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모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관점 굉장히 공감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전문가인 이세환 기자님께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주시는게 정말 감사한거 같습니다. 그것도 국방TV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이 부분을 침착하게, 객관적인 자료 위주로 딱딱 짚어주시니까 더 다행인거 같아요. 큰 변화는 작은것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이게 도화선이 되서 많은 부분에서 객관적으로 다가가는게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기자님! 샤를 세환, 가즈아~!!! 01:17
독립군이 즐겨쓴 총 중에 하나가 바로 모신 나강인데 러시아 적백내전때 백군의 용병으로 왔던 체코 용병 아재들이 전쟁 끝나고 싸게 팔아줘서 참 요긴하게 썼다고 하네요. 그리고 마우저 c96 권총도 애용했고 영화 암살에서 나오는 중국에서 카피한 톰슨 기관단총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서 쉽게 쓰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만주, 연해주 방면 독립군들이 간혹 체코제 소총을 썼는데...볼세비키 혁명 진압군이 러시아 혁명에 실패하면서 만주쪽으로 쫒겨옵니다. 걔네들 귀국비 마련하려고 독립군에게 총팔아서 배삯마련했어요. 문젠 이 총들이 게릴라전에는 능하지만..탄환보급이 안되면 그냥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1920년대엔 이런 총으로 써서 청산리 대첩이니 교과서에 나온 전투다운 전투를 한거고... 1930년대 산둥반도에 주둔해있던 젝트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사고문단이 있었고... 독일군 소총에....(헬멧 군복까지 1차대전 독일군) 이 짝퉁 소총이 88식 한양조니..장개석 소총이니 이런 것들입니다. 근데 중일전쟁때 이 산둥지역이 일본군에게 점령되고 남경도 뺏깁니다. (도시지역은 일본군들이 장악했지만...산악지역은 광복군을 비롯한 중국 군벌, 게릴라들 혼재) 모신나강 국민당 장개석도 스탈린 지원 받았었고 모택동도 스탈린에게 가서 무기달라고 했지만 장개석도 스탈린 지원 받으러 다녔습니다. 왜냐면 총기공장있고 그나마 가까운 곳이 신장위구르 지역을 통해서 들여오는게 빨랐기 때문입니다. 사막이라서 일본군이 오지도 못했고요.(일부 몇몇 분들은 이거가지고 이념논쟁하시던데...이념하곤 상관없습니다. 무기와 탄약보급받는게 중요했지) 광복군이 1940년에 창설된 것도 장개석 국민당이 지원을 해주니까 형식적으로 군대를 갖출 수 있는것이고.. 김준엽, 장준하같이 OSS 특수훈련 받은 분들은 카빈, 그리스건, 톰슨등 지원받습니다. 중국대륙에 제대로된 미군무기가 들어온 것도 빨리 잡아봐야1943년이죠(그 전에 기관단총은 들어오긴 했을 겁니다만 그 당시 미국에서도 톰슨 이란게 비싸서 들여왔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암시장에 무기란게 저렴하거나 특정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유실품이어야 하거든요.) 그나마 무기가 없는 광복군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일본점령지에서 활동하던 광복군은 들키면 죽으니까 군복이 아닌 사복입고 다녔고요. 충칭까지 임시정부가 쫒겨간것도 장개석의 국민당도 본부가 거기로 가니까 본부따라가면 지원받기 좋으니까 간겁니다. 이 부분 사람들 엄청 오해하더군요. 어차피 광복군도 한계가 있는건 인정하지만...어딘가 서포터가 없으면 독립을 정신승리로 할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엔 최선인 선택이었습니다.
38식이나 99식같은 경우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총들입니다 문제는 전쟁중에 구경이 다른 소총을 채용하면서 탄약이나 부속품같이 챙겨야할 것들이 많아졌다는게 문제죠 그리고 99식같은경우 현재 돌아다니는 것들이 대부분 44년 45년같은 전쟁 말기에 급조로 대량으로 생산된 것들이다보니 품질이 많이 떨어졌고 그래서 99식에 나쁜 인식이 남게되었죠
전문가 앞에서 이런 말하면 많은 분에게 까일껄 알지만 몇 글자 적어봅니다 탄구경 보다 문제가 탄두 디자인 문제가 더 심했습니다 그래서 38 식을 만든겁니다 일본이 30 식 소총 탄도 6.5mm 탄을 사용 했는데 이 탄환의 제일 고질적인 문제가 탄두 디자인 이였습니다 이탈리아 의 카르카노 소총탄 와 같이 생긴 둥글둥글한 탄을 사용 했죠 러일전쟁 때 두꺼인 코트 뚫고 치명상 주기 힘들었습니다 일화가 폭탄을 들고 토치카 에 뛰어든 러시아병사에게 5발 다 명중 시켰는데 그래도 기어코 토치카에 뛰어들어서 토치카를 날러버립니다 38식 때 뽀족한 탄두를 사용 했는데 38식이 30 식 탄환이 호환이 됩니다 38식 이라고 알고 있는 총중에 30 식도 많고 38 식을 바로 채용 해도 기존 30 식 소총탄 재고가 많아 신형탄 보다 한동안 30식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물자가 부족 할 땐 30 식 그리고 무라타 단발식 장전 소총도 쓰여서 30식 탄과 38 식 탄이 같이 많이 사용 됐습니다 38 식 신형탄은 현대 보병소총 탄에 위력을 높았지 절대로 안 꿀립니다
별기군 창설해서 들여오긴 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제 소총 한자루 가격이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F15K가격하고 맞먹어서... 국방예산을 별기군에 투자하고 반면 2군영은 월급 1년치 미루고 묵은쌀에 절반은 모래섞인 봉급을 받았는데...봉기가 일어나서 선혜청(지금으로치면 세금내고 공무원 봉급주는 곳) 박살내고 창덕궁 내부까지 쳐들어간 임오군란이 일어났었죠. 진짜 죽창들고 민비찌르러 간거에요. 그 당시 조선정부가 근대화에 신경안쓴건 아닙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어요. 청나라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국제법 시스템까지 바뀌어지면서 근대화를 하기라는건 쉽지 않았죠
일본군은 기관총을 개발하게된 계기가 있습니다. 러일전쟁당시 맥심 기관총보고 지려버렸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것이 11식 경기관총이었습니다. 11식 경기관총은 보병용 클립을 그대로 쓸수있는 기관총으로, 신박한 개념이었지만 먼지가 많은 지형에서 문제가 많았지요. 아이러니한게 11식 경기관총을 참고해서 만든 소련의 큐비노프 기관총이 있었습니다. 성능은 소련에서 꽤 흡족하게 뽑혔지만 무슨이유에선지 갑자기 개발이 중단됐는데 스프링 장력으로 손가락 씹힐까봐 취소했다합니다.
일본군이 사용했던 38식 아리사카 소총의 장점을 봅시다. 약하지만 일단 맞으면 중상이기때문에 저격용으로 재미본 일본군들이 꽤 있습니다. 노리쇠가 존내 튼튼함 약실에서 압력을 견딜수있는 힘이 강함 총열이길어서 총구화염이 적음 반동이 매우적음 양각대도 쓸수있음 (그러나 양각대는 아마 저격용 모델에만 있는거같아요) 단점은 약한 화력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99식 소총의 장점은 강해진 화력 약실압력을 견디는힘이 유럽소총 뺨침 내구성이 강함 양각대 추가 단점 강한 탄환을 사용해서 반동이 강해짐 99식소총에 들어서서 전작의 아리사카의 단점이 거진 수정이 되었지만 이 역시 한계에 부딫히게됩니다. 미군과 독일 소련 동시대 이테리 조차도 구형이지만, 반자동소총이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거기다 중국도 반자동소총을 설계및 개발까지 하려고 하는순간 설계자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마우저 볼트액션 소총을 계속 쓰게됩니다. 일본은 꽤 늦게 개발을 시작했다는것이죠