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다는 말이 괜히 머릿속을 풀어헤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사랑을 느낄 만한 구석이 있다’는 말을 앞에 두면 괜히 머릿속의 생각들이 흩어지는 것만 같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 헤쳐진 머릿속의, 흩어진 생각들은 결국 질문이 된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무엇에 사랑을 느끼는가 우리의 무엇이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 두 물음의 뒤로는 먹먹함이 밀려온다.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무엇이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먹먹함을 시간에 흘려보낼 뿐이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런 의미가 있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 달리’를 (어디까지나 화면을, 지면을 통해서이지만) 앞에 두게 되면 무언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이러면 사랑을 받겠구나’ 싶다가, 지나면 ‘이렇게 사랑을 하는구나’ 싶다. 먼저 보이는 것은 귀여움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귀여운 강아지가 있을까.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누군들 예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다음의 언제부터는 애지와 중지가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저렇게 아낄 수 있을까. 도저히 마를 수가 없을 것만 같은 그 애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 나는 못하겠지 싶다. 그렇게 귀여움과 애지중지로 가득한 시간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그 둘의 관계, 둘의 함께가 들어온다. 어디서 저런 한없는 사랑스러움이 나올까 하는 의문도, 어디서 저런 끝없는 사랑이 나올까 하는 의문도 이제서야 조금 해소가 되는 것 같다. 그 둘이 함께인 시간만큼 달리는 사랑스럽고, 그 둘이 함께인 시간만큼 언니는 애지중지한다. ‘달려라 달리’에는 그 ‘함께’가 한가득 담겨있다. 달리가 누군가에게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가는 모습, 달리의 언니가 한 존재를 끝없이 사랑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제목은 달려라 달리이지만, 실제로는 그 둘이 함께 달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무엇을 사랑할지, 무엇에 대해 사랑받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이 있는 이들에게 어쩌면 간접경험을 돕는 문학이, 어쩌면 가르침을 주는 참고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이 되었든 참고서가 되었든 훗날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떤 기준에 의해 분류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아마도 장르가 ‘함께’, 과목도 ‘함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달려라 달리’는 달리 언니가 함께 달리며 외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달리자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머릿속이, 마음속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서 있자. 함께 서 있자. 지금 당장 달리지는 못 하더라도, 조금씩 걷는 것조차 힘들더라도 함께 서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보면은 언젠가는 함께 걷고, 언젠가는 함께 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에 사랑을 느끼는가 우리의 무엇이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 어쩌면 무엇인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무엇도 무엇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