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대도독 임기중에 임팩트있는 전투가 없어서 그렇지 오나라에서 가장 대국적인 식견을 가지고 중장기적인 국가비전을 제시 할수 있었던 인재 적벽대전에서 손권이 항전을 할수있게 판을 짠게 사실상 노숙이고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이 전쟁은 국가를 황폐화 시키는데 이양반은 싸우지않고 관우를 압박하여 영토를 양도받았으며 강대한 위를 상대로 촉과의 동맹을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손유동맹이 유지될수있게 할수있는 안전핀이었는데 이양반이 일찍 사망함으로써 손유동맹이 깨지고 삼국의 균형이 무너짐 노숙이 능력이 없었으면 주유가 죽으면서 후임으로 추천하지도 그걸 손권이 수용할 이유도 없죠 사실상 손권의 순욱이자 제갈량이었던 인재
노숙은 연의에서는 안그래도 유비, 촉 위주에 맞물려 웃기지도 않는 호구로 평가절하되었지만, 솔직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서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함. 되려 저런 식으로 다만 대단한 사람이었다라고 뭉뚱그려놓을 수 밖에 없는 인물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음. 특히 모두가 Yes할 적에 홀로 No를 말할 수 있음에도 처신 또한 녹록치 않았던 점을 볼때 장소 만큼이라도 장수했다면 오나라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정말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라 생각함.
오나라는 노숙 이후로 국가의 미래가 좌절된 것 같습니다. 주유의 천하 이분지계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유비를 키워서 위나라의 서쪽을 담당하게하는 천하 삼분지계를 꿈꿨고, 익양대치에서도 3군을 나눠가져 지혜롭게 해결하려 한 것을 보면 번성공방전 때 노숙이 살아있기만 했어도 삼국지의 후반부가 바뀌지 않았을까요...
천하삼분지계는 결과적으로 다 망했자나요.. 유비한테 형주 뺏기고 두나라 관계 악화시키는데 빌미를 준 장본인이 노숙인지라 주유 공근보다 우위의 전략가라고 보긴 좀 아니라고 생각함. 형주를 가져오고 촉 정벌후 조조와 세력을 균등한 수준으로 키워 대항하려한 공근의 천하이분지계가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제갈량이 골백번 북벌하다 돌아온 걸 감안하면 이때 일찌감치 형주 3군을 양도하는 대가로 남쪽에서 손권과 연합해서 압박을 하고, 그 틈에 마초 데리고 일찌감치 양주를 쳐서 먹고 다져 놓았으면 관중을 엿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지리적으로도 삼진, 제 땅을 가진 위에 맞서 촉, 오가 각각 진, 초정도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고요. 겨우 익주 형주 둘만 가졌는데 이미 먹은 형주를 주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만 익주와 통하기가 어려운 곳에서 변변한 참모 없이 관우 혼자 버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손권도 유비가 좀 더 세게 서쪽에서 밀어 줘야 3국 균형이 유지됐을 텐데 관우를 죽여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다니...
공명은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모험을 하는걸 매우 싫어하는 전형적인 관료 유형입니다. 아마 실제로도 북벌 당시 개인 역량 선에서 변칙전술은 가용할 엄두도 못 냈을 가능성이 있구요. 그래서 경고를 받고도 마속을 곁에 뒀던 것이고 후엔 위연을 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간볼빨기-m4w 가후나 노숙 둘 다 대국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야나 가장 필요한 덕목중 하나인 인내심이 탑 티어라는 점이 공통점이기는 한데 가후는 어디까지나 개인 처세술에 그쳤고 위에서 질문을 해야지만 대답을 했다면 노숙은 스스로 국가적으로 행동했었는데 이게 가후와 노숙의 그릇 차이라 생각해요
오나라에서 주유와 더불어 영웅다운 품모를 가진 2명의 위인이라고 생각함 오촉이 위를이기려면 둘이 싸워서 피해를 입었으면 안됐는데 노숙만이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 주유는 더 나아가서 촉을 먹고 싶어했지만 오나라에서 촉까지 어마어마하게 큰 땅덩이와 거리인데 오나라 인프라로는 어림도 없었을것 같음 촉 오가 연합해서 위를 최대한 축소 시키면서 땅따먹기를 했어야 될거 같은데 여몽이 관우통수치면서 죽인이후로 밸런스가 확 무너짐
노숙이 있었다면 장료/만총이 같이 와도 힘들었다고 확신. 관우에게 할말 다하는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정사의 노숙이 체구도 크고 기백이 강했기 때문인데, 여몽과는 달리 대국적인 시야가 제갈량급이었으니 전쟁을 하면 이겼을 가능성이 높고 전쟁 없이도 합비를 얻어냈을 가능성이 높음.. 아니면 서황 장료가 번성으로 못가서 관우가 올라갔거나. 대신 관우가 오나라를 좀 더 경계했을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번성공방전이 삼국 최대의 크로스카운터라 변수가 너무 많긴 하다.. 뭐가됬든 위나라에는 무조건 해악인건 확실.
여몽이 형주 친게 아쉽다는건 전형적인 촉위주 사견임 촉이 형주 필요했던만큼 오도 당시 수도 시상 방어를 위해서 지리적으로 필요한 자리였는데 맨날 아쉽대 합비쪽보다 오히려 점령의 가치가 있는 위치였고 외교적으로도 관우가 깽판 많이 쳐놔서 손유 두 세력은 당시에 동맹을 유지해나갈 수 없었음 그 누구라도 뚫기 힘든 료래래보다 오만한 관우 공격했을듯
노숙의 빌드업이 없었으면 여몽.육손의 형주 정벌전 성과도 없었다고 봐야된다. 그 근거중 하나가 익양에서 관우와 대치하며 유비의 뻔뻔함과 관우의 무력에도 형주를 분쟁지역화 해냈고, 여몽등의 작전이 전면적으로 무력화 되는걸 막아낸 것. 설마 익양대치 해결이 그저 조조의 한중 정복에 쫄아서 그런거만 있었겠음? 과격하게 말하면 익양대치 그 것만으로 관우와 노숙은 적어도 동급이라는 거.
장판에서 유비한테 병력이 없었다고 가스라이팅하지만 바로 뒤 적벽에서 유비군이 주유군보다 사실상 숫자가 더 많았다는 걸 생각하면 노숙도 (당연히) 오나라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긴 한데, 뭐 이런 정도의 대화도 없었음 노숙은 정사에서도 호구이미지였겠지... 만약 노숙이 익양대치 때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진짜 장판에서 남은 군대가 쥐뿔도 없었다면) 이건 순식간에 병력 몇만을 모아서 조조에게 데미지를 준 좀비같은 유비가 더 무서워지는 꼴...; 저 말이 만에하나라도 전부 사실이면 내가 조조입장이었음 촉나라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겠다. 그래서 조조가 말년에 병환으로 죽은건가... 어찌됬든 촉 입장에서 익양대치 건은 관우의 귀책이 크다고 봐야할듯. 보통은 관우 앞에서 다들 위압되지만 노숙은 피지컬이나 지능이나 절대 관우에게 안 딸렸으니... 노숙을 모르면 이릉대전 전후의 촉오관계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음.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
유비는 반조조 연합에 상징적인 인물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적벽대전 당시 자료를 보면 유비군이 크게 도움 될만한것들은 없었고 사실상 주유와 황개가 다한게 맞다고 봐도 될 정도이고 유비는 상징적인 존재로써 가담했었고 차후 오나라에서 정확히 노숙 체제에서 유비를 방패막이 삼으려고 키워준거라고 추정됩니다 결과론적으론 유비가 노숙 상상 이상으로 능구렁이였다는점
노숙의 천하삼분지계는 결과적으로 촉과 오 다 망해서 실패했고.. 유비한테 형주 뺏기고 두나라 관계 악화시키는데 빌미를 준 장본인이 노숙인지라 주유 공근보다 우위의 전략가라고 보긴 좀 아니라고 생각함. 형주를 가져오고 촉 정벌후 조조와 세력을 균등한 수준으로 키워 대항하려한 공근의 천하이분지계가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