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는 원소가 관도에서 발렸다 하더라도 10년만 더살았어도 조조 발랐을거 같습니다. 조조는 사방이 적이었기 때문에 원소 상대로 풀파워로 싸우지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관도대전도 정말 열번 싸우면 아홉번은 원소가 이겼을거 같습니다. 그 빈틈의 실 하나를 과감한 결단으로 뒤집은 조조가 대단한거 같습니다. (물론 속결이 아닌 장기전으로 갔으면 필승이었을거라는건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수와 전풍의 사례는 뭐랄까 신하들이 그렇게 군주를 거스르면 누구나 싫어할거 같습니다. 저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풍은 죽을만 하긴 했어요. 원소의 가장 불운은 수명과 자기의 마지막 상대가 조조였던것 인거 같습니다.
정사 보면 조조는 운 좋나 좋음. 서주 대효도 후 여포한테 연주 다 털렸는데 여포네가 내분으로 알아서 무너져 줘서 다시 찾음. 남쪽의 원술은 황제 놀이 하다 알아서 꿀물 찾다 죽음. 원소랑 영혼의 맞다이 하는 중 손책한테 허창 털릴 뻔 하지만 진등한테 막히고 요절함. 관도에서 원소 한테 개 털리다 친구 허유가 군량 있는 곳 알려 줘서 역전 하고 원소는 병사 함. 마초랑 싸울 때도 개 털리고 죽을 뻔 했지만 결국 이겨서 양주 먹음. 거의 소설 아님? ㅋㅋㅋ
저수, 전풍, 장합 같은 유능한 기주인재들 내버려두고 곽도의 이상한 계책들만 채택했던게 원소의 가장 큰 패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원래 원소파벌이였던 허유마저 배신전에는 허도 습격같은 정상적인거 내놨는데 곽도는 원소사후에도 원담한테 조조랑 연합하자는 등 이상한 계책만을 내놓아서 우스갯소리로 사실 조조군 스파이 아니였냐는 말까지 나오죠..
손권이나 원소나 망한 사람들 보면 꼭 자기가 천년만년 살거처럼 굴어요. 죽을 수 있음을 알고, 후계구도를 흔들고 호족들을 싸움 붙여서 자기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일은 성공해도 조선 숙종정도고 후계구도는 확실하게 박살나 왕실 전체가 부작용에 끙끙 앓게 되는데 말이죠. 영원히 살거라는 생각, 아니면 내가 마무리 해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내 권력을 강화시켜야만 한다는 생각. 모두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면 범하는 실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삼국지의 주인공이 위와 촉인 이유는 유비와 조조는 내가 다 해야한다는 생각보단 후대를 믿고 신하를 믿고 안정적으로 넘겨주려 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일까요?
저 때 급사했을 때의 원소의 나이는 조조와 같았습니다..... 저 때에는 조조도 후계 구도 안 세워놨음...... 저 때 후계 구도 세워 논 군주가 누가 있음? 조조도 자기가 나이들어 병들어 죽을 때 1~2년 전에야 후계구도를 세워놓았음... 원소는 저 때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고 그냥 급사 한거임. 그냥 길가다가 사람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는 것 처럼, 자기가 나이들어 죽은 것도 아니고, 병들어 죽은 것도 아니고, 그냥 잘 지내다가 갑자기 급사 한거임. 이거는 본인도 자기가 스스로 급사 할 지 모르는 거임... 원소는 한창의 나이었음. 아직 창창했음. 후계자를 벌써 세울 나이과 시기가 안되었는 거임. 저 때는 조조도 후계구도 안 세워놨음.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유일한 후원채널이라니 영광입니다! 실패 시리즈가 흥미로운건 아쉬움과 여운이 남기 때문일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난징 징크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밌는 내용인데, 다른 내용과 엮어서 컨텐츠화가 가능하다면 꼭 기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이 조조땅 따먹으라고 기회를 주는대 아들새끼 아프다는 이유로 걷어 차버리고 조조와 본격적으로 전쟁상태 들어가면서 하는 선택마다 최악수만 고르고 역사적으로 후계문제 잘못 건들면 무조간 깽판 났는데 이걸 자기 살아있을때 확실하게 정리 못한거 보면 원래 필부가 맞는데 6년상 하나로 질소포장 되버린게 원소같음
아들 아프다는 이유가 아니라 - 하북4주 다스리는데 시간이 필요 했음. 본진에 있는 병력을 공격으로 다 내보내고, 자기 본진이 텅텅 비었는데, 반란 일어나면 어캄? 저 때는 원소가 자신의 세력을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중앙군을 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지키는 쪽으로 택한 거임. 오소 습격 했을 때 - 내 생각엔 상대가 삼국지 최강의 먼치킨 만랩 조조라서 그렇지 다른 인물이 습격했다면 진작에 순우경에 썰렸을 듯. 이건 조조라서 성공한 거임. 조조 이외의 인물이 왔다면 분명 실패 했을 전략임. 후계자 문제 - 원소의 나이는 조조와 같거나 비슷한 나이. 저 때는 조조도 후계자 안 세웠음. 원소를 무슨 나이 많은 할아버지로 아는데, 조조와 동년배인 쌩쌩한 젊은 나이었음. 저 때 후계자 벌써 세운 군주는 없었음. 왜 죽기전에 후계자 안 세워놨냐고? 그야 급사 했으니까.... 길가다가 사람이 심장마비 걸려서 급사한 거랑 같은 수준 임. 우리가 행여나 길가다가 급사할지 누가 앎?. 계속 잘 살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급사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아, 내가 이제 급사를 할 예정이니까 내 재산 / 증여 지금부터 잘 해놔야겠다 ' 이렇게 생각하고 급사 함?.
원소가 전쟁을 서두른것은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급해진거죠. 물론 관도에서 패하긴 했지만 원소가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을거라 생각하고요. 원소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휘하 장수들 교통정리를 제대로 못한것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똘똘 뭉쳐있는 조조와 여러 파벌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원소의 차이였다고 봅니다. 탁류 출신의 청류 아이돌. 그 덕분에 수많은 인재들이 원소에게 몰려들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인재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원소의 그릇과 능력 자체가 문제였다고 봅니다. 압도적인 물자와 병력과 조조진영 이상의 인재풀을 가지고도 원소가 패망한건 조조보다 정해진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고 사람을 끌어들일수는 있으나 그 사람들을 제대로 쓰지 못함 그 자체였다고 봅니다. 이는 현대 스포츠에서도 자주 보죠. 언더독이 탑독을 이기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우승하는 장면들을 보면 언더독의 팀 케미스트리가 탑독에 비해 좋다. 심지어 상대팀은 팀 케미스트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언더독팀의 명장이 상대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전략이 빛을 발한다. 탑독팀에서 예기치 못한 부상자가 나온다. 탑독 선수들이 예기치 못한 변수에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등등등. 결국 팀 케미스트리가 월등히 앞서고 감독 조조와 그 참모진의 기막힌 전략과 여러 변수들이 유독 조조진영에 유리하게 돌아간다같은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결국 조조가 원소에게 파이널 무대에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것과 같다고 봅니다.
@@도휘-p7h 범부는 아니죠. 그만큼 사람을 끌어모았고 병력과 물자도 끌어모았으니까요. 다만 관도대전을 결승전이라고 한다면 현대 도박사들도 원소쪽에 대부분 걸었을겁니다. 그럼에도 역대급 업셋을 당한거고요.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이기지 못하면 패배자로 기록되는게 역사니까요. 큰경기에서 유독 힘을 못쓰는 선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고요.
원소가 전쟁을 서두른 것은, 그 때 그 당시가 조조와 가장 힘의 격차가 컷기 때문임. 그 당시 조조의 지배력은 원소에 비해 결코 딸리는 수준이 아님. 예주의 생산력은 기주와 맞먹었고, 낙양이 동탁으로 인해 황폐화 되어도, 시간 조금만 지나면 금방 복구되고, 저 멀리 장안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로 손색없을 생산력을 뿜어내고 있음. 서주는 조조에 의해 나가리 되었다 하더라도, 예주+낙양+장안 만 하더라도 원소의 세력에 비해 절대로 꿇리지 않음. 그래서 원소는, 관도대전 일으킬 당시, 바로 딱 그 타이밍, 그러니까 조조가 자신의 영토를 지배하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을 때, 딱 그 타이밍을 노려서 한 큐에 끝내려고 했던 거임. 장기전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임.
사실 원소가 패망한 가장 큰 이유는 향년 47세로 병사해 라이벌들에 비해 너무 일찍 죽었다는 거죠. 관도에서의 패배가 뼈 아프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소측 세력이 더 강력했던 형국이었으니까요. 그 아래에서 원상도 성장했을 테고, 이른 죽음이 가장 큰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정말로 비즈니스적인 인생만 살다 간 남자.. 조조처럼 유능한 혈족들이라도 있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하지만 그 혈족도 본인이 몰살시킨 셈이니, 그러니까 아무도 믿지 못했고, 건강인지 정신인지 뭔지는 몰라도 사람이 조급해질 수 밨에 없었을듯..하지만 인생을 그렇게 살 인내력과 정신력이 있었고, 정치질로 판세를 만드는 능력에 대해서는 조조를 어린이로 보이게 하는 간교함을 보일 정도니.. 진짜로 그렇게 인생을 독고다이 마인드로 살면서 저렇게 인싸짓으로 모든걸 자기 맘대로 이끌어가는거도 놀라울 뿐임.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좀 늦었습니다. 대신 저수 전풍 원담 등 하북 식구들 조만간에 컨텐츠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소가 다소 늦은 이유는 제 관점이 기존 다수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흥미가 좀 떨어지더라고요.. 다만, 관도에서의 패배도 원소가 조금 더 오래 살았거나, 원담의 입지를 좀 더 세워주었다면 중원의 패자는 조조가 아닌 원소가 되었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소가 기주호족을 믿지 못했던건 그 지역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보이네요, 왜냐하면 황건적때도 중심지는 기주 거록이었고, 이후에 유주에서 장순 장거 형제가 오환의 구역거와 손잡고 일으킨 반란군의 영향력이 하북전체와 서주까지 닿을정도로 크게 일어났었고, 한복도 따지고 보면 중앙에서 내려온 세력과 지역 호족의 알력싸움에서 제3의 외부 세력(원소)를 끌어와서 한복을 몰아낸것이니 내가 좀만 불리해도 이 지역 사람들은 손바닥 뒤집듯이 편을 바꾼다라는 의심을 가문과 지지기반 없이 기주에 자리잡은 원소입장에서는 가지는게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원소도 정사 기준으로 보면 권모술수가 상급이고 천하를 차지할 야망이 조조 못지 않았죠. 원소는 예주 출신이고 기주의 주인이 된 걸 보면 외부인이나 다를 바 없었고 같은 원씨 집안인 원술과는 사이가 안 좋아서 혼자서 권력을 차지하고 집중하려면 자신의 측근 세력(곽도, 봉기, 허유, 순우경, 신평 등)을 키우면서 기주의 호족(저수, 전풍, 장합 등)을 견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도 맛있게 잘 봤습니다! 문무겸비에 능통과 함께 생전 손권이 가장 아꼈던 장수이자 인망까지 높았던 지휘관, 그러나, 회심의 형주 뒤치기로 만화 삼국지를 읽던 수많은 어린 촉빠들을 좌절시킨, 지금까지도 평가가 극으로 갈리는 명장, 여몽에 대해서 오빠인 손찬이형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매일 부릅 뜬 눈으로 괄목하며 기다릴게요! 오파르타!!
출신은 옵티마테스이지만, 포풀라테스의 수장으로 역할을 한 로마의 카이사르와 비슷한 모습이 보이네요. 예전에 마키아벨리즘과 관련된 토론에서 조조를 동양에서 가장 마키아벨리즘 적인 인물로 뽑았던 적이 있는데, 원소에 대해 알면 알 수록 조조만큼 마키아벨리즘적인 인물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실패의 사례로서도 우수한(?) 사례가 아닐까….
사실 삼국지에 여러 if가 있는데 가장 궁금하고 흥미진진한 if를 갖고 있는 원소 유우를 진짜 천자로 추대했다면(한 나라에 두 황제 더 개판을 치닫는 중원) 조조를 조졌다면(중원, 화북 먹은 원소판 원소 사후 나라가 쪼개질 지 어케 될지 모르겠음) 여포를 잘 써먹을 수 있었다면(사실상 불가능하지만 if로 강제로 이행했을 때 원소판 관우 장면 나왔을까) 동탁이 아닌 원소가 황제를 먼저 찾았다면(원소가 황제로 이어갈지 충신으로 남을지 주변 제후와 조조는 뭘 할지 궁금) 대부분 당시 상황상 불가능한 만약이 많지만 단순 상상하기에 좋은 주제가 많고 궁금한 게 많은 만큼 더욱이 각혈 최후가 아쉬운 남자
원소 관도대전 판단은 원소 나름대로는 조조한테 시간 줘봤자 좋을게 없어보임. 유표는 그 이후에 좋은 기회도 죄다 구경만 하다가 날려처먹은 채모 핫바지 사장 손책은 호족 죽여대다 암살당해서 개판났고 서량 세력은 협천자 조조한테 관직 받아먹고 우호적. 더 시간 끌어봤자 중원 먹은 조조가 내정 회복해서 원소랑 격차가 갈수록 줄어든다든 판단이니. 문제는 결국 원소 군재가 조조보다 딸려서 개박살 gg
조조의 최대라이벌인 원소...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그의 단점을 많이 부각시키도록 역사가 쓰여졌을 것입니다...역사적으로 이름을 꾸준히 남긴 인물들의 공통점은 수명이죠. 물론 단기간에 강한 임팩트를 남긴 인물도 있지만, 사마의처럼 뭔가 큰 목표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을려면 수명이 바탕이 되야 합니다. 원소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아쉽죠. 조금만 더 살았으면 원소일가가 분열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조조가 중원의 패자로 등극하는 일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후계문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죠. 장자가 부족해보이면 2순위, 3순위에게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게 난세입니다. 기반이 다져지고 안정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장자를 고집할 수 있었겠지만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위진남북조시대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죠. 조조 역시도 장남을 잃고 조비와 조식이냐를 두고 고민했고 손권은 이궁의 변으로 고민을, 유비는 뜬금없이 양자를 들여와서 후계 구도를 긴장케 했죠. 후계구도에 의한 분란은 원소만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고 보여지며 그의 수명이 가장 큰 치명적인 단점이라 생각되네요.
관도대전은 조조 토벌의 목적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세력과 주변 제후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무력시위의 목적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의 설명처럼 외교전으로 주변 세력을 흡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원소는 주변 세력과 자신의 세력들에게 눈에 보이는 큰 한방이 필요해서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는 추측입니다. 일단 이기면 조조를 조질 수 있고, 주변 세력들을 확실하게 끌어들일 수 있으니 원소 입장에선 굳이 안해도되지만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전투였죠. -원소와 내통중이던 조조의 부하들의 서신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만 봐도, 원소는 이미 외교 및 첩보로 조조와 냉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냉전은 원소와 최측근들만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있지, 다른 장수들이나 관리들은 제대로 알리가 없으니 조조와 싸우는게 맞는지 의문과 불만을 가진 부하들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야 출세를 하던 시대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소 vs 공손찬 을 좀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원소는 결코 이길 상황에만 싸우는 군주가 아니라, 형세가 불리할 때 목숨을 걸고 자기가 가장 앞장 서 싸울 줄 아는, 오히려 손책 같은 군주였습니다. 또한, 기주 공방전을 할 때, 원소는 공손찬보다 유리한 것이 하나 없었지만, 그 불리함을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타파해 나갔죠. 원소의 주특기는 오히려 불리함을 역전하는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조조의 협천자는 순욱의 '진 문공이 주 양왕을 옹립하여..'로 시작되는 장황한 연설에 설득된 것인데, 사실 순욱의 의견대로, 포위 당하기 딱 좋은 근거지를 둔 조조에게 협천자는 제후들이 '감히' 도모할 수 없게끔 하는 '성지'화에 의미가 있겠습니다. 당연히, 조조가 사방은 커녕 후방의 위험도 없는 원소의 입장이었다면, 헌제 옹립은 밑지는 장사였을 것입니다.
서자에도 등급이 있는데 첩의 자식이 서자고 본부인 혹은 첩의 시녀의 자식이 얼자인데 후대에는 똑같이 취급하지만 사실 넘사벽으로 차이가 있었다 한마디로 일부일처다첩제여서 가능했다 결과를 볼때 공로가 본초보다 뛰어난게 멋대로 칭제도 해보고 본인이 패망했었도 한때 여포나 손책을 부하에 준하게 써먹었고 자손들도 손가에게 넘어가서 살아남았으나 본초는 집안 아녀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멸문되었고 따지고보면 유우가 죽은 이유도 본초가 방임했기 때문인데 여론전을 위해서인지 몰라도 회전에서 대승을 거둬도 지 가문의 원수 동탁 일당의 중재로 가만히 있고 유우의 아들 유화를 써먹다가 감금하고 옹립시도 때문에 백규에게 정당성을 주는등 조아만 보다 훨씬더 음흉한 자가 원본초다
삼국지 인물들중 출생의 한계(?) 그걸 엎어버리는 6년상이라는 최고의 이벤트 미션 성공으로 초반에 가장 빛났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대단한 놈이다 생각했죠. 하지만 그 끝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하지말아야 할 행동만 정확히 골라서 하는것 같았죠. 정말 아쉬운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영상을 다 보고 나니 기주의 인사들을 믿지 못한 것이나 그들의 계책을 따르지 않아 관도에서 대패한 것조차 어쩌면 후계문제를 잘 정리하고 원소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극복가능한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그렇게 원소가 기주에서 잘 버티고 있었다면 조조가 먼저 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래저래 아쉬운 인물입니다. 결국은 사방팔방으로 온통 적들에 에워싸여 협천자를 하고 중원을 장악한 조조가 대단해보이게 하네요.
저수와 전풍의 글을 보고 다시 원소의 글을 보러오니. 원소의 실책은 1. 본인이 천년만년 살꺼라고 착각해서 이후 준비는 안하면서 2. 아직 다 되지도 않은 밥을 다 된 밥이라 착각해서 밥이 다 된 이후를 생각했다. 라는...군주로써는 치명적인 판단실패에 있다 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원씨 + 더블 3년상으로 하북4주 지배해봤으면 되었잖아~한잔해
이게 조조의 무서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협천자를 하면서 대장군에 오르려 한 적이 있는데, 원소가 불편해하자, 대장군직을 원소한테 양보해 버립니다. 아마, 그 때만 해도 원소는 조조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친위세력 정도로 보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원술 연합과 대립할 때 같은 편이기도 했고요. 실제로, 원소가 군을 일으켰다면, 전풍의 말대로 조조의 근거지는 쉽게 점령됐을거라 봅니다. 다만, '공교롭게도' 유비가 서주에서 패하고 원소에게 의탁하기 전에는 원소와 조조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원술도 나락을 가버리니, 둘 간의 자웅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원술이 진국을 치지 않고 좀 더 세력을 유지했다면, 원소-조조 연합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원소는 조조처럼 실용적으로 계책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그냥 군주가 나서서 정치질하다가 내분나서 망한거라고밖에 안보임 조조는 계책만 보고 화자에 대한 잡생각은 제쳐두는데 원소는 화자에 대한 잡생각이 계책보다 먼저임 그런거보면 정치질은 잘하는거 같긴한데 그게 평시면 몰라도 전시에서 군주역할을 할 인물은 아니였던거 같음 원소 고평가보다는 원소세력에 대한 고평가가 이뤄져야한다고봄
젊을때의 원소는 조조보다도 간웅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자기세력이 강해지면서 오만해졌고 영천파보다 뛰어났던 기주파 배척, 후계자 문제의 삽질, 관도대전의 대패 같은 여러가지 문제가 합쳐져 망했습니다. 관도전 이전에 전풍의 계책이 받아져 허도 빈집털이가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죠
후한의 인구가 5000만이 넘는데 아무리 전란이 심하고 분열되어도 위나라의 인구 500만은 너무 적습니다. 호적이 든게 500만일수 있고 실제로는 2000만이상입니다. 익주와 형,양주가 영역이 넓고 인구가 더 많을수 있어도 최소 촉오의 인구의 5배이상은 될꺼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기록이 없는 위의 인구를 학자들이 멋대로 재단하는데 아무리 촉과 오의 영토가 위나라에 비해서 작지 않아도 차이가 클수밖에 없습니다. 광역시들의 영역이 아무리 작아도 도에 준하는 인구를 가진것을 생각하면 후한의 주들도 아무리 영역이 작아도 익주와 형주,양주,교주처럼 1주를 차지하는 만큼 인구가 그 만큼 많다고 봐야합니다.
각종 삼국지 컨텐츠(여기 포함)에서 원소가 더 오래 살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거다 어쩐다 하는 의견들이 많은데, 생전에도 자식들이나 부하들 분란도 수습하지 못하던 리더가 오래살았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싶습니다. 생전에 세력차이가 가장 크던 시기에도 관도에서 졌는데 좀 더 살았다고 결과가 달라질 정도인가 싶네요. 여전히 강성한 세력이었다고 해서 원소가 갑자기 총명한 판단을 해서 승리했을거라는거는 너무 원소쪽에 치우친 생각인듯.
어찌보면 사마영하고 비슷한듯? 명성은 중국내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자기보단 딸리던(사마월,조조)에게 지고 자멸한거보면..... 그리고 사람들 평가와 상반된 행적(하진 밑에서 행적,욕심없는척 했지만 장사왕 사마예통수친 이력) 그리고 마지막에 중원의 패권을 두고 싸운 사마월과 결전; 비슷하네요
현대에 밑바닥 부터 자수성가로 성공한 ceo들 중에서도 많은 ceo들이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다가 끝이 안좋은 경우가 많은데 원소도 이런 유형이지 않았을까요. 계속된 성공에 대해 자신의 판단에 대한 과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고 밑바닥에서 부터 시작한 만큼 자기애도 강한 케이스가 원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