많다는거 느끼시죠? ^^ 그러니까 그런 불쌍한 애들은 일일히 신경쓰고 상처받지 마시고(그냥 무시하시고) 지금처럼 항상 행복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