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가 보았던 사극이 생각이 나네요 대원군과 민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 두명이 정말 치열하게 외세에 의존하여 자기자리를 지킬수록 나라는 점점 다 돌아올수없는 나락길로 가고 그때도 그드마를 보면서 꼭저래야만 했나 나라는 망하던지 말던지.. 이채널을보니 그때 그 드라마가 생각이 나네요 그끝없는 욕심이부른 왕국의멸망 ..그것도 그별볼일없는 섬에사는애들한테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ZzuXi-dUhbM.html 국모를 일본정부가 파견한 자객에의해 칼로 약간베어 저항못하게 한상태로 강간하고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남편과 자식이 보는 앞에서... 사죄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되나요
흥선대원군이 모은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국가예산을 고종과 민자영이 1년만에 탕진했죠...또한 민자영은 임오군란으로 피난 길에 올랐을 때 한 노파가 왕비를 비난하는 말을 듣고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권력잡고 그 마을 전체를 없애버렸다죠...아무튼 임오군란때 민자영이 죽었어야 했는 데...살아남아 역사의 비극을 만들었죠
그것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 내용이고 매천야록은 야사입니다 황현이 도성밖에서 소문으로 듣고 쓴 기록이라서 팩트체크가 안된 기록입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때 모은 10년예산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만 했을뿐 한일이 없지만 고종과 명성황후때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이게 제대로된 역사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뜻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일본에 대한 치욕의 역사를 잊지말고 일본에 평생 복수하자는게 아니라 왜 나라의 정치가 썩고 국가경쟁력을 잃고 주변 열강에 먹이감이 될수밖에 없었는지 문제를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객관적으로 찾고 이를 되풀이하지않게 개선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고 자기반성은 없으며 조선은 찬란한 역사이고 민비는 명성황후로 뮤지컬, 드라마, 영화로 신격화되고있으니ㅉㅉ 죄다 역사를 잊은 민족들 뿐입니다.
그게 전형적인 노예근성이죠 영국과 손잡은 일본이 갑자기 성장하게 된 계기고 한국도 힘이있었다면 여러나라와 연합해서 힘을 키울수있었음 힘이없었기때문에 조선과 손을 잡지 않고 서로 수탈만 했을뿐 힘없는 상태에서는 개항해도 아무소용이 없었고 흥선대원군의 방식이 옳았긴 했고 너무 늦었것뿐 늦은 이유는 노론과 안동김씨때문이잖음 이미 조선은 흥선대원군 몇백년전 실학열풍이 불었음 일본보다 월등히 앞서 일어난것이고 문제는 노론에 의해서 실패로 끝난것
기본적인 유교 사상이 뭡니까? 꼰대식 바른생활아닙니까 계급사회와 작위적 해석 맹목적인 믿음이 문제지 부모에게 잘하는게 문제입니까? 세종대왕도 유교사상의 믿음이 초월적인분 아닙니까? 그 초월적 믿음 아래 자식들에게 쓸 문자도 만들고 과학적 기술도 드높이고 여성이 임신하면 남편과 같이 출산휴가도 몇달을주도록 한것도 유교적 바탕 아닙니까 분명 기독교의 하나님과 알라신은 같은 사람인데 왜 is가 나오고 전광훈 같은 사람이 나옵니까 그걸 자의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게 나쁜것이죠 결혼할 남성이 있는 여성에게 들이댄 남성이 자신의 요구가 실패하자 중매인에게 부탁했고 중매인의 요구를 여성이 거절하자 중매인인 할머니는 몇년간 그 여성에게 창기가 든 여성이라는둥 온갖 나쁜 소문내다가 그 여성에게 살해당합니다. 이때 정조가 뭐라고 했을까요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위해 한 행위 즉 정당방위라하시죠 이순신 장군도 어머니에 대한 효가 지극정성이셨고 왕에 대한 충또한 대단했죠 그건 유교적 문화가 아닌것입니까? 마지막으로 님이 언급한 것이 나쁜 유교적 문화가 문제라 한들 그걸 없애기 위해 대원군은 호포법을 시행하고 서원을 철폐하죠 분명 조선은 유교사상이 문제인건 맞지만 장점과 그걸 없애려한것도 잊지 마셨으면...
@@Jabberblabla 10%도 안되는 양반나부랭이 나라 조선 세종은 양반의 성군이였죠 노비 종모법을 만들고 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들었죠 고기를 많이 먹어서 뚱뚱했고 그로 인해서 당뇨병에 걸리고 눈이 실명직전 까지 갔죠 오죽하면 태종이 죽을 때 세종에게는 고기를 주라고 했을까요 문종은 건강한 체질이였는 어머니의 삼년상 때문에 고기를 못먹고 이어서 세종이 죽는 바람에 또 삼년상을 치르면서 고기를 못먹어서 급격히 몸이 쇠약해져서 죽으니 어린 단종이 비운을 맞게 됐죠 주자의 성리학은 실질이 아닌 이상세계를 꿈꾸는 왕도 정치죠 힘은 칼끝에서 나오고 칼은 나라가 부유해야 날을 벼릴 수가 있는데 사농공상의 신분제로 상인과 장인을 가장 경시 했으니 고려시대 까지 만들던 바늘을 못만들어 수입해 쓰는 나라 조선 연산군 때 세계에서 최초로 연은분리법을 개발하여 은을 대량생산 할 수 있었는데 사용하지 못하여 개발자 양인1명과 노비 1 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이 맥시코 다음으로 은 생산국이 되었죠 은으로 부를 축적한 일본은 포루투갈 상인에 의해 조총을 사고 제조기술 까지 배워 후일 임진왜란에 사용되었고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었다는 금속활자는 일반인에 사용치 못하게 하였고 정조 때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찍다가 걸려서 한명은 사형을 당하고 한명은 귀양을 보냈는데 후일 구한말 최초의 신문 한성일보를 찍는데 인쇄기를 일본에서 사왔죠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 양반의 나라 조선 당파싸움으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평민과 노비는 사람 취급도 못받는 나라 조선 오죽하면 조선을 여행한 사람이 조선의 관리는 면허받은 흡혈귀라 했을까 조선말 본국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엘런이라는 공사가 자신이 9만리 세계 각 나라를 돌고 세계 4천년의 고금의 역사를 공부했지만 고종 같은 군주는 처음 본다며 조선 백성들이 지옥에 산다고 한탄 하였을까 빌어먹을 조선 망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된 조선~
@@user-wl3wq8mr2b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신 상황에서 단편적으로 보니 그런 얘기를 하는것이고 근검절약이 나라의 모토입니다. 그래서 사치품을 못사니 고려이후 외교가 중단되고 코리아로 남아있는것이고 다르게 얘기하면 백성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경작지를 넓히려 했고 경작지를 넓히려니 호랑이가 천지라 호랑이 사냥을 국책사업으로 벌인겁니다. 그래서 경작에 필요한 소는 잡아먹으면 처벌 받은것이고요 그리고 고기에 대한 논리가 세종과 문종이 각기 다른가요? 세종이야 고기 마니아인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걸 까기위한 논리로 내세우니 앞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꼭 조선 까시는 분들은 일본 좋아하니 일본은 고기를 먹을수나 있었나요? 법으로 고기를 못먹던 역사인지라 턱뼈도 치아도 발달이 안되었는데? 양반 나부랭이라 한다면 일본의 사무라이들의 만행은 어찌생각하시죠? 사람을 베도 처벌조차 받지 않는 사무라이보다 못하다고 하는 논거또한 맞질 않고요 조선또한 비판할바는 많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을 고려한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사대성 유고정신같은건 압도적이지만 인권은 다 비슷비슷해요 왜 이렇게 자학사관에 빠져사시지? 그리고 은으로 일본은 조총을 삿지요? 거기엔 석화시도 있고 전쟁역사와 체계화된 무기 즉 대비가 다 되어있었고 일본은 계급층이 수천년간 무신정권입니다. 조선은 문신천무사상 평화가 수백년 사림이 정계일색하고 있던차 왕은 선조 군역의 요역화로 군대를 안가는 상황 거기다 조선통신사로 나선 김성일이 침략할 낌새는 없고 도요토미의 사람됨도 쥐새끼같아 두려워할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왕은 무능력하기 짝이 없었으나 튼튼한 배 판옥선 세종이 개발한 화포들 그를중심으로 개발된 포들 천지현황 총통 마지막으로 승자총통까지 비격진천뢰 와 영화로도 나온 최종병기활 즉 각궁과 편전 수군부터 하자면 조선수군인 이순신은 언제든 대비를 하였고 배는 튼튼하였으며 총통을 설치하여 백병전의 열세를 극복하였다. 실제로 조선수군 5이서 일본소년병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하였다. 또한 이순신이 가장 신뢰하던 장수인 이억기는 이방과의 후손으로 이성계와 같이 전장을 누빈 아들이다. 선조와 그의 신하들이 무능력하다 못해 간섭과 참견 명령질로 피해가 커진것이지 또한 경상도가 그리 밀린건 병력이 수백밖에 없는데 총병력 이십만 한부대당 약 2만의 병사를 어찌 막아내죠? 또한 박진장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경주성을 탈환하고 충청도절사인 황진장군은 전라도를 사수했으며 정문부 장군은 일본군을 개털었어요 그 승리를 기념한 북간대첩비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가져가서 돌로 짓눌러 놓았죠 진주성 1차전쟁에서 조선군이 막아내자 조선정벌은 실패로 끝나게 되자 수길이는 진주성 만큼은 짓밟아 오라고 한다. 거기들어간 황진 장군이 수천의 병력으로 수십일을 막아냈을뿐 아니라 일본 전병력과 최고의 무장들을 상대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단지 숨어있던 일본군의 조총에 의해 돌아가신후 다 죽었지만... 일본의 조총만큼이나 조선의 각궁은 위력적이고 승자총통의 위력은 뛰어났으나 가진자가 별로없었으며 조선의 무기들은 전부 조선에서 만들어낸 것들이에요 어느나라나 무능력한 왕과 신하를 둔곳은 백성이 피해를 받아요 조선만 그런게 아니라요
@@Jabberblabla 우선 바로 잡을 것은 이미 화포는 고려말 최무선이 개발했고요 조선을 비판하면 친일이 됩니까 이상한 사관을 가지고 계시네요 조선은 주자의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정도전이 설계를 하고 이성계를 얼굴마담으로 1392년 57세에 나이에 왕이 되었지요 국조오례를 만들어 통치 수단으로 삼았고 인.의.예.지 를 인본으로 실질 보다는 명분을 중요시 하는 그런 정치체제로 명나를 상국으로 섬기며 스스로 속국을 자청하는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죠 이성계는 고려 무신정변을 일으킨 이의방이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해 제거되자 이의방의 장형이 집안의 대가 끊어질까 우려해 막내를 고향 전주로 피신 시켰는데 그 막내동생의 7대 손이고 그의 집안이 함경도로 간 것은 이성계의 선대가 고을 수령의 애첩을 잘못 건드려 보복이 두려워 강릉으로 갔다가 하필이면 그 수령이 강릉으로 새롭게 부임해 오는 바람에 함경북도로 가솔을 데리고 도망쳐서 자리 잡았고 이후 원나라의 공격이 들어오자 원나라에 귀의해서 벼슬을 얻어 지내다가 원나라가 약화되니 또다시 조선으로 귀화한 것이 역적의 피가 흐르는 집안의 내력이죠 암튼 시대상을 보면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 파천을 갔을 때 백성들과 노비들은 궁궐을 불지르고 노비문서를 관리하는 장예원을 불지르고 오십만명이 노비에서 탈출했는데 그중에서 상당수가 왜군에 들어가 조선을 향해 칼을 겨눈 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적의 수급 3 만을 확인해보니 거의 조선이라서 조선조정에 알렸더니 선조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명나라에 망명을 하려 했으나 전장이 명나라로 확대될 까 우려한 명이 윤허하지 않아서 불발 되었지먀 도대체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는 무슨 일만 있으면 도망가기 바쁜데 왜 백성들 그들 자들을 섬겨야 하는지? 조선에서는 천민 대우를 받든 사기장들이 일본에가서는 사무라이 작위를 받으며 각별한 대우를 해주니 임란 때 총 오십만 명이 부녀자를 포함해 끌려 갔는데 포로 송환 때 본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불과 몇천명 대부분 스스로 남기를 바라서~ 이것도 나라겠지요 양반 나부랭이 나라 양반은 동반 서반을 일컬어 양반이라고 하고 나라가 망할 때 까지 쥐어뜯고 목숨걸고 싸웠죠 없는 죄 뒤집어 씌우고 명분만 있으면 역모로 몰아서 죽이고 그들의 식솔들은 노비로 만들어서 승자들이 나눠갖고~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노비는 전쟁을 통해서 잡아온 이민족을 포로를 노비로 쓰는데 이놈의 조선의 양발들은 얼마전 까지 친구로 지낸 식솔들 까지 노비로 삼는 이것이 군자의 도인가? 황희정승도 친구 박포의 아내를 지하에 숨겨놓고 성관계를 즐겼다는 야사의 내용을 보면 그들이 꿈꾸는 이상국가가 이런 조선인가 임진왜란 때 청나라가 도와주려할 때 오랑캐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쥐뿔도 없는 자존심에 인조 때 대가리를 땅바닥에 해딩을을 하는 삼궤구고두례의 치욕을 겪어야 하는 조선이라는 나라 망한 명나라 황제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대보단을 지어 2백년이나 제사를 대한제국 직전 까지 지낸 나라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를 계승했다고 천제단을 쌓고 제를 올린 대한제국의 고종황제 그것도 모자라 러시아 리콜라이2세의 황제등극의 윤허를 받은 고종 이런 조선을 님은 좋아하는 구려 난 쪽바라도 싫지만 조선도 싫고 짱개놈들 제일 싫어 하지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십시요. 선생님 애기듣고 눈물났습니다. 영욕의 역사를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지. 헷갈리는시대에 살고 있지만 늘ᆢ그래 왔듯이 역사는 승리와 살아 남은자들에게 유리한 그림이란것을 말씀 아니 드릴 수 없고 아직도 우리는 대통령이 자살하고 감옥가고 죄를 뉘우치지 않고 보석 신청하고 국민을 총으로 쏴죽인 자가 골프치러 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고종을ᆢ 대원군을ᆢ 명성황후를ᆢ 그리고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조상님들 한테 잘못했다고 누가 자신있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내조국 대한민국인 것을요. 건강하십시요. 말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게 되네요.. 책 영상 리뷰 잘 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마다 해석하는게 다를 줄 압니다. 그때 그 시절, 만일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망국으로 가는 흐름을 막진 않았을지, 사람들 저마다 다양한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때 왕이 고종이 아니라 다른 현명한 군주였다면 그리고 민비가 아니라 정말 나라를 생각하는 지혜로운 왕후였다면 아마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흥선대원군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가 쇄국정책을 시행함으로서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시켰다는 비판은 받고있지만 당시 집권 초기 상황이 개화정책을 쓸 상황이 아니었죠. 나라를 안정시키는게 우선이었던 상황인지라 대원군의 개혁정책, 저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원군이 물러난 이후, 정말 조선 지도부가 현명하게 개화정책을 잘 이끌었어야 하는건데, 너무나 무지했고 멍청했었죠. 고종도 고종이지만 민자영이란 년은,,,, 최악의 여자였습니다. 대원군이 민비 시해에 가담을 했다.. 전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썰이 있었던 것은 알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사실이라고 보시는군요... 어쨌든 저도 민자영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건 아닙니다. 아쉬운건 1882년 임오군란 때 우리 군인들의 손에 의해 죽었어야 하는건데, 일본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게 아쉽습니다... 정말이지 그 여자는 조선 멸망의 원흉이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자유시장경제 유지를위해 미군주둔은 필요하고, 그로인한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려왔죠. 대한민국은 중국.북한, 일본, 미국 중에 어떤 나라와 같은 국가나 사회형태가되어야 국민이 행복할까요? 우리는 어느나라에서 유학하고, 자녀들 유학보내나요? 강한대한민국의 미래 응원합니다
속상하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역사를 깊이 가르치고 반드시 민주 통일하여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에게 빈틈을 주어선 안된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음모에 다시 우리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걸 깊이 공부하는 중국과 일본이 항상 숨은 이빨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라.
우리는 말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른다. 역사를 잊지 않되 연연하지는 말아야 한다.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저 징징대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억울하고 피해자고 불쌍하다. 라고 밖에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조금만 잘난 구석이 생긴다면, 창피할 정도로 떵떵거리고 상대방을 무시하기 이른다. 우리는 중국을 이겼지만 중국은 여전히 우리를 압박할 정도로 쫒아온다. 우리는 일본은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모자른 부분들 투성이다. 역사를 잊지 말라는 것은, 아픔을 딛고 일어사라는 말이지. 누가 밥을 떠다줄 때 까지 징징거리란 말이 아니다. 우리를 지배했던 나라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발전한다. 우리를 위한다고 내어주는 것을 덥석 받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갈지 모른다. 국민를 대표한다는 자들을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 또한 욕망의 동물임을 알아야 한다...
@또삭제 와 이런 미친인간도 존재하는구나 뭐 자유주의자들을 숙청하려해? 헐 김구 살해가 어쩔수 없는 선택? 미쳤군 이런 인간들이 숨쉬면서 이땅에 존재하는게 한이다. 기본적으로 반민특위 해체는 친일파 세력과 손잡은 이승만의 자기 세력 지키기 위한 선택이지 그리고 무슨 김구 주변에 남로당 세력이 모임? 김구는 그냥 분단은 안된다고 생각한 인물이니 좌 우 합작에 힘쓴거지.. 김구의 그당시 모든 선택이 다 옳다고는 생각 안하지만 분단은 곧 전쟁이라는걸 그사람들은 다 알았어.. 너같은 무식한 토왜들하고 같았는줄 아냐? 그리고 하나 착각할까봐 쓰는데 난 너따위랑 말섞는건 치욕이라 생각한다 내가 여기 댓글적는건 니 더러운 글을 읽고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혹할까봐 쓴다. 퉤
중전도 중전인데 대원군의 권력욕이 너무 심했음...어쨌든 중전이야 임금의 부인이자 장차 임금이 될 세자의 모후로 현역이었고, 과거 비빈들이 섭정하거나 정사에 깊게 관여한 선례도 있으니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대원군은 선왕도 아니고 단지 공식적으로는 신하에 불구한 명예직인데도 자기가 왕권을 행사하고 싶어했음...게다가 임오군란 때도 폐단을 바로잡는다 건 말 뿐 난리를 틈 타 혁신적인 개혁도 없이 은근슬쩍 모든 걸 과거로 돌아가서 국왕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또다시 섭정하려고 했고, 청에 납치까지 당하고도 아직도 미련을 못버려 경복궁 쿠테타 이후에 일본 등에 엎고 허수아비 왕노릇하다가 국왕이 친러로 정권을 회복하자 공덕리에 들어 앉아서까지 몰래 일본과 내통했고 중궁전의 감시가 더 심해지자 며느리를 죽이자는 일본의 유혹에까지 넘어갔음....진짜 노추의 끝판왕;; 결국 죽을 때까지 아들 얼굴도 못보고 죽음.....큰 아들 이재면도 진작에 아버지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투머치해지자 오죽하면 중전에게 아버지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첩자 노릇까지 한 적도 있고 결국 대원군 하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유림과 최익현의 상소도 상소지만 맏아들 이재면과 부대부인, 큰 형 흥인군임...가족들마저 외면했을 정도면 국왕 부부에 대한 간섭과 권력 욕이 병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음 ㅇㅇ
국력을 키우는건 청나라에 도전이며 청나라가 조선을 지켜주니 사대하면서 나라를 지키는게 최선이였겠지 아편전쟁으로 발려버린 청을 보고나서 국력을 키울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겠지 이미 열강들과 일본이 한반도를 먹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광개토대왕이 조선에 있다고 한들 망하는건 막지 못했을터 그 안에 크고 작은 실수와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어쩔수없는 시대의 흐름
조선왕실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하나, 같은 민족인데 서로를 주적으로 삼고 미국 군대가 우리 쪽에 주둔해 있다는 현실에 대해 '민족간의 분열이라 애통하다'는 접근법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75년 전 민족주의 관점으로 비슷하게 접근하신 분이 김구선생이신데요.민족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며 미군 철수를 주장하셨죠. 김일성도 똑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625였습니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문서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북은 국제법을 어겨가며 핵을 가지고 있고 북 뒤에는 아직도 한국을 속국 취급하는 중국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게 애통하신가요? 남과 북은 이념이 다른 다른 나라입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특히 북한처럼 핵으로 무장하며 폭군행세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쓴다고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내부에서도 자꾸 이간질하고 갈라치기하는 세력 때문에 '우리'라는 의식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조선족이 우리 민족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들이 우리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나요? 돈 벌러 온 '중국인'일 뿐입니다. 절대 중국 국적 버리지 않습니다. 전쟁나면 중국군으로서 우리와 싸울 겁니다. 민족타령하지 마세요.민족이란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생긴 근대적 개념일 뿐이고 독립국가를 세우는데 유용했지만, 스탈린과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공산화시키기 위해 악용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미군철수하면 당장 국방에 문제가 생깁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떠납니다. 제발 정신좀 차리세요. 민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중요한 겁니다.민족이라는 근대적 관념의 멍에를 스스로 쓰고 국제 호구노릇하는 거 지겹지도 않습니까?
독살 아닙니다 심환지한테 보낸 편지에서 정조의 건강상태가 어떠했는지 나왔고 실록에도 고름을 짜냈는데 피가 몇됫박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는 평소에 술을 인사불성이 되게 마셨고 담배도 즐겨 피웠고 불명증과 과로에 시달렸습니다 성격도 급하고 욕을 달고 살고 울화병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원군이 현실감각이 떨어저서 쇄국을 했다라는 것이 타당하려면 통상을 할 경우 그냥 자동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다라는 공식이 성립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오히려 상당히 일찍 서구제국들과 통상을 시작한 동남아국가들은 왜 일찍 식민지로 전락했는지. 그부분부터 곰곰히 생각해볼사안입니다.
서남아시아는 동북아와 같은 유교의 관로적 국가체제인 중세가 미약했지만 동북아 3국은 그런 것이 있었다. 즉 서양이 동북아 3국을 쉽게 식민지로 만들지 못한 이유는 동북아 3국에는 유교적 관료체제 중심의 중세적 질서와 시스템이 있었고 이것들은 서양이 이들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장애물이 되었다는 얘기다. 동북아 3국중 조선만이 식민지가 되었는데 왜 그럴까 이런 질문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유럽열강은 조선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원료시장이나 완제품 시장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조선의 개항은 중.일보다 훨씬 늦었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이유는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필요한 시장으로서의 유혹보다는 지정학적 차원의 국가안보나 국제관계의 세력형성 때문이다. 러.일.중이 조선을 두고 각축전을 벌인 이유는 다른 나라에게 조선이 넘어가면 자국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chongso1765 그나마 중국은 당시 청나라라는 거대한 제국형태였기에 덩치상 식민지를 면했는데 만일 과거 왕조교체과도기형태의 상태 즉 예컨데 5대10국같은 그런 상태였다면 중국대륙의 상당부분이 식민지화되었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나라가 수십년 앞서 대략19세기 후반에 멸망했지만 그렇다고 중화민국이 바로 성립한것도 아니고 여러 정치세력으로 쪼개졌다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중국대륙도 상당부분 식민지화되었슬 것입니다. 이 경우 추측한다면 중국 동북부는 러시아식민지, 중국 남부 홍콩과 가까운 광동성은 영국 식민지 이런식으로 전개되었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