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랩 #충청도 #인천 지도를 볼 때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지는 충청도와 인천. 분명 좌우로 뻗어있는 충청도가 왜 북도/남도로 나뉘는지, 또 인천은 동구/서구/남구 등 자치구 이름과 위치가 왜 이리 따로 노는지에 대해 의문인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요! 크랩이 한 번 알아보았습니다! 구성 서연주 인턴 촬영 박도훈 편집・디자인 김진배
인천 동구+중구일부지역 > 제물포구. 인천 중구 > 영종구. 인천 남구 > 미추홀구. 인천 서구일부지역 > 검단구. . 마지막으로 서구일부지역 > 서구. 곧 개편될 예정이거나 개편된 내용입니다. 지방의 구청소재 모든 지역도 명칭이 변경되었으면 좋겠네요. 포항의 남구, 북구. 천안의 동남구, 서북구. 그리고 서울과 모든 광역시도 옛지명이나 위인의 호 또는 지역에 걸맞는 예쁜 이름으로 변경돈어 불려지길 희망합니다.
황해도도 동서로 나누어져 있지만 황해남북도라고 부르고, 좌우도 행정구역 편제 당시 함길도(함흥+길주와 합친 도이자 지금의 함경도)는 예외로 남북으로 나누어 되었고 평안도는 3개 도(평안좌•중•우도)로 나뉘었죠. 여담으로 옛 중국의 왕조 역시 수도의 위치에 따라 나라의 국호를 다르게 부르는데 동진/서진, 북송/남송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근데 황해도는 13도제 시행할 당시에는 충청도처럼 남도와 북도로 나뉘지 않고 쭉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다가 분단 이후 북한에서 임의로 황해도를 남북으로 분도시킨 거예요 그래서 남한에선 분단 이전의 북한 행정구역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강도, 량강도, 황해북도, 황해남도는 안 쳐주고 한국 정부에선 오로지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황해도, 강원도(38선 이북)만을 인정하고 있어요
중국의 왕조 이름이 서진->동진 이나 북송->남송 으로 바뀌는 사례는 수도의 위치 변경 뿐만 아니라 외부 침입에 의한 사회 변동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서진이 '팔왕의 난' 을 비롯한 내부 분열로 혼란해진 틈을 타 이민족 세력이 화북 지역을 장악하였고, 이에 기존 세력이 양쯔강 이남으로 피신해 '동진'이 건국되었습니다. 송은 960년 건국된 후 당나라 이후의 분열기인 5대 10국 시기를 통일하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며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영위하였으나 1126년 금나라의 침공을 받고 수도 카이펑이 함락된 후 황제마저 포로로 잡히는, '정강의 변' 이라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아직 세력을 보존하고 있던 나머지 황족과 대신들이 남쪽의 임안(지금의 항저우)으로 피신해 송나라를 재건하고, 이때부터의 송을 '남송' 이라 칭하게 됩니다. TMI이긴 합니다만... 혹시라도 헷갈리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적어 봅니다.
충청은 워낙 도 이름이 조선 시대 때 많이 바뀌어서 수부고 자시고 따질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충주가 안 들어가기도 하고, 청주가 안 들어가기도 하고, 둘 다 교체 당하기도 하고... 대한제국 시절은 13년 남짓이고, 13도 체제였으며, 이미 충청남북도로 고정된 상황이고요. 딱 1년만 했다는 23부제에서는 수부가 府일 텐데, 지금의 홍성군(홍주부)과 공주시-청주시(공주부), 충주시(충주부)로 되어 있군요.
남도 북도를 나눈 게 일제의 영향이라는 썰은 대체 어디서 나온 썰인지... 2차 갑오개혁 때 추진했던 23부제가 실패하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대한제국 시기의 13도제이죠. 8도의 일부를 남, 북으로 분할한 것은 대한제국의 정책이지 일제의 영향이 아닙니다. 1896년은 아관파천으로 조선을 둘러싸고 열강 세력 간의 균형이 이뤄졌던 시기였구요.
대구는 원래 밸런스가 맞았죠, 중구를 중심으로 윗쪽은 북구, 동쪽은 동구, 서쪽은 서구, 남쪽은 남구, 그런데 이후애 수성구와 달서구, 달성군쪽으로 갈라지면서 조금씩 차이가 생긴것 입니다. 중구를 중심으로 동쪽에 동구로 정했는데, 수성구가 생기면서 동구의 절반을 가져감. 즉, 지금 수성구가 있던 지역 대부분은 원래 동구였음.
부산도 인천과 마찬가지로 행정 명칭이 실제 위치한 행정구역하고 완전히 다름. 중구, 서구, 동구, 남구인데 중구와 서구는 정작 부산 시내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고 동구는 부산 중심의 남쪽에, 남구는 동구보다 동쪽에 위치함. 부산시청이 부산 중심의 연제구로 이전하기 이전까지는 중구가 구 도심이었고 여기에 부산시청이 있었음. 남포동도 이 지역 바로 옆에 있었음. 그 이후로 시가지 지속적인 확장으로 방위개념이 뒤틀려짐.
@@러브허니-v8d 경상남북도는 남북으로 전라남북도도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충청남북도는 동서로 나누어져 있어서 한 말인데요..... 무슨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는데요. 충청서도 충청동도로 이야기는 영상에 나오니까 뺀거고 충청북도만 충청도로 하고 충청남도는 다른 이름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한겁니다.
맞아요, 제대로 공부하지도않은채 학창시절에 내내 졸다가 운동권 교사들이 일제강점기 진도나갈때 가끔 일본의 만행, 일본이 왜 안좋은지 쌀 플때만 잠깐 깨서 주입당한것만갖고 뭐만하면 이게다 일본때문이니 일제 잔재이니 하는거 역겹습니다 오히려 그런거때문에 일본인들이 논리적(이라고 생각될만한 교묘한 자료들)인 것들을 증거자료로 들이대고 한국인을 흥분하게만들어 말실수 유도하도록 하며, 한국인들에게 조선침략을 당당히 미화하는거죠 우리도 냉정해져야함.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강제통치방식에 반대하고, '조선과 일본이 같이 나아가야한다 조선의 근대화를 (앞선)일본이 도와줘야한다. 조선어를 틈틈이 배우고 상냥하며 친절해라, 나도 한복을 입는걸 좋아한다' 이런식으로 조선을 나름 생각햤다고 할 수는 있죠. 근데, 따지고보면 장기적으로 볼 땐 이게 더 위험한거였습니다 1세대 2세대가 지나면, 그동안 조선은 노비 부려먹고 탐관오리가 뇌물받고 이씨왕조는 고종 순종 오늘내일하고있고 거리에는 수로에 똥 천지고 상공업 멸시해서 다 농사만 짓고 살았던 조선이었는데, 일본이 와서 서양병원 세워주지, 근대식 학교 만들어주지, 상업도 발전하며 철도도 들여오지, 학교 선생님들도 조선어에 유창하며 친절하지 결국에는 국민 대다수가 일본에 호의적이게되고 문화통치까지 갈필요없이 일본 입맛대로 조선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을겁니다 그나마 안중근님이 저격하여 역사가 다르게 흘러간건데, 그것때문에 '착한 이토씨가 테러범 안중근에게 돌아가셨다, 이로인헤 일본 강경파들의 눈앳가시였던 이토가 제거되자 본격적으로 강압적인 조선통치가 시작되었다, 이토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거다' 생각하는분도 있을텐데 아까 말했듯이 결국 이토가 있었다면 조선은 일본 꼭두각시가 됬을거고, 일본이 초반에 강압적 통치를 하여 조선이 약하지만 광복전까지 계속 독립운동을 해온겁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했냐면, 여기서 이토가 조선 근대화를 해주려고 한게 진짜 조선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본인과 일본에게 장기적으로 이득을 뽑아낼 노다지라고 정확히 인식한거죠 일본이 아니었다면 소련,영국 등, 조선을 노리는 세력이 분명 대체역사에 등장하여 소련강점기가 유력했을겁니다 그 땐 조선말 구한말 진짜 무능한 이씨왕조와 그 밑의 관료들이 문제갸 되었었죠, 이미 그 전인 고려말 조선중기까지 몇백년간 별다른 큰 전쟁이 없어서 안일한 마음이 결국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크게 털렸고 (그나마 이순신장군님, 의병같은 분들이 계셔서 다행) 왜란 호란 후에도 몇백년동안 계속 썩어가고있었죠 바다건너에서는 영국이 동인도회사 설립하고 추악스런짓 벌이며, 19세기초에 우리가 쇄국할동안 일본은 우리보다 몇십년 빨리 문을열어 메이지시대부터 조선침탈 야욕을 보였지만 우린 눈치도 못 챘고요. 시대와 상황이 그렇게 만든겁니다 그렇다고 물론 일본의 추잡스런 식민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예로부터 국제사회는 처절한 약육강식 사회였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이토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한건 맞지만 속내가 있었고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진짜 순수하게 도와주려고 하진 않죠) 우리가 도와달라고 한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나라가 썩어문드러져 있는 상황에서 제가 그당시 조선인이였으면 저역시도 이토히로부미의 조선 통감 부임을 찬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대다수 국민들은 어떻죠? 이토히로부미 하면 쳐죽일놈, 안중근님의 손에 죽어서 기쁘다, 조선통치를 왜하냐 죽어서 기쁘다, 그냥 일제시대때 사럼이라 싫다, 그냥 이토히로부미가 나쁜놈이라고 배워서 이토가 싫다 이렇게 역사적 근거없이 무조건 싫어하고 욕하면 결국 일본사람들은 이걸 꼬투리잡고, 위에 얘기한 '이토는 조선을 위했다' 라면서 실제 그 자료들을 딱 보여줍니다 (혹은 실제 자료와 교묘히 섞인 이토가 더욱더 착하게 보이는 가짜자료 포함) 이토가 그냥 무조건 나쁜사람이다 악당이다 생각했다면, 이런 반박 자료를 보고 맞받아치기 어렵겠죠. 이토는 결국 머리를 잘 쓴 영특하고 무서운 인물입니다. 조선을 도우려 한 그 속내에 정확히 뭐가있는지는 그가 알겠죠. 근데, 이토를 너무 근거없이 비판하고 쪽빠리가 나쁘면 나쁜거지 라고 억까하면서 감정이 실리게되면 오히려 일본 (특히 극우파와 자민당 정치인들)에게 좋은 먹이감이 됩니다 더러운 말로 표현하자면 조센징 발작버튼인거죠
동인천도 인천의 동쪽이 아니라 당시 인천시청(현 중구청)의 동쪽에 있어서 동인천이라 부른 겁니다 현재 인천 구들 중에 위치가 맞는 건 그나마 서구가 유일합니다 또 행정구역 개편을 해서 연수구와 송도구(송도국제도시)로 나누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송도국제도시와 연수구청은 거리가 꽤 있는 편)
도시가 커지면서 생기는 오류.... 인천을 의미하는 제물포고등학교는 구 시가지인 동인천역에 있어요. 동인천고등학교는 제물포역에 있었다가... 남동구 끝으로 옮겨 진짜 동인천고등학교가 되었다는... 이름하고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지만... 도시가 작았던 시절 제물포역이 예전에는 인천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니... 동인천고등학교라는 이름이 어울렸는데... 지금은...진짜 인천 동쪽 끝으로 가서... 이름따라 학교를 옮겼네요....ㅋㅋ
북한 황해도 충청도처럼 유순하고 느린 말투로 북한에서 "땡해도"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지역 충청도처럼 서해쪽은 황해남도 동부내륙은 황해북도로 갈라져 있는것도 공통점 충청도는 서울 아래 황해도는 평양 아래 있어 수도의 밑에 있다는 점도 같음 둘다 내륙쪽이 산도 많고 더 춥기 때문에 동쪽이 북도로 불릴만하다고 생각함
2는 완전 개소리인게... 일본은 러시아랑 각보느라 생각보다 일본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입장에서는 러시아는 서구열강 중 하나라 그때까지는 눈치보기 바빴는데 조선 행정구역...그것도 남북 동서.. 따위 지명 즉 이익 1mm없는 관여할 리가 만무... 그리고 애초에 바꾸려면 일본식으로 바꿨겠지... 즉 개소리 어그로..
왕이 남쪽을 바라보는 것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었다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북쪽에 있는 평안좌도/평안우도, 황해좌도/황해우도는 남쪽의 충청 좌우도, 전라 좌우도와는 반대로 되어야 할텐데 남쪽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쪽이 좌, 서쪽이 우입니다. 즉 어느 지역이든 상관없이 동쪽은 좌, 서쪽은 우라는 것이지요. 국왕 중심이라기보자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는 상징색도 상징하는 방위와 연결하면 동방-청색-좌향-청룡, 서방-백색-우향-백호 이렇게 됩니다. 즉 임금이 바라보는 방향이 기준이 아니라, 그냥 남쪽이 모든 방위의 기준이기 빼문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남쪽을 향해 차리는 것, 집을 고를 때 남향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음향오행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좌우도는 전라, 경상도 좌도, 우도 이렇게 구분해서 지칭했죠. 그 좌우도 구분의 개념이 현대까지 이어지는 도는 충청도, 함경도. 전라, 경상, 평안도는 남북으로 나누면서 경계를 새로 정했음. 물론 평안, 함경도는 북한 정권이 운영하면서 양강도, 자강도가 새로 생기고, 황해도를 남북으로 나누긴 했지만.
대한민국(한국)은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부속 도서를 일컫는 것인데, 영상 도입부에 왜 한국 지도가 아닌 남반부 지도를 가지고 오셨나요~ 자식 세대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질까 우려되네요. 갈라진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숙원으로 생각하신 박정희 대통령, 그 뜻을 이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