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의 사진으로 영주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영상 사진은 영주시청이 발행한 '사진으로 보는 영주백년사'와 국가기록원, 그리고 영주시민신문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어린시절 아련한 추억과 영주지역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47 천방뚝 보니 어린 시절 기억이 쏟아진다. 엄마 손잡고 걷던 기억. 형이랑 카시오페이아 별자리 찾아가며 걷던 기억. 사춘기 시절 짝사랑 하던 그녀까지 불러 온다. 고향을 떠난지 35년 그리고 고국을 떠난지도 15년. 천방뚝 사진 하나가 파장이 크네. 귀한 사진들 감사합니다.
저도 영주 출신 ..저희 집안 부모님 및 일가 모두 영주 6대이상 토박이 집안 .. 저만 해외 5대양 6대주 다녔죠.(남미 빼고) 더 돌아다니다가 나이가 많이 들면 고향 영주 돌아갈려구요. 저도 저기 천방뚝에서 많이 뛰어놀았습니다. ^^ 저기 사진 속 20%는 저희 집안 , 친구 , 제 모교 등 관련되어 있네요...허허.. 어디가도 영주출신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있네요.
영주가 저의 고향입니다. 영광중 19회, 영광고 17회. 담임 선생님, 김동관 선생님, 유시춘 선생님, 황병렬 선생님, 임운경 선생님, 조영제 선생님이 학교 교목이며,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경천애인"이 학교 모표였으며,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성경말씀이 6년 학교 다닐 동안 학교 교문에 달려 있었읍니다. 대구로, 서울로 지내다가. 지금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한인 동포로 살고 있습니다. 자나 깨나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이, 늘 마음과 생각과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귀한 영상 감사하며, 좋은 하루 사시길 소망합니다.
어라...영광고 17회면 몇 년도 인가요? 저도 거기 영광고 앞에 살았는데 봉산교회(얼추 1980~1988년까지 저 초등학교시절 보름골)... HW에 있고 멕시코에도 영주권으로 있습니다만. (텍사스 살지 멕시코 살지 아직도 고민입니다만).. 영광고등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잠시 고향생각에 봤어요.....해외 나가도 친인척들이 다 영주 살아서 생각 날때가 있죠
아주좋은 자료인데 속도가 너무빨라요 단산면이 고향인데 1937년도 내가출생하기전인데 20년후 저의어릴때기억이 단산지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인거 같아서 아주 흥미롭습니다 가능하다면 멀리있는 영주가 고향인 분들 위해서 옛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할수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저는 영주가 고향은 아닙니다만 결혼전 1975년 정도에 몇년간 건설부 산하 영주국도 유지건설 사무소에 근무 한적이 있습니다, 건설부 근무중 2번째 발령이 영주 였습니다, 부산 출신이 눈이많은 겨울에 영주로 발령을 받아 부산역에서 오후9시 30분인가 기차를 타고 가다보니 무수한 터널,터널,,,첩첩 산골에 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지요,,,그렇게 새벽에 영주역에 도착하여 영주생활을 시작했습니다,,,건설부 산하 영주국도유지 건설 사무소는 전국 각지역에서온 기술직 공무원이 근무 하는데,,,저보다 먼저온 직원이 이런 말을 합디다,,,영주 오면 3번을 울게된다 고 말입니다, 첫번째는 많은 터널을 지나니 내자신이 유배 당한 기분이라서,,두번째는 영주시민의 따뜻한 품성에 대한 고마움,,3번째는 떠날때 너무나 아쉬워서 떠나기 싫어서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지금도 생각납니다, 저녁먹으면서 한잔 후 하숙집에서 비누 수건만 가지고 서천의 맑은 물에 쓱쓱 씻으면 물속에 있는 발에는 모래알이 부디치면서 따끔,따끔 ㅎㅎㅎ세무서 근처 였습니다,,모처름 입사동기가 찾아와 한잔하고 하숙집앞 밭에서 깡통을 두드리며 고성방가 ㅎㅎㅎ9죄송0 ,,,,근무후 대구로 발령이나 떠났습니다만 참 좋은 곳이었고,,,고성방가를 넘어가주신 하숙집 주인님 정말 감사 했습니다,,,이후에 한2번 정도 들려서 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불발로 끝났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이었고,그시절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화면 제공해주신 영주tv/영주 신문 감사 합니당.
이번 중앙선 복선전철공사전에 주민과 위정자들이 역을 타도시처럼 외곽으로 돌리도록 노력했어야 ᆢ참 안타까움. 역이 중앙에 있다보니 신설노선임에도 고가로 도심이 개판되었고 역이 시중앙에 위치에 있어 이런 소규모 도시는 발전에 치명타임ㆍ 갈수록 수도권으로 인구 유출이 있어 시가 점점 소규모로 변질되어 주민들 재산적 가치도 점점 소멸될거라 봄ㆍ 안동시와 비교해보고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