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상 중에... 거대한 하나의 의식이 있고, 그 의식이 만든 지구별이 있고, 그 지구별을 79억 명의 눈으로 나누어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더 나아가 자연 속 수많은 동식물들과 무생물의 시각으로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게 느껴졌고요. 인간의 눈을 통해, 나무의 눈을 통해... 하물며 생명이 없는 듯한 커피잔의 눈을 통해서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따스한 존재가 느껴졌어요.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신의 눈'을 이루는 한 조각이며, 이 사실을 안 순간부터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일요일 아침이라 늦잠을 잤는데ㅎㅎ 일어나자마자 선생님의 영상이 업로드 돼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귀중한 가르침으로 저희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신의 눈'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내가 낳은 아기는 내 눈에 넣어도 아리지 않듯, 우주를 창조한 신은 우주를 눈에 넣어도 아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의 눈속에 살면서도 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아픔의 눈으로 바라보니 신의 눈에서도 아픔의 눈물이 나는 것이죠. 영상에서 말한 '아픔의 공간'은 신의 눈, 무한한 사랑의 눈속에 들어있습니다. 신의 눈속에 사는 모든 사람이 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님 배속에 있을때부터 미움과 두려움으로 세상에 태어나 미움을 떨면서 수치를 떨면서 수치당하고 미움받고 미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유를몰라 원인을몰라 절에가서 절도하고 경전도 읽었지만 기도 했다는 기분만 좋았을뿐 속마음은 공허하고 알수없는 아이려니 한 불안감이 올라곤 했습니다 2년전 거울명상을알고 선생님 영상을 들을때 이해간다 싶어서 조급한 마음에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현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무한반복 억눌렸다와 억누르다를 이해못하고 있었더군요 다시 수행 수련 시작 어제는 위에 덧쒸운 이빨이깨지고 피해자라 생각했는데 엄마를 부모 헝제를 괴롭힌 가해자 였더군요 눈물 코물과함께 입에서 엄마 미안해 라는 소리밖에 안나오네요 선생님 오직 감사할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일생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내 인생은 도저히 수선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빠져살다가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거울명상을 접하고 납득할 수 없었던 우울과 두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난 영상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이치를 확실히 깨달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연자분들의 이야기와 구독자분들의 댓글로 위로와 힘을 얻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요. 각자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인생의 무게는 같고.. 자신만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애틋한 동지들이며 나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도와주는 천사들이므로, 우리는 서로를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울명상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자유는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도 심판없이 받아들이고 느껴주어도 괜찮다는 거였어요. 받아주면 사라지고 치유된다니! 너무나 놀랍습니다. 김상운선생님, 감사하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 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선생님,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의 내 몸은 '무한한 사랑이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씀에 "아!" 하고 놀랐습니다. 그 선물을 지금까지 방치하고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만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시간이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몰라봐줘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말해줍니다. 선생님께도 사랑을 전합니다.
'모든 감정들은 내가 붙잡거나 억누르려 들지만 않으면 나를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이 된다' 는 말씀에 짜릿한 전율을 느낍니다. 허상인 생각이 만들어낸 이 개체몸이 아닌 나는 무한한 사랑이고 창조자 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선생님의 무한한 사랑 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관찰자의 시선으로 무한한 사랑이라는 공간에서 무한한 사 랑을 느끼며 감사 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평생을 미움 받을까봐 두려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습니다. '미움 받는 나, 미워하는 나, 미움덩어리 나'인 그 아이들을 나쁘다, 싫다, 없애버리려고 인정해준 척, 받아들인 척하기를 반복 OTL ....못나도 소중한 내 자식인 것처럼 있는 그대로 조건없이 사랑해 주겠습니다. 여전히 습이 남아있어 또 구박하고 미워하겠지만 거울명상이 있어 다시 힘을 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라님!!
‘사랑받는 나’로 살아가는 비밀(22년 2월 20일) 내가 일주일 뒤 한 카페에서 친구가 소개해준 이성과 만나기로 했다고 가정해봅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기다립니다. 이번에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드는 이성을 만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생각은 어디서 떠오릅니까? 텅 빈 내 마음속에서 떠오릅니다. 일주일 뒤의 현실, 즉 미래의 현실은 내 마음속의 생각으로만 잠재해있습니다. 약속 장소인 카페도, 내가 만날 상대도, 미래의 나도, 내 마음속의 생각으로만 존재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미래의 현실은 점점 내 눈앞의 현실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내가 몸을 움직여 미래의 현실을 향해 달려 나가는 걸까요? 아니면 미래의 현실이 시간을 따라 스스로 내 앞으로 달려오는 걸까요? 나는 몸을 움직여 스스로 미래의 현실로 달려 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시간을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 미래의 현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점 물질화된 모습으로 내 앞으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일주일이 시간이 지나 나는 약속한 카페에서 상대를 만납니다. 내 마음속의 생각으로만 잠재해 있던 미래의 현실이 물질화된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실로 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집니다. 생생한 현실을 만들어낸 생각은 누구의 마음속에서 떠오른 것입니까? 바로 텅 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른 것입니다. 카페도, 상대도, 미래의 나도, 내 마음속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빛의 움직임입니다. 나 자신이 내 생각으로 명멸하는 빛을 움직여 내 현실을 창조하는 창조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자인 나, 관찰자는 왜 내 생각으로 수많은 몸과 우주를 만들어 세상 경험을 하는 것일까요? 몸은 관찰자가 세상 경험을 하기 위해 100년 간만 흘러가다가 사라지도록 설계해 놓은 한시적인 장치입니다. 세상 경험이 끝나면 몸은 설계에 따라 사라집니다. 몸이 사라지면 몸의 오감이 인식하는 우주도 사라집니다. 세상을 경험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몸’이라는 설계된 생각일까요? 아니면 생각을 물질화시켜 바라보는 관찰자일까요? 세상 경험을 하는 유일한 주체는 관찰자입니다. 생각으로 만들어진 모든 존재들은 경험자가 아니라, 경험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무엇을 위해 세상 경험을 하는 것일까요? 내가 카페에서 이성을 만나는 현실 자체는 그 순간만 지나면 사라지는 허상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이 감정은 남아있습니다. 내가 내 맘에 쏙 드는 이성을 만나는 순간 어떤 감정이 올라올까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인생의 반려자를 찾았다는 기쁨, 그리고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과 욕망 이면에는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집착, 붙잡지 못할 때의 버림받은 두려움, 사랑과 숨바꼭질하며 올라오는 미움, 기쁨이 지나면 찾아오는 슬픔, 언젠가는 죽음으로 찾아올 이별의 아픔 등이 숨어있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속에서 오르내리는 모든 감정들은, 있는 그대고 받아들여 느껴주는 아픔은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이라는 무한한 스크린 위에서 오르내리는 감정들은 내가 붙잡거나 억누르려들지만 않으면 나를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이 됩니다. 우리는 왜 가파른 롤러코스터를 오르내리며 환희와 공포를 느끼며 즐거워할까요? 롤러코스터가 놀이기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속에서 올라오는 크고 작은 감정들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느껴보면, 현실은 고통의 바다가 아니라 살아있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경이로움의 바다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쉴 틈 없이 애를 쓰며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반대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에너지의 세계입니다. 예컨대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좋다’고 붙잡으려 들면, 짝이 되는 ‘미움받는다’는 생각은 ‘싫다’고 억누르게 됩니다. 사랑받고 싶어 나를 혹사하며 사는 것도 고통이고, 미움받을까 봐 두려움에 떨며 사는 것도 고통입니다. 만일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가 나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너 정말 미워!”하고 말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나는 미움받는 게 너무 무서워 입을 꽉 다물고 미움받는 아픔을 억눌러버렸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과거의 현실은 어디서 떠오릅니까? 텅 빈 내 마음속에서 한 장의 이미지로만 떠오릅니다. 내 마음속의 생각이 만들어낸 인생 영화였습니다. 어ᄄᅠᆫ 생각이 만들어낸 영화였습니까? ‘난 미움받는다’ 는 생각이 만들어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진짜라고 착각해 그 생각을 두려움으로 억눌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 마음속엔 두려운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억눌러버리는 건 누구입니까? 몸을 나라고 착각하는 ‘개체 나’입니다. 몸을 나라고 착각하니 엄마가 남으로 보이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깁니다. 창조자인 관찰자는 자신이 생각으로 창조된 영화를 억눌러버리지 않습니다. 영화를 바라보며 올라오는 아픔을 느껴볼 뿐입니다. 아픔을 느껴주면 영화는 흘러갑니다. 몸으로 된 나는 ‘난 미움받는다’ 는 생각을 두려움으로 억눌러버려, 스스로 미움받는 두려움 자체가 돼버립니다. 미움받을까 봐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도 못하고, 미운 짓을 하며, ‘미움받는 나’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미움받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뭘까요? 몸에 갇힌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인 관찰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몸을 가진 내가 어떻게 관찰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의 시야를 넓혀 몸을 갖고 살아가는 내 인생 전체를 예컨대 100년쯤, 1,000년쯤 뒤의 먼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어릴 때의 내 모습, 지금의 내 모습, 미래의 내 모습, 죽고 나서 묘비에 새겨진 내 이름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연속적으로 떠올려 바라봅니다. 이렇게 내 인생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는 건 누구입니까? 바로 몸을 벗어난 무한한 마음, 관찰자입니다. 내가 관찰자가 되면 몸을 가진 나는 관찰자 마음속의 이미지가 돼버립니다. 현실도 역시 이미지가 돼버립니다. 그럼 뭐가 남을까요? 내 몸에 달라붙었던 미움받는 두려움, ‘미움받는 나’만 남게 됩니다. ‘미움받는 나’는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바로 내 마음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태어났으니 내가 낳은 내 마음의 자식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억눌러놓고 외면했으니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을 차지한 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자꾸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창조했던 것입니다. ‘미움받는 나’를 내가 낳은 자식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면 내 마음속으로 돌아옵니다. 그럼 짝이 되는 ‘사랑받는 나’와 합쳐서 텅 비어버립니다. 텅 빈 무한한 사랑 속으로 사라집니다. 나는 매 순간 텅 빈 무한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의 나도 무한한 사랑 속에 들어있었고, 지금이 나도 무한한 사랑 속에 들어있고, 미래의 나도 무한한 사랑 속에 있고, 묘비 아래에 묻힌 나도 무한한 사랑 속에 들어있습니다. 나 자신이 무한한 사랑 속에 살아가는 피조물임을 깨달으면 현실은 어디서 펼쳐질까요? 무한한 사랑 속에서 펼쳐집니다. 나를 몸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면 현실은 어디서 펼쳐질까요? 상처받는 감정 속에서 펼쳐집니다. 피조물인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무한한 사랑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내 것으로 착각해 나와 동일시하면 세상은 나와 분리됩니다. 그래서 분별심이 생기고 좋은 것은 붙잡고, 싫은 것은 억누르게 됩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움직이는 생각으로 창조된 허상입니다. 그래서 붙잡히지도 않고, 억눌리지도 않습니다. 고통만 키울 뿐입니다. 피조물인 몸은 아픔의 공간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아픔의 공간밖에 무한한 사랑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픔의 공간을 멀리서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나는 아픔을 바라보는 무한한 사랑이 됩니다. 아픔의 공간에서 깨어나 무한한 사랑과 평화의 공간에서 ‘영원히 사랑받는 나’로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사연을 보내주실 이메일 주소 swkim1217@naver.com
와 놀라운 통찰입니다. 김상운님의 왓칭1,2,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거울명상, 리듬책 등을 통해 깨어나고 의식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 성장 분야에 한 획을 그어주신 존재감 그 자체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한한 존재의 사랑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저를 살리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들 내외에 심한 상처를 받고 좀 충격받아 드러누워 괴로워하던 참에 이 영상을 접했습니다. 몇 번을 되풀이해 봐도 제대로 전달받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상처가 자꾸 끼어들어서요. 자다가 새벽에 깨어 또 몆 번을 되풀이해 듣다가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아들 내외는 지의 상처를 드러내 치유의 기회를 준 고마운 인연이라는 것을. 오래된 부정적인 감정들(버림받음, 허탈함, 무시, 조롱, 황당함, 처절한 배신감, 절망의 괴로움등)이 깊은 뿌리 속에서 느껴졌고 오른쪽 등 뒤쪽이 너무 아프고 오른쪽 앞 가슴까지 연결되어 너무 아팠습니다.(부정적 기운의 응축으로 엉켜 붙어있는 덩어리)-고질적이라 침치료를 10개월째 받고 있음.
이어서 많이 느껴주었습니다. 왔던 자리 무한한 사랑으로 보냈습니다. 참회도 했습니다. 육체의 오감으로 이어갔으면 어찌 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ㅠ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느껴집니다. 주변의 인연들이 배역을 맡은 아바타 들처럼 강하게 느껴지면서 온 우주에 오로지 저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집착이 사라지면서 아주 밝고 가벼워집니다. 계속 수행을 하고 마음공부를 해 온 저에게도 성취감이 느껴집니다. 정말 삶을 확 바꿔놓네요!! 넘 뿌듯해서 설렙니다. 죽을때까지 제 마음을 보는 공부를 할 겁니다. 이것만이 중요하고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귀한 영상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거나 붙잡지 않고 공간을 넓혀 먼 관찰자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느껴주면 고통 속에서 벗어나 텅빈 무한한 사랑속에서 살아갈수 있다는 말씀을 다시 깨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은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선생님은 축복이십니다
너무 좋은 영상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이 행운이에요💗 세상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처음이라 모르고 무섭고 화가나고 공포스럽던 적이 있었지만 점점 타면서 익숙해지니까 뭔가 재미있어지네요. 즐기면서 살려고요. 물론 부정적인 감정들에게 괜찮다고 알려주면서요〰 힘이 나는 영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으로 조용히 나눠 주시는 말씀 자주 잊는 저를 일깨워주는 단비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위해 반복하고 반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거울 명상은 환경도 되야하고 어려운데, 무한한 마음 안에 감정을 풀어 놓는 명상은 잘 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아 좋네요. 여러 방법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고통도 이유가 있었고 이젠 점점 알것 같습니다. 빛을 받고 빛을 나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모든 감정을 받아들인다는게..진정 어떤걸까요? 저에게 요즘 원망,두려움,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길때 가슴이 너무답답하고(공황장애라) 또 공황이 올까 두렵고 그렇거든요.. 관찰자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연습도 해보고 거울명상도 해보는데 물론 거울명상후엔 일시적으로 홀가분한 느낌이 있긴한데요... 제감정..화,원망,두려움들을 진짜 받아들인다는걸 아직 모르는것같아요 ㅜ 혹시 설명이 가능할까요? 저도 그 기쁨을 느껴보고싶어요.. 아..마음때문에 힘들지않게 평온하게 살고싶습니다 ㅜ.ㅜ
@@user-kb6nj3kj9d 충분히 느껴주지 않아서 그래요,온전히 느껴주면 그 감정이 흘러가는게 느껴지고 그 반면의 감정(기쁨, 감사, 행복,사랑 등등) 솟아 올라요.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는 말이에요, 어떤 감정이든 앞으면 앞은데로 괴로우면 괴로운데로 그냥 느껴요, 단지 내가 그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것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인간이 지구를 떠나기 전에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요, 알아차리고 느끼고 흘러보내는 훈련을 반복해야는것이 수련이에요
나는 몸을 움직여 스스로 미해의 현실로 달려 나갈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시간을 끌여 당길수 없습니다. 미래의 현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점 물질화된 모습으로 내 앞으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생각으로만 잠재해 있던 미래의 현실이 물질화된 지금 이순간의 생생한 나, 현재로 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집니다 나 자신이 내 생각으로 명멸하는 빛을 움직여 내 현실을 창조하는 창조자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자주 귀한 가르침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편집해주시는 이나라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이 아픔의 공간은 제한적이라 제한된 물질을 놓고 늘 경쟁구도로 각을 세우는 반면 사랑의 공간은 무한하기에 경쟁할 필요없이 누구나 원하는대로 다 소유할 수 있겠죠.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처럼요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니요… 기적을 행하셨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바로 사랑의공간에서 이뤄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네요. 그러니까 제가 그 아픔의 공간에서 사랑의 공간으로 이동하려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네요… 계속 따라 가보겠습니다. 선생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