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사사하자고 나서서 주장했습니다. 양녕을 미화하는 이는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광인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세종 때에도 아들의 여자를 손대는등 미친 행동을 그치지 않아 태종 조차 유언으로 "양녕이 사고 쳐서 감당하기 힘들어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죽여도 좋다."고 했으며 대간에서도 왕족에서 서민으로 강등하자며 탄핵 상소 빗발쳤습니다. 그럴때 마다 세종대왕이 두둔하며 끝내 감쌌기에 양녕대군의 자손들이 명목상이나마 왕족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던거죠. 형제라 온갖 비난 감수하며 감싸준 동생에게 손자 죽이자고 부추겨 원수로 갚은 셈이죠.
진정 대한민국의 숨어있는 역사적 발자취를 찾아 우리들에게 알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단종 폐위와 복위운동과 사육신들의 죽음 또는 죽임)을 사극 드라마 나 간단 역사서적을 통해 일부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묘소까지 찾아 유튜브로 보여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 당시 아니 지금도 그 때를 간접적으로 되돌아 보면 슬픈 비극적인 현실이었죠.
역사에 만약에는 없지만 단종이 계속 왕위를 이어 받았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궁금함 세종 문종의시대를 이어 조선전기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을것 같은데 문종이 원역사보다 10년을 더 살던가 단종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자리를 지켰다면 아무튼 조선전기 세종 문종대의 전성기를 단종이 이어 받지 못한게 아쉬움
그러케 하면 단종이 커서 성인이 되면 금성대군 앞으로 구족을 멸하는 사약이 배달될 것이 예약되어 있는데 바보가 아닌이상 수양대군의길을 어쩔수 없이 가는게 정해진거죠 금성대군의 수하들두 모두 사약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 동지들의. 등쌀에 못견디죠 그들두 모두 멸문지화를 예고 하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수가 없는 겁니다
시신 수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경북 영주(옛 순흥)에 혈흔이 묻은 자리 .. 금성대군 제단을 만들었고.. 충북 청주 내수 부인 전주 최씨할머니 옆자리에 금성대군묘(신단이라고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최할머니는 노비의 딸을 데리고 한양을 벗어났으며.. 노비는 금성대군의 유복자 하나남은 아들(이맹한)을.. 서로 바꿔서 몰래 데리고 갔습니다. 사내아이가 잡히면 사형을 당하기때문에! 서슬 퍼런 시대... 하나의 아들을 겨우 살려.. 성종때. 사면 숙종때 복권 영조. 정조때 제단과 신단..여러 서원에서 금성대군을 기리는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처에 안평대군 신단을 저희 후손들이 만들었습니다.(두아들 모두 후사없이 절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